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재수 없는 놈 (33/63)


#32화. 재수 없는 놈
2023.04.21.


세 번째 과제 데이트가 끝이 났다.

집 앞에 도착한 사랑이 도한에게 아쉬운 인사를 전했다.


“들어갈게요.”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헤어질 때면 왜 이리도 손을 놓기가 싫은 건지.

손이 허전해지자 사랑은 벌써 그의 온기를 그리워했다.


“내일 보자.”

“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또 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환하게 빛났다.

도한은 사랑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는 걸 끝까지 지켜보았다.

잠시 후 2층 왼쪽 집에 불이 켜지고 나서야 돌아섰다.

그의 집 쪽으로 천천히 발을 옮기던 도한은 공동 현관 유리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인영을 발견하고 우뚝 멈춰 섰다.

혜리가 계단 한쪽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여기서 뭐 해.”

도한의 낮은 목소리에 그녀가 얼굴을 들었다.


“술 마셨어?”

“아니.”

혜리가 고개를 저으며 일어섰다.

그녀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창백해 보여 도한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말이 별로 없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오빠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그래서 여기서 기다렸어.”

사랑과 함께 있는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그는 일찍부터 핸드폰 전원을 꺼 두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원을 켜기가 무섭게 부재중 전화 목록이 수두룩하게 쌓였다.

박혜리 이름이 두 번, 아버지가 열일곱 번.

도한은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바로 그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밝게 빛나는 아버지라는 세 글자가 오늘따라 다급해 보였다.

도한은 혜리를 한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네.”

- 너 지금 어디야!

경철의 목소리가 핸드폰 밖으로 튀어나오자 도한이 미간을 좁혔다.


- 당장 집으로 와. 지금 당장!

단순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던 도한이 혜리에게 물었다.


“집에 무슨 일 있어?”

“가면서 얘기해. 아빠가 기다리셔.”

혜리가 현관문을 열고 먼저 나가자 도한도 그녀를 따라나섰다.

가면서 얘기하겠다는 혜리는 차를 타고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긴 적막이 이어지자 운전 중인 도한은 과거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오늘만큼이나 경철이 화를 냈던 날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열세 살의 도한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이제 막 1학년이 된 혜리가 반찬 투정을 했다.


‘이거 어제도 먹은 거잖아. 나 밥 안 먹을래.’

사랑하는 여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친아들보다 혜리를 아꼈던 경철은 그녀를 어르고 달랬다.


‘아빠가 저녁에 맛있는 거 사 줄 테니까 지금은 이거 먹자. 응?’

‘정말? 뭐 사 줄 건데?’

‘우리 혜리가 먹고 싶은 거 다 사 줄게.’

좋아서 활짝 웃는 혜리에게 새엄마가 엄한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안 돼. 외식은 다음에 하고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야.’

‘왜. 왜 안 돼? 아빠가 나 먹고 싶은 거 다 사 준다는데, 왜.’

혜리가 떼를 쓰자 경철이 서둘러 나섰다.


‘아니야, 혜리야. 아빠가 꼭 사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진짜지? 약속하는 거지?’

‘그럼.’

‘우리 아빠 최고.’

약속을 받아 낸 혜리가 그제야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새엄마가 경철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늘 도한이 엄마 기일이에요. 외식은 다음에 해요.’

‘그게 뭐 중요한 날이라고 우리 딸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어.’

‘여보…….’

새엄마는 도한의 눈치를 보느라 안절부절못했지만 경철은 혜리의 밥그릇에 반찬을 놓아주기 바빴다.


‘많이 먹어, 우리 딸.’

‘응, 아빠. 나 이거 다 먹을 거야.’

사이 좋은 부녀 사이를 보며 도한은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었다.

그리고 등교를 하기 위해 평소와 똑같이 혜리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목적지는 학교가 아니었다.


‘오빠,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버스를 타고 처음 가 보는 곳에 내리자 혜리가 맑은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도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빠 손 축축해.’

3월이라 아직 날이 쌀쌀한데도 그는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떨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사랑하는 여자의 딸.

어머니의 기일도 무시할 만큼 끔찍이 아끼는 박혜리.

그녀를 버리러 가는 길이었다.


 
도한은 그것만이 경철을 아프게 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혜리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 돌아왔고, 도한은 그날 경철에게 사정없이 맞았다.

새어머니가 필사적으로 말린 덕에 죽지 않은 거라 여길 정도였다.

