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나랑 뭐 하고 싶은데
(30/63)
29화. 나랑 뭐 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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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나랑 뭐 하고 싶은데
2023.04.10.
도한의 위로 쓰러진 사랑은 키스를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가 먼저 입을 맞춘 적은 없었다.
그런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잘하지도 못하는데 어설프게 그의 입술을 건드리고 싶진 않았다.
얼마나 더 연습을 해야 잘할 수 있을지.
그런 날이 정말 오긴 하는 건지.
사랑은 도한의 키스를 받을 때마다 잠깐 잠깐씩 그 생각을 하느라 집중하지 못했었다.
언제까지나 그에게는 어린애에 불과할 것 같아서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도한의 친구들 앞에서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가 생일 선물로 호텔 숙박권을 받았을 때 사랑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호텔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무리 화장을 진하게 하고 어른스러운 옷을 입었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어린애구나 싶어 스스로가 한심스러웠다.
그때 도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스무 살이야. 호텔은 무슨.’
사랑은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자신을 어리게 여기는 그의 말투에 울컥했다.
왜 나는 스무 살일까 화가 났다.
그리고 저를 여자로 보지 않는 도한이 미웠다.
만약 내가 스물다섯쯤이었다면 그는 친구들과 헤어지고 난 뒤에 생일 선물로 받은 호텔 숙박권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랬을 것만 같아서 사랑은 자신이 초라하고, 또 비참했다.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도망친 것도 그래서였다.
혼자 방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도한에게 달려온 건 충동적이었다.
스무 살은 호텔에 가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럴 마음으로 무작정 도한의 집 초인종을 눌렀고, 그를 보자마자 억울한 마음이 치솟아 입술부터 물어 버렸다.
의도치 않게 그를 침대에 눕힌 꼴이 됐지만 그렇다 해도 놓아줄 수 없었다.
사랑은 도한의 입술을 과감하게 탐했다.
그가 그녀에게 했었던 그대로 힘있게 빨아들이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눈물이 차올랐다. 왜 눈가가 촉촉해지는지 당황스러웠다.
처음의 기세와 달리 사랑이 머뭇거리자 도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와 위치를 바꿔 침대에 눕혔다.
위에서 바라본 사랑의 두 눈에 물기가 번져 있었다.
그녀가 재빨리 팔을 올려 눈을 가렸다.
“불 좀 꺼 주세요.”
사랑의 목소리가 당장 울 것처럼 가늘게 떨렸다. 도한이 사랑의 팔을 천천히 내렸다.
“불 끄고 뭐 하려고.”
“아무것도 안 할 거면 비켜요.”
“나랑 뭐 하고 싶은데.”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고 있던 사랑이 순간 도한을 노려봤다.
먼저 키스를 하고 그의 침대에 눕기까지 했는데도 어린애 취급을 당한 기분이었다.
“오빠가 여자 친구들이랑 했던 거요.”
사랑은 기어이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두 눈이 야속했다.
이런 주제에 무슨 어른 흉내를 냈는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데도 한 번 무너진 마음은 끝도 없이 추락했다.
“왜요. 나랑은 못 하겠어요? 고작 스무 살이라서?”
언제부터 그에게 안기고 싶었는지 그녀도 알 수는 없었다.
사랑은 키스도 제대로 못 하면서 도한과 밤을 보내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그는 아닌 것 같았다.
입술이 닳도록 키스를 퍼붓고 좋아한다고 말해 주지만, 저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줄만 알았다.
그다음엔 그녀가 처음이라 부담스러운 거라 여겼다.
그런데 이제는 모르겠다.
그냥 저하고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만 들었다.
“나 어린애 아니에요. 애 취급할 거면 비키…….”
눈물을 참으며 말을 뱉던 그녀의 입술이 도한에게 빼앗겼다.
거칠게 입 안을 헤집어 놓는 키스에 사랑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누운 채로 그를 올려다보는 건 처음이라 눈앞이 핑 돌았다.
온몸이 심장인 것처럼 두근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누가 어린애야.”
도한이 살짝 입술을 떨어뜨리고 사랑을 내려다봤다.
얼굴에서부터 시선을 쓱 훑어 내리자 그녀의 몸이 작게 떨렸다.
“이렇게 야하게 누워서는.”
그의 눈길이 제 다리에 머물고 있단 걸 알아챈 사랑이 황급히 치마를 내렸다.
그와 자세가 바뀌면서 원피스가 조금 말려 올라가 있던 걸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도한은 그 모습이 미치게 예뻐서 사랑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한 번, 두 번 가볍게 맞대더니 마지막으로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빨아들이고는 놓아 주었다.
“넌 오늘 내가 얼마나 참았는지 모르지.”
사랑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그가 그녀에게 고개를 내렸다.
“앞으로는 머리 묶고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왜, 왜요. 이, 이상했어요?”
립스틱이 너무 진하다고 직접 입술로 지워 주기까지 하더니.
헤어스타일도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사랑은 역시나 이상하다는 답을 예상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열기가 밀려들어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처음으로 느껴 보는 감각이라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그가 착실히 대답하면서도 그녀의 목에 자잘한 키스를 남겼다.
“이러고 싶은 거 겨우 참았으니까.”
사랑에게서 풍기던 장미 향은 샴푸 때문이 아니라는 걸 그는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머리카락이 아닌 그녀의 살에서 향기가 났다.
