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13화.
귀인 열전 채널의 주인이자 인터뷰의 메인 진행자인 한성.
그는 지금껏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수백 번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해온 그야말로 전문가나 다름없었지만, 지금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장담하는데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당혹스럽기 그지 없는 광경이었다.
“안녕하세요. 대마법사 멀린이라고 해요.”
“아······. 예······. 반갑습니다. 저는 박한성이라고 합니다.”
뮤튜버라고 하기는 아직 너무 어려 보이는 외모의 소년. 아무리 봐도 이제 중학생 수준으로 보이는 키와 앳된 얼굴이었지만, 한성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특유의 분위기가 쉽사리 말을 놓지 못했다.
“제안은 잘 받았습니다. 저랑 이야기했던 편집자께서 그러시는데 엄청 저를 섭외하고 싶어 하셨다면서요?”
“······?”
도대체 아영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모르지만, 분명 심드렁하게 제안 한번 넣어보라고 했던 자신의 반응과 전혀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그.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굳이 사실을 이야기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봤자 좋을 건 없었기에 한성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제가 멀린님의 영상을 무척 인상 깊게 봤거든요.”
“흠······. 그러시군요. 이번에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할 테니 잘 부탁드려요.”
미쳐도 정말 제대로 미친놈의 모습을 보여줬던 그. 시작부터 끝까지 거를 타선이 없어 보이는 그 광기 어린 모습은 분명 그 누구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인상을 주었기에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한성은 무언가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의욕을 다지는 그를 보며 속으로 신음했다.
‘이런 망할······. 이거 아무리 봐도 잘못 걸린 것 같은데······.’
으레 저마다 방송을 위한 컨셉이 있기 마련인 뮤튜버들. 그렇기에 보통 컨셉질을 하는 것은 뮤튜버들 사이에서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한성만 하더라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일부러 과장된 행동과 말투를 하며 평소 성격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멀린이라는 남자는 달랐다.
“저기······. 방송 촬영하려면 아직 멀었으니까 그 복장은 안 하고 계셔도 됩니다. 그 괴상망측······. 크흐흠······. 컨셉용 소품도 내려놓고 계셔도 되고요.”
그 모든 컨셉질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을 때나 하는 것이지 보통 촬영 전에는 평상시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첫 등장부터 그 정신 나간 방송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 괜찮아요. 저는 이게 더 편하거든요.”
“그게······. 편해요?”
“예.”
언제 어디에서든 눈이 저절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초강력 어그로를 끌고 있는 휘황찬란한 별빛 망토와 고깔모자. 거기에 어디서 주워온 것인지 모를 앙증맞고 귀여운 아기용 인형과 유치찬란한 요술봉까지.
도대체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적하지 않을 게 없는 정신 나간 복장을 한 멀린을 보며 한성은 가슴속에서 강렬하게 끌어오는 궁금증을 참지 못한 채 물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그 복장으로 갈아입고 온 건가요?”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입고 왔는데요?”
“예······?”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오늘 방송을 함께 찍어야 할 게스트가 이곳에 오는 와중에 신고당해 경찰에게 체포당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제대로 미친놈인 상황. 하지만 그의 당당하고 뻔뻔한 태도에 한성은 저 모습과 행동이 순간 지극히 정상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앗! 멀린님! 오셨군요.”
뭘 하다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양손에 두꺼운 종이뭉치를 들고 뒤늦게 세트장에 도착한 아영. 그녀는 그 특유의 환하고 높은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하자 이내 어색했던 분위기는 조금씩이지만 풀어져 가기 시작했다.
“일단 오늘 인터뷰는 사전에 보내드렸던 질문들을 위주로 진행하게 될 거예요. 조금 민감하거나 불편하게 느끼시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호를 주시면 한성님께서 알아서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록 진행할 거예요. 여기 전에 보내드렸던 방송 대본인데 필요하시면 참고해 주세요.”
