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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15화 (15/242)

15화.

15화.

“흐음······.”

“······.”

신나는 음악이 들려오며 이곳저곳에서 화기애애한 웃음이 들려오는 발랄한 분위기의 카페. 하지만, 그런 사람들 사이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있는 아영과 나의 사이에서는 미묘하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 야. 주인. 도대체 저 인간은 왜 저런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거야? ]

정말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을 지은 채 연신 혼자 이상한 콧소리를 내며 웃고 있는 아영. 처음 봤을 때도 조금은 독특하다고 느꼈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면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특이한 인간이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직장에서 잘렸다고 하셨는데······. 그다지 기분이 나빠 보이시지는 않네요?”

잔뜩 화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잔뜩 신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뭔가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녀를 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아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태연하게 내 질문을 받아쳤다.

“기분 나쁠 게 뭐 있나요? 안 그래도 저도 계속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차라리 잘된 일이었죠. 뭐.”

“그런가요?”

“예. 솔직히 말해서 2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 채널이라고 해서 많이 기대하고 들어갔었거든요. 그렇게 많은 구독자를 달성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특별한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하루하루 콘텐츠 기획에 머리를 쥐어짜며 휘하 편집자들과 매니저에게 온갖 화풀이를 해대는 한성. 카메라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이룩한 업적은 뒤에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참신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구상하는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뒤섞인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아영은 흥미를 잃었다.

“기획한 아이디어가 잘 먹히면 자기 덕. 반응이 시큰둥하면 기획자 탓. 그런 갑질도 처음 봤다니까요? 이제 최근 유행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채널이 성장세를 멈춘 것을 넘어서 서서히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바뀔 생각을 하지 않으니 별 의미가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채널을 나오고 제 채널에서 일하겠다는 건가요?”

“맞아요.”

성장 동력과 열정을 잃어버린 귀인 열전의 채널에 염증을 느낀 그녀의 눈에 운명처럼 들어온 나의 채널. 이제 만들어진 지 고작 2주밖에 되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파르고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며 아영은 눈을 빛냈다.

“제가 지금까지 봐 왔던 뮤튜버 중에서 멀린님은 가장 어설프고 조잡하고 또 아마추어 같은 수준이에요. 보통 그렇게 영상을 2시간짜리 분량으로 통째로 올리는 경우는 절대 성공할 수 없거든요. 겨우 취미 수준으로 하거나 아니면 지인들 끌어모아서 구독자 수십 명 정도 달성하는 게 전부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복장과 썸네일.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영상.

거기에 언제 노란 딱지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거침이 없는 공격적인 발언들까지.

그야말로 뮤튜버로서 실패하기 위한 모든 요소들을 겸비하고 있는 채널.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자그마치 20만이라는 구독자 수를 달성했다는 것은 분명 인정할 만한 성취였다.

“보기만 해도 딴지를 걸고 싶어지는 정신 나간 마법사 복장. 옆에 있다면 명치에 진심 펀치를 갈겨주고 싶을 만큼 거만하고 오만한 말투. 거기에······. 이 세상이 조만간 멸망할 것이라는 세기말 예언까지. 일반인이라면 참으려고 해도 절대 못 참고 욕부터 먼저 박아주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어그로. 그 어그로 하나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끌어모았다는 건 아마 뮤튜브 역사상 최초일 거예요.”

“······. 지금 칭찬하는 거 맞죠?”

칭찬이지 욕인지 조금 헷갈리는 아영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내 물음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자태로 커피잔을 흔들었다.

“하지만 이건 멀린님이 아직은 어린 중학생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해요. 분명 지금 당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구독자 수에 신이 날 수는 있지만, 이제 이 이상의 어그로는 분명 채널의 성장에 독이 될 게 분명해요. 뭐가 되었든 그 한계는 분명한 콘텐츠니까요.”

“음······. 그러니까 이제 저의 어그로에 신선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게 될 거라는 말인가요?”

불과 2주 만에 유입된 수십만 명의 구독자 수. 하지만 그건 지금껏 뮤튜브에서 보지 못한 처음 보는 신선한 자극에 이끌려 온 이들이기에 아영의 눈에는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썰물처럼 빠져나갈 허수나 다름없는 자들이었다.

