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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소란스러운 (60/80)


60화. 소란스러운
2023.05.27.


매니저의 말에 설희의 눈이 조금 커졌다.


“소란이요?”

가끔, 동물병원에서는 피치 못하게 소란이 일어나곤 했다. 아무리 치료를 최대한으로 노력해 성심성의껏 한다고는 해도, 가끔은 불운한 사고가 나기 마련이었다.
 


“우리 강아지 살려내!”

 
이렇게 항의 하는 보호자분도 있었다.

곰곰이를 키우는 설희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절박한 마음일지 알아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뿐만 아니라, 조금은 이해 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미 치료에 드는 비용을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비싸서 못 내겠다고 생짜를 놓는다든지, 아니면.
 


“여기 원장 나오라고 해. 정말 이해가 안 되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치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원장부터 찾는 경우도 있었다. 아주 자주 있는 아니었지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일어나곤 했다. 일한 지 오래되지 않은 설희도 몇 번인가 겪은 일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일까.

설희의 질문에 매니저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에 빈혈이 심한 강아지가 와서, 맡은 다음에 전체 검사를 진행했는데. 최이현 선생님 담당이었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호자분이 강아지 찾으러 와서 그런 검사를 다 할 거라고 고지를 못 들었다는 거예요?”

“정말요?”

“네. 피검사랑 초음파랑 여러 가지 진행했는데, 나중에 와서 검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아…….”

만약, 다른 수의사 선생님이 이런 상황이 일어났다면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설희는 단언할 수 있었다. 전에 돌마래 동물병원에 있던 최 선생님은 물론이고, 옥 선생도 절대로 설명을 빼먹는 적이 없었다.
 


“오늘 검사는 복부 초음파 검사입니다. 아마 치료비는 6만 원 정도가 나올 예정이고, 혹시 추가적으로 엑스레이가 필요할 경우 보호자님께 전화 드리고 다시 상의드리겠습니다. 복부 초음파가 필요한 이유는 지금 담낭이 얼마나 커져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 그렇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옥 선생님이 하시는 거라면 이유가 있겠죠. 엑스레이도 필요하면 찍고 연락 주세요.”

 
옥 선생은 때로 너무 상세히 설명해서 오히려, 보호자 측에서 그런 것까지 설명해줄 필요 없다고 할 정도였는데.

그래서 옥 선생이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하면, 보호자 분이 생각을 잘못한 거라고 설희는 생각할 터였다.

하지만, 최이현 선생은.


“음…….”

지금까지 봐온 그는 충분히 말을 안 했을 것 같은데.

설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그 보호자 분은 자기는 못 들었다 이야기를 하셔서…… 적절하게 말을 했으면 되는데, 최이현 선생님도 뭔가가 심사가 비틀렸는지, 자기는 했으니 책임 없다며 그냥 딱 잘라 말해서 일이 커졌어요. 그래서 보호자 분이 더 화가 나셔서 결국 지금 원장 선생님이랑 최 선생님이랑 같이 뒤쪽에 들어가셔서 사과랑 설득 중이세요.”

“……그랬구나.”

“오후 진료 전에는 끝나야 할 텐데.”

매니저가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초침이 째깍째깍 돌아갔다.

***


 
옷을 갈아입고 나와, 데스크 앞에서 설희와 매니저는 같이 오후 진료를 준비했다. 방음이 어찌나 잘되는지 뒤에서 나오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병원 안은 숨죽일 듯이 조용했다.

괜히 어색해서 설희가 몇 번인가 큼큼, 소리를 내자 매니저가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제주도는 어땠어요? 태풍 때문에 고생이 많았죠?”

“괜찮았어요. 은우 씨 집이 좋아서 별로 불편한 일은 없었어요.”

“……음? 은.우.씨.집?”

설희의 말에 미소 짓고 듣고 있던 매니저가 미간을 좁혔다. 그제야 설희는 제 말에서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머,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같이 학회에 내려간 것이야 비밀이 아니었지만, ‘은우 씨 집’이라니.

아무 생각 없이 말하던 설희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제주도에 그의 집이 있고, 그 집에서 잤다고 말하는 꼴이었다.


“어, 저 그게. 그러니까 은우 씨가 예약한 숙소가 좋아서…….”

“아, 그래요.”

“네네, 그 좋아서, 그 숙소가 참 좋아서. 하하.”

말이 계속 헛돌았다. 고장 난 기계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옥 선생과 설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돌마래 동물병원 사람들, 특히 원장이나 매니저님은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매니저에게는 키스하는 장면을 들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집에 갔다는 걸 말하는 건 정말 너무 했잖아.

이미 사내연애로 아픈 기억을 가진 경험이 있었다. 설마 옥 선생이 전 남친 같은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연인 사이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었다.

설희는 자신이 얼마나 무방비하게 긴장을 놓고 있었는지, 자신을 탓했다.


“정말 아니에요.”

“뭐가요?”

매니저는 고개를 숙이며 짐짓 모른 척을 했다. 하지만, 입꼬리에 떠 있는 웃음까지는 지울 수 없었다.

망했다…….

그렇게 길게 한숨을 쉬는데, 뒤편 사무실에 연결된 문이 달칵 열렸다.


“오늘은 이렇게 상황이 되어 죄송합니다.”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났나 봐요.”

설희가 속삭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에서는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과, 최 선생님, 그리고 같이 동석했던 테크니션 채린이 줄줄이 따라 나왔다. 보호자가 발걸음을 멈춘 뒤 고개를 끄덕였다.


“원장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말하시니까,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죠.”