오늘 진행할 인터뷰에 대해서 세부적인 사항들을 최종 점검하는 순간. 나는 그녀가 건네주는 대본을 빠르게 훑어보고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별 이상은 없는 것 같네요.”
“네. 그럼 이제 준비는 다 된 것 같고······. 혹시나 궁금하신 점은 더 없나요?”
“아, 인터뷰가 라이브로 진행되는 거로 알고 있는데 혹시 구독자들이랑 이야기해도 상관없는 거 맞죠?”
“음······. 원칙적으로는 그래요. 너무 노골적으로 채널을 홍보한다거나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발언만 하지 않는다면 크게 제지하지는 않을 거예요.”
“음. 그렇군요. 알겠어요. 그럼 악의적인 채팅이 달리면요?”
“뭐······. 그건 상주하는 매니저들이 알아서 차단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렇군요.”
200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초대형 채널답게 방송 진행을 어지럽히고 채팅창을 더럽히는 악플러들을 심판하는 매니저들까지 보유하고 있는 귀인 열전. 그들의 든든한 대비 태세를 보면서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물음에 한성은 무언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혹시 그건 왜 물어보시는지······?”
“아, 제가 안티팬이 좀 많아서요. 혹시나 해서 여쭤본 거예요.”
“아······. 그러신가요?”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성. 하지만 그는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최종 단계를 마치고 방송을 시작하겠다는 매니저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자······. 그럼 이제 방송 시작하겠습니다.”
정각 6시가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가기 시작한 카메라. 그리고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늘어나는 실시간 시청자 수를 보며 한성은 방송용 미소를 환하게 지으며 평소와는 다른 격양된 어조로 인사를 시작하며 인터뷰의 포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이 세상 모든 귀인을 만나 보는 특별한 시간! 귀인 열전입니다!”
이 인터뷰가 얼마나 거대한 파국으로 끝나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
위대한 대마법사 멀린(Merlin).
아서왕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마법사이자 수많은 판타지와 창작물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의 이름을 딴 그는 누가 보더라도 그냥 망상에 빠져있는 한심한 중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한성은 생각보다 능숙하게 자신의 질문들에 답하며 예능감 넘치게 인터뷰를 이끌어나가는 것을 보며 그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게 되었다.
“저요? 저는 이 지구의 유일한 대마법사입니다. 반갑습니다. 귀인 열전의 구독자 여러분. 혹시라도 마법에 흥미가 있으신 분들은 제 채널도 생각나면 가끔 놀러와 주세요.”
“아, 용용이요? 이 녀석은 판달리아라는 판타지 세계에서 넘어온 드래곤인데요. 그래도 나름 오래 살아서 로드까지 하면서 온갖 가오를 다 잡고 다니던 녀석이라 엄청 성깔이 더러워요. 만날 쫑알쫑알 시끄럽게 해서 진짜 가끔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니까요?”
“아뇨. 25살까지 솔로로 있으면 파이어볼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려면 심장에 마나를 축적해서 최소 3서클은 되어야지 가능하죠.”
진심으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농담으로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너무나도 진지하게 구독자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을 받아주는 그.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컨셉을 본 이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 ㅋㅋㅋㅋ. 이 사람 완전 웃기네
- 멀린이라고 했죠? 뭔가 컨셉이 독특해 보여서 마음에 드네요. 채널 구독 눌러둡니다.
- ㅋㅋㅋㅋㅋㅋ. 아 너무 웃겨.
- 인형 이름이 용용이래. 용용이. ㅋㅋㅋㅋㅋㅋㅋ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귀여운 중학생 정도로 봐 주고 있는 구독자들. 그들의 호의 어린 반응과 평소보다 높은 실시간 시청자 수와 지표들을 확인하며 한성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군······.’
아직은 어린아이의 순진하고 앳된 모습을 하고 있기에 그 바보 같지만 독특한 컨셉이 먹히며 사람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던 멀린. 그리고 그가 간간이 보여주는 마술은 한성조차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신기한 것들이었다.
“자. 보세요. 여기서 이렇게 하면 파이어!!!!!”
