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예기치 않은 방문
(77/80)
외전 6화: 예기치 않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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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6화: 예기치 않은 방문
2023.07.22.
괜찮은 수의사를 구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데, 모든 것이 잘 돌아갔다. 출산 휴가를 갔었던 부원장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집에서만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어요. 육아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일주일 지나니 어찌나 몸이 쑤시던지.”
오랜만에 병원에 나온 부원장이 한숨처럼 말을 이었다.
“답답해서 죽을 것 같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몇 달 동안 집에서 육아만을 하면서 좀이 쑤셔 힘들었다는 그녀는, 아기가 어린이집에 가자마자 복귀를 하겠다고 했다. 예전처럼 풀타임으로는 못해도 천천히 시간을 늘려나가겠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었다.
원래 일하던 부원장이 돌아오기로 됐으니, 은우도 마음 편하게 회사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말을 꺼낸 지 고작 2주 만에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게 맞는 거겠지.”
은우가 출근을 하지 않는 첫날. 설희는 짐을 싹 빼버린 은우의 책상을 보며 속삭였다.
그의 선택을 응원하고, 그게 맞다고 의심하지 않았지만 매일 보던 남자가 사라지니 서운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하루 없이 지냈는데, 그가 휴가이거나 학교에 갈 때 쉬는 날도 많았는데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짐이 다 나가서 그런가.
설희가 고개를 저었다.
“일하자, 일.”
곧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쌓인 서류를 정리하는데, 딸랑, 병원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과 40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남성의 손에는 하얀 털의 고양이가 들어가 있는 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신기한 구성이네.
아들뻘? 그렇다기엔 어머니가 너무 젊고.
어느 쪽이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집중해.
그렇게 생각을 하며 설희가 입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예약은 하셨나요?”
“아.”
여성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예약은 안 했어요. 혹시 진료 못 받나요?”
“그러셨어요? 아니에요. 진료는 받으실 수 있는데, 예약하지 않으셨으면 대기시간이 15분 정도 걸리실 텐데 괜찮으실까요?”
설희의 질문에 여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죠. 근데, 음. 유설희 씨라는 사람 있나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서 나온 자신의 이름에 놀라 설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분을 어디서 본 적이 있던가?
고개를 기울이고 한참을 여성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찾는 60대 여성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우아함’ 그 자체였다. 은은한 광택이 나는 은색 정장을 입고는 빙긋이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고운 얼굴은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중년의 여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웠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이런 사람과 아는 사이라면 기억이 나지 않을 리 만무했다. 여성이 입술을 달싹였다.
“유설희…… 뭐라 불러야지, 간호사인가?”
“그냥 유설희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저, 제가 유설희인데, 용건이 어떻게 되시나요?”
설희의 말에 웃었던 여자의 입꼬리가 굳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설희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유설희 씨?”
“네.”
“당신이?”
“네.”
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그녀는 설희를 바라보다가 환히 웃었다.
“그렇구나. 그래요, 아. 그래요.”
그래요, 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지만 그녀가 왜 자신을 찾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저…….”
설희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자, 옆에 서 있던 남성이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고양이 진찰을 보러왔는데, 유설희 씨가 친절하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소개로 왔거든요.”
“소개요?”
물론 동물병원에 소개로 오는 경우는 흔했다.
원하는 수의사를 지명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의 테크니션을 지명하는 경우는 병원에서 오래 일한 채린 씨의 경우에도 없었다. 하물며 병원에서 가장 막내뻘인 자신은 더더욱.
설희가 이상해서 되물었다.
“저를요?”
“네. 유설희 씨가 맡아주면 좋겠는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여성과는 달리 남성은 대단히 사무적인 표정으로 설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제가 어차피 담당하긴 할 텐데. 어쨌든 부원장님께서 앞 진료를 보고 계시거든요.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래요, 기다리죠. 아주 좋아요.”
여성이 환히 웃었다.
***
다소 이상한 등장이었던 것과는 달리, 고양이의 진료는 매우 순조로웠다. 하얀색 페르시안 고양이, 그레이스는 그 우아함이 주인을 꼭 닮아 있었다. 보통 고양이 가방을 열면, 나와서 난리 치는 고양이들이 많은데 문을 열고도 천천히 걸어 나와 진료대 위에 앉았다.
“와, 나 이런 애 처음 봐.”
경력이 긴 부원장님까지 그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발을 자꾸만 핥는다는 이유로 데리고 왔는데, 진찰 결과 경미한 피부염이 있어서 연고 처방만 나갔다. 진료를 끝마치고 진료비 계산을 해드리려 하는데, 여성이 웃었다.
“저어.”
“네, 말씀하세요.”
아까 연고 바르는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나? 설희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오늘 여기 영업은 몇 시까지 하나요?”
“아, 6시까지입니다.”
“아. 그렇구나. 그럼 곧 끝날 시간이네요.”
여성이 병원에 찾아온 것은 5시 반이었다. 벌써 시계는 6시 2분 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가 무언가 더 부탁하고 싶은 게 있나 싶어 설희가 물었다.
“뭐 더 여쭤보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부원장님께…….”
“아뇨.”
여성은 설희의 말을 단숨에 끊었다.
“유설희 씨랑 이야기하고 싶은데…….”
“…….”
처음 병원에 와서 자신을 찾았던 것부터 아무래도 이상하다. 보통 사람은 아닌 듯싶었다. 내가 뭔가 잘못하기라도 한 걸까. 어디서 내 이야기를 들은 걸까. 긴장을 한 설희의 손이 저절로 모아졌다.
