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그녀를 찾아서 (39/84)


39화. 그녀를 찾아서
2023.02.13.



 
당장 수술받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환자였기에, 제 발로 응급실에서 사라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었다.

이게 모두 응급실 분위기를 흩트려 놓았던 건달 3인방 때문이었다.

그들을 상대하다 보니 정작 환자를 제대로 못 챙겼다.

환자가 사라진 걸 알고 건달 3인방은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며 오히려 병원 탓을 했다.

나영은 환자를 찾아서 급히 응급실을 뛰쳐나왔다.

병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환자가 막 택시를 타고 떠나려는 걸 발견하고 서둘러 택시로 달려가 닫히는 차 문을 붙잡았다.


“박길상 씨! 당장 수술해야 하는데 어디 가는 거예요! 내리세요.”

박길상은 다 죽어가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도 그녀를 밀쳐서 차 문을 닫으려고 했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녀 혼자 힘으로 감당이 안 되자 나영은 외쳤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사람 죽어요!”

그녀가 외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의 관심이 이쪽으로 몰렸다.

하지만 나서서 도와주는 이가 없기에 나영은 병원에 알리기 위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녀가 전화하려는 걸 보고 경찰을 부르는 줄 알았는지 택시 안에 있던 박길상이 그녀의 팔을 힘껏 끌어당겨 순식간에 차에 태웠다.


“악!”

탁.

그녀의 손이 차 문에 부딪히며 핸드폰이 길바닥에 떨어졌다.

그대로 차문이 닫혔다.


“출발해요.”

택시 기사가 당황한 눈으로 쳐다만 보자 박길상은 택시비를 3배나 주겠다고 흥정했다.

그제야 택시 기사는 바로 차를 출발했다.


“멈! 읍!”

택시를 세우려는 그녀의 입을 남자의 투박한 손이 서둘러 틀어막았다.

나영은 그 손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과거의 잔혹했던 기억이 그대로 그녀를 잡아먹을 듯이 덮쳐왔다.

***

태혁은 응급실로 달려가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우선 확인했다.

응급실 근무 레지던트가 전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환자를 데려온 건달들이 소란을 떠는 바람에 그거 처리하는 동안 환자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문나영 선생은 사라진 환자 찾으러 나갔다가 같이 사라지고. 지금은 전화 통화도 안 되고 있어서 어디에 있는 건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접수한 환자 신분이 어떻게 되는데?”

“아! 원무과에서 받아오긴 했는데, 이걸로 환자를 찾기가 너무 막막…….”

탁.

태혁은 레지던트의 손에서 환자 신상이 담긴 종이를 빼앗듯이 가져가서는 그대로 응급실을 나가버렸다.

최태혁 교수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자 레지던트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다 왜 이래?”

태혁은 환자 기록과 CCTV 영상을 들고 병원을 나와서 곧장 마포 경찰서로 향했다.

그는 강력계로 찾아가서 가장 처음 만난 경찰을 붙잡고 말했다.


“박재수 형사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경찰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박재수가 마포 경찰서에 없다는 말에 태혁은 처음으로 당황했다.

그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여기부터 온 것이었기에.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태혁은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15년 전까지는 분명 여기 근무하고 계셨습니다.”

“아! 그럼 팀장님은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경찰은 고개를 돌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를 향해 외쳤다.


“팀장님. 누가 박재수 형사님을 찾는다는데, 혹시 아십니까?”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태혁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박재수 형사는 어떻게 알고 찾아온 겁니까?”

그리 물으며 경찰답게 그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시선으로 태혁의 얼굴을 탐색했다.

태혁은 마음이 급했기에 빠르게 설명했다.


“34년 전 박재수 형사님 파트너였던 경찰이 제 아버지입니다. 지금 박재수 형사님 어디 계십니까? 제가 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박재수뿐만 아니라 그 파트너의 아들이라는 말에 팀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박 형사님은 8년 전에 돌아가셨네.”

