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영원히 기억에 남을 시즌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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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7 : 4 광주 울프즈]
[마린스의 102번째 승리를 이끈 김수호의 62번째 홈런. 마지막까지 최다 홈런 기록을 노린다.]
[시즌 종료를 앞 둔 KBO리그. 5위 경쟁, 마린스 시즌 최다승, 김수호의 최다 홈런까지. 마지막까지 뜨겁다!]
[2033시즌의 마지막 경기이자 한 시대를 풍미한 거포의 마지막 경기. 행복과 슬픔이 공존하는 사직 구장.]
[순위경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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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주호를 처음 본 건 정확히 기억에 나진 않는다.
아마 처음 마린스를 봤던 그 순간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가 기억도 안나는 어릴 때 마린스 야구를 봤을 때도, 초등학교에 입학해 야구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마린스를 봤을 때도.
중, 고등학교 때 강주호가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도 강주호는 항상 마린스에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마린스에는 강주호라는 선수가 항상 뛰고 있었다.
마린스와 강주호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고, 그 누구도 강주호가 없는 마린스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찾아왔다.
"김수호 선수! 사인 한 번만 부탁드려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출근길.
하지만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의 유니폼엔 한결같이 강주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저 유니폼의 사인을 해도 되나라는 생각도 잠시.
"당연하죠. 어디에 해드릴까요?"
강주호가 고민하는 내 모습을 봤다면 아마 잔소리 폭탄이 떨어졌을거라는 생각에 웃으면서 사인을 했다.
라커룸에 들어가자 선수들이 미리 와있었다.
하지만 강주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호 선배님 어디가셨어?"
"아, 오늘 마지막 사인회 있다고 하셔서. 준비하러 가셨어."
내 질문에 이호민이 대답했다.
강주호는 은퇴투어 내내 사인회를 진행했다.
아마 오늘이 그 마지막이었나보다.
출근 전까지 그다지 실감이 안났는데 막상 유니폼들을 보니, 그리고 강주호의 얘기를 들으니 체감이 확 됐다.
항상 라커룸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던 강주호의 모습을 볼 날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수호야."
"어?"
"오늘 경기, 꼭 이겨라."
저렇게 말하는 이호민은 오늘 선발투수가 아니었다.
이호민도 부산 출신이었고 그 말은 곧 2년 전까지만 해도 강주호의 팬이었다는 말과 같았다.
"그치. 꼭 이겨야지."
우리는 은퇴투어가 있는 경기에 전부 이겼다.
지금까지 잘 해놓고 막상 은퇴식날 지면 강주호를 볼 낯이 없다.
모든 선수가 강주호의 등번호와 이름표를 달고 뛰는 오늘,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가볍게 몸을 풀고 라커룸에서 강주호가 오기를 기다렸다.
강주호도 너무 늦지 않게 행사를 마치고 라커룸에 들어왔다.
"여기서 뭐하냐? 경기 안 하게?"
원래라면 이미 더그아웃에 있을 시간.
우리가 전부 라커룸에서 본인을 기다렸다는 걸 보고 괜히 민망한지 말을 돌렸다.
"행님. 퍼뜩퍼뜩 들어오소."
그저께부터 웃음을 되찾은 채지훈이 강주호의 팔을 끌고 들어왔다.
강주호의 쑥쓰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신나는 모양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강주호가 준비를 마쳤고 라커룸을 나섰다.
우리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오늘, 우리 중 가장 먼저 그라운드를 밟은 강주호가 나지막히 말했다.
"날씨 드럽게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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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살과 선선한 바람.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고 이제 정말 가을이 찾아왔다.
그리고 이런 날에 야구하기 가장 좋은 시간, 오후 5시.
역사에 남을 경기를 보기 위해 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시야에 한 선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주호! 강주호! 강주호! 강주호!"
양 팀 합쳐 20명이 넘게 경기를 하는 야구 특성상 한 선수를 주인공이라고 꼽기 어려웠지만, 누가 뭐라해도 오늘 주인공은 단연코 강주호였다.
경기 시작 전, 짧은 행사가 있었다.
부산 시장, 마린스의 사장, KBO총재 등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방문을 해 축하와 감사를 전했다.
이어서 시구가 이어졌다.
