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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첫 번째 데이트 (6/63)


#6화. 첫 번째 데이트
2023.01.20.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도한과 데이트, 아니 과제를 할 생각에 잠을 설친 사랑은 약속 시각보다 일찍 집에서 나왔다.

어제 지우와 같이 쇼핑한 옷을 입긴 했는데 영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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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어색해 죽겠네.”

그녀에게 어울리겠다고 지우가 골라 준 옷은 시폰 원피스였다.

무릎 바로 위로 올라간 길이와 하늘거리는 소재, 그리고 허리를 잡아 주는 셔링은 앳된 사랑을 평소보다 더 여성스러워 보이게 했다.

그녀가 한참을 현관 유리에 몸을 돌려 가며 보고 있는데 뒤에서 도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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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나왔네?”

깜짝 놀란 사랑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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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방금 나왔어요.”

인사도 어색하고 옷도 어색하고.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 없어 사랑은 괜히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그런데도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이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 구경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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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데이트, 아니 진짜 데이트처럼 해야 한다고 해서요.”

도한은 그녀의 의외의 모습이 조금 놀라웠다.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원피스도 제법 잘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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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대충 입고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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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괜찮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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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행이고.”

사랑은 대충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블랙 청바지에 흰 티셔츠, 그 위에 걸친 진회색 니트 카디건은 그야말로 남자 친구 룩의 정석이었다.

어깨에 무심하게 멘 백팩까지 멋있어 보였다.

사랑은 순간 <연애와 결혼> 교수님께 감사 인사라도 드리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훌륭한 과제를 생각해 내셨냐고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앞으로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교수님을 얘기하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두 사람은 버스 정류장까지 나란히 걸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사랑은 며칠 전부터 궁금했던 걸 물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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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도 같은 과제였어요?”

그랬다면 도한은 누구와 짝을 이뤄서 데이트 과제를 했을까.

그리고 종강했을 때쯤엔 둘이 어떤 사이가 됐는지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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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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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땐 어디서 데이트하셨어요?”

사랑은 상대 여자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너무 노골적인 질문인 듯해서 살짝 피해 갔다.

대신 그 여자와 어떤 식으로 데이트를 했는지는 알아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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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방, 당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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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거기서 무슨 데이트를…….”

사랑은 당혹스러웠다.

일반적인 데이트 장소와는 거리가 멀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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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방에선 게임하고 컵라면 먹고, 당구장에선 당구 치고 자장면 시켜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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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런 취미가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향이라 사랑은 침울해졌다.

오늘 준비한 데이트 코스를 그가 마음에 안 들어 할까 봐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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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분 취향이 참 독특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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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이 왜 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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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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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태훈이랑 들었어. 과제는 두 번인가 겨우 해서 내고 그다음부터는 아예 안 했고.”

사랑의 얼굴이 꽃처럼 화사하게 피었다.

도한과 함께 과제를 한 사람이 여자가 아니라 태훈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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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너 안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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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곧 버스 탈 텐데요, 뭐.”

그가 사랑의 맨다리와 팔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3월이라고 해도 아침엔 바람이 쌀쌀해서 감기에 걸리기 딱 좋았다.

도한은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사랑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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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올 때까지라도 입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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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정말 괜찮아요.”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져 사랑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두 손을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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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고 있던 거라 좀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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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런 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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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할 수 없고.”

도한이 다시 손을 거두자 그녀가 재빨리 카디건을 낚아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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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싫어요. 저 사실 아까부터 너무 추웠어요. 감사해요. 잘 입을게요.”

누가 뺏어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랑은 얼른 카디건을 걸쳤다.

그의 옷을 입고 있으니 그에게 안겨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코끝에 전해지는 도한의 향기에 취할 것만 같았다.

사랑은 카디건을 손으로 꼭 붙잡으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버스가 천천히 오기를.

오늘 하루가 1년처럼 느리게 흐르기를.