“움직여라······. 움직여라······. 연필아······.”
“여기 비어 있는 물통에 물이 차오릅니다. 짜잔~!”
그 핑크빛의 유치찬란한 요술봉에서 불꽃이 터져 나오고 책상에 올려져 있던 종이들이 자기 멋대로 펄럭이며, 텅 비어 있었던 생수병에 물이 차오르는 신기한 광경.
사전에 조율한 적이 전혀 없던 것들이었기에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한성을 비롯한 편집자들도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정교한 마술이었다.
마치 마법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마법은 무슨 마법이야······. 미친 것도 아니고······.’
그 모든 것이 마법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도 나이가 들어버린 한성과 구독자들.
그렇기에 그들 중 누구도 이 모든 것들이 진짜 마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야! 정말 대단한 마술입니다! 와, 여러분은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 직접 본 적도 정말 진짜 마법이라고 할 정도로 완벽했네요! 중학생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합니다!”
열렬한 갈채를 보내며 진심으로 그의 마술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은 한성. 하지만 그런 그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멀린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마술이라뇨? 이게 그딴 허접한 눈속임으로 보이세요?”
“네······?”
갑작스럽게 급발진을 하는 멀린. 그런 그의 반응에 한성은 진심으로 당황한 듯 의아한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아까부터 말했잖아요. 마법이라니까요? 마법 몰라요? 왜 자꾸 마법을 보고 마술이라고 하는 건데요?”
“아니 그게······.”
이 세상에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절대적인 명제.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마법이 실존한다고 믿고 있는 듯한 멀린의 반응에 한성은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악플이 채팅창에 달리기 시작했다.
- 님들. 저 새끼 미친 새끼임. ㅋㅋㅋㅋ. 자기가 진짜 마법사라고 생각함.
- 도대체 어떻게 저런 정신병자를 데리고 합방을 하지? 귀인 열전 망했네~
- 저딴 새끼한테 먹이 주지 마세요. 님들. 저거 진짜 미친 새끼에요.
- 앙. 조현병 걸린 망상 중딩 새끼.
마치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하이에나같이 기습적으로 나를 물어뜯기 위해서 달려드는 익숙한 닉네임을 가진 악플러들. 내 채널에서 자주 봐 왔던 그들의 도발에 나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받아쳤다.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너희 같은 버러지 같은 놈들이 미친 거겠지. 마법의 위대함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본인이 믿고 있는 것만이 오직 유일한 사실이며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는 편협한 생각. 그 생각에 갇혀 있는 네놈들 수준은 안 봐도 뻔하다.”
“용용이가 너희들한테 전해달란다. 네놈 같은 새끼들이 판달리아에 있었으면 죄다 언데드로 만들어서 평생 숲에다 나무만 심는 일만 시키면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을 거라고. 만물의 영장? 헹. 지랄하고 자빠졌네. 어디 오크랑 1:1 맞다이를 까도 이기지도 못하는 비리비리한 생태계 최약체 주제에 어디 건방지게 그딴 소리를 해?”
갑자기 혓바닥을 놀리며 시청자와 격렬한 혈투를 벌이고 있는 멀린. 그의 빠꾸 없는 돌직구와 완전히 돌변해버린 태도에 한성은 완전히 얼어붙어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새끼는 정말 답도 없는 미친 새끼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러분 제 말 똑똑히 들으세요.”
답답하다는 듯이 카메라에 대고 무어라 소리치는 멀린. 그리고 그는 정말 진심이라는 듯이 진지하게 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 인류는 앞으로 20년 후에 멸망합니다. 알겠어요? 진짜 다 뒤진다고요. 그리고 그건 다 저기 저런 머저리 같은 병X들 때문이에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뜬금없는 폭탄선언을 하는 멀린. 그런 그의 그런 모습이 생생하게 라이브로 송출되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한성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씨발······.”
아무래도 이번에 새로 들인 막내 편집자는 다른 채널에서 보낸 암살자가 맞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