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4화. - 수정본.
“한 번만 더 내 방에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진짜 그날로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 알았어?”
깜빡 놓고 간 물건을 찾으러 왔다 해괴망측한 내 행동을 보며 온갖 잔소리를 퍼붓던 하나뿐인 나의 친누나 김영희.
그녀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집에서 쫓아내겠다는 의지가 잔뜩 담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는 이내 깜빡 놓고 간 물건을 집어들고는 자신의 방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또다시 집을 나섰다.
“하······. 왜 하필이면 딱 그 타이밍에 돌아와서는······.”
누가 봐도 미친놈 취급할 수밖에 없는 상황. 도대체 뭐 그렇게 볼 게 있다고 저렇게 방에 들어간 것 하나에 호들갑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굳이 잘못한 사람을 따지자면 내가 오해할 만한 짓을 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딱히 할 말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인형까지 뺏어가지는 않았네.”
등을 두들겨 맞는 와중에도 절대 손에서 놓지 않고 누나의 방에서 가지고 나온 용용이. 이 모든 것이 이 말하는 인형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실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 인간. 아까 방금 그 암컷이 네 가족이냐? 성깔 하나는 더럽군. ]
물론, 이렇게까지 해 가며 챙겨올 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었나 싶을 정도로 예의범절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놈이었지만 말이다.
“어. 하나밖에 없는 내 친누나지. 그건 그렇고······. 너 일단 나랑 호칭 정리부터 좀 하자.”
[ 뭐? ]
“네가 뭐 원래 살던 세계에서 잘난 드래곤이었던 건 알겠는데······. 여기서는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기용 똘리 인형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겠지?”
아무리 보이는 그대로 사실만을 말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나랑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는 누나를 욕하는 것이나, 인간은 벌레 같다느니 하는 온갖 혐오 발언을 가감 없이 토해내는 용용이의 행동이 그리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런 그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서열상 누가 위에 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참교육이었다.
[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인간. ]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듯, 경계심 가득한 어조로 되묻는 용용이. 그런 그에게 나는 히죽 웃어 보이며 말했다.
“앞으로 날 부를 때 인간이라고 하지 말고 주인님이라고 불러.”
[ 뭐······뭣? 주······주인님? ]
“아, 그리고 앞으로 내 앞에서 인간이 어쨌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는 자제하고. 사실을 말하는 건 알겠는데 듣는 인간 기분 나쁜 것도 좀 신경 써야지. 사실 적시 명예 훼손이라고 몰라? 너 그러다 고소당해.”
표현의 자유는 어디 갔는지, 팩트를 그대로 꽂아 박았다가는 고소장이 집에 날아오는 참 바르게 된 대한민국. 그 뜨거운 인실좆의 매운맛을 알 리가 없는 어수룩한 용용이에게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꿀팁을 전수해 주었다.
[ 싫다! 어디 인간 따위가 감히······! 아무리 내가 너를 도와야 한다고는 하지만 고귀하고 위대한 일족의 일원으로서 그런 짓을!! 절대 못 해! ]
“그래······? 못 하겠어?”
내 말이 엄청난 모욕이라도 되는 듯,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쫑알쫑알 뭐라고 소리치는 용용이. 하지만 미동도 없이 그저 혓바닥을 삐쭉 내밀고 웃는 인형의 모습을 한 그를 붙잡고 나는 그저 웃어 보이며 베란다로 향했다.
[ 뭐······뭐냐! 여긴 어디야! ]
달칵.
처음 보는 원형의 공간 속에 자신을 집어넣자 당황한 어조로 소리치는 용용이. 하지만,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문을 닫으며 이 세상 속 문명의 이기를 알려주었다.
“세탁기라고 하는 건데······. 일단 한번 경험해 봐. 그럼 뭔지 알게 될 거야.”
[ 세······세탁기? 그게 뭔데! 야! 인간! 야!!! ]
문을 아예 닫아도 시끄럽게 들려오는 용용이의 목소리.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제를 집어넣고는 세탁기의 전원을 켰다.
