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203화 (203/203)

203화 영원히 기억에 남을 시즌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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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2차전.

이미 1차전을 내준 프렌즈로선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기였다.

특히 마린스의 선발투수인 브릭 웰링턴은 지난해 플레이오프 당시 프렌즈가 1승을 따낸 경기의 선발투수였다.

하지만 1회 초는 완전히 실패였다.

프렌즈가 자랑하는 김혁, 서도하의 좌타 라인과 겨우 데려온 강신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여기까진 괜찮다.

클라스 있는 선수들이었고, 한 경기에 타석은 최소 3번 들어선다.

나중에 제 모습을 보여주면 됐다.

문제는 1회 말에 다넬 제이스가 상대할 마린스의 1, 2, 3번 타자들이었다.

이규영, 김수호, 최치호.

다넬 제이스가 막아내면 된다.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막아내지 못한다면 오늘도 끌려다니는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이 사실을 마린스 타자들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거였다.

“볼!”

‘수호가 뒤에 있으니까 좋네.’

어째 투수가 본인보다 김수호를 더 많이 쳐다보는 것같은 느낌을 받은 이규영이 미소를 지었다.

1번 타자의 역할은 출루.

투수가 알아서 흔들리겠다는데 안 좋아할 1번 타자는 없었다.

“볼!”

연속해서 볼이 2개가 들어오자 박희준이 살짝 앞으로 나가서 외쳤다.

“제이스! 이츠 오케이! 컴 다운! 에? 제발 진정 좀 해!”

그 모습을 보면서 1루에 나가서 어떻게 괴롭힐까 상상하던 이규영은 대놓고 카운트를 잡으려고 들어오는 공에 본능적으로 방망이를 뻗었다.

-따악!

‘2루까지 갈만한데?’

유격수와 중견수, 좌익수 사이에 떨어진 평범한 안타였지만 그걸 친 타자가 이규영이라면 말이 달라졌다.

날카로운 타구음과 함께 타구의 위치를 가늠한 이규영이 방망이를 던지고 재빠르게 1루로 향해 달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2루로 향했다.

공도 급하게 2루로 날아왔지만 이규영의 손이 더 빨랐다.

“세이프!”

순식간에 발 빠른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위치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김수호.

“와아아아아아!”

F1 레이서가 엑셀을 풀로 밟은 것처럼 사직 구장은 순식간에 열광의 분위기로 변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금방 변했다.

“주자, 1루로!”

또다시 1회부터 나온 고의사구.

“그래도 고민하는 척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이규영의 말마따나 프렌즈는 망설임 없이 고의사구를 선택했다.

이미 경기 전부터 김수호는 거르겠다는 생각에 나온 작전.

[어제와 마찬가지로 김수호를 1회부터 내보내는 프렌즈입니다! 어제와 달라진 점이라면 무사 1, 2루 상황의 타석에 최치호가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김수호 뒤 타자가 강주호가 아니라 최치호라는 점도 선택에 영향을 줬다.

어제 두 번의 적시타를 친 강주호 대신 볼넷 하나 출루가 있는 최치호가 덜 부담스러웠다.

최치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무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최건우에게 밀려 반쯤 떠밀려 오게 된 마린스였지만, 최치호는 마린스가 좋았다.

처음에 왔을 땐 센터라인에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어 고생깨나 하긴 했지만, 이주학을 키우는 맛도 났고 김수호와 이규영의 합류 이후 수비하는 재미도 늘었다.

지금 이 상황이 선수라면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상황인 건 맞다.

하지만 최치호는 최건우가 자신을 밀어내고 주전 2루수를 차지했을 때 미련 없이 나이츠를 떠났다.

자존심을 세워 남을 수도 있었다.

궁극적으로 나이츠에 남았다면 2루수를 하다 1루로 밀려났겠지만, 팀의 프렌차이즈였던 자신을 무턱대고 밀어낼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추했다.

자신의 자존심을 살리자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고, 결과적으로 자신마저 망치게 되는 그런 하남자 같은 선택은 딱 질색이다.

지금도 비슷했다.

자존심을 되찾겠다고 큰 스윙을 하는 미련한 짓거리는 관심도 없다.

무사 1, 2루.

자신마저 내보내면 무사 만루에 강주호였다.

그것만은 절대 피할 거라 생각했고, 이미 분석을 마친 다넬 제이스의 투구 패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구위로 찍어누르는 투수.’

어제 사무엘 우즈나, 다넬 제이스나 잠실을 홈으로 쓰면서 인플레이 타구, 특히 뜬공을 많이 만들어내는 투수였다.

그리고 지금 프렌즈 배터리가 원하는 상황 역시 무난한 뜬공일 터.