[오늘 경기 시구에는 강주호 선수의 어머니이신 김현정님, 시타에는 아버지이신 강정훈님이 수고해주시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별히 강주호 선수의 동생이자 현 마린스 배터리 코치인 강기호 코치가 포수 마스크를 끼고 시구를 받게 됐습니다.]
"와아아아아!"
강주호가 지켜보는 가운데 성공적으로 시구가 끝이났다.
이제 경기 전 행사가 모두 끝났다.
다시 김수호가 포수 마스크를 꼈고, 오늘 선발 투수인 하스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플레이 볼!"
심판의 목소리와 함께 KBO 2033시즌 마지막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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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3시즌을 마무리하는 경기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경기라면 단언코 마린스 대 피닉스의 경기였다..
보통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되면 순위가 정해진 팀이 많아서 평소보다 힘을 빼고 하기 마련이다.
특히 예년의 두 팀이었다면 최하위권에 머물렀을 거고 팬들은 별다른 관심없이 경기가 치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양 팀 다 물러설 곳이 없었다.
피닉스의 현재 순위 5위, 하지만 4위 스타즈와 6위 챌린저스와 각각 한 경기씩 차이가 났다.
승리하면 5위 확정, 만약 스타즈가 진다면 승자승 원칙에 따라 피닉스가 4위가 된다.
반면 피닉스가 지고 챌린저스가 이긴다면 5위 결정전을 치뤄야한다.
패배한다고 무조건 탈락인 건 아니었지만 승리를 해야 그 위를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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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상위팀의 어드벤티지가 가장 큰 4위와 5위인만큼 승리가 절실했다.
반면 마린스는 일찌감치 1위를 확정지었고 102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다른 시즌이었다면 마지막 경기인 만큼 조금 약하게 구성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1회 초, 대전 피닉스의 공격. 그라운드에 아홉 명의 강주호 선수가 들어왔습니다!]
마린스 선수들의 등 뒤에는 강주호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1번부터 9번까지, 심지어 선발 투수까지 강주호였다.
어디까지나 유니폼에 새겨진 이름만 같을 뿐이지만 경기에 임하는 각오는 전부 똑같았다.
'오늘은 무조건 이긴다.'
그리고 그 의지만큼 좋은 수비가 1회 초부터 나왔다.
[쳤습니다! 내야을 빠져나.... 아, 최치호 다이빙! 잡았습니다! 곧바로 1루로! 아웃!]
[높이 뜬 타구, 중견수, 우익수가 모입니다! 오, 중견수 이규영이 안정된 수비를 선보입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직접 처리하는 마린스의 선발 투수 요그 하스입니다!]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온 피닉스 타선을 상대로 삼자범퇴 이닝을 완성했다.
그리고 1회 말 마린스의 공격이 이어졌다.
피닉스의 선발 투수인 김태민이 위력적인 공을 뿌리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피닉스의 선발 투수, 김태민 선수입니다. 이번 시즌 26경기에 나와 7승 11패, 4.4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중인 투수입니다.]
[상무 전역 직후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는데 이번 시즌 눈에 띄게 성적이 좋아졌습니다. 아마 경남고 감독이었던 최근수 감독 부임이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팀의 운명이 걸린 마지막 경기와 고등학교 대선배의 은퇴식에 선발로 나왔습니다.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초구!]
"스트라이크!"
팀의 에이스였던 김태민과 두 번째 옵션이었던 김동준.
절친한 친구 사이인 둘은 공교롭게도 전역 직후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김동준은 팀에 불펜이 필요할 때 등장해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고 김태민은 5선발로서 이닝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며 기대에 못미치는 피칭을 보여줬다.
하지만 김태민은 경남고의 에이스였다.
이호민이 당시 고등학생 투수 중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면, 그 이전에 김태민이 있었다.
그리고 큰 경기가 있을 때 항상 에이스의 역할을 해줬고, 그걸 증명이라도 하 이규영을 움찔하게 만드는 154km의 초구를 꽂아넣었다.
그 초구를 보자 이규영은 직감했다.
'길게 끌고가면 안 된다.'
1번 타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출루에 성공하는 것.
하지만 그 이전에 팀에서 처음으로 투수의 공을 가늠해보고 판단을 하는 역할이 있다.