“음······. 어디 망가진 곳은 없지만, 그래도 때는 많이 탔으니까······. 중간 정도로 할까?”
어차피 이제부터 계속 가지고 다니려면 한번은 깔끔하게 세탁을 해 줘야 하는 상황. 이참에 오랜 시간 묵은 때를 벗겨낼 생각에 세탁기에 넣었지만, 무언가 한참 오해한 것 같은 용용이의 도발이 계속해서 귓가에 들려왔다.
[ 흥! 감히 이런다고 내가 인간 따위의 협박에 굴복할 것 같으냐! 착각하지 마라! 드래곤 일족의 자존심을 걸고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네놈을 주인이라고······. ]
쫑알쫑알 들려오는 용용이의 말에 나는 중간으로 설정되어 있던 레버를 거침없이 왼쪽으로 돌려버리고는 시작 버튼을 눌렀다.
[ 터보 모드. 초강력 탈수 설정되었습니다. ]
[ 빨래를 시작합니다. ]
그렇게 세탁기를 돌려놓고 나는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괴성을 뒤로 한 채 입맛을 다시며 거실로 돌아와 TV를 켰다.
“뭐 재밌는 거 안 하나······.”
저 어딘가에서 작게 들려오는 괴상한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말이다.
*
과거, LS 가전이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논란을 불러왔던 비운의 세탁기. 크롬.
처음에는 세탁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갖 고성능 부품이 들어간 최고급 세탁기라고 홍보하며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이들이 새롭게 선보인 초강력 터보 모드가 문제가 되었다.
자그마치 2시간 4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3번의 물세탁 코스. 거기에 자동차 엔진에나 들어갈 법한 초강력 엔진을 탑재한 이 세탁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정신 나간 회전력으로 빨래들을 모조리 돌려버리며 묵은 때와 먼지를 한 방에 끝장내버릴 수 있었다.
물론······. 그 어마어마한 파워를 감당하기에는 그 빨랫감들이 너무나도 연약했기에, 묵은 때와 먼지와 함께 빨랫감까지 모조리 다 끝장나버렸지만 말이다.
그렇게 대대적인 뉴스 보도와 함께 엄청난 소비자 민원 속에서 전량 리콜이 진행됐던 문제의 제품. 그 덕분에 나는 공짜로 이 최신형 세탁기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초강력 터보 모드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바로 지금까지는 말이다.
“어때? 좀 생각이 바뀌었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려나?”
세탁이 다 완료되었다는 알림에 문을 열고 그 안을 살펴본 나는 축축하게 젖어버린 용용이의 상태를 확인하며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조각조각으로 찢어져 헝겊 조각만 가득한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멀쩡한 외형과 다르게 그 영혼은 그렇지 않은지, 그는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 아직 부족한가 보네. 그런 이따 또 보자고.”
다시 한번 더 돌려봐야겠다는 생각에 문을 닫으려는 순간, 정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자······잠깐! 잠깐만 기다려라! 인간! ]
“인간······?”
그 말에 다시 세탁기 안을 살펴보며 히죽 웃으며 하는 내 질문에 용용이는 다시금 그 말을 정정했다.
[ ······. 알겠다! 알겠으니까 제발 그만 좀 해라. 주인. 원하는 대로 부를 테니까 나를 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꺼내줘! ]
아까 드래곤의 고결한 자존심이니 뭐니 하며 뻗대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 다시는 경험하기 싫다는 듯 거의 발작 수준으로 꽥꽥대는 용용이를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님을 안 붙인 게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해주지.”
[ ······. ]
내가 봐주는 거라는 듯한 거들먹거림에 뭔가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그래도 발끈하며 대들지 않는 용용이. 어느 정도 서열 정리가 된 것 같은 상황에 나는 세탁기에서 그를 꺼내 들었다.
“일단, 내가 생각을 좀 정리해 봤거든?”
[ 무슨 생각······? ]
“뭐긴, 네가······.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계획이지.”
