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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숨겨진 비밀 (63/80)


63화. 숨겨진 비밀
2023.06.06.


이현이 내민, 인터넷 검색창을 보자 ‘옥경일 아들’이라는 것이 떠 있다. 그리고 미리보기 창에는 기사 내용이 떠 있었다.

옥경일, 옥경일, 어디서 들은 이름인데.

문득, 제주도의 학회에서 만났던 세나가 떠올랐다. 은우에게 찝쩍대던 후배. 괜히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나쁜.

그랬던 그녀가 은우와 어쨌든 설희가 잘되지 못할 거라며 이런 말을 했었다.
 


“혹시 궁금한 게 있으면 인터넷 검색창에 쳐보세요. ‘옥경일’이라고.”


“…….”


“아무 검색창에 넣어보시면 알 거예요.”

 
물론 하지 않았다. 세나가 무슨 의도로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자신이나, 은우를 위한 일은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조금은 찜찜했지만, 만약 은우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때 듣겠다고.

하지만, 지금은 보고 싶지 않아도 기사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WS그룹] 지분 승계 움직임. 계열 분리후 3세 형제 경영으로 가나.

옥경일 회장의 단독 경영이었던 WS그룹이 곧 계열을 분리할 것으로 보여진다. 주요 계열사인 WS물산의 경우 옥경일 회장이 진두지휘 할 것으로 보여지나 그 외의 계열사의 경우 옥 회장의 두 아들에게…….

흔하디흔한, 재벌에 관한 경제 기사였다. WS그룹은 우리나라에서 재계 순위 30위 안에 드는 기업으로 설희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게 뭔데요?”

그런데 이걸 왜 자신에게 보여주는 것인가.

설희가 의아하게 이현을 바라보자, 이현이 핸드폰 화면을 쭉 내려 기사의 아랫부분을 보여줬다.

그리고 호텔 WS와 원더풀랜드가 속해져 있는 WS호텔 지분의 경우 옥경일 회장의 두 번째 아들에게 상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원더풀랜드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밖에 알려진 게 없는 두 번째 아들의 경우, 30대 초반이 될 때까지 철저히 지금까지 비밀로 붙여졌으나…….

원더풀랜드.

익숙한 이름에 설희의 미간이 좁아졌다.

옥경일 회장의 아들.

원더풀랜드에서 일한 적이 있는 30대의 남자.


“이게…… 옥 선생님이라고요?”

“그래요.”

“말이 돼요?”

“짚이는 데 없어요? 정말로 모르겠어요?”

짚이는 데.

은우와 함께 할머니 댁에 갔을 때, 그 웅장함에 놀랐다. 지하 주차장까지 있는, 단순한 전원주택이라고 불리우기 힘든 엄청난 저택이었다. 그때부터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원더풀랜드에 갔을 때의 일.

원더풀랜드의 진호가 은우를 맞이하러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앗, 도련님, 여깁니다!”

 
도련님……?

그 말이 정말 이상했다.
 


“아유, 우리 도련님께서 여기까지 행차하시다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진호.”

 
진호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린 은우의 눈매가 날카로웠었다.

만약에 은우가 정말로 WS의 후계자라면, 원더풀랜드를 상속받기로 했다면…….

‘도련님’이라는 말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랄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아래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옥 회장의 두 아들은 둘 다 미혼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원활한 승계를 위해 지분 증여 이전에 결혼식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PW그룹 박해영 회장의 차녀와 대손건설 이재영 전무의 장녀와의 약혼이 예정되어 있어 향후 연계주로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어……

기사의 내용과 이현의 말을 종합하여 보자면 이렇다.

그는 WS그룹의 회장의 아들이고, 그리고 앞으로 원더풀랜드를 비롯한, WS호텔을 물려받을 거고 그리고 약혼자도 있고.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오히려 자신과의 결혼을 재촉하셨는데.

머리가 아프다.


“아직도 날 못 믿겠습니까?”

이현의 말에 설희는 미간을 좁혔다.


“선생님은 왜 도대체 이렇게까지 옥 선생님에게 악의를 가진 거예요?”

설희의 말에 이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난 악의 없습니다.”

“…….”

“그냥 설희 씨가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려고 해요.”

그게 죈가?

그렇게 말하는 이현을 보며 다시 한번 설희의 오른쪽 머리가 쨍, 하고 아파왔다. 저런 게 선의일 리가 없다.

오늘 낮부터 되는 일이 없다, 정말로.

***


 


“하아.”

은우의 입술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늘은 하루가 길었다. 설희가 따로 퇴근을 하겠다고 해서, 은우는 오늘 저녁 그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일을 다 하고 나오니 8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어머, 옥 선생님. 아직 집에 안 가셨어요?”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뒷정리를 하던 채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은우를 쳐다보았다. 은우가 고개를 까닥였다.


“네. 밀린 일이 있어서. 채린 씨는?”

“아, 저…….”

채린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 나이는 어렸지만 늘 당당하던 채린이었다. 그녀가 말끝을 흐리다니 평소에 없는 일이었다.


“오늘 약속이 있어서요. 근데, 일이 좀 늦어지신대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아, 그래요? 약속이 있었군요.”

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채린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별일 아닌데, 그 말을 이렇게 어렵게 하지.

은우가 의아하게 생각할 때 즈음, 채린이 얼굴을 발그레하게 붉히며 말을 이었다.


“저,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약속 상대가 진호 씨예요.”

“진호?”

은우가 미간을 좁혔다. 진호는 은우의 대학 동창으로, 채린을 마음에 들어해서 소개시켜주었다. 하지만, 진호의 호감과 상관없이 채린은 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만나지 않을 줄만 알았는데.

