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99화 (199/203)

199화 영원히 기억에 남을 시즌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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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아니 작년보다 더한 이변이 발생했다.

적어도 작년 마린스는 꼴찌에서 시작했지만 미친 승률을 기록하며 정규시즌을 4위로 마쳤고 후반기 기세로 보면 업셋이 일어난 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피닉스는 그리 거센 기세는 아니었다.

비교적 편안하게 플레이오프까지 올라간 마린스와 다르게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 모두 1패만 하면 떨어지는 상황에서 만들어낸 업셋이라 더욱 화제가 됐다.

그리고 스토리가 한층 풍부해졌다.

마린스, 프렌즈, 피닉스 세 팀은 공통점이 많았다.

우선 세 팀 모두 21세기에 어마어마한 암흑기를 거쳤던 팀들이었다.

마린스는 작년에 우승하면서 21세기 무관에서 벗어났지만,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나란히 21세기 무관을 대표한 세 팀이었다.

결정적으로 코어 팬층이 두꺼웠다.

그런 세 팀이 프로 야구 가장 꼭대기에서 만났으니 연일이 화제였다.

사실 올 시즌 마린스의 정규시즌 우승이 확정된 이후 프로야구의 열기가 약간 시들해졌었다.

[어우마 : 어차피 우승은 마린스]

ㄴ 누가 올라오든 어차피 마린스가 우승할 텐데 뭐함?

ㄴ 어떤 의미로든 역대급 시즌 아니냐? 걍 허하준이 9이닝 던지고 김수호가 홈런치면 1승 개꿀.

ㄴ 진짜 마린스 이길 팀이 안 보이긴 한다.

말 그대로 역대급 시즌을 보낸 마린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지는 그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지난 포스트시즌에서 김수호와 허하준이 보여준 모습은 완벽했다.

거기에 이번 한국시리즈 1차전에 허하준 등판이 확실시되면서 1, 4, 7차전에 등판해서 3승을 확정 지은 게 아니냐는 농담도 나왔다.

야구는 해봐야 안다는 말도 마린스의 압도적인 모습에 그 의미를 잃었다.

하지만 피닉스가 기적적인 업셋을 만들어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즉, 플레이오프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한국시리즈 흥행은 거의 확실시됐고, 되려 피닉스가 또다시 업셋을 만들어내는 걸 바라는 다른 팀 팬들도 여럿 있었다.

마치 작년에 마린스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플레이오프 일정이 정해지고, 가장 미소를 지은 팀은 역시 프렌즈였다.

“예상외로 피닉스가 올라오긴 했지만, 전력 소모가 그만큼 심합니다. 1선발인 에릭 니콜라스는 많아야 2회 등판이고 다른 투수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단기전 한 경기도 체력 소모가 엄청난데 살얼음판을 걷는 경기를 무려 세 경기 연속 치르고 왔다.

피닉스 선수들의 체력은 상상 이상으로 소모됐을 것이다.

“투수에 김태민, 타자에 홍민우만 조심하면 됩니다.”

거기에 피닉스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선수들도 이미 파악했다.

이게 바로 상위 라운드에 직행한 특권이었고, 그건 경기장에서 곧바로 드러났다.

1차전과 2차전 모두 프렌즈의 승리.

특히 2차전에선 준플레이오프의 영웅이었던 김태민이 선발로 등판했지만 5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무너졌다.

홍민우 역시 지속된 견제 속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전에서 열린 운명의 3차전.

피닉스는 에릭 니콜라스를, 프렌즈는 조현수를 내세웠다.

[서도하! 황보근을 상대로 역전 2타점 적시타! 피닉스의 수호신마저 무너졌습니다!]

또 한 번의 기적은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피닉스 선수들이 공허한 눈으로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시리즈 3대0.

1승은 할 수 있다고 믿었던 피닉스 선수들에게 받아드리기 힘든 기록이었다.

이내 한둘씩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라커룸으로 돌아갔지만, 끝까지 남아있는 한 선수가 있었다.

“인재야.”

오기택의 부름에도 황인재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오기택도 굳이 더 부르기보단 곁에 가서 앉았다.

황인재가 얼마나 우승을 원했고,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황인재의 마음을 알기에 오기택은 그냥 황인재의 어깨를 보듬어줬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 황인재가 오기택을 불렀다.

“선배님.”

“어?”

먼저 말을 걸 거라고 생각 못 했던 오기택이 약간 놀란 눈으로 황인재를 쳐다봤다.

황인재는 여전히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제가 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아니. 모르지.”

오기택이 생각하기론 그냥 고등학교 때 우승을 밥 먹듯이 했으니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황인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작년 국대에서 김수호랑 내기했습니다. 포스팅까지 누가 더 많이 우승하냐는 내기.”

오기택은 약간 당황했다.

일단 너무 당연하게도 포스팅을 언급하는 것과 우승을 바랐던 이유가 너무 단순해서.