마법을 통해서 이 세상을 뒤집어엎으려는 나의 원대한 계획.
하지만 인류의 멸망을 지켜내기 위한 나의 그 장대하고 거대한······. 그리고 숭고하기까지 한 그 과업에는 아주 중대한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네가 살던 곳과 다르게 이 세상은 마나라는 에너지가 너무 부족해.”
[ 뭐······? ]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한 목소리로 되묻는 용용이. 그리고 문득 자신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너무나도 희박한 마나의 농도를 확인하고는 경악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 이······이게 뭐야? 왜 마나가 이렇게 적어? 아니, 여기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세상이길래 대자연의 원천이자 생명의 근원이나 다름없는 마나가 이렇게······? ]
마치 메마른 사막과도 같이 완전히 황폐화한 마나.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살아가던 판달리아의 세상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희박한 마나를 보며 호들갑을 떠는 용용이를 바라보며 나는 물었다.
“조금 많이 적지?”
[ 조금이 아니라 심각한 수준은 이미 한참은 넘어섰다. 아무리 마법을 비롯해 마나를 기반으로 한 이능을 개화하지 못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기본적인 에너지인 마나가 이 정도 수준일 줄이야······. ]
하나의 행성에 생명이 번성하고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의 요소인 마나. 그러한 마나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이 적다는 의미는 곧 생태계와 이 행성의 환경 자체가 붕괴하고 있다는 의미랑 일맥상통했다.
“그럴 수밖에 없어. 이 세상의 문명은 자연과 환경을 지배하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급격하게 성장하고 발달해 왔으니까.”
대자연이 만들어내는 복잡하고 오묘한 생태계.
그 속에서 수많은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순환 속에서 발생하고 또 풍족해지는 마나. 하지만 대기, 토양, 바다, 그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오염시키고 있는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인류 문명 아래에 이 지구는 분명 죽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모든 것이 고갈되고 부족해졌지. 식량, 에너지, 영토······. 심지어 먹을 물까지 말이야.”
급격한 기후 변화와 그로 인해 깨져버린 지구의 생태계.
특히, 전 세계의 식량을 책임지던 수많은 곡창지대에서 연이은 흉작이 벌어지며 어마어마한 규모의 식량난을 시작으로 여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된 폭동과 내전, 그리고 전쟁들은 오밀조밀하게 이어진 세계 공급망(Global Chain) 자체를 도미노처럼 무너뜨리면서 세계 전체를 한순간에 엄청난 혼란에 빠뜨렸다.
급격히 악화하는 지구의 환경 속에서도 이전과 같은 풍요와 안락을 누리기 위한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과 욕망. 그리고 그로 인해서 촉발된 핵전쟁까지······. 앞으로 20년 동안 서서히 이어질 지구 생태계의 붕괴와 인류 문명이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순서를 알고 있기에 나는 앞으로 내가 가장 최우선으로 지향해야 할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정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최우선적인 목표는 환경 보호야. 용용아.”
[ 환경 보호······? 그게 뭔데? ]
환경 보호의 개념조차도 알지 못하는 판달리아 출신의 용용이. 그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지만,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자연을 보호하고 또 가꾸면 그에 따라 대기 중의 마나도 늘어나겠지? 그러면 결과적으로 지구의 종말도 막아낼 수 있고, 또 동시에 마나량의 증대는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마법의 경지 역시 높아진다는 의미니까 이 세상에서의 마법의 영향력 역시 확대되겠지.”
다시 말해 일석이조의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환경 보호.
지금껏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 보전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고민하고 걱정하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 혓바닥을 내밀고 웃고 있는 용용이를 붙잡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비록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야 한다는 말이야.”
그렇게 나는 이 세상의 유일한 마법사가 되었다.
그 누구보다 동물을 사랑하고 나무에 집착하며······. 같은 동족인 인간보다는 자라나는 묘목 하나를 더 소중히 생각하는 광적인 친환경주의 마법사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