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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뜨거워진 뺨 (59/80)


59화. 뜨거워진 뺨
2023.05.23.


은우의 손안에 설희의 뺨이 가득 잡혔다. 커다란 손이 어젯밤의 그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설희는 허리를 쭉 빼서 몸을 돌렸다.


“열…… 없어요.”

“그럼 다행이고.”

은우가 싱긋 웃었다.

여전히 설희의 어깨는 드러난 상태였다. 그의 시선이 닿을까 봐 그녀의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어제와는 달리, 지금은 너무 밝은 아침이었다. 모든 것이 다 보이는 아침.

어젯밤의 흥분에 녹아내린 몸은 노곤노곤했고, 기분 좋을 정도의 온도에 좀 더 자고 싶은 기분도 들었지만…….


“더 안 자도 되니까 나가주실래요?”

그러자 설희가 굳은 얼굴로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은우가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왜요?”

나지막하게 바닥으로 깔린 목소리가 근사하고 유혹적이었지만.

물어봐야 아나.

오히려 설희의 얼굴에는 쑥스러움이 깔렸다.


“창피하니까요.”

이불로 겨우 가린 살갗은 언제라도 드러날 수 있었다. 설희의 대답을 듣고는 은우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찔한 눈동자가 눈에 박힌다.


“뭐가 그렇게 창피해요?”

“…….”

“어제 어차피 다 봤는데.”

“네에?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그녀를 놀리는 은우의 말에 설희는 펄쩍 뛰었다.


“어제 다 봐서 하나하나 다 기억을 한다고.”

“헐…….”

지금 가능하다면 마취총이라도 쏴서 은우를 재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가 더 이상 한마디도 이상한 말을 하지 못하도록.


“나가…… 주세요…….”

좋은 말 할 때.

지금 상황이 재밌는지 그가 놀리자 설희의 눈초리가 바싹 올라갔다. 얼굴을 부풀리고 눈을 번쩍였다. 그 모습을 보고 은우는 물러서기는커녕 픽, 웃었다.


“무섭네.”

“더 무서워질 수도 있어요.”

“알았어요. 천천히 하고 나와요.”

당장이라도 화를 터뜨릴 것 같은 그녀를 보고 은우가 자리를 비켰다. 나가는 그의 목소리에는 희미하게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달칵.

그가 나가자마자 설희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어젯밤에는 미친 게 틀림없다. 도대체 어떻게 되려고 그랬담.

오늘도 하루 종일 그와 함께 있어야 하는데. 무슨 생각으로 일을 쳤어!

오늘은 돌아갈 제 방도, 도망칠 병원도 없었다. 비가 오는 집에 그와 단둘이서 24시간을 지낼 걸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서 제대로 정신이 돌아가지 않았다.

***


 
쏴아.

위잉위잉.

여전히 비는 쉴새 없이 왔고, 바람은 불고. 둘이서 이런 날씨에 어디 나갈 수는 없어서 설희는 우선 샤워를 하고 나갔다.

꿉꿉하게 비 오는 여름날. 온몸이 끈적여서 뜨거운 물을 쏟아내자,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하아.”

물로 간단하게 씻은 것뿐인데, 그것조차 힘에 부칠 만큼 온몸이 삐그덕댔다. 숨이 헐떡이고 몸이 부서질 듯 아파 왔다.


“끄응.”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밤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격렬한 것은.

겨우 씻고 욕실에서 나오는 설희를 보고, 대청마루에서 움직이던 은우가 말을 걸었다.


“다 됐어요?”

“아, 네.”

“그럼, 밥 먹어요. 상 차렸으니까.”

대청마루에는 그가 어디선가 꺼내놓은 듯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 위에는 이것저것 어제 사온 음식들과 쌀밥, 그리고 된장찌개와 딱새우가 얹어져 있었다.


“저건 뭐예요?”

설희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 올려져 있는 술병으로 향했다. 설희의 질문에 그가 답했다.


“소주요. 새우 있으니까 설희 씨 소주 먹을까 싶어서.”

“아.”

대낮부터 소주? 서울에는?

놀라 설희가 고개를 기울이며 당황한 표정을 짓자, 은우가 말을 이었다.


“비행기, 오늘 아무래도 운항이 어려울 것 같다고 오늘 문자로 왔어요. 원장 선생님께도 연락드렸고, 교통편도 내일 아침 비행기로 다시 잡아놨으니, 편히 마셔요.”

