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6화.
대자연과 생태계의 복잡한 먹이 사슬의 최하위에 자리하고 있는 생명체이자 유기체 대부분의 양분이자 먹잇감의 역할을 하는 그야말로 호구와도 같은 존재.
식물.
물론 일반적인 시각으로도 유일하게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와 양분을 생성할 수 있는 이들은 복잡미묘한 생태계에서 아주 주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그들이 가진 가치는 훨씬 더 뛰어났다.
대자연의 에너지이자 모든 생태계의 순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그 어떤 에너지보다도 사위에 존재하는 이 드넓은 대우주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힘. 마나.
이 마나를 생성해내고 주변에 퍼트리는 역할을 하는 식물들은 이 말라 비틀어져 서서히 죽어가는 지구에 조금이나마 호흡기를 붙여주며 그 위태로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 주고 있었기에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보호받고 또 수많은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아야 할 가치가 있었다. 어디서 굴러먹다 뒈져도 모를 양아치 같은 인간 하나보다는 말이다.
콰앙.
“이 새끼가······. 야! 김철수! 너 진짜 미쳤어? 이걸 지금 진술서라고 쓰고 온 거야?”
물론, 그런 내 생각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듯, 잔뜩 상기된 얼굴의 학생주임은 책상을 거세게 내리치고는 이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내가 쓴 진술서를 들고 연신 무어라 역정을 내며 버럭버럭 소리치고 있었다.
“네. 맞는데요? 거기 쓴 거 그대로인데 뭐가 잘못됐나요?”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그야말로 육하원칙에 따라 있었던 일만 그대로 적어서 제출한 나의 완벽한 진술서. 누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거짓 하나 섞이지 않은 모범적인 진술서의 표본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그는 내 당당한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네가 적어놓은 걸 보면 양원석이가 이민식 학생의 돈을 갈취하려고 했어. 맞아?”
“이미 그거는 말 안 해도 알고 계시지 않아요? 이미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거로 알고 있는데······.”
평소에도 그의 악랄한 만행들에 대해서 선생님들이라고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은 아니었기에, 학생주임은 내 은근한 말에 무언가 살짝 뜨끔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빠르게 화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무튼, 그래서······. 너를 비롯해 다른 동급생 모두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방관하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네가 나섰어. 맞아?”
“맞아요. 평소라면 그냥 신경 안 쓰려고 했는데, 그 새끼가 선을 넘잖아요.”
“선······?”
“내 소중한 꽃순이가 있는 화분을 깨부수려고 하잖아요. 고작 얘 하나 겁주려고 잘 자라고 있는 생명 하나를 죽이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가만히 두고 봐요? 때려서라도 막아야죠.”
너무나도 당당한 태도로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이 되묻는 나의 물음에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이해한 게 맞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고작 화분 하나 깨지는 거 막기 위해서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달을 만들었다는 거야?”
“아니, 고작이라뇨? 그 꽃순이가 제가 얼마나 아끼는 녀석인지 아세요?”
“······.”
발끈하는 나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는지 굳게 입을 다무는 그. 그리고 이내 미친놈을 보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더니 몇 가지 종이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안면 함몰에 갈비뼈 골절······. 거기에 이빨은 8개나 부러졌고 뇌진탕 증상까지······. 너 지금 원석이가 전치 몇 주 진단 받은 건지 알기는 하냐? 전치 12주라고 12주! 일반적인 치료가 아니라 온갖 대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고! 이 정도면 중상해야!”
“예? 무슨 고작 주먹질 하나에 그렇게 다쳐요? 그거 그냥 저 엿 먹이려고 일부러 진단서 부풀리는 거 아니에요?”
“이 새끼가 진짜······!”
고작 주먹 한 방 먹었다고 하기는 도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부상.
이 정도면 달려오는 자동차에 정면으로 얼굴부터 들이박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기에 의사조차도 경악할 정도였지만, 이구동성으로 철수가 주먹 한 방 날린 게 전부라는 일관된 증언을 하는 바람에 학생주임조차도 이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추궁도 할 수 없었다.
“뭐······. 그래도 차라리 이런 식으로 한번 크게 당해보는 것도 오히려 저 녀석한테는 좋은 일일지도 몰라요.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잖아요? 어차피 나중에 저 양아치 버릇 못 고쳐서 집안 말아먹을 새끼였는데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면 그걸로라도 다행이죠.”
“뭐······?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현 4선 국회의원이자 미래에는 대권 주자에까지 오르게 되는 유력 정치인인 원석의 아버지. 하지만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모든 것을 잘못 키운 자식 하나 때문에 한순간에 모조리 잃어버렸다.
“원석이 그 자식이 어떻게 하고 다니는지 대충 아시겠지만, 생각보다 엄청 악질이지 않아요? 어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중학생 주제에 사고인 척 위장해서 같은 반 친구의 발가락을 부스러뜨리려 하다니 말이에요. 나중에는 아예 사람까지 죽이고 다니겠어요? 그렇죠?”
온갖 양아치 같은 짓은 골라가며 해대며 싹수가 이미 노랗다는 것을 증명하고 다니는 원석. 그리고 그는 이후에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결국 지나가다 시비가 붙은 취객을 잔혹하게 때려죽이고는 전국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참혹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기에 만약 과거에 벌어지지 않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그가 조금이라도 개과천선할 수 있다면, 지금의 이 상황은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고 엎드려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니?”
하지만 그런 그의 미래를 알지 못하는 학생주임. 그는 전혀 내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듯 황당하다는 눈초리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 이상 나에게 무어라 할 수 없었다.
콰앙.
“어떤 새끼야!”