* * *

사랑이 첫 번째 데이트 코스로 정한 곳은 도심 속에 있는 어느 절이었다.

서울에서 3월에 가 볼 만한 곳을 검색했을 때 이곳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본 사진엔 절의 기와지붕을 배경으로 홍매화가 만개해 있었는데, 서울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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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네.”

도한이 나무에 핀 꽃을 알아보자 사랑은 조금 놀랐다.

그동안 알고 지내 온 친구들은 벚꽃과 비슷하게 생긴 매화를 잘 구분하지 못했다.

그녀 주위에서 매화를 매화라고 정확히 말한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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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네요? 다들 벚꽃이라고 하는데.”

그거 하나 맞힌 게 큰일도 아닌데 사랑은 흥분했다.

그와 공통분모를 가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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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뒷면에 있는 꽃받침을 보면 확실히 구분할 수 있거든요. 벚꽃 꽃받침은 끝이 뾰족하고 매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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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렇지.”

신이 나서 떠들던 사랑이 어떻게 알았냐며 두 눈을 크게 떴다.

도한은 그런 그녀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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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혹시 그것도 아세요? 벚꽃보다 매화랑 더 비슷하게 생긴 꽃이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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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꽃.”

이번엔 사랑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자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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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똑같이 생겨서 구분을 못 하겠던데 살구나무 꽃은 꽃받침이 뒤로 젖혀져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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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무슨 공대생이 꽃에 대해 그렇게 잘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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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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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할머니랑 같이 살았거든요. 옆에 쫓아다니면서 들었어요.”

순간 사랑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좋아하는 사람과 뭔가를 함께 공유한다는 느낌에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다.

혹시라도 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날까 싶어 발끝만 쳐다보는데 그가 한 걸음 다가왔다.

사랑은 그의 카디건을 입었을 때 맡았던 체취가 제법 가까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뭘 하려는 건지 궁금했지만 얼굴이 빨개지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도한의 손이 점점 다가왔다.

제 얼굴로 향하는 것 같아 사랑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숨까지 참았다.

곧 그의 손이 머리에 닿았다.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것도 같았다.

그가 뭘 하려는 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건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의 손끝이 짧게 닿았다 떨어졌을 때, 사랑은 한 떨기의 홍매화가 된 기분이었다.

온몸이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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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이 머리에 떨어져서.”

도한의 목소리에 그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고개를 들자 그의 손에 매화 한 잎이 놓여 있었다.

순간 창피함이 밀려들었다.

잠깐 사이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버렸다.

사랑은 어색하게 웃고는 저쪽으로 가 보자며 재빨리 그곳을 벗어났다.

홍매화만큼이나 붉어졌을 자신의 얼굴을 도저히 보여 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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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른 시간이라 가는 곳마다 한적했다.

진짜 데이트가 아닌 과제를 하는 중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 사랑은 핸드폰 카메라에 여러 풍경을 담았다.

사진이 없으면 머릿속에 남는 건 도한뿐이라 리포트를 못 쓰게 될 불상사가 생길지도 몰랐다.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핸드폰 화면에 그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그녀의 손이 멈췄다.

아주 잠깐 찍어도 될까 고민하다가 촬영 버튼을 눌렀다.

찰칵 소리에 도한이 뒤를 돌아보았다. 사랑은 아무렇지 않게 핸드폰을 조금 옆으로 움직여 길가를 찍었다.

들켰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도둑질한 것처럼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그런데 그가 점점 제 쪽으로 다가왔다.

핸드폰 좀 보자고 하면 어쩌나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핸드폰을 내놓으라는 듯이 사랑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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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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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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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어 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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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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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핸드폰을 건네는 사랑의 손끝이 떨렸다.

그가 찍어 주는 사진 속 주인공이 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바짝 긴장됐다.

사랑이 쭈뼛거리며 서 있자 도한은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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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나온 거 맞아? 누가 보면 이 절에 갇혀 사는 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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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지금 기분 엄청 좋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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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기분 좋을 때 무표정이야?”

