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80화 (180/203)

180화 거포의 중요성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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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에 7대0.

야구가 아무리 끝날 때까지 모른다고 하지만 저 점수를 역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기다 마린스가 8회까지 낸 점수는 없었다.

10대3과 7대0은 느낌이 아예 다르다.

전자는 그래도 타자들의 타격감이 어느 정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1점도 못 냈다는 건 오늘 타자들이 아예 아무것도 못 했다는 뜻이다.

즉 9회에 1점이라도 내서 다음 경기를 기대하게 만들면 다행이었다.

그 기대감을 말해주듯 3루 측 응원석은 군데군데 빈자리가 보였다.

반대로 1루 응원석은 프렌즈의 완승을 보기 위해 빼곡하게 자리했다.

9회 초에 선두타자로 나온 건 김수호.

투수는 이제 막 1군에 올라온 루키였고 타자는 1점을 내기에 가장 적합한 거포였다.

현장에 남은 마린스 팬들은 소리 높여 응원했다.

“마린스 김수호!”

이제 막 응원곡이 시작하려는 찰나, 초구에 방망이가 움직였다.

기대한 건 홈런이었지만, 결과는 느린 땅볼.

“에라이! 초구 좀 치지 마라!”

순식간에 응원하는 목소리가 사그라들고 아웃을 직감해 짐을 챙기는 사람들이 생길 때쯤, 변수가 일어났다.

“세이프!”

유격수의 송구 실책으로 김수호가 1루를 밟았다.

과정이 어찌 됐든 출루에 성공했다.

이어서 강주호가 안타를 치면서 무사 1, 2루.

혹시? 만약? 이라는 생각이 팬들의 머릿속에 생겨날 때쯤 순식간에 2아웃이 됐다.

“마! 1점은 내라!”

역전? 벌써 2아웃인데 7점을 따라잡는 건 기대도 안 한다.

팬들이 원하는 건 별다른 게 아니었다.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깝지 않게 1점이라도 점수를 내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린스 선수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승리보다는 점수, 더 나아가서 상대 마무리 투수까지 끌어내면 오늘 경기는 성공이다.

이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볼!”

하지만 이민석의 볼넷으로 만루.

묘한 분위기가 구장에 감돌 때 이규영이 이주학을 불렀다.

“지금 2사 만루지? 점수 좀 세봐라.”

“넵.”

“자, 우리 캡틴이 여기서 안타 치면 수호가 들어오니까 1점. 대장님은 못 들어오겠지? 다시 2사 만루.”

7대1.

“주학이 네가 안타든 볼넷이든 만들어내면 2점, 또는 3점.”

7대2, 또는 7대3.

“그리고 내가 다시 출루하면 다시 만루.”

2사 만루 7대3.

“마지막으로 은성이가 다시 만루 만들어내면 수호 앞에 만루. 점수는?”

이규영의 말에 손가락을 접던 이주학이 말했다.

“7대4인데요?”

만루에 김수호.

“할만한데?”

오늘 김수호의 성적, 4타수 무안타?

그딴 건 상관없다.

이런 극적인 상황에서 홈런?

그것도 상관없다.

김수호는 그런 상황을 주면 할 수 있고, 지금까지 수없이 해왔다.

계산해보면 아마 이규영의 타석에 김형주가 나올 거다.

하지만 이럴 때 치려고 겨우내 그 노력을 한 거였다.

자신은 문제없었다.

박은성도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선수다.

문제는 이주학인데.

“어때? 할 수 있지?”

-따악!

“와아아아아아!”

타이밍 좋게 최치호가 안타를 만들어냈다.

“주학아, 출루다. 무조건 출루해라.”

“넵.”

그사이 김수호가 홈을 밟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다.

이 점수는 말 그대로 김수호가 만들어낸 점수였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린 덕분에 귀중한 1점을 만들어냈다.

사람 생각은 다 똑같다.

팬들이 포기하지 않는 선수를 좋아하는 것처럼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더그아웃에서 그 어느 순간보다 김수호를 환영했다.

그건 이규영도 마찬가지.

“아이고, 우리 수호님 오셨습니까.”

“갑자기 뭐에요?”

“네 덕분에 수학하느라 머리 좀 썼다.”

“무슨 수학이요?”

그 말에 이주학이 검지 손가락을 보여줬다.

“음. 우리가 이길 단 하나의 경우의 수?”

“그게 뭔데요?”