평소보다 약간 방망이를 짧게 잡고 오른쪽 팔뚝을 몸에 완전히 붙인 채 몸쪽으로 오는 공을 결대로 갖다 댔다.

-딱!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의 힘 대신 공에 실린 힘만으로 공을 쳤다.

그 결과는.

[내야를 넘겼습니다! 라인을 따라 느리게 굴러가는 타구. 이규영, 3루를 밟습니다! 뒤늦게 좌익수가 공을 잡았지만 이규영은 순식간에 홈까지! 최치호! 1타점 적시타! 그리고 상황은 다시 무사 1, 2루입니다!]

강렬한 한 방도 좋지만, 어떨 때는 이런 영리한 타격이 좀 더 임펙트 있는 법이었다.

“최치호! 최치호! 최치호!”

사직 구장이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그리고 타석엔, 오늘 경기가 사직 구장에서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타자가 섰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선택했던 수가, 되려 더 최악이 돼서 돌아왔다.

더 암울한 건 이제 이 상황을 돌파할 마땅한 수가 없었다.

아니, 딱 한 가지 있다.

둥둥-

“강!”

둥둥-

“주!”

둥둥-

“호!”

둥둥-

“홈런!”

오직 북소리와 육성만으로 온몸에 소름 끼치는 응원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등에 업고 평소보다 더 커 보이는 덩치로 마운드 위에 있는 다넬 제이스를 마치 내려다보는 듯 쳐다보는 저 강주호를 상대로 이겨내면 된다.

그 순간 다넬 제이스는 평생 잡아 왔던 포심의 그립을 어떻게 잡는지 잊었다.

아니, 손가락은 이미 포심을 잡았지만 머리는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건 던지면 안 된다.

하지만 다른 공은?

결국 긴장감 속에 투구판에서 다리를 풀면서 잠시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영원히 이 순간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손에서 공이 떠난 순간, 쌀쌀한 날씨에도 흥건히 흘러내리는 땀이 그의 눈을 가려줬다.

-따아아악!

다행이었다.

덕분에 공이 어디까지 날아가는지 보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

1회 이후 고의사구는 없었다.

강주호의 홈런으로 4점으로 벌어진 상황에 주자를 더 쌓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아니면 최치호와 강주호의 활약에 작전을 바꿨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프렌즈가 신경 쓸 만한 일이 한 가지가 아니라는 거다.

“스트라이크 아웃!”

찍어누른다.

오늘 웰링턴의 투구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 말이 딱 맞았다.

고소공포증이 없는 사람도 타석에 서서 웰링턴의 공을 한 번 본다면 곧바로 공포를 호소하며 타석에서 도망칠 정도였다.

떨어질 것 같은 공포와 떨어지는 것을 보며 느끼는 공포.

과연 프렌즈 타자들에겐 둘 중 뭐가 더 무서울까.

4회, 다시 만난 프렌즈의 상위타순을 다시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힘으로 찍어 눌러도, 아니면 작정하고 타자를 속여넘겨도 전부 통한다.

공을 받을 때 이런 느낌이 들었던 적은 몇 없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 경기의 결과는 항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허하준이 그랬고, 이호민이 그랬다.

하지만 야구는 무엇하나 단정할 수 있는 게 없다.

변수가 일어난 건 5회 초였다.

선두타자 페드로 산체스의 타석.

-따악!

날카롭게 맞은 타구가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완전히 꿰뚫을 듯 빠르게 날아갔다.

하지만 공은 외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이주학이 글러브에 걸린 공을 잡고 빠르게 1루를 향해 던졌다.

“침착하게 던져!”

침착하라는 말에도 상황은 너무 급박했다.

결국 송구는 약간 위로 들어갔고, 강주호의 발이 떨어진 틈을 타 다넬 제이스가 먼저 1루를 밟았다.

“세이프!”

좋은 수비였지만, 아쉬움이 남는 수비였다.

“아....”

이주학이 아쉬워하는 모습이 여기서도 보였다.

기록원의 최종 결과는 에러.

그리고 오늘 5번 타자로 나온 오대현이 곧바로 초구를 건드렸다.

이번에도 이주학에게 향한 타구.

마지막 바운드가 불규칙하게 튀었지만 침착하게 잡아낸 이주학이 최치호에게 토스.

“아웃!”

여유롭게 1루로 던지면서.

“아웃!”

병살을 만들어냈다.

이후 남은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이닝이 끝났다.

좋은 수비를 보여줬지만, 더그아웃에 들어온 이주학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왜 울상이야?”

“아, 그냥. 아쉬워서.”

주자가 나가면서 퍼펙트가 깨졌으니 자책할 만도 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잘 했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나보다 먼저 이주학에게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다.

“리, 오늘 수비 진짜 좋은데?”

웰링턴이 시원한 잇몸을 들어내면서 이주학의 어깨를 주물렀다.