“맞아요. 그 유치한 마법사 복장이나 지구 멸망이나 이런 자극적인 이야기가 한 번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는 몰라도 반복해서 계속되면 결국 시들시들해지기 마련이니까요.”

“일리는 있네요.”

부디 1절만 하고 2절 3절에 뇌절까지는 하지 말라는 아영의 조언.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저를 채용하라는 말이에요. 제가 기본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지도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조악한 영상 편집만큼은 분명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대신해 줘야 할 필요는 있어 보이거든요.”

영상 편집만큼은 절대 직접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권고하는 아영. 조금도 걸릴 것이 없다는 듯이 조금은 과할 정도로 솔직하지만 그러면서도 분명하게 핵심만을 조목조목 짚어나가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나는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채용하죠.”

“오······. 진짜요?”

“왜요? 제가 뭐 거절이라도 할 줄 알았어요?”

“아니 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것보다는 더 오랫동안 설득해야 할 줄 알았죠. 그래서 제안서까지도 만들어 왔었거든요.”

“제안서요?”

“예. 여기요.”

너무나도 쉽게 끝난 나의 결정에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영. 그리고 그녀는 이내 언제 만들었는지 꽤 두꺼운 종이 뭉치를 가방에서 꺼내 들고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음······. 꽤 구체적이고 상세하네요.”

현재 내 채널이 가진 강점과 성장세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동시에 치명적인 문제점을 꼬집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까지 제시하고 있는 아영의 제안서. 그걸 하나하나 유심히 검토하고 있자 그녀는 신기하다는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역시······. 일반적인 중학생은 절대 아니라니까.”

“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제가 어떤 걸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셨나요?”

아영의 서류에는 온갖 미사여구와 수많은 데이터와 통계 자료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그녀가 제안하는 핵심이자 최종 결론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대충은요. 과도한 컨셉질은 적당히 하고 저만의 팬덤을 구축하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보통 채널의 초기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자극적인 어그로를 통해서 유입을 최대한도로 끌어모으는 것이 효과적이겠지만, 구독자가 10만 명을 넘어가는 경우부터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그냥 안정적으로 재미있는 콘텐츠만 꾸준히 올려도 성장세는 멈추지 않아요. 이제부터는 콘텐츠의 질적 수준을 신경 써야 한다는 의미죠.”

[ 뭔지는 몰라도 주인보다는 뭔가 믿음직한 것 같은데? ]

그래도 괜히 2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대형 뮤튜브 채널의 편집자는 아니라는 듯이 뭔가 그럴듯한 아영의 조언은 아무것도 모르는 용용이조차도 넘어갈 정도로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문제는······.

“멀린님은 마술······. 아니, 마법을 잘 쓰시잖아요? 그렇다면 마법을 보여주는 데에만 집중하는 게 어떨까요? 세계가 20년 후에 멸망한다거나 시청자랑 말싸움하는 그런 자극적인 언행도 최대한 자제하고, 또 그 우스꽝스러운 복장도 조금 그럴싸한 걸로 바꾸고요.”

그녀조차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내가 했던 그 모든 것들이 전혀 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눈치였지만 말이다.

“일단, 더 이야기하기 전에 한 가지만 확실하게 하죠.”

“네. 어떤 거 말인가요?”

지그시 자신을 바라보는 내 눈빛을 조금도 피하지 않고 받아내는 아영. 마치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그녀에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은 그냥 단순한 컨셉질이 아니에요.”

“그런가요?”

“네. 모두 이 지구의 멸망을 막아서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죠.”

“······?”

내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아영. 하지만 나는 그녀가 무어라 할 새도 없이 빠르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영 씨도 뉴스에 관심이 있으면 아마 아실 거예요. 최근 들어서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없이 많은 불길하고 의미심장한 경고 신호들을 말이죠.”

이상고온, 가뭄, 홍수. 거기에 생태계 파괴와 심각한 쓰레기 문제까지.

지금 당장 몸으로 체감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마치 끓어오르는 물속의 개구리와 같이 인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넘어서고 있는 와중이었다.