“네, 여러모로 이렇게 돼서 죄송스럽습니다.”

“아닙니다.”

원장과 보호자는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뒤, 인사를 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렇게 대화를 하는 동안 내내, 최이현 선생은 삐뚜름히 서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원장이 보호자를 배웅하고, 다시 병원에 들어왔다.


“오늘 아침은 소란스러웠네, 하하.”

밝게 말하자, 비스듬히 서 있던 이현이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원장님.”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다만 다음에는 말을 할 때 조금 조심하도록 하면 좋겠네. 다들 아침부터 수고 많았어요.”

그렇게 말을 하고 고개를 돌리던 원장은, 데스크에 서 있는 설희를 보고 웃었다.


“어, 제주에서 돌아왔네. 옥 선생은?”

“준비실에 계실 거예요.”

“그래? 고생했어. 오늘까진 쉬어도 되는데.”

“아니에요.”

원장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모두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럼, 옥 선생도 왔다니 나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후에 학교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다들 오늘 무슨 일 있으면 또 연락 줘요.”

“네, 들어가세요, 원장님.”

원장이 자리를 뜨자, 이현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벽에 기댔다.


“아침부터 재수 없었네.”

“…….”

설희는 그의 말에 입술을 삐죽댔다. 아까 원장 앞에서는 얌전하던 그였는데, 가자마자 이렇게 가면을 빠르게 벗을 수 있는가.

그러나 이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억울한 듯, 채린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 어차피 저 보호자는 내가 뭐라고 한 게 문제가 아니라, 검사 비용 아끼려고 저렇게 수 쓴 거라니까요. 그렇게 하면 검사비를 깎아줄 줄 알고. 중요한 건 내가 말했냐, 말하지 않았냐가 아니라 그 검사가 필요한 건가 아닌가?”

이현의 말에 채린이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툭 찼다.


“고지하는 것도 중요하긴 하죠,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인데.”

“하지만 보호자의 선택에 따라 안 할 수도 있잖아요.”

“안 할 이유가 뭔데? 초음파 검사 같은 것은 비침습적 검사인데. 돈 때문 아닌가?”

이현의 말에도 채린은 납득하지 않고, 가만히 입술을 다물었다. 설사, 돈 때문에 검사를 진행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보호자의 선택의 자유인데.

무언의 부정이었다.


“채린 씨는 수의사가 아니라 이해 못하는 겁니다. 중요한 건 내가 말했냐 아니냐가 아니래두. 진짜 말귀 못 알아듣네.”

투덜거리면서 이현은 뒤로 들어갔다.

그 말을 듣고 설희는 본능적으로 그가 검사할 내용에 대해 보호자에게 말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말하지 않고, 원장 앞에서, 보호자 앞에서는 말한 척한 거다.

거짓말쟁이.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설희는 불안함을 느꼈다. 그 이후, 이현과 함께 일을 할 때면 그가 말한 지시 내용을 다 녹음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때를 대비하기 위해.

***

다행히 오후 진료에는 큰일이 없었다. 설희가 퇴근을 하려 동물병원을 나와 집을 향해 얼마간 걷자, 20M쯤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걸어왔다. 그녀를 기다리던 은우였다. 성큼성큼 그가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설희 씨.”

태풍의 영향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래서 은우의 앞머리가 이리저리 흐트러졌다. 그 사이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인다.

오늘 아침까지 함께 있었는 데도 새삼 이렇게 보니 참 잘생겼다. 약간 피곤한 걸까. 수척한 느낌이 또 느른한 분위기를 자아내서 자신도 모르게 그를 바라보게 했다.


“집에 가요.”

“아…….”

설희는 대답을 하기 전 뒤를 흘깃 쳐다봤다.

오늘 매니저 앞에서 은우의 집에 다녀왔다는 말실수를 한 게 걸렸다. 그리고 또 바로 집에 같이 가면 좀 그러려나. 뒤를 돌아봤지만, 다행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네.”

안심하고 설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우가 씩 웃었다. 그리고는 그는 팔을 뻗어 설희의 손을 잡았다.


“앗.”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마디가 툭툭 튀어나온 남자다우면서도 길고 섬세한 손. 그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파고들었다. 설희는 놀라 잠시 멈췄지만, 은우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가요.”

“저, 저. 이 손. 저, 병원에서 너무 가까워서…….”

“왜요, 창피해요?”

“아뇨, 창피하다기보단. 저…… 사람들이 볼까 봐.”

“아무도 안 봐요. 아무도 없어.”

그의 말처럼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주변에는 낯익은 얼굴은 없었다.

은우가 씩 웃으면서 설희의 손을 꽉 잡았다.


“왜요, 우리가 사귀는 게 들킬까 봐 무서워요?”

“그게…… 들켰을지도 몰라요. 제가 오늘 말실수를 했거든요.”

“실수?”

“은우 씨네 집에 갔다고……. 제주도에서요. 미안해요.”

평소에 고지식한 은우가 그녀가 병원에서 그런 말실수를 한 것을 알아채면 싫어할까 봐 말하는 설희의 목소리가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은우는 생각과는 다르게 선선하게 말했다.


“왜 미안해요?”

“그야, 사생활을 병원에서 말했으니까.”

“미안할 필요 없어요. 사실이잖아.”

“……정말요? 괜찮으세요?”

그 말에 은우가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으니까.”

“…….”

“나는 지금 설희 씨밖에 안 보여서, 그런 생각 할 여유가 없어요. 다 알아채라고 해요. 난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그는 손을 끌었다.


“그러니, 어서 갑시다.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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