어려운 영어는 아니라 알아들은 이주학이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웰링턴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그거 잡았어야 했는데.”

“괜찮아. 덕분에 안타가 아니라 에러가 됐잖아? 내 잘못을 리가 대신 가져간 건데 왜 미안해.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안타가 됐을 거야.”

내가 대신 전해주자 이주학의 표정이 묘해졌다.

“진짜야. 진짜 좋았어.”

나까지 그렇게 말하자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제가 오늘 꼭 안타 쳐서 갚을게요.”

비장한 듯 말한 이주학의 말에 웰링턴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5회 말, 선두타자는 이주학이었다.

다넬 제이스도 1회를 제외하면 한 번의 출루만 허용할 정도로 제 모습을 되찾았다.

웰링턴의 압도적인 투구를 보면 승리까지 4점이면 충분했지만, 점수는 다다익선.

이주학이 출루에 성공한다면 이번 이닝에 득점까지 가능했다.

그리고 이주학은 제가 한 말을 지켰다.

유격수 키를 살짝 넘기는 타구를 쳐서 출루에 성공했다.

“내가 참 잘 키웠어? 그치?”

이규영이 1루에 나간 이주학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더니 타석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주학과 거의 비슷한 코스로 타구를 보냈다.

“와아아아아!”

다시 찾아온 무사 1, 2루의 찬스.

그리고 내 세 번째 타석이었다.

고의사구는 없었다.

무사 만루의 위험성과 내 뒤에 있는 최치호와 강주호가 연신 날카로운 타격을 보여줬으니 프렌즈도 승부를 건 것이었다.

저 둘이 잘해줘서 큰 부담은 없었다.

어차피 내가 못 치면 저 둘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타석에 집중했다.

KBO에 오는 외국인 투수들은 보통 두 갈래로 나뉜다.

제구형과 구위형.

어느 리그나 똑같지만, 저 두 가지 모두를 갖춘 투수가 KBO에 오는 일은 거의 없다.

안타깝게도 그게 현실이었다.

제구와 구위를 모두 갖춘 투수가 오면 말 그대로 KBO를 씹어먹는 성적을 낸다.

아쉽게도 다넬 제이스는 그런 선수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제구를 구위와 홈의 이점으로 극복하는 투수.

공이 날릴 땐 한 없이 날리지만, 공을 존에 쑤셔 넣을 줄 알고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투수.

하지만 내가 포수 마스크를 쓴 뒤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투수는 없다.

다만 각자의 방법으로 그걸 외면하거나 극복한다.

만약 내가 포수 마스크를 끼고 다넬 제이스의 공을 받아봤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직 1회의 악몽을 다 털어내지 못했구나.

구위로 승부 보는 투수가 제구에 집착할 때, 결과는 둘 중 하나다.

아예 빠져버리거나, 아니면.

-따아아아악!

딱 치기 좋게 들어오거나.

이번에도 유격수 방면.

이주학과 이규영의 타구에 몸을 날린 유격수는 움직이지 못했다.

유격수가 담장을 넘는 공을 잡을 순 없으니까.

“와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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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이 현실이 됐다.

상정할 수 있는 모든 가정이 최악으로 흘러가도 지금 이 현실보단 나을 것이다.

그러니까, 프렌즈의 얘기였다.

프렌즈가 자랑한 타선은 한 투수에게 막혔고 어떻게든 극복하고자 했던 김수호는 무슨 방법을 써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스트라이크!”

9회 초 피닉스의 공격.

“스트라이크!”

10대0으로 뒤지는 상황에도 어떻게든 공을 쳐내고자 하는 타자들의 노력은.

“스트라이크 아웃!”

허투루 돌아가고 있었다.

이찬용 감독은 스트레스로 떨려오는 눈꺼풀에도 눈을 감지 않았다.

이 최악의 악몽을 자신이라도 봐야 했다.

하지만 강하게 쥔 주먹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2개.

그리고 8번 타자, 대타 최주열이 타석에 들어섰다.

한 방이 있는 좌타 대타지만 지금 바라는 건 그 한 방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안타 하나.

-따악!

타격음에 잠시 몸을 일으킨 이찬용 감독이 곧 다시 앉았다.

“파울!”

그리고 타격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이제 하나 남았다.

-딱!

마지막 타자의 공은 너무 허무하게도 높이 떴다.

거의 제자리에서 공을 바라보던 김수호가 안정된 포구로 공을 잡아냈다.

허무한 눈으로 마린스 선수들이 뛰쳐나오는 걸 바라봤다.

한국시리즈 2차전, 10대0의 대승.

그리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장신의 외국인 투수와 마지막 공을 잡아낸 포수의 합작품.

노히트노런.

악몽보다 더 한 현실에 결국 이찬용 감독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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