이런 대답을 기대하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었기에 태혁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죽었다고요?”

박재수를 마지막으로 본 건 고3이 막 되었을 때였다.

이제 사고 치지 않고 공부해서 대학 갈 거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만났었다.

그때 박재수는 그에게 말했었다.

사고 안 치고 잘살면 앞으로 굳이 연락할 필요 없다고.

그래서 15년이 지나도록 연락 없이 살아왔던 거였다.

충격받은 태혁의 얼굴을 보고 팀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박 형수님은 내 사수였네. 박 형사님이 도와줘야 할 일이라면 당연히 내가 대신해야지. 무슨 일인가?”

당장 나영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과거의 기억까지 튀어나와 뒤섞이면서 그의 속이 엉망이 되었다.

***

박길상은 몸 안의 출혈이 심해지면서 오래 못 가서 힘이 빠졌다.

더이상 힘으로 그녀를 제압할 수 없는 몸 상태였다.

나영은 서둘러 박길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차 문 쪽으로 붙으며 택시 기사에게 외쳤다.


“당장 차 세워요!”

택시 기사는 난감한 눈으로 말했다.


“지금 다리 위인데 어떻게 세웁니까.”

나영은 지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택시 기사에게 설명하려는데 박길상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 공항에 가야 해.”

나영은 바로 남자에게 화를 버럭 냈다.


“지금 당장 수술실에서 출혈 잡아주지 않으면 당신 죽을 수도 있어요.”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 만나.”

“죽어도 영원히 못 만나긴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박길상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그대로 혼절했다.

나영은 서둘러 박길상의 상태를 확인했다.

어레스트인 걸 확인하고 그녀는 박길상을 뒷좌석에 눕혀 가슴을 두 손으로 압박하며 택시 기사에게 외쳤다.


“환자 심정지 왔으니까 제일 가까운 병원으로 빨리 가요!”

사람의 심장이 멈추었다는 말에 택시 기사는 사색이 되어 차의 속도를 높였다.

***

클럽의 시끄러운 분위기는 오늘따라 광란처럼 느껴졌다.

태혁은 곽 팀장과 함께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아이고! 곽 형사님이 여기까지는 어찌 발걸음하셨습니까?”

화려한 호피 무늬 셔츠를 입은 클럽 사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을 향해 유들거리는 미소를 날리며 친한 척을 했다.

곽 팀장은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취조하듯이 물었다.


“박길상 네 밑에 있는 놈이지? 지금 어디 있어?”

클럽 사장은 사진을 보고도 남 일처럼 대답했다.


“형사님도 참! 이런 조무래기까지 제가 어떻게 다 기억합니까?”

퍽.

순식간에 뻗어온 발차기에 가슴이 치여 바닥에 쓰러진 클럽 사장이 반격하기도 전에 이미 태혁의 발이 그의 목을 짓누르고 있었다.

설마 병원 의사가 먼저 과격한 폭력을 쓸 줄은 몰랐기에 같이 온 곽 팀장도 깜짝 놀랐다.

태혁은 그의 발아래 깔린 클럽 사장에게 차갑게 명령했다.


“그럼 당장 박길상 아는 사람을 불러.”

“너는 뭐야! 곽 형사님! 내가 뭔 잘못을 했는데! 영장 있어?”

“그래. 최 교수. 그만하게. 경찰 앞에서 이러면 나도 못 봐줘.”

하지만 태혁은 발을 치우지 않고 더 세게 짓눌러 클럽 사장의 숨통을 틀어막았다.

태혁한테서 살기를 느낀 클럽 사장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광수 불러와! 광수!”

클럽 사장의 호출을 받고 달려온 광수라는 남자는 클럽 사장과 경찰의 눈치를 양쪽에서 보며 박길상에 대해 아는 걸 전부 털어놓았다.


“그, 그게 오늘이 길상이 딸 해외 입양 가는 날이라서. 일 끝나면 공항 간다고 했습니다. 오늘 수술받으면 공항 못 가니까 병원 빠져나간 거 같은데.”