도한은 정신을 잃기 전까지 눈물을 흘렸다.

맞은 곳이 아파서가 아니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뒤늦게 깨달아서였다.

만약 혜리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 손이 덜덜 떨렸다.

자신이 끔찍한 괴물이 된 것만 같았다.

도한은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기분이 생생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정도로 기억은 선명했다.

마침 경철의 집 앞에 도착했고 그가 차를 세웠다.

도한이 시동을 끄자 내내 침묵했던 혜리가 입을 열었다.


“나 암이래, 오빠.”

차에서 내리려던 그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도한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우리 엄마가 위암으로 돌아가셨잖아. 이것도 유전인지 나도 그렇다네.”

설핏 미소 짓는 혜리에게서 도한은 죽은 새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새어머니는 처음 그를 봤을 때부터 친자식처럼 대했다.

도한이 곁을 내주지 않아도 늘 다정하게 말을 걸고 세심하게 챙겨 주었다.

그가 혜리를 버리고 온 건 아버지를 향한 분노였기에, 새어머니에게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새어머니는 죽는 순간까지 오히려 도한을 안쓰러워했다.


“얼마 전부터 속이 쓰렸는데 아빠가 예감이 안 좋았는지 검사를 예약해 놨더라고. 그래서 같이 갔었어.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빠가 오빠한테 화내더라도 이해하라고.”

도한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몸에 암세포가 있다는 얘기를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혜리 때문에 더욱 그랬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 겨우 스물하나인데 어떻게 암에 걸릴 수가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만 들어가자. 아빠한테 또 전화 오기 전에.”

혜리가 먼저 차에서 내렸다. 도한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앞서 걸었고 그가 뒤를 따랐다.

그들이 집 안에 발을 들여놨을 때, 경철이 도한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너 때문이야. 이게 다 네놈 때문이라고!”

“아빠, 그러지 마.”

혜리가 제 아빠의 팔을 잡아당기며 도한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애쓰자 그가 할 수 없이 두 손을 툭 내렸다.


“이제 속이 시원하냐? 혜리 엄마 죽게 만든 것도 모자라서 혜리까지 이 지경으로 만드니까 만족하냐고!”

“아빠, 내가 아픈 게 왜 오빠 탓이야.”

“이놈 탓이지. 어릴 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그런 몹쓸 병에 걸리냔 말이야. 너도 네 엄마도……!”

경철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치며 도한을 노려봤다.

동생이 죽을병에 걸렸다는데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 치가 떨렸다.


“지독한 놈. 재수 없는 놈. 남의 인생 망가뜨리는 것까지 지 애미를 닮아서는.”

경철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아들에게 악담을 퍼붓자 도한이 조용히 읊조렸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제 인생을 망가뜨리셨어요.”

마음에도 없는 여자와의 하룻밤, 그날의 임신으로 의무감에 한 결혼.

도한은 어린 시절 내내 경철의 그 원망을 지겹도록 들어 왔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불쌍히 여기던 마음은 아버지를 향한 미움으로 바뀌었다.


“어머니와 저, 아버지 옆에서 불행했으니까요.”

“내 덕에 호의호식한 주제에, 뭐? 평생을 가난에 허덕이다 남자 하나 물어서 돈 걱정 안 하고 산 네 엄마나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면서 자란 네가 지금 불행했다는 거냐?”

경철의 비웃음에 도한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생일마저도 불편한 날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게 불행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어머니와 저뿐만은 아니죠.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혜리까지 불행하게 만드셨어요.”

“뻔뻔한 놈. 내가 아니라 너 때문이지! 네가 혜리를 버리고 오지만 않았어도 그 사람이 병에 걸리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아니요. 아버지 때문이에요.”

도한의 가슴 깊은 곳에서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들이 쏟아졌다.

혜리와 새어머니에게는 죄인이지만 아버지에게만큼은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조차 자신의 존재를 외면해 온 지난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사랑을 만나면서 평온함과 행복이 찾아든 도한은 이제야 스스로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경철을 향한 분노를 이 자리에서 모두 털어 버리기로 했다.

부자의 관계가 끊어진다 해도, 더는 아버지에게 짓밟히는 자신을 두고 보지만을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와 저, 그리고 새어머니와 혜리. 모두가 아버지의 비겁함 때문에 불행했어요.”

경철의 얼굴이 차게 식어 버렸다.

도한은 그런 아버지를 무감하게 바라보았다.