장미 향의 바디 워시를 쓰고 있는 거라면 몸에서도 같은 향이 날까.
당장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도한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불, 끄고 올까.”
그가 그만 고개를 들어 사랑을 지그시 바라봤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그녀의 의견을 따라야 했다.
다시 한번 그녀에게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기도 했다.
정말 나를 원하느냐고.
도한은 사랑에게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내일이면 후회할지도 몰라서.
하지만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집에 갈래?”
아까와 반대의 마음으로 그가 물었다.
정말 나를 원하지 않느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순 없냐는 간절함을 담기도 했다.
“네. 집에는 가야 할 것 같아요.”
그 한마디에 도한은 이명이 느껴질 정도로 잠깐 아찔했다.
후회는 그의 몫이 되고 말았다.
물어보지 말고 그대로 그녀를 가질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그렇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여자 친구를 강제로 안을 수는 없었다.
“가자. 데려다줄게.”
도한이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하자 사랑이 급히 일어나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지금 가겠다는 게 아니라…….”
사랑의 눈빛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 그가 차분히 기다렸다.
“잠은 집에서 자겠다고요.”
“그게 무슨.”
“그러니까, 이따가 데려다 달라고…….”
사랑이 걱정한 건 도한에게 안기고 난 다음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그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의 곁에 누워서 과연 잠이 올까.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건 또 어떻고.
그래서 오늘 집에는 갈 생각이었다.
그와 사랑을 나눈 후에.
사랑은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가 민망해서 집에 가겠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말았다.
그가 오해하고 제게서 떨어진 후에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뒤늦게 마음을 전한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무슨 말이라도 해 줬으면 좋겠는데 도한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가 침대에서 내려가 사랑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순간 사랑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대로 집에 가야 하는 건가.
자신의 실수로 모든 걸 망친 기분이었다.
사랑이 울고 싶은 심정으로 도한의 손을 잡고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그런데 그가 그녀를 데리고 나가는 게 아니라 그녀의 등 뒤에 서서 원피스의 지퍼를 내렸다.
도한의 손길에 흠칫 놀란 사랑이 어깨를 움츠렸다.
“옷 구겨지면 안 되잖아. 강지우가 볼 텐데.”
허리까지 이어진 지퍼를 다 내리고 그가 사랑을 돌려세웠다.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원피스가 그녀의 몸을 타고 스르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집에는 늦지 않게 데려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속옷만이 남은 사랑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다.
곧 제게 닥칠 일이 걱정이지.
그녀 또한 그를 절실히 원했지만 처음이다 보니 긴장되는 건 당연했다.
잘할 수 있을까.
너무 서툴러서 실망을 안기진 않을까.
이런 마음을 숨기듯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는 그녀를 그가 침대로 이끌었다.
도한이 사랑을 눕히고 단번에 그녀의 입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숨결이 짙어질수록 사랑은 침대 시트를 생명줄처럼 꼭 쥐었다.
그것마저 놓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곳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미 지도한이라는 늪에 빠져 버린 사랑은 점점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숨, 쉬어야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녀가 질끈 감았던 두 눈을 떴다.
“그만할까?”
“네?”
“힘들면 그만해도 돼.”
도한은 작게 몸을 떨고 있는 사랑이 걱정되었다.
키스도 처음이었다고 했으니 지금 이 상황도 마찬가지일 텐데.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지만 그녀에겐 그의 손길이 낯설고 두려울 수 있었다.
사랑이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긴장한 탓에 도한은 여기서 더 나아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런데 엄청난 대답을 듣고 말았다.
“저는 계속하고 싶은데요.”
울긋불긋한 얼굴을 하고서 내뱉는 당돌함이라니.
이걸 어떻게 참아.
사랑의 대답에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배려의 끈이 툭 끊어지고 말았다.
“힘든 게 아니라 떨려서…….”
사랑이 변명을 채 마치기도 전에 그가 그녀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중했던 도한의 손길이 거칠어졌다.
망설임이라고는 없었다.
그런데 사랑은 오히려 긴장감이 풀렸다.
분명 더 큰 자극이 느껴지는데 처음 그의 손이 닿았을 때보다 마음이 편안했다.
어느새 도한의 온기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너만 떨리는 거 아니야.”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와 끈적한 입맞춤으로 사랑의 정신이 다시금 몽롱해졌다.
“오, 오빠도요?”
“그래. 나도 떨려.”
“거짓말.”
간지러움에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그녀가 숨을 몰아쉬자 도한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성을 붙잡고 다급해지려는 손을 참아 내는 게 점점 힘에 부쳤다.
“설레는 게 당연하잖아. 생일 선물인데.”
툭.
선물 포장지의 리본을 풀 듯 그의 손길이 신중했다.
“생일. 추, 축하해요.”
세상 야한 축하 인사에 도한이 피식 웃음을 지으며 사랑의 입술을 한껏 머금었다.
“고마워.”
그는 답례로 오랫동안 키스를 퍼부었다.
사랑은 그를 버거워하면서도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그에게 매달리기도 하고 먼저 입을 맞추기도 했다.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감각이 휘몰아쳐 이대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곧 평화가 찾아왔고, 더욱 깊어진 그의 눈빛을 마주했을 땐 알 수 없는 감정이 사랑의 가슴속에 피어났다.
행복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평생 잊지 못할 밤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생일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