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1] 남편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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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1] 남편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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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1] 남편 유혹
2023.07.14.
인생에서 신혼은 딱 한 번뿐이었다.
물론 여러 번인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태혁에게는 그랬다.
그런데 불행히도 신혼에 그의 아내는 레지던트 2년 차였다.
막 수술실의 맛을 알아갈 나이. 제기랄.
태혁은 요즘 그의 수술 스케줄이 아니라 아내의 수술 스케줄을 챙기는 버릇이 생겼다.
“이 병원 수술은 본인이 다 할 작정인가 보네.”
태혁은 이건 옳지 않다고 혀를 찼다.
어떻게 교수인 그보다 들어가는 수술이 더 많을 수 있나.
이럼 또 밤에는 피곤하다고 잠만 쿨쿨 잘 게 뻔했다.
저번에는 하는 중에 그녀가 잠들어서 태혁은 정말이지 아주 크게,
상처받았다.
태혁은 그의 권력을 이용해서 뺄 수 있는 수술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았다.
그의 수술은 안 되었다. 그럼 너무 티가 나니까.
아내를 화나게 하면 그건 각방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으니 조심해야만 했다.
문득 태혁은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에 이렇게 위기의식을 느끼는 남편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아니, 무엇보다 결혼식 할 때 아빠가 되라고 먼저 말한 사람이 도대체 우리 아기는 언제 낳아줄 것이란 말인가.
태혁은 화창한 창밖의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아빠 잘할 자신 있다고.”
하지만 엄마가 저리 수술실에서 사는데, 어찌 아기 낳을 시간이 있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그가 직접 낳고 싶다.
그때 전화가 울리기에 태혁은 한숨을 삼키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네, 최태혁입니다.”
[교수님! 문나영 선생이 쓰러졌어요!]
태혁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
“수면 부족입니다.”
펠로우가 된 동건은 딱 잘라서 말했다. 그냥 잠을 못 잔 거라고.
그래도 태혁은 믿지 않고 검사지를 뚫어지게 살펴보았다. 뭐라도 나오면 죽여버리겠다는 아우라를 풀풀 풍기며.
그러나 다시 보고 또 봐도 다른 병은 없었다.
“밤에 잠을 안 재우시나요?”
“닥쳐.”
“의사로서 물은 겁니다.”
“그럼 지금 난 교수님 아닌 거 같냐?”
태혁이 살벌하게 나오자 동건도 묻는 걸 포기했다.
동건은 병실을 나가기 전에 태혁에게 주의시켰다.
“하여튼 깨우지 마세요. 그냥 자게 두세요.”
마치 유치원생에게 땅에 떨어진 거 먹지 말라고 주의 시키듯이.
동건이 병실 문을 열며 마지막으로 본 건 최태혁 교수가 나영의 손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쥐고 마치 곧 죽을 불치병 아내를 보듯이 쳐다보는 것이었다.
왜 저럴까. 그냥 자는 거라니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동건은 병실을 떠났다.
병실에 둘만 남겨진 뒤에도 태혁은 잠든 나영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까는 그녀한테 너무 서운했는데, 지금은 그녀가 이렇게 몸이 힘들어질 때까지 그가 몰랐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눈치채고 미리 챙겼어야 했다.
그가 그녀의 남편이었으니까.
남편 노릇도 제대로 못 했으면서 아빠는 잘할 수 있다니.
정말 뻔뻔한 말이었다.
***
3시간 뒤에 잠이 깬 나영은 자신이 병실에 누워 있는 걸 알고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수술!”
일어나자마자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태혁은 서글퍼졌다.
“이럴 때는 나를 먼저 찾아야 하는 거 아냐?”
나영은 당황해서 그에게 물었다.
“설마 저 아프대요?”
“수면 부족.”
그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요즘 통 자지 못했으니까.
낮에는 병원 일을 해야 하고, 밤에는 신혼이고.
정말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영이 침대에서 나오려고 하자 태혁이 붙잡았다.