김수호 역시 이길 걸 바라고 뛴 건 아니다.

하지만 그냥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뛴 것뿐이었다.

그게 이렇게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지만.

“근데 이기려면 네가 홈런 쳐야 돼.”

“홈런이 쉽나요.”

이주학이 대기타석에 나가기 위해 방망이를 챙겼다.

“그치. 어렵지. 근데 이기는 건 원래 어려운 거야.”

몇 번 휘둘러보니 오늘 무거웠던 몸과 별개로 방망이는 가벼웠다.

“못하면 내가 치고.”

“제가 칠게요 그냥.”

“오케이. 네가 친다고 말했다?”

웃으면서 타석에 나가서 이주학의 타석을 지켜봤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지막.

“나이스! 그거지!”

박희준의 환호가 들렸지만, 결과는 볼넷.

이주학이 호들갑을 떨면서 이규영을 바라봤다.

“귀여운 새끼.”

이주학은 제 역할을 다했다.

이제 자신의 차례.

그리고 예상대로 투수가 교체됐다.

김형주.

오상엽이 한때 리그를 지배했던 마무리라면 김형주는 그 바통을 건네받은 투수다.

하지만 걱정 없다.

돌핀스에 있을 때 가장 위협적인 팀이 바로 프렌즈였다.

특히 김형주에 대한 정보는 달달 외우다 못해 툭 찌르면 바로 입에서 쏟아질 정도로 노력했다.

물론 오늘은 그 정보가 딱히 필요 없었다.

“볼!”

방망이 한 번 휘두르지 않고 볼넷.

이제 다 왔다.

‘은성아, 네가 마지막이다.’

사실 박은성이 김형주를 상대로 출루할 확률은 희박했다.

이규영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금 올라와서 그렇다.

아마 영점은 금방 잡을 거다.

하지만 희박한 확률을 여기까지 끌고 왔고 이제 진짜 다 왔다.

뭐, 져도 손해는 없다.

어차피 지는 게 거의 확실한 경기고 이미 김형주까지 끌어낸 이상 마린스는 할 거 다 한 경기였다.

그리고 박은성은 자신의 엉덩이를 대가로 그 희박한 확률을 뚫어냈다.

‘으, 피멍 들겠네.’

보기만 해도 아프다.

“끄아.... 존나 아프네.”

당사자인 박은성도 참다못해 결국 신음을 흘릴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됐다.

7대4, 2사 만루.

그리고 타석에 김수호.

“뛸 수 있겠냐?”

“죽어라 뛰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1루 코치의 물음에 박은성이 뻐근한 엉덩이를 매만졌다.

3루엔 이주학, 2루엔 이규영, 그리고 1루엔 박은성이 섰다.

그중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박은성이었다.

2아웃인 이상 홈런이 아니라 장타만 나와도 동점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박은성이 가장 좋아하는 후배인 김수호는 선배를 깍듯이 섬기는 후배.

몸이 불편한 선배를 미친 듯이 달리게 할 놈은 아니었다.

이제 무대는 마련됐고.

“수호야. 가자.”

박은성이 김수호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주인공이 활약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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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묘하다.

이 상황을 예상했다?

그건 말도 안 된다.

첫 타석에 그냥 타구 속도를 보니 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뛴 거고 그게 그냥 좋은 결과로 연결된 것뿐이었다.

그게 지금 역전까지 바라볼 수 있는 상황에 준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크지도 않을 거다.

그냥 우리 팀이 잘 해줬다.

“김수호 홈런!”

이렇게 응원 소리를 들으면서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건 프렌즈가 마운드에서 회의를 시작한 덕분이다.

설마 싶지만, 고의사구는 나올 것 같지 않았다.

3점 차의 만루는 원 코인이 있지만 2점 차의 만루는 코인이 없다.

특히 내 뒤에 있는 선수는 강주호였다.

아마 나랑 승부를 하지 않을까.

“슬슬 경기 합시다!”

결국 주심이 나서서 외치고 나서야 박희준이 돌아왔다.

나도 선택할 시간이 왔다.

“김수호 홈런!”

안타를 노리고 밀어 치느냐, 그게 아니라면 동점, 또는 역전을 노리고 한 방을 노리느냐.

그냥 오는 걸 보고 치기에는 김형주가 만만한 투수가 아니다.

“김수호 홈런!”

근데 뭐, 선택지가 있나 싶다.

계속 들리는 팬들의 응원이 내게 뭘 바라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는데.