하지만 황인재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김수호는 모르겠지만, 제가 김수호를 처음 봤던 건 중학생 때였습니다. 보자마자 알았습니다. 쟤는 나보다 더 대단한 놈이구나.”

“어?”

황인재의 입에서 누구를 인정하는 말이 나왔다는 것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귀 기울여 황인재의 말을 들었다.

“김수호를 다시 만난 건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약간 들떴습니다. 못 본 사이에 얼마나 더 대단해졌을까, 나보다 더 대단했던 재능이 어떻게 변했을까.”

황인재도 역대 최고의 선수가 될 자질이 보였지만, 김수호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맨 처음 알아본 게 바로 황인재였다.

하지만 김수호는 황인재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근데 웃긴 건, 제가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못 옮겼던 것들은 김수호는 너무 쉽게, 간단히 이뤄냈습니다. 어이없죠?”

그때 황인재가 느낀 절망은 대단했다.

고등학교 전체적인 성적을 보면 황인재가 더 대단했고, 말 그대로 역대 최고였던 것도 맞았다.

하지만 정작 황인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바로 옆에 김수호가 있는데 되려 불쾌함만 느꼈다.

“그래서 피닉스에 왔습니다. 김수호를 가까이서 보려고.”

그리고 황인재가 옛날부터 봤던 것처럼 김수호는 알을 깨고 제 재능을 부화했다.

그게 바로 지금의 김수호였다.

“그래서 전 우승하고 싶었습니다. 김수호보다 내가 더 대단했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게 우승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황인재가 제자리걸음을 걷는 동안 벌써 김수호는 저만치 달아났다.

그걸로 황인재의 말은 끝이었다.

그 말을 들은 오기택의 소감은 간단했다.

‘유치하네.’

하지만 그게 신선했다.

프로에서 저런 이유로 우승을 바라는 선수가 있을까?

심지어 황인재나 김수호나 저 내기를 했던 시점엔 모두 하위권 팀이었다.

즉, 저런 내기를 했다는 거 자체가 꼴찌팀이었던 마린스와 피닉스를 우승권까지 올려놓을 자신이 있었다는 말이었다.

그간 피닉스에 10년 동안 있으면서 암울한 팀 성적에 단 한 번도 우승을 꿈꾼 적 없었던 오기택에겐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재야.”

“...예.”

“포스팅이라고 했지? 그럼 이제 5년 남았네?”

7년 중 4번 우승하면 된다.

아니, 이제 2번이 지났으니 5번 중 4번.

프로 데뷔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가을 야구를 해본 오기택이 할 말은 아니지만.

“할만하네. 해보자.”

만약 올해, 피닉스가 프렌즈를 꺾고 한국시리즈에 갔더라도 마린스를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기적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전력 차이가 너무 심했다.

하지만 내년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마린스의 허하준과 강주호가 떠난다.

그래도 마린스는 강팀이지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경기가 끝나고 황인재뿐만 아니라 피닉스의 다른 선수들도 아쉬움에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했다.

즉, 선수들에게 말로만 우승, 우승하는 것보다 실제로 욕심과 아쉬움이 생겼다는 거다.

그리고 최종 3위라는 성적표는 구단이 투자할 이유가 될 것이다.

“어쨌든 먼저 4번 우승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약간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황인재를 보면서 오기택이 웃었다.

이번 시즌, 피닉스의 야구는 어쩌면 끝나지 않았다.

“근데 선배님 이제 FA이시잖아요.”

“뭐, 단장님이 알아서 잘 챙겨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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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상대가 결정됐다.

우리도 그렇고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것처럼 프렌즈가 한국시리즈에 올라왔다.

딱히 어느 팀이 올라오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프렌즈나 피닉스나 둘 다 만만한 팀은 아니다.

어쩌면 피닉스보다 프렌즈가 더 상대하기 편할 수도 있다.

전력이 어떻든 피닉스가 프렌즈마저 꺾고 올라왔다면 그 기세가 엄청났을 테니까.

아무튼,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하는 건 의미가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어느 팀이 올라왔든 우리의 플레이를 하는 것이었다.

한국시리즈를 대비해 합숙을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다.

합숙의 가장 큰 목표는 정규시즌 때의 경기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그걸 위한 연습경기가 한창이었다.

“이주학! 백업!”

“수비할 때 주자 위치 정확하게 체크 해야지! 무턱대고 홈으로 던지지 마!”

가장 많은 부름을 받는 건 이주학이었다.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오늘 유독 이주학을 중심으로 상황이 만들어졌다.

청팀, 홍팀으로 나눠 시작한 경기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 나는 수비로 출장하지 않았다.

경기 컨셉이 내가 만약 부상을 당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점검해보는 거라 청팀엔 김성준이 마스크를 꼈고 홍팀은 이재익이 포수로 들어갔다.

“수호야! 몸 풀어라.”

“넵.”