은우가 되묻자, 채린이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저희 집 앞에 이상한 분이 와서. 이런 이야기는 필요 없지. 그, 하여튼 진호 씨가 절 도와주셔서 가끔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랬군요.”

“아,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에요.”

채린이 손을 내저었다.


“천천히 알아가고 싶어서요.”

아직, 이라는 말에 은우의 미간이 좁아 들었다. 사귀기는 할 건가 보지. 그녀의 말에서 의향이 보였다.

채린을 생각하며 계속 안절부절못하던 친구 진호를 떠올리고는 은우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었다.

녀석이 좋아하겠군. 시끄럽겠는데.

은우는 두 사람 다 잘 아는 사이었고, 채린의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렸으므로 진호와 채린이 얽히는 것이 크게 달갑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잘 되어간다니 진호가 얼마나 좋아할지 눈에 선해서 반갑기도 했다.


“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됐어요. 옥 선생님은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말해줘서 고마워요.”

사귀고 나서 우연히라도 알게 되었다간, 더 놀라기는 했겠지. 대충 잡담을 끝내고 알았다며 은우가 병원을 나서려 하는데.


“저, 근데.”

채린의 말이 은우를 잡았다.


“오늘 설희 씨가 이상하던데. 혹시 옥 선생님은 왜인지 아세요?”

설희?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은우는 미간을 좁혔다.


“아뇨.”

“낮에 계속 우울해 보이고 한숨을 쉬더라고요.”

“아.”

“오늘 이현선생님 보조를 설희 씨가 했잖아요.”

오늘 은우는 까다로운 환자가 많아, 시니어 테크니션인 채린이 계속 보조를 보았고 이현의 보조를 설희 씨가 했다. 하필이면 진료가 많아 은우는 오늘 설희가 어떤 상태인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녀가 우울한 것도 몰랐다.


“네.”

“제가 조금 알아봤는데, 오늘 조제약이 바뀌어서 거꾸로 나갔나 봐요.”

채린이 조곤조곤, 상황을 곁에서 지켜본 매니저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설사인 강아지와 탈수인 강아지의 약이 거꾸로 나가서 큰일 날뻔했고, 그러나 다행히 둘 다 약을 먹지는 않은 상태라 사과하고 끝났다는 것.


“설희 씨가 실수를 해서 조제약이 잘못 나갔다고요?”

“그랬다는 식으로 들었는데. 그래서 이현 선생님과 설희 씨가 보호자에게 사과하셨다고 이야기 들었어요.”

의외였다.

설희는 병원에 오고 처음에야 자잘한 실수가 많았지만, 이제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의 실수를 찾아보려 해도 거의 하지 않았다. 조제약을 잘못 건네는 것은 큰일이다. 그런 큰 실수를 설희가 했을 리가 없는데.

이현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뤄지지 않은 건 아닐까.

설희를 믿어서도 있지만, 오랜 경험으로 이현에 대한 믿음이 거의 없는 은우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갔다.


“그래서 그런지 설희 씨가 계속 우울해하고 그러더라고요. 아까 퇴근도 이현 선생님이랑 하고요. 개인적으로 혼이라도 내려는 건지.”

“이현이랑?”

“네.”

아까 같이 퇴근하자고 했을 때, 설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 오늘은 저,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아…….”

그러 고는 시선을 피했더랬다.
 


“네. 그냥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평소라면 무슨 일이라고, 친구를 만나면 친구를 만난다고 이야기를 할 텐데 설희는 말을 흐렸다.
 


“바쁜가 봐요.”


“네. 조금.”

 
그리고 더 이상의 대답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말을 자르고 서둘러 퇴근했다. 그때도 느꼈지만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불안하다.

이현과 얽혀서 좋을 리가 없는데.


“어쨌든 그래서 걱정되는데, 옥 선생님은 설희 씨랑 친하시잖아요. 혹시 사정을 아시나 해서.”

“아뇨. 저도 오늘 정신이 없어서.”

은우의 말에 채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내일 마저 물어볼까 봐요. 왠지 마음에 걸려서요.”

“그래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네, 별말씀을.”

말을 거기까지 하는데, 채린의 손에 들려있는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진호 씨]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은우가 손짓을 했다.


“전화 왔네요.”

“아, 네.”

전화한 상대를 확인한 채린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비쳤다. 채린이 얼른 전화를 받고 싶어서 초조한 기색으로 밖을 힐긋 쳐다봤다.

진호가 온 모양이었다.


“저, 먼저 들어가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네. 조심해서 들어가보세요.”

“네.”

채린이 서둘러 출구로 향하며 전화에 귀를 기울였다. 은우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설희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아무래도 조금 알아봐야겠다.

은우는 퇴근하려고 들었던 가방을 내려놓고 오늘 있었던 일을 확인하려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컴퓨터를 켜고, 오늘 진료 기록을 찾는다. 이것저것 확인하던 은우의 미간이 좁아 들었다.


“이건.”

짧은 탄성과 함께 그는 자신의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연락할 곳이 있었다.

***

-지금은 전화가 꺼져 있어.


“뭐지, 도대체.”

설희에게 연락을 하려고 해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은우는 몇 번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 초조해진다.

다른 때라면 상관없는데 오늘 이현과 그런 트러블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어떻게 할까.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데,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띵동

순간, 은우는 직감적으로 그 초인종을 누른 상대가 누군지 알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저벅저벅 현관으로 갔다.

달칵.

문이 열리고, 그 아래 서 있는 한 여성이 보인다.

은우의 예상대로 그를 찾아온 인물은 설희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설희가 살짝 굳은 얼굴로 은우를 쳐다보다가 입을 벌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왔는데.”

“…….”

“지금, 시간 어떠세요?”

설희의 말에 은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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