“아이고, 의원님. 조금만 진정하시고 저랑 일단 교장실에서 이야기를 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등장하는 표독스러운 얼굴의 중년 부부. 그리고 그 둘의 옆에 착 달라붙어 진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모르는 교장 선생님을 보며 나는 누구인지 말 안 해도 교무실에 난입한 그들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놈입니까? 우리 아들을 그 꼴로 만들어놓은 놈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서슬 퍼런 살기를 뿜어내며 중얼거리는 원석의 아버지. 양원철.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그 험악한 눈빛을 마주하면서 위축되거나 눈을 피하기는커녕 눈웃음을 지으며 능글맞게 답했다.
“그런데요?”
“야······. 김철수 이 새끼야! 너 진짜 미쳤어?”
거의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놓고도 뻔뻔할 정도로 당당한 나의 태도에 기겁하며 숨을 멈추는 학생주임과 교장 선생님. 하지만, 이내 잔뜩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던 원철은 이내 너무나도 차갑고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겁도 없는 것 같군. 아니면······.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이해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건가?”
마음 같아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산채로 찢어 죽여버릴 것 같은 살기를 대놓고 풀풀 풍겨대는 원철.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그 살기를 한 몸에 받으면서도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정확히 알고 있죠. 당신 아들이 가정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서 밖에서 싸돌아다니며 온갖 양아치 짓은 골라서 하고 다니길래 제가 대신 참교육 좀 시켜줬죠. 아마 앞으로 다시는 애들 괴롭히며 코 묻은 돈이나 뜯어대는 헛짓거리는 하지 못할 테니 오히려 저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은데요?”
“이······.”
“으으으······.”
대가리를 바닥에 박고 사죄하며 용서를 구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대놓고 스트레이트로 받아버리는 나의 미친 돌직구에 사색이 된 얼굴로 신음하는 두 사람. 하지만 나의 그 귀에 정확히 틀어박히는 훈수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솔직히 따지고 보자면 이건 정당방위에요. 원석이가 제가 매일 같이 애지중지하며 정성껏 키우던 꽃순이를 죽이려고 했다고요.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분명하게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무시했다니까요? 좋게 말로 했는데도 들은 척도 안 하고 꽃순이를 내던지려고 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요? 이게 다 소중한 생명을 지키려다가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고요.”
“꽃순이······?”
“이게 지금 다 무슨 소리입니까 교장 선생님?”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인상을 찡그리며 되묻는 두 부부.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아까부터 내가 하던 말의 요지를 학생주임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자 이들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뒤바뀌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아들을 그렇게 만든 게, 고작 화분에 심어진 꽃 하나 때문에 그랬다는 말인가요?”
“그게······. 가해 학생 말로는 그렇습니다······.”
화분 하나 깨부수려고 해서 하나뿐인 자식의 얼굴을 깨부쉈다.
인간이 가진 일반적인 도덕성과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도 공감도 할 수 없는 논리. 하지만, 원철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 정신 나간 아이의 눈빛을 보며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디 인간 따위가 식물을 건드려요? 뒤지고 싶어서 환장한 것도 아니고.”
“······.”
하나의 작고 어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투철한 사명감에 나섰다는 나의 해명에 할 말을 잃은 원철. 그리고 그는 아까 학생주임과 비슷하게 미친놈을 보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교장 선생님에게 물었다.
“이 새끼 부모들은 어디 있습니까? 이런 미친놈을 지금까지 학교에 보내고 방관하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 그게 말입니다······.”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부모님. 그렇기에 누나가 내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이제 석사 1학기인 그녀가 평일에 아무렇게나 자리를 비울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아이 얼굴을 그 꼴로 만들어놓고 가해자는 저렇게 뻔뻔하고 당당하게 잘못이 없다고 나오고 있고, 그 보호자인 누나는 이곳에 오지도 않고 있다······. 이 말입니까?”
뿌드드득.
인내심이 바닥난 듯, 평정심을 잃고 이가 부러질 듯이 거칠게 이를 가는 원철. 그리고 이내 주먹을 불끈 쥔 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왜요? 치시게요?”
상대는 4선의 국회의원. 제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중의 표를 얻어야만 하는 정치인이기에 대놓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아주 작게, 하지만 분명하게 나의 귀에 대고 싸늘하게 속삭였다.
“분명하게 말해주지······. 네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 네 인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지옥 같아질 거야.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처참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지.”
고작 중학생인 아이에게 하기는 너무 과한 수준의 협박. 하지만 원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을 담아 복수를 다짐했다.
물론······.
“어이구 무서워라.”
그걸 듣는 나에게는 그 어떠한 타격도 오지 않았지만 말이다.
“기대하고 있어도 좋아. 너만이 아니라 너의 누나를 비롯해 조금이라도 소중하다고 느끼는 모든 이가 너로 인해서 불행해지고 생지옥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농담이 아니라는 듯이 으르렁거리며 살기 어린 눈빛을 빛내는 원철. 그가 가진 정치적 입지와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가 하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정말 실행력을 갖춘 협박이었기에 나는 진한 미소를 풍기며 그의 귓가에 똑같이 속삭여주었다.
“의원님도 기대하세요. 저도 받으면 받은 대로 그대로 되돌려주는 성격이거든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복수에는 복수. 다 아시죠?”
함무라비의 법전을 그대로 실천해 주겠다는 나의 협박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원철. 그리고 그런 그에게 나는 눈을 찡긋하며 무적의 치트키를 선보였다.
“참고로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은데······. 저는 아직 촉법소년이거든요.”
생년월일 12월 28일.
올해가 지나기 전까지 나는 법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난 무적의 15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