아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벌어질 수많은 문제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한 시련과 재앙들이 인류를 향해 불어닥칠 것이다. 물론 그것을 눈치채거나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최후의 순간까지 생생하게 경험했기에 아영에게 확신에 찬 얼굴로 분명하게 선언할 수 있었다.

“이 세상은 20년 후에 수많은 문제를 직면한 인간들의 이기심과 아집 속에서 자멸하게 되고 또 수천만······. 아니, 수십억의 사람들이 끔찍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죠. 바로 우리 문명이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올린 과학 기술에 의해서 말이죠.”

이 지구의 인류 문명은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말이다.

“······.”

그 충격적인 사실을 듣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는 아영.

무언가를 깊이 고심하는 듯이 생각에 잠긴 그녀에게 나는 조금은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목적에서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은 없으니까 너무 겁먹지 않으셔도 돼요. 저랑 용용이와 함께 이 인류 모두에게 마법의 위대함을 가르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신다면 그 비참한 결말을 막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앞으로 그 행보에 아영 씨도 열심히 참여해 주실 수 있다면 좋겠어요.”

마법. 종말. 친환경.

듣기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세 가지의 테마로 채널을 운영하겠다는 나의 원대한 포부에 아영은 참 오묘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렇군요······.”

전혀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아영의 반응. 표정과 말투, 그리고 행동에서 그녀가 내 말을 전혀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 보였기에 나는 다시금 그녀에게 되물었다.

“왜요? 못 믿으시겠나요?”

[ 당연한 거 아냐? 그런 이야기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 ]

내 물음에 대신 끼어들며 답하는 용용이.

그리고 그는 이 모든 것이 시간 낭비라는 듯이 조금은 짜증 섞인 어조로 투덜거렸다.

[ 인간만큼 편협한 시각을 가진 종족이 또 어디 있다고?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고 직접 경험한 것들만 믿고 그 외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의심하는 놈들이라고. 안 그래도 좋은 것만 골라서 듣고 나쁜 건 싹 다 빼버리고 받아들이는 게 종족 특성인 것들인데 갑자기 세상이 멸망한다고 하면 그걸 누가 진지하게 듣겠냐? ]

인간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한 용용이. 그리고 그의 말대로 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런 말을 누가 믿겠어요?”

“그렇군요.”

너무나도 솔직한 대답.

[ 헹! 봐. 내 말이 맞지?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믿든 말든 그런 건 상관 할 필요 없다······. ]

“백문이 불여일견. 그러면 직접 보고 오세요.”

“예······?”

[ 뭐······? ]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 반응에 들려오는 용용이와 아영의 의아함 가득한 목소리. 하지만 나는 이미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심장의 서클을 작동시킨 상태였다.

위이이이이잉.

푸른빛을 내며 발현되는 미증유의 에너지. 마나.

그 마나가 나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자 벌어지는 이변에 아영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나지막하게 시동어를 읊조렸다.

“슬립.”

강제로 상대를 잠에 빠져들게 하는 일종의 정신계 최면 마법. 슬립(Sleep).

고작 1 서클 마법에 불과했지만 마나에 대한 저항성이 없는 일반인이기에 아영은 곧장 눈이 풀리더니 카페의 테이블에 엎드려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그것을 바라보던 용용이는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뭐야······. 슬립 마법을 변형시켰어? ]

내가 사용한 마법을 그새 분석한 용용이. 그리고 그는 정말 흥미롭다는 듯이 연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호오······. 잠을 자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 꿈을 조작해서 주인이 경험했던 그 기억을 엿볼 수 있게 만든다······. 일종의 기억 이식이지만 이런 방식으로 하면 1서클 수준으로도 가능하겠네. 기발한데? ]

아영에게 앞으로의 미래를 단편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나의 기억을 기반으로 설계된 악몽. 그 달콤한 악몽에 빠져든 아영을 바라보며 용용이는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 무조건 악몽을 꾸게 만드는 마법이라······. 악취미가 따로 없네. ]

악몽이지만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로 새근새근 잠에 빠져든 아영.

그런 그녀를 잠깐 내려보던 나는 이내 티슈에다가 짤막하게 메시지 하나를 적어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게 미소 지으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부디, 좋은 꿈 꾸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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