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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2] 신혼여행 (83/84)


[외전2] 신혼여행
2023.07.17.



 
웃기게도 군대 간 남동생 면회를 가장 많이 간 사람은 가족도, 친구도 아니고 그녀의 남편 태혁이었다.

그녀와 함께 가기도 했지만, 혼자만 면회 가기도 했었다.

제대하기 한 달 전에도 간다고 해서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는데.

제대한 휘영이 가족도 아니라 태혁을 끌어안고 우는 걸 보니 아주 헛짓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 두 사람을 어머니 연희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언제 저렇게 친해진 거야?”

휘영이 군대 가 있을 때 두 사람은 결혼식을 했기에 전혀 친해질 물리적 시간이 없었다.

나영은 별로 알고 싶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무리라서 동생이라도 자기편 만들고 싶었나 보죠.”

휘영은 친구들이 준비해 준 제대 축하 파티에 태혁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제가 매형 자랑 엄청 해서 친구들이 꼭 한번 보고 싶다고 했어요.”

태혁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런 자리는 이제 나영의 허락이 있어야 갈 수 있었기에.


“학생들 모인 자리에 교수님 끼면 분위기만 깰 거야.”

그녀가 돌려 말하며 가지 말라는 뜻을 어필하자, 휘영이 걱정 말라는 듯이 방법을 제시했다.


“매형이 내 옷 입으면 바로 20대로 보일걸. 전혀 교수님으로 안 보여.”

“20대로 보이면 뭐? 그래서 네 대학 동기 여학생들이랑 소개팅이라도 시켜주려고?”

“아! 누나. 어린 여자한테 매형 빼앗길까 봐 불안한 거야?”

동생이 실실 웃으며 놀리자 나영은 바로 정색하며 협박했다.


“너 복학하면 네가 직접 돈 벌어서 등록금 내고 싶은가 보지?”

현실 남매의 사이에 앉은 태혁은 그저 웃는 상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의 편도 들 수 없었다. 그게 현명했다.

결국 나영의 반대로 태혁은 대학생들의 술 파티에 갈 수 없었다.


“설마 교수님도 휘영이 따라서 가고 싶었던 거예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영이 묻자 태혁은 운전하며 고개를 저었다.


“난 과묵해서 그런 자리는 안 어울리지.”

“…….”

지금 반어법으로 못 간 거 억울해하는 건가?

나영은 조용한 시선으로 운전하는 태혁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휘영이 제대했으니까 면회 갈 때보다 더 자주 보겠네요.”

군대 면회도 그리 자주 갔으니 사회에서는 얼마나 더 자주 어울리겠나.

분명 만나면 술이나 마시고,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를 거다. 남자들끼리 통하는 게 있다고 허세 부리면서.


“왜? 질투 나?”

남동생을 질투하냐는 말에 나영은 헛웃음이 나왔지만, 사실은 그게 정답이었다.

그녀가 대답 안 하고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태혁은 혼자 피식 웃었다.

사실 그가 군대 면회를 자주 한 건 휘영이 군대에 적응하는 걸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에서는 장남이었기에 휘영이 가족들은 알길 원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가 혼자 찾아갔던 거였다.

이제 휘영도 군대를 무사히 제대했으니 사회생활은 더 용기를 가지고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그와 만나는 일은 명절 때뿐일 수도 있었다. 보통의 친척들처럼.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해줄 수 있지만, 나영이 아닌 척 질투하는 게 귀여워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반면에 나영은 동생 휘영이 한 말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매형이랑 아직도 신혼여행 안 갔다면서? 그렇게 병원 생활만 신경 쓰면 매형한테 안 미안해? 나였으면 너무 서운할 거야.’

그녀가 한창 레지던트로 바쁠 시기에 결혼해서 같이 사는 거 빼고는 모든 걸 그녀가 레지던트 끝난 뒤로 미루어 버렸다.

신혼여행도, 아이도.

그런데 그가 양보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 안 되는 거였다. 부부였으니까 서로 맞추며 살아야 했다.