“아, 네. 감사합니다.”

술 안 마셨던 어제도 그 난리였는데, 술까지 마시면 어떨지 모르겠다. 가만히 술병을 바라보니, 처음 본 브랜드 이름이 써 있었다. 파란 배경에 하얀색 글씨.


“한X산……?”

“제주 소주. 서울에서도 파는데, 처음 봐요?”

“네.”

“마셔봐요. 맛이 괜찮으니까.”

담담한 은우의 말에 설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거 또 무슨 계략에 넘어가는 거 아닌가.

***

한X산 두 병, 딱새우회 한 접시, 그리고 딱새우찜을 하나 삶아 상 위가 푸짐했다.

은우는 얼음 통에서 꺼낸 얼음을 투명한 유리잔에 집어넣었다. 소주를 집어 들어 그 자신의 잔과 설희의 잔에 부었다.


“한X산은 온더락으로 먹어야 맛있어요.”

“온더락?”

“얼음 넣고 먹는 거요.”

“위스키에만 그렇게 먹는 게 아니군요.”

“소주도 가끔은 괜찮잖아요.”

건배.

대낮부터 술이라니 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짠, 잔을 부딪치고 알싸한 알코올을 몸 안으로 흘려 넣는다.

코끝에 흔들리는 향에 몸서리를 쳤다. 그러고 나서 딱 새우를 집어 들었다.

딱새우는 평소 먹는 새우와 비슷하다기보다는 랍스터에 더 흡사했다. 랍스터를 작게 만든 느낌이랄까. 딱딱한 껍질에 감싸져 있는 딱 새우의 껍질을 까기 위해 새우 머리를 빙글 돌렸다.

그런데 껍질은 안 까지고 꼬리만 달랑 떨어져 버렸다.


“어, 이게 왜 이러지.”

새우처럼은 안되네.

당황한 설희가 몸을 주워 다시 낑낑거렸다. 은우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왜 그렇게 먹어요.”

“이렇게 하면 다 똑 떨어지던데.”

“이리 줘봐요.”

은우가 물티슈로 손을 닦고는, 딱새우를 집어 가 요령 있게 어떻게 살살 돌리더니 꼬리에 살만 쏙 달리게 뽑아냈다.


“어, 어떻게 한 거예요?”

“잘.”

잘.

그 한마디로 말이 끝났다.

하긴, 그는 손재주가 유난히 좋았다. 작지 않은 손으로 수술에서 섬세한 작업도 끝내는데, 새우 까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은우 씨는 뭐든 잘하네요.”

“…….”

은우는 말없이 웃었다. 왜 웃는지 모르겠지만, 설희는 다시 딱새우를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진짜 뭐든 잘해서 부럽다.”

“그러니 뭐든 잘하는 내게 맡기고, 설희 씨는 먹기만 해요.”

그가 초장을 살짝 찍더니, 설희에게 내밀었다. 손으로 받아들려고 하니 그가 고개를 저었다.


“손에 초장 묻어요. 아. 하세요.”

“…….”

“얼른. 아.”

이거 너무 닭살 커플 아닌가.

입을 벌리니, 그가 잘 깐 새우 하나를 입에 넣어준다.

부드러운 살이 혀에 닿는다. 그의 손끝도, 의도치 않게 저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 예민한 점막을 단단한 손끝이 쓸고 지나가자, 요상한 기분에 설희가 몸을 떨었다.

새우가 원래 이런 맛인가?

달고 짭짤하고 부드럽다.

무슨 맛인지 알 수 없는 채 오물오물 씹어 삼키고 나서는 눈을 동그랗게 떠 그를 바라보았다.


“맛있네요. 은우 씨가 다 해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다행입니다.”

그리고 또 은우가 웃었다.

왜 자꾸 웃는 걸까.


“왜 자꾸 웃어요?”

“그냥. 웃으면 안 돼요?”

“네. 무서워요.”

“뭐가 그렇게 무서운데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설희와 달리, 은우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지금도,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는데 뭐가 웃긴지 알 수가 없다.

혹시 초고추장이라도 묻은 게 아닐까.

혀를 살짝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붉은 입술 위에 윤기가 어렸다. 그리고는 저 멀리 떨어져 있던 휴지를 주워 닦으려고 하는데.

순간.