“지금이라도 수술실에 들어가려는 거라면 못 보내.”
“왜요? 저 이제 안 졸려요.”
“그래서 똑같이 살겠다고? 그럼 또 쓰러져!”
태혁이 화를 내니 나영은 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제가 밤에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시면 되잖아요.”
나영이 그의 탓을 하자 태혁은 울컥했다.
“나 때문이라고? 나만 좋았다고? 나만 신혼이야!”
그가 이렇게 화를 낼 줄 몰랐던 나영은 좀 당황했다.
“이게 화낼 일은 아니잖아요.”
“화난 게 아니라 상처받은 거야.”
태혁은 벌떡 일어나서 병실을 나가버렸다.
나영은 그가 떠나버린 병실 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뭐야. 설마 이게 부부싸움이야?”
무슨 부부싸움을 혼자 하냐. 모노드라마인 줄.
그래도 태혁이 상처받았다고 한 말이 신경 쓰였기에 그날은 나영도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태혁이 결혼 전에 오승준과 함께 살던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병원에서 아주 가까웠으니까.
오승준은 나중에 그 집이 아니라 그 건물이 모두 태혁이 상속받을 재산이라는 걸 알고 분개했다.
그런 부자이면서 집을 하나 내주는 게 아니라, 방을 하나만 내주다니!
하여튼 두 사람의 결혼으로 오승준은 자기 명의 아파트로 돌아갈 수 있어서 나름대로 해피엔드였다.
나영은 결혼한 뒤 한 번도 태혁에게 직접 요리해서 준 적이 없었다.
신혼여행도 갈 수 없을 만큼 바빴으니까.
결혼을 빨리한 대신 신혼여행은 나영이 레지던트 과정을 다 끝난 뒤에 가기로 결혼 전에 합의를 봤다.
그런데 태혁이 한 요리는 그녀가 종종 먹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마음 쓰는 정도가 달랐던 거 같다.
그래서 오늘은 그녀가 태혁에게 요리를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신혼이니까.
부엌에서 한창 요리하고 있는데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집에 먼저 온 거 뻔히 알 거면서 초인종을 안 누르는 걸 보니 여전히 화가 난, 아니, 여전히 상처받은 남편인가 보다.
나영은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혁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이제 퇴근하세요?”
그러고 보니 이렇게 집에서 태혁이 퇴근하길 기다린 것도 처음인 듯했다.
설마 그가 진짜 상처받을 만했던 건가?
태혁은 그녀를 본척만척 그냥 들어가려다가 음식 냄새를 맡고 멈추어 섰다.
“이게 무슨 냄새야?”
“제가 저녁 만들었어요. 카레.”
요리 못 하는 그녀도 카레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손 씻고 오세요.”
나영이 그의 재킷을 벗겨주며 상냥하게 말하자 태혁도 굳은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녀가 잘해주면 그는 어쩔 수 없이 기분이 좋다. 팔불출처럼.
태혁이 손을 씻고 돌아왔을 때 식탁에는 저녁이 준비되어 있었다.
집에는 항상 황 여사님과 나영의 어머니가 보낸 음식이 냉장고에 가득 차 있었기에, 사실 두 사람이 굳이 요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요리를 하게 되는 건 애정의 표현이었다.
“이번에는 안 태웠어요.”
그녀는 자랑했다. 결혼 전에 해준 갈비탕은 장렬히 태웠었기에.
“카레를 태우는 사람은 거의 없지.”
그가 수저를 들면서 하는 말에 나영은 눈빛이 변했다.
그걸 느낀 태혁은 바로 카레를 밥과 함께 먹고 칭찬했다.
“맛있네.”
카레 맛이었다. 카레 가루로 만들었으니.
“제가 요리 실력이 좀 는 거 같아요.”
태혁은 유머로 받아들이고 웃었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그녀가 생각했다고 하니 태혁은 좀 긴장했다.
나영이 애교 섞인 말을 하는 타입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이번 생에 오빠 소리 듣는 건 불가능했다.