나영은 태혁이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신경 쓰는 만큼 그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교수님. 우리 신혼여행 올해 갈까요?”

그녀의 제안에 태혁은 놀란 눈으로 나영을 쳐다보았다.


“너 레지던트 끝내고 가기로 했잖아.”

“그때는 레지던트로 한창 바쁠 때라 그렇게 말했던 거고, 이젠 저도 곧 4년 차니까 여유가 있어요. 이틀 정도 오프 쓸 수 있을 거예요.”

주말까지 끼면 제주도나 가까운 나라는 충분히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희 한 번도 같이 여행 못 갔잖아요.”

“강원도 갔었잖아.”

“그럼 신혼여행도 강원도 가자고요?”

태혁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거부했다.


“신혼여행은 무조건 비행기 타자.”

그녀도 좋다고 웃으며 동의했다.

***

그녀가 정식으로 병원에 오프를 신청하면서 두 사람의 신혼여행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해외로 가면 좋았겠지만, 태혁의 환자들이 아직 퇴원하기 전인 걸 감안해서 제주도로 가기로 했다. 만약 급한 응급콜이 걸려 오면 바로 병원으로 갈 수 있도록.

물론 여행 끝날 때까지 병원 전화는 안 걸려 오는 게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

어디든 오랜만에 함께 떠난다는 게 중요했기에 공항으로 향하는 기분은 그저 자유로웠다.

“이번은 신혼여행 1차로 제주도 가는 거고, 너 레지던트 끝나면 2차로 유럽 가는 거야.”

신혼여행을 회식하듯이 2차까지 가자는 말에 나영은 소리 내어 웃었다.


“저 제주도 처음 가요.”

나영의 말에 태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는 차현이 제주도 맛집 가자고 끌고 가는 바람에 당일치기로도 다녀왔던 곳이었다.

학교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가니 나영도 한 번은 가봤을 줄 알았다.


“네, 외국은 가본 적 있는데, 제주도는 안 가봤어요.”

“그럼 조심해야겠네.”

그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니 나영은 긴장했다.


“네? 왜 조심해요?”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라고만 알고 있지, 여행하기 위험한 곳이라는 말은 별로 안 들어 봤었다.


“거기 사람들이 예쁜 여자를 보면 그렇게 말을 시킨대. 너 제주도 사투리 전혀 못 하잖아.”

“…….”

분명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사투리의 압박이 느껴지면서 정말 그러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교수님은 제주도 사투리 아세요?”

“너만 바레면 지저우난 못 참으키여.”

바 뭐? 지 뭐?

묻자마자 툭 튀어나오는 언어는 거의 외계어였다.


“뭐라고 한 거예요? 설마 욕이에요?”

태혁은 웃음을 삼키며 말했다.


“나중에 제주도 가면 거기 사람들한테 물어봐.”

나영은 잊어버리기 전에 서둘러 핸드폰에 태혁이 한 말을 적으며 그를 흘겨보았다.

만약 제주도 가서 물어봤는데 욕이면 가만 안 둔다.

제주도는 김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서 1시간만 가면 도착했기에 오히려 다른 지방보다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제주 공항 입국장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창밖의 이국적인 풍경에 나영은 시선을 빼앗겼다.


“와! 저 야자수 봐요.”

“그래, 봤어. 가자.”

태혁은 제주도 처음 온 티 내는 그녀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예약해 놓은 렌트카를 타고 밥 먹으러 가야 했다.

병원 밖이라 둘 다 평소보다 꾸미고 나왔더니 쳐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나영은 태혁을 올려다보았다.

짙은 눈썹 아래 시원하게 뻗은 눈매와 높게 솟은 콧날이 정말 남자다웠다.

새삼 그녀의 남편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실감했다.


“그런데 제주 사람들이 말 안 거는데요? 그럼 저 안 예쁜 거예요?”

그녀의 돌발 질문에 태혁이 잠깐 움찔하더니 태연스레 대답했다.