그의 손이 부드럽게 뻗어나가는 설희의 손목을 그러쥐었다.


“어제 너무 무리하게 시킨 것 같아서 일부러 참으려고 했는데.”

“…….”

“설희 씨가 너무 유혹을 하니까, 내가 참을 수가 없어서.”

그리고 순식간에 은우가 앞으로 다가왔다.

아니, 선생님. 제가 언제 유혹을 했습니까…….

그냥 술만 마시고, 딱새우만 먹었는데요.

그러나 그런 항의는 입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설희가 말을 내뱉는 것보다 그가 자신을 헤집는 것이 더 빨랐다.


“으읍.”

뜨거운 입술이 겹치고, 숨이 겹쳤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되신 거예요, 옥 선생님.

뭐든 잘하는 그였고, 이성적인 그였는데.

밥 먹다가 설희가 고작 입술 한번 훔친 것을 가지고 이렇게 난리가 나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도 그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어떻게 밀어낸단 말인가.


 


“하.”

그가 내뱉는 숨이 이렇게나 달콤한데.

뭐든 잘하는 그의 손이 이렇게나 은밀하게 저를 능숙하게 헤집는데.

결국, 두 사람은 채 식사를 하지도 못하고 대청마루 위에서 길고 긴 키스를 나눴다.

다시 또 한번.

그리고 또 한번.

***

어느새 두 사람의 키스는 방 안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낸 뒤, 까무룩 잠이 들었다. 겨우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린 설희는 그의 팔을 풀고 조금씩 천천히 빠져나왔다. 꽉 자신을 끌어안고 있던 팔에서 빠져나와 데구루루 마루 위를 굴렀다.


“어맛.”

나오고 나니, 그의 몸이 눈에 들어와, 어디를 봐야 할지 몰랐다. 더듬더듬, 손을 뻗어 그의 하반신 위에 이불을 살짝 덮었다.

사고를 또! 쳤다.

이렇게 되기 전에 막았어야 하는데. 그놈의 딱새우 때문에.


“깼어요?”

“네? 네!”

갑자기 들린 은우의 목소리에 놀라 설희가 펄쩍 뛰었다.

밤새 소리를 내서 잠겨버린 목에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그가 중얼거렸다.


“또 무리를 해버렸네. 머리는 어때요? 숙취는.”

“괜찮아요. 완전 멀쩡해요.”

다정한 목소리에도 뒤를 돌아보지 못한 채 그저 설희는 눈만 깜빡였다. 그러자 그가 다시 물었다.


“어디 가요?”

“옷, 옷 입으러 가야죠.”

“할 것도 없는데, 가지 말아요.”

그의 손에 이끌려, 어중간하게 침대로 다시 끌려간 설희는 그대로 그의 품 안에 갇혔다.


“조금만 더 이러고 있으면 안 됩니까?”

“어, 음.”

“무리한 거 요구 안 할 테니까.”

“어.”

“한 번 더 하자고 안 할 테니까.”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설희가 그를 살짝 째려보자, 그가 피시식 웃으며 밤새 수염이 나서 까칠까칠한 턱을 설희의 어깨에 비볐다. 그럴 때마다 붉은 기운이 뻗어 나간다.


“10분만 더 이렇게 있어요.”

“네, 네에.”

그대로 그에게 갇혔다. 새빨개진 설희의 귓등을 보고 그가 쿡쿡 웃었다.

***



“설희 씨, 제주도 가서 고생 많았지? 태풍 때문에 비행기도 밀리고.”

월요일 날 아침.

마치 태풍이 왔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하늘이 개었다. 다행히, 월요일 날 첫 비행기로 서울에 올라올 수 있었고 짐만 집에 내려놓고 얼른 오후 출근을 했다.


“괜찮았어요. 오는 비행기도 안 흔들리고.”

매니저의 인사에 설희가 답하자 매니저가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게, 학회 갔다 온 사람치고는 얼굴이 좋아 보인다. 제주도에서 재밌는 일이라도 했나 봐?”

“재……밌는 일이요? 하하. 아뇨…….”

차마 말할 수 없는 장면들이 눈앞을 지나간다. 설희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근데, 다들 어디 계세요?”

은우 대신 나왔을 원장도, 최이현 선생도, 다른 테크니션도 보이지 않았다.


“아, 설희 씨 없는 동안 오전에 좀 소란이 있었어.”

매니저가 말과 함께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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