“저는 최소한 죄책감은 갖고 살았어요. 제가 얼마나 끔찍한 놈인지 잘 알고 있어서 그동안 죄인처럼 지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요? 모두가 불행해하는 동안 아버지는 아버지 사랑만 중요하셨잖아요.”

그러니 정작 뻔뻔한 건 아버지 아니냐고, 그의 두 눈이 말하고 있었다.

경철은 충격을 받은 듯 눈빛이 흔들리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혜리를 버렸던 거냐? 내 옆에서 불행하게 산 네 엄마가 불쌍해서?”

열세 살의 도한에게 버려진 혜리는 공포에 떨며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차가 멈춰 그녀를 파출소에 데려다주지 않았다면 영영 실종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혜리는 불안 증세를 보였고 공황 장애를 앓게 됐다.

경철은 그런 딸이 걱정돼 대학생인 도한에게 자퇴를 강요했었다.

혜리와 같은 대학에 들어가서 그녀를 잘 돌보라고.

그렇게라도 해서 동생을 버린 죄를 갚으라고.


“아니요. 아버지도 똑같이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경철의 얼굴이 뻣뻣해지자 도한이 말했다.


“그래야 공평하니까.”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말들을 모조리 꺼내고 나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솔직해지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스스로 그럴 자격조차 없는 놈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이렇게 쉬운 일인데.

그래도 되는 일이었는데.


“혜리 수술할 병원부터 알아보세요. 병원엔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도한은 새어머니가 죽기 전 그의 손을 잡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안하다, 도한아. 내가 정말 미안해. 그래도 우리 혜리, 친동생이라고 생각해 줘. 손 놓지 말고. 제발…….’

고등학생이었던 도한은 죽어 가는 새어머니에게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겠다는 말도, 죄송한 건 저라는 말도.

딸을 잃어버릴 뻔한 새어머니가 그를 용서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음 편히 눈감을 수 있도록 짧은 대답 하나 하지 못했다.

그래도 새어머니는 아버지가 평생을 사랑했으니까.

그의 어머니는 사랑 한 번 받지 못하고 불쌍하게 돌아가셨으니까.

도한은 자신이라도 어머니의 편에 서서 새어머니를 외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새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이 내내 그를 괴롭혔다.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올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그가 경철에게 자신이 혜리를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도한은 여전히 멍하게 서 있는 경철에게 고개를 숙였다.

집을 나선 그가 차에 오르려는데 혜리가 쫓아왔다.


“오빠 이거. 늦었지만 생일 선물이야.”

도한은 혜리가 내민 선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곤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 와중에 제 선물을 챙기는 모습이 황당해서 그가 헛숨을 터트렸다.

암 선고를 받았다는데 왜 이렇게 멀쩡한 건지.

차라리 경철처럼 너 때문이라고 소리를 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만히 서 있는 그에게 혜리가 억지로 선물을 쥐여 주었다.


“나 1학기는 마칠 수 있겠지? 다음 달에 기말고사만 보면 되는데 지금 휴학하면 아깝잖아.”

“지금 그게 문제야?”

도한이 어이없이 대꾸하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나 원래 학교 다니기 싫었는데,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막 수업이 듣고 싶은 거 있지.”

“수술하고 실컷 들어.”

“수술이 잘된다고 해도, 항암 치료도 해야 하는데 언제 복학할 수 있겠어. 그리고 재발되면 또 학교 그만둬야 하는데. 우리 엄마도 수술 성공적이라고 했는데 결국 재발돼서 돌아가셨잖아.”

“암이라고 다 죽는 거 아니야.”

도한은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살가운 남매 사이도 아니고 다정한 성격도 아니기에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는 끝내 침묵을 선택했다.

도한을 바라보던 혜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나 좀 무서워, 오빠.”

지금껏 남의 일처럼 굴던 그녀가 처음으로 속마음을 꺼냈다. 도한의 두 눈이 조금 커졌다.


“나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잖아. 지금 죽으면 억울할 거 같은데.”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혜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도한을 바라봤다.


“오빠, 정말 나랑 같이 병원에 가 줄 거야?”

“그래.”

그의 대답에 혜리의 눈에 눈물이 고여 들었다.


“수술할 때도, 항암 치료 받을 때도?”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자 도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도한은 그렇게 해서라도 새어머니가 베풀어 준 친절을 갚고 혜리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동생을 버리고 왔었던 그날은 그에게도 여전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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