박길상이 공항으로 향한 걸 알아내고 태혁과 곽 팀장은 바로 클럽을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아까는 위험했어. 하마터면 박 형사님 대신 도와주려다가 내가 최 교수 체포해야 할 뻔했네.”

태혁이 대꾸 없이 창밖만 보자 곽 팀장은 한숨 쉬며 충고했다.


“그 성질 죽이고 살게. 안 그럼 언젠가 큰일 나겠어.”

그 말을 그에게 가장 많이 했던 사람이 박재수 형사였다.

Rrrrrrrrr Rrrrrrrrr-

핸드폰이 울리자 태혁은 기계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발신 번호에 한국병원이라고 찍혀 있었다.

왜 다른 병원에서 그에게 전화한 건지 이상하게 생각하며 태혁은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교수님. 저 문나영이에요.]

나영의 목소리가 전화기 안에서 들려오자 태혁은 튕기듯이 몸을 세웠다.


“문나영. 너 괜찮아?”

[아! 저 지금 한국병원이에요. 응급실에서 도망친 환자가 중간에 어레스트 와서 급하게 이곳으로 왔어요. 핸드폰은 병원 앞에서 잃어버려서 병원 전화 빌려서 하는 거예요.]

나영에게 아무 문제 없다는 걸 확인하자 태혁은 긴장감이 순식간에 풀리며 몸에 힘이 빠졌다.


“그래, 알았어.”

[교수님은 지금 어디세요? 병원이세요?]

태혁은 인천공항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가로등 불빛을 쳐다보았다.


“아니, 인천공항 가는 중.”

[네? 왜요?]

“누가 오늘 떠난다고 해서.”

나영은 이미 찾았지만, 태혁은 계획대로 인천공항까지 갔다.

***

탁.

복도 의자에 앉아 있던 나영은 태혁이 집중치료실에서 나오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길상 씨는 어때요?”

“아직 안 깨어났어.”

태혁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좀 쉬어야겠어. 앉았다가 가자.”

최태혁 교수가 이렇게 피곤해하는 모습을 처음 보는 나영은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그의 안색을 살폈다.


“저 찾느라고 고생하신 거예요?”

태혁이 피곤한 건 그거 때문이 아니었다.

누가 죽었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응. 그러니 네 어깨에 기대 좀 쉬자.”

차현은 그의 어깨를 나영에게 빌려주라고 조언했는데, 반대로 태혁이 나영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댔다.

그의 묵직한 무게를 느낀 나영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나영은 주위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무리 우리 병원 아니지만, 이러고 있는 거 좀 그렇지 않을까요?”

“너는 내가 창피해?”

“그런 게 아니라…….”

나영은 당황해서 말을 얼버무리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꼼짝도 안 하고 앉아서 그의 베개 노릇을 하였다.

정말 피곤해서인지 최태혁 교수가 아무 말이 없어서 나영이 먼저 물었다.


“박길상 씨 딸이 오늘 해외 입양되는 건 어떻게 아신 거예요?”

박길상과 함께 있었던 건 그녀였는데, 나영은 그가 입양 가는 딸을 만나러 가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태혁은 공항까지 가서 박길상 대신 딸을 만났다.

이제 박길상이 깨어나면 태혁이 찍어온 영상으로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몰랐어. 난 그냥 널 찾은 거야.”

그가 그녀를 찾아 헤맸다는 말이 그녀의 마음을 건드렸다.

나영은 택시 안에서 박길상에게 붙잡혀 있을 때 너무 무서워서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그를 불렀었다.

최태혁 교수가 그녀를 구하러 오지 못할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런데 그는 결국 그녀를 찾아냈다.

꼭 그때 그 오빠처럼.


“제가 교수님 누구 닮았다고 하면 화내실 거예요?”

그녀의 질문에 감기던 그의 눈이 번쩍 떠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