경기 후반이 되니까 어느 정도 정보를 얻었는지 강기호가 나한테 마스크를 끼라고 말했다.

합을 맞출 투수는 박우주.

솔직히 박우주가 등판하는 경기는 팽팽한 상황은 아닐 거다.

지난 한국시리즈에서 봤다시피 허하준, 브릭 웰링턴, 요그 하스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제 몫을 다 했다.

김동준, 이용기, 오상엽의 필승조 삼인방도 걱정할 일은 없었다.

거기에 정태석, 박상훈도 쏠쏠한 활약을 해줬고 김호기, 이호민이 보직 상관없이 나올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투수진은 걱정할 것 없이 완벽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박우주가 운이 없다면 정말 한 경기도 못 나오고 한국시리즈가 끝날 수도 있다.

실제로 작년 한국시리즈 무대를 못 밟은 투수도 많았다.

이 사실을 박우주도 알고 있었다.

“컨디션 어때?”

“약간 떨리는데 괜찮아요.”

만약 박우주가 등판한다면 김혁, 서도하로 이어지는 좌타 라인을 상대로 등판할 것이다.

그걸 위해 오늘 박우주의 상대로 나선 타자들도 우리 팀 좌타 라인이었다.

바로 이주학과 이주학으로 이어지는 9-1번 타순.

먼저 이주학이 타석에 들어왔다.

“그렇게 봐도 안 봐준다.”

내가 마스크를 쓰고 앉아있는 게 어색한지 계속 나를 쳐다보길래 한마디 했다.

“볼 수도 있지.”

이주학의 약점은 예전부터 똑같았다.

하이패스트볼에 스윙유도가 쉽다는 것.

우투수 상대로 방망이가 끌려 나오는 건 어느 정도 고치긴 했지만, 좌투수에게는 항상 속수무책이었다.

물론 리그에 150km 이상 던지는 좌투수가 얼마 없긴 했지만, 박우주는 그 얼마에 들어가는 투수였다.

초구는 낮게 하나.

“볼!”

153km가 찍힌 공이 바닥에 거의 닿을 듯이 들어왔다.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박우주의 제구가 일정하지 않은 건 알고 있지만 포심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많이 긴장한 모양이었다.

바깥쪽에 요구한 2구도 완전히 빠져서 들어왔다.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몸을 날렸다.

“어우, 주자도 없는데 그걸 잡냐?”

이주학의 말처럼 딱히 잡을 필요 없는 공이었다.

연습경기에, 주자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다 필요해서 한 거야.”

그래도 굳이 무리해서 잡은 건 박우주한테 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

네가 어떤 상황에서, 공을 어떻게 던지든 간에 내가 다 잡아주겠다고.

그러니까 너는 공 던지는 데만 집중하라고.

“스트라이크!”

그 의도가 먹혔는지 3구는 처음으로 원하는 곳에 들어왔다.

이주학도 박우주가 정신 차렸다는 걸 알아챘는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주학의 선택은.

-딱!

기습번트였다.

절묘한 코스에 내가 잡는 건 무리였고 1루수 채지훈이 내려와서 공을 잡았다.

그 사이 박우주보다 먼저 최치호가 1루로 백업을 들어왔지만, 이주학의 발이 더 빨랐다.

무사 주자 1루, 타석엔 이규영.

이주학도 그렇고 이규영도 그렇고 연달아 발 빠른 주자가 들어오니 부담스럽긴 했다.

근데 주학아.

“아웃!”

아무리 그래도 초구부터 뛰는 건 아니지.

“쯧쯧. 주학이 저놈은 진짜 너랑 같은 팀이라 복 받은 거지.”

자칭 피해자 1인 이규영이 투덜거렸다.

노아웃 상황에서 이주학이 잘 뛰진 않지만, 연습경기니 한 번 뛰어본 것 같았다.

그 뒤로 박우주가 이규영, 이준을 연달아 잡아내면서 이닝을 마쳤다.

감독님과 투수코치님은 박우주의 활약이 반가운지 연신 칭찬을 하셨다.

이주학도 칭찬받았다.

다만 본인은 불만인 듯 입이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왜 그러는데?”

“연습경긴데 너무 진심으로 던진 거 아니냐?”

“나? 우주?”

“둘 다.”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

“네가 이제 그 정도는 해야 하니까 그렇지.”

내 말을 듣고 잠깐 멍하던 이주학이 금세 웃음을 흘렸다.

“그치? 내가 이제 그 정도는 되지? 흐흐흐. 아이참. 그런 건 굳이 말로 안 해도 아는데.”

그 모습을 본 이규영이 몰래 다가와서 너무 띄어준 거 아니냐고 했는데.

“뭐, 반쯤은 사실이니까요.”

이규영의 묘한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눈빛은 뭔데요?”

“아니다. 됐다.”

어째 이규영이 이주학을 바라볼 때 눈빛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착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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