곧 죽어도 교수님이다.
그가 그것 때문에 이직을 할 수도 없고.
“제가 당장 아이를 낳는 건 힘드니까 우리 개를 키우는 건 어때요?”
“…….”
그보고 개 아빠가 되라는 말에 태혁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나영은 그의 반응을 살피며 말했다.
“교수님 전에도 개 키워보셨다면서요.”
“그래, 죽었을 때 엄청 힘들었어.”
전혀 생각도 못 한 말이 그한테서 나오자 나영은 움찔했다.
태혁이 고개를 돌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잊고 있었는데, 또 생각났네.”
그가 그녀 말고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걸 찾기 위해 꺼낸 말에 오히려 본전도 못 찾은 나영은 조용히 밥만 먹었다.
아무래도 이건 그녀한테 몸 바쳐 봉사하라는 뜻인가 보다.
그래야 그의 기분이 풀릴 거라고.
***
나영이 설거지를 끝내고 침실로 들어갔을 때 태혁은 이미 다 씻고 침대 위에 있었다.
잠옷이 아니라 샤워가운만 걸치고 있어서 그의 성난 가슴골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나영은 일부러 시선을 돌리며 화장대로 가서 앉았다.
하나로 묶었던 머리를 풀어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렸다.
빗으로 머리를 빗어 내리는데 거울을 통해 태혁과 눈이 마주쳤다.
태혁은 결혼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녀가 화장대 앞에 앉아서 머리를 빗고 있는 걸 보고 있을 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바로 옆에서 자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
치약을 중간부터 짰다고 그녀가 혼낼 때,
출근 전에 그녀가 그의 넥타이를 매줄 때.
그가 결혼했고, 눈앞의 여자가 그의 아내라는 게 아직은 신기했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이루어졌다는 게.
그래서 태혁은 머리 빗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다 풀려버렸다.
이렇게나 쉬운 남편이라니.
분한 게 아니라 부끄러워지려고 했다.
나영은 핸드크림을 손에 바른 뒤 향수도 슬쩍 손등에 뿌렸다.
그리고 거울로 태혁을 힐긋 보았다.
그는 손에 책을 들고 있었지만 아까부터 한 장도 넘기지 않고 있었다.
나영은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로 걸어갔다.
“계속 책 볼 거예요?”
“……응.”
그의 대답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나영은 침대 위로 올라가 그의 다리 위에 앉았다.
그가 턱을 당기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 하는 거야?”
긴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로 넘기며 나긋하게 웃었다.
“남편 유혹이요.”
사실 언제나 유혹하는 쪽은 그였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나 보다.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었는데, 자신이 너무 받고만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영은 팔을 뻗어 벌어진 샤워가운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막 샤워를 끝내 서늘한 피부에 손이 닿으니 근육이 꿈틀했다.
태혁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안 하던 짓 하지 마.”
“그래서 싫어요?”
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미치게 좋으니까 더 문제였다. 당장 짐승으로 변해버릴 거 같았다.
하지만 나영은 수면 부족이었다. 당분간은 정말 잠만 재울 생각이었다.
태혁은 나영의 몸을 단숨에 옆자리에 눕혔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명령하듯이 말했다.
“얌전히 잠이나 자.”
그녀한테 바로 떨어지려고 했는데, 그녀의 두 팔이 그의 목을 감싸 안고 끌어당겼다.
입술이 부딪히자 그의 인내심이 가닥가닥 끊어졌다.
순식간에 서로를 집어삼킬 듯이 키스가 짙어졌다.
뜨거워진 키스의 끝자락에 그녀가 물었다.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하는 거 아니죠?”
태혁은 그녀의 이마에 이마를 대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럴 일은 없다.
“그럼 안아줘요. 당장.”
병원에서 그녀가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듯이, 집에서 그녀의 명령을 그는 거부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하룻밤은 첫날밤으로 이어졌고, 이젠 영원히 함께하는 부부의 밤이 되었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