도한의 구박에 사랑은 굳어 있는 얼굴을 풀고 조금씩 웃었다.

이내 사랑이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을 때였다. 촬영 버튼을 누르려던 그의 손이 멈칫했다.

만개한 홍매화보다도 사랑의 얼굴이 더욱 화사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햇빛 아래에 서 있는 것처럼 도한의 가슴이 따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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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었어요?”

그는 사랑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잠깐 봄에 홀려 넋을 놓은 거라 생각하며 뒤늦게 그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사랑이 핸드폰을 돌려받을 때, 마침 근처를 지나가는 커플이 그녀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흔쾌히 몇 장을 찍어 주자 커플은 사랑에게도 도한과 함께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다.

사랑은 도한의 눈치를 슬쩍 보고는 아무런 말도 않고 그들에게 핸드폰을 건넸다.

도한이 그녀를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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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쓸 때 사진도 첨부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데이트니까 둘이 찍은 사진 있으면 나쁘지 않을 텐데.”

사랑이 어설프게 웃으며 그의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조심스러운 게걸음에 웃음이 난 도한은 한 번의 움직임으로 그녀에게 바짝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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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첫날이니까 스킨십은 생략하자.”

그녀의 장단에 맞춰 사랑의 어깨에 팔을 두를까 했지만, 그건 다음 과제 때나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앞으로 써야 할 리포트는 많으니까.

사랑은 스킨십이라는 말에 완전히 얼어붙은 채로 사진을 찍히고 말았다.

두 번째 데이트에서 그가 어떤 스킨십을 할지 상상하느라 눈앞이 새하얘졌다.

이러다 정말 상상 연애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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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점심 먹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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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사랑은 두 손으로 제 뺨을 톡톡 두드리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 * *

많이 지쳤던 사랑은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잠이 들었다.

도한은 뒤쪽 창문에서 바람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살랑거리는 시원함이었지만 사랑은 추운 것처럼 자면서도 두 팔을 쓸어내렸다.

도한은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카디건을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

흘러내리지 않게 어깨에 잘 걸쳐 놓을 때 사랑의 고개가 그의 어깨로 툭 떨어졌다.

은은한 장미 향기가 바람을 타고 스쳤다.

도한은 사랑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사랑과 있으면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늘 날이 서 있는 마음이 이유도 없이 스르르 풀렸다.

저도 모르게 편안해지면서 한없이 자상해지고 싶어진다.

그녀가 웃으면 저 역시 미소를 짓게 됐다.

가끔은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럴 수가 없는 놈인데.

지독한 놈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자신은 그런 놈인데.

도한이 잠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사랑이 잠에서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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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저 때문에 불편하셨을 텐데……. 깨우지 그러셨어요.”

사랑이 깜짝 놀라 고개를 바로 했다.

도한에게 기대 있었다는 것에 한 번, 그의 옷을 덮고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녀가 얼른 카디건을 내려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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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안 불편했어. 그리고 이거 입고 내려. 자고 일어나서 추울 거야.”

그녀의 무릎 위에 카디건을 내려놓은 도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정거장에서 내려야 했다.

사랑은 입으라고 준 옷을 그냥 가지고 내리기도 뭐해서 카디건을 걸쳤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찬 바람이 훅 불어왔다.

아직까진 낮에만 따뜻한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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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는 천천히 써서 보내 줄게. 아직 시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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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은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혼자 걸으면 20분이나 걸리는데 그와 걸을 땐 2분처럼 느껴졌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벌써 집 앞이었다.

마법이 풀린 기분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 그의 여자 친구로 살 수 있는 마법에 걸렸는데, 해가 지자 본래의 저로 돌아온 것 같은.

그녀는 이 황홀한 마법에 매일 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히 풀리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그런데 그의 집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본 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며칠 전 공대에서 본 박혜리라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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