그리고 국가대표 1번 타자로 이름을 날린 이규영이 경계할 정도로 김태민의 공은 좋았다.
만약 작년의 이규영이었다면 빠른 공에 대처하지 못하고 범타로 물러났을 것이다.
'국대에서 맨날 괴롭히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재밌었습니다.'
-따악!
하지만 이규영은 강주호의 은퇴식에 한층 집중력을 끌어올렸고, 빠른 공에 대처가 더 좋아진 이규영의 방망이가 그대로 김태민의 공을 강타했다.
장타를 직감한 이규영이 순식간에 1루를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공이 채 유격수에게 도달하기 전에 2루에 서서 도착했다.
"와아아아아아!"
시작부터 화끈한 장타에 사직구장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제 박은성의 차례.
2번 타자의 역할은 출루, 그리고 기회를 중심 타선에 연결하는 것.
그 역할을 수행하기에 박은성은 완벽한 타자였다.
'아직도 그때 먹었던 밥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직 박은성이 신인일 때, 강주호가 허하준, 김호기와 함께 한 식당에 데려갔다.
그때 사줬던 밥.
-따악!
그 밥값을 오늘에서야 갚게됐다.
연이은 안타로 순식간에 무사 1, 3루 상황.
그리고 타석엔.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강주호 본인을 제외하고 강주호 유니폼이 가장 잘 어울리는 타자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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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단 직후부터 제 2의 강주호라는 별명을 얻게 된 건 인터뷰에서 한 말 때문이었다.
'제 2의 강주호가 되고 싶다.'
저 말을 한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팬들의 기억에 남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이기도 했고, 약간 홧김에 지른 말이었다.
또 강주호를 존경하고, 팬으로서 좋아했기에 저 말을 했다.
강주호의 팬이었던 나였기에 제 2의 강주호가 되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저 말을 지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럴만도 한게 마린스의 심장, 마린스의 기둥, 영구결번 1순위, 국가대표 4번타자 등 강주호를 수식하는 말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이제 막 입단한 내가 저런 강주호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하지만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그라운드, 아니 사직 구장 내에서 유니폼 뒤에 새겨진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나였다.
어쩌면 강주호보다 더.
"유니폼 잘 어울리죠?"
"어. 잘 어울리네."
강주호한테 재차 확인을 받고 타석에 들어섰다.
강주호의 이름을 등에 달고 타석에 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올스타전에 강주호의 방망이를 들고, 강주호의 폼으로 홈런을 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벤트에 불과했다.
아마 오늘이 내 이름이 아닌 강주호의 이름표를 달고 뛰는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아닐까.
그렇다면 오늘만큼은 팬들이 불러주는 리틀 강주호, 제 2의 강주호라는 별명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오늘을 위해 준비한 모든 것이었고, 첫 타석부터 상황은 완벽했다.
1회 초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하고 얻은 선취점의 기회.
내가 학창시절부터 항상 봐왔던 강주호의 그 모습을 떠올렸다.
올스타전 때처럼 폼을 따라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분석한 강주호의 마음가짐 만큼은 그대로 가져왔다.
투수와의 대결에서 강주호는 항상 강자였다.
투수는 강주호의 덩치와 위압에 밀려 도망가는 투구를 했고, 강주호는 그걸 이용했다.
상황에 맞춰 타격하기 보단, 상황이 자신에게 웃어줄 때 타격하는 걸 선호했다.
"볼!"
급한 건 내가 아니다.
결국 승부를 걸어야하는 사람은 투수였다.
항상 타석에서 여유를 잃지않고 내가 원하는 공, 타이밍, 코스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공이 날아오기 전까지 기다린다.
내가 노리는 건 배터리가 승부구로 사용할 만한 공.
예를 들면 김태민이 불리한 카운트를 극복하기 위해 주로 던지는 슬라이더.
"볼!"
어깨 선으로 들어온 빠른 공에도 반응이 없자 포수가 급해진 게 느껴졌다.
그리고 궁지에 몰린 배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따아아악!
방망이를 던진 뒤 타구를 바라봤고, 이내 담장이 넘어가는 걸 보고 강주호를 바라봤다.
착각이겠지만, 때마침 나를 바라보는 강주호의 눈은 살짝 붉어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