“뭐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으셨나요?”
설희의 대단히 조심스러운 언행에 여성이 웃었다.
“아뇨, 모든 게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사실, 내가 우리 꼬미 때문에 온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나, 은우 엄마예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 설희가 미간을 좁혔다.
은우, 은우라 하면, 설마.
“옥은우…… 선생님이요?”
“응. 옥은우 엄마.”
그 말에 설희는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은우와 만나면서 이제 더 놀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다가 아니었나보다.
***
“미안해요. 갑자기 찾아와서. 퇴근도 일찍 했죠?”
“아닙니다.”
옥은우의 어머니, 희윤의 말에 설희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마침 정리할 게 거의 없는 날이었다. 청소는 하고 와야 했지만, 벌어진 비상사태에 채린이 대신 맡아주겠다고 했다.
“옥은우…… 선생님이요?”
“응. 옥은우 엄마.”
위와 같은 짧은 대화를 하는 것을 채린이 듣고 대신 맡아준 것이다. 채린은 은우와 설희의 관계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은우의 어머니가 병원으로 찾아온 것이 얼마나 비상사태인지 금세 눈치챘다.
“다행히 별일 없었습니다.”
“그래요, 그래.”
희윤이 같이 왔던 남자는 비서라고 했다. 건장한 비서는 희윤이 고갯짓 한 번을 하자 고양이를 데리고 물러났다.
와, 정말 재벌 같잖아.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딱 봐도 고급스러운 옷을 걸치고 있는 여성이 비서를 저리 물러가라 하는 것이 어디선가의 드라마에서 본 듯했다.
설희와 희윤, 두 사람은 동물병원에서 가까운 한 카페에 앉아 있었다. 조용히 커피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비서를 물리고, 아들의 여자친구를 만나러 왔다. 그리고 그 여자친구는 아주 일반인스럽게 평범하고. 아니…….
설희는 속으로 말을 중얼거리다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평범 이하일지도.
초조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드라마와 진행이 같다면 그럼 이제 돈을 주시면서 헤어지라 하겠지? 그럼 난 헤어질 수 없다. 헤어지더라도 돈은 못 받겠다, 그렇게 실랑이를 해야 할 거고.
설희의 망상이 부풀어 갈 때 즈음. 희윤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아까 말도 없이 병원에 고양이 데리고 오는 그런 일을 저질러서. 사실 자연스럽게 만나보고 싶었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더라고요.”
“아, 괜찮습니다.”
“설희 씨 하루가 직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한다더군요.”
“아, 네.”
설희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아셨을까. 하긴, 뭐. 재벌이니까. 모든 게 자신의 상상 밖이었다.
“자연스럽게 만날 계획이, 이렇게 바보 같은 만남이 되어버렸네요. 미안해요. 다른 건 정말 알아보지 않았고 병원 정도만 알아봤어요. 은우 몰래 한 번쯤 만나고 싶었거든요.”
“아…….”
이제 슬슬 만남의 목적이 나오려나 보다. 희윤은 설희를 보며 방긋 웃었다.
“은우는 원래 과묵한 녀석이라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전혀 없고, 그리고 여자를 가까이 두지도 않는 녀석인데.”
그녀의 시선이 설희에게 닿았다.
“설희 씨는 무언가 다른가 봐요.”
“저요?”
설희는 평범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도 언제나 딱 중간을 도맡아 했다. 공부도 반에서 딱 중간. 외모도 평범하기 그지없었고, 키가 조금 작긴 하지. 성격도 아주 순하지도, 아주 못되지도 않은 평범 그 자체였다.
그런 내가 무언가 다르다고? 설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평범한데.”
“은우에게는 뭔가 특별한 거겠죠.”
그리고 희윤이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녀석이 여자 이야기하는 것도 처음 봤고, 설레하는 것도 처음 봤고, 애미이지만 너무 아들에 대해 몰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라졌어요.”
그렇게 말하던 희윤이 설희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오늘 찾아온 이유는…… 이걸 주고 싶어서예요. 놀랐죠, 갑자기 와서.”
작은 손가방.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흐름대로라면 돈?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희윤은 자신을 보고 오히려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듯 보였다.
“이게 뭔가요?”
“열어봐요.”
가방 안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작은 상자가 들어 있었고, 또 그 안에는…….
보석, 보석, 보석.
보석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보석들이 있었다. 알알이 빛나는 진주목걸이부터 다이아몬드 귀걸이, 그리고 목걸이 등등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이게 뭔가요?”
“우리 시어머니가 나한테 줬던 패물이에요.”
별거 아니라는 듯, 그러나 입술이 말랐다는 듯 희윤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이제 그리고, 은우에게 색시가 생길 듯하니 나도 물려주고 싶어서요. 우리 어머니도 이렇게 결혼 전에 날 먼저 부르시고 당부 말씀을 하시면서 주셨답니다.”
오늘 만나려고 했던 건, 패물을 주고 싶어서.
“그럼…… 반대하려고 절 부른 게 아니세요?”
설희의 질문에 희윤이 오히려 놀라 눈을 치켜떴다.
“반대?”
“네.”
“내가?”
“네.”
“내가 왜?”
“그거야…… 재벌가시잖아요. 전 평범한 집안 출신인데.”
“아…….”
희윤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