하지만 장타를 경계하는 건 프렌즈 배터리도 마찬가지일 거다.

“볼!”

초구는 낮고 빠른 공.

휘는 걸 보니 싱커 같은데 150km가 넘는다.

두 타자를 연속으로 내보낸 김형주였지만, 여전히 공은 날이 서 있었다.

그래도 초구가 볼이 되자 상황이 한결 편해졌다.

다시 2구.

“스트라이크!”

다시 한번 바깥쪽에 오는 더 빠른 공.

구속을 보니 포심인데.

존 안에 들어오길래 휘둘렀지만, 타이밍이 늦어 방망이에 맞지 않았다.

애초에 맞출 생각으로 휘두른 게 아니다.

어차피 내가 홈런을 노릴 거라는 건 배터리도 잘 알고 있을 거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이용하냐는 건데.

간단한 함정을 팠다.

나는 오늘 4타수 무안타.

심지어 직전 타석 역시 포심을 건드려 땅볼이 됐다.

그리고 방금 한 타이밍 늦은 속도로 포심에 스윙했다.

볼 카운트는 1-1.

만루에서 카운트가 몰리는 건 딱히 원하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3구, 휘둘러도 못 칠 것 같은 공을 던지지 않을까.

예를 들면 방금 시원하게 헛스윙했던.

-따아아악!

바깥쪽 포심 같은 공.

방망이는 스윙이 끝난 순간 내 손을 떠났다.

방망이가 어디로 갔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공의 위치.

“와아아아아아!”

공의 위치는 보지 않아도 들리는 함성이 말해줬다.

공간을 울리는 소리가 온몸,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베이스를 도는 순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홈을 밟는 그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딱 한 가지 생각나는 건.

여기가 사직이었다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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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의 수호신, 오상엽이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9회 초 8득점.

그 누구도 오늘 경기에 9회 말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프렌즈 팬들은 웃으면서 ‘우리는 공격을 8번밖에 못했는데 티켓 할인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티켓값을 할인해줘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려 할인이 아니라 환불을 해줘야 할 기세였다.

반대로 마린스 팬들의 반응은 완벽히 달랐다.

“하, 8회 초 끝났을 때 집에 안 간 내가 승자다.”

스코어가 7대0이다.

역전? 바라지도 않았다.

9회 말? 마찬가지다.

그런 팬들이 굳이 9회까지 본 건 그냥 김수호, 강주호 등 중심타선 한 번 더 보고 끝내자는 생각이었다.

물론 먼저 나간 사람들도 많았다.

차가 막힌다는 이유로, 굳이 팀이 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서, 전철에 앉아가고 싶어서.

그런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니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만약 나가서도 경기를 보고 있었다면 다시 돌아와야 했다.

아쉽게도 그런 사람은 없었다.

미리 나간 사람들이 울거나 말거나 남아있는 팬들은 축제를 즐겼다.

역전? 당하면 어때. 이미 만족했다.

연장? 티켓값은 같은데 이 꿀잼 경기를 더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아쉽게도 마린스 선수들은 이렇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오늘 경기는 9회 말까지입니다.

앵콜은 없습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급하게 나온 김형주와 다르게 분위기가 묘해질 때부터 스스로 몸을 풀었던 오상엽이었다.

완벽한 컨디션, 특유의 묵직한 포심.

방금 김형주가 홈런을 맞아서 역전을 허용했지만, 오상엽의 공에는 두려움 따윈 없었다.

되려 칠 테면 쳐보라는 생각으로 던졌다.

오늘 경기는 잠실.

오상엽은 잠실 통산 피홈런이 3개밖에 되지 않는다.

잠실에서 언제 마지막으로 맞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김수호는 그 기록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야구를 보통 심리 싸움이라고 말한다.

“스트라이크!”

맞는 말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그러므로 쫓기듯 방망이를 내는 타자들은 이미 타석에 들어섰을 때부터 아웃된 거나 다름없었다.

벌써 투 아웃.

이제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타자가 들어왔다.

최주열.

1회 결정적인 쓰리런을 쳤던 거포.

거포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잘 알 것이다.

아니, 오늘 경기를 봤다면 알 수밖에 없었다.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한방.

하지만 대부분 그런 한방은 말 그대로 경기에 한 번뿐이었다.

-따악!

공이 높이 뜨자 프렌즈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공이 내려왔을 때, 마린스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아웃!”

길었던 경기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는 중견수 뜬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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