“아직 공항이잖아. 여긴 현지인들의 구역이 아냐.”

무슨 구역 타령인가.

나영은 어이가 없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신혼여행이었으니까.

이번 신혼여행의 목표는 무조건 그와 사이좋게 지내는 거였다.

렌트카 운전은 태혁이 했다. 홍식이 운전사 해주겠다며 제주도까지 따라오겠다고 했지만 냉정하게 잘라냈다. 신혼여행에 혹을 달고 올 수는 없었으니까.

두 사람은 바닷가로 가서 해녀들이 직접 잡아서 파는 해산물을 먹었다.

나영은 핸드폰에 적어두었던 태혁의 사투리를 해녀한테 보여주었는데, 까르르 웃더니 다른 해녀들한테도 보여주었다.

다들 한통속이 된 것처럼 깔깔 웃는데 그녀만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역시 욕이였나!

해녀가 그녀의 팔을 찰싹 때리며 괄괄하게 말했다.


“그 나이 때는 다 그램서. 돌코롱햄(달달해서) 조크라(좋겠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나영이 태혁을 보자 그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해녀 중에 가장 젊은 여인이 그녀의 핸드폰에 해석을 적어서 돌려주었다.

<너만 보면 뜨거워서 못 참겠어.>

해석을 읽자마자 나영은 얼굴이 불타는 고구마가 되었다. 이런 뜻인 줄 알았다면 절대 해녀들한테 보여주지 않았을 거다.

청명한 푸른 하늘 아래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를 앞에 두고 나영은 남편의 등을 주먹으로 마구 때렸고, 그 모습을 보고 해녀들은 또 까르르르 웃어댔다.

***

해가 지고 제주 바다도 까맣게 변하자 두 사람은 제주에 있는 동안 묵을 호텔로 갔다.

바닷가 절벽 위에 있는 호텔은 오래도록 제주를 방문한 귀빈들이 묵었던 곳이었다.

가까운 곳으로 신혼여행 오는 대신 잠자리에 엄청 신경을 쓴 게 느껴졌지만, 나영은 낮에 있었던 일 때문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태혁이 먼저 그녀에게 다가와서 기분을 살폈다.


“아직도 화났어?”

“교수님이라도 자미지난(재밌으니) 됐어요.”

그새 배운 제주 사투리를 그녀가 써먹자 태혁은 귀여워서 나영의 작은 머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하루 만에 제주 사람 다 됐네. 기특해.”

나영은 이번엔 머리로 그를 박고 싶었지만, 태혁이 너무 꽉 끌어안고 있어서 불가능했다.

나영도 제풀에 지쳐서 그의 품에 안기듯이 기댔다. 병원에서 일하는 것보다 여행하며 돌아다니는 게 더 피곤했다.

태혁이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꾹 누르며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공식적으로는 오늘이 우리 첫날밤이야.”

신혼여행이니 분명 첫날밤이지만 두 사람의 첫날밤은 처음 만난 날 이미 치른 거나 마찬가지라서 의미가 온전하지 않았다.

태혁이 그녀의 두 뺨을 따뜻한 두 손으로 감싸며 물었다.


“혹시 내가 네 남편이라 불만인 건 아니지?”

그는 아직도 가끔 그녀가 그의 아내라는 게 신기했다. 밤에 침대에서 잠이 드는 순간 혹시라도 눈을 떴을 때 이 모든 게 꿈이면 어쩌나 불안하기도 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가 장난칠 때마다 자주 짜증은 내도 그가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였고, 의지하는 남편이었고, 행복하게 함께 살아가야 할 가족이었다.

가까이서 그의 까만 눈동자와 마주하니 이미 그가 주는 열락을 아는 그녀의 몸도 본능적으로 더워졌다.

나영이 두 팔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자 두 사람의 입술이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깊게 파고드는 키스에 숨이 달아올랐다.

두 사람이 키스하며 걸어가는 길 위로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처럼 옷가지가 하나씩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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