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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78화 (178/203)

178화 거포의 중요성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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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은 고요했다.

아니, 적막했다.

저번에 만났을 때 이후 벌써 한 달만이다.

야구에 빠져 살 땐 한 달은 훅훅 지나가는데, 막상 한 달 만에 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퍽 하고 막혔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올스타전이랑 경기 준비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물론 그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염치가 없었다.

슬슬 허하율의 집이 가까워진다.

지금까지 한 말은 ‘안녕.’ ‘잘 지냈어.’ 가 끝.

도저히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지만 아무 말 안 할 거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용기 내서 말을 꺼냈다.

“아까는 누구야? 친구?”

“응. 민경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친구야.”

저 말을 끝으로 다시 정적.

다시 말을 걸었다.

“알바는 언제부터 했어?”

“나 계속하고 있었는데?”

“아···.”

숨이 막힌다.

차라리 한국시리즈 7차전 9회 만루가 나을 것 같다.

다행히 이번엔 허하율이 먼저 얘기를 꺼냈다.

“나 뭐 좀 물어봐도 돼?”

“응. 뭔데?”

“그동안 뭐 했어?”

다행이라는 말 취소.

저 말 한마디에 2스트라이크에 몰렸다.

아직 삼진은 아니지만,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계속 이어갈 수도 있고 삼진으로 끝날 수도 있다.

변명할까, 아니면 얘기를 만들어낼까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기.

“그....”

“아, 그냥 다른 질문 할게. 수호야. 넌 하루를 어떻게 보내?”

“하루?”

“응. 야구가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잖아.”

방금 질문보다 훨씬 나았다.

“음. 딱히 별거 안 하는데. 경기 있는 날에는 일어나서 상대 팀 리포트를 쭉 읽어.”

“계속?”

“보통은 그렇지? 그다음에 점심 먹고 운동하고 훈련하고 선발투수랑 분석팀 만나서 오늘 어떻게 할 지 얘기하고 경기에 들어가.”

“바쁘네? 경기 끝나면?”

“이동해야 하면 버스에서 다음 경기 리포트 읽고 아니면 주학이나 호민이랑 같이 방에서 리포트 읽지. 가끔 성적 안 좋으면 스윙 연습도 하고.”

“쉬는 날도 비슷해?”

“음. 그렇지?”

“근데 오늘은 용케 왔네?”

허하준의 동생이 아니랄까 봐 몸쪽에 완벽하게 제구된 포심이 들어왔다.

아직 심판의 판정은 나오지 않았다.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오늘도 사실 훈련 갔다가 코치님이 돌아가라고 해서···.”

“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하율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 말했나?

살짝 눈치 보고 있는데 허하율과 눈이 마주쳤다.

“이럴 땐 보고 싶어서 왔다거나, 아니면 생각나서 왔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할 말이 없었다.

몸쪽 꽉 찬 포심은 스트라이크였다.

“휴. 허하준 같은 남자가 또 있을 줄은 몰랐네. 내 인생.”

“어?”

아무리 그래도 그 야구밖에 모르는 사람이랑 똑같다고?

“그래도 내가 좀 낫지 않나?”

“둘이 완전 똑같거든. 처음 봤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때쯤 집 앞에 도착했다.

“다 왔어.”

“응 알아.”

하지만 허하율은 내리는 대신 내 눈을 바라봤다.

설마 아까 삼진이 아니었나?

“이번 시즌 목표가 뭐야? 우승?”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끄덕였다.

“응. 하준 선배나 강주호 선배님 떠나기 전에 통합 우승해야지.”

“좋아. 내가 그때까지 기다릴게.”

“어?”

작은 새끼손가락이 내 눈앞까지 왔다.

“자. 약속해. 첫 번째, 바빠도 하루에 한 번쯤은, 아니지 이틀에 한 번은 연락하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째. 무리해서 만나자고는 안 할게. 대신 오늘은 저녁까지 먹어. 괜찮지?”

“응. 내가 사줄게.”

“됐어. 나도 돈 벌어. 그리고 마지막.”

마지막 말을 하기 전에 허하율이 잠시 머뭇거렸다.

“마지막, 이번 시즌 우승하면 고백해줘.”

“어, 고백?”

나도 당황하긴 했지만, 허하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변했다.

“약속 안 할 거야?”

어서 손가락을 걸라는 듯 새끼손가락이 까딱거리는 게 귀여웠다.

“할게. 약속.”

손가락을 걸자 허하율이 부끄러웠는지 순식간에 손을 뺐다.

듣는 나도 약간 오그라들었는데 본인 입으로 말한 허하율은 얼마나 부끄러울까.

그래도 차에서 내리진 않았다.

“점심 안 먹었지? 뭐 먹을까?”

“저번에 거기 맛있던데 거기로 가자.”

허하율이 말한 곳은 김호기가 추천해줬던 식당이었다.

거기 꽤 비싼데.

과연 자기도 돈을 내겠다는 허하율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며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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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훈련 안 왔더라?”

“안 간 게 아니라 못 들어간 거다. 코치님한테 쫓겨났어.”

“왜?”

“이번 주에 훈련을 매일 나와서 금지래.”

“왜 너만? 나도 맨날 나왔는데?”

이주학이 억울한 목소리를 냈다.

“불만이면 내가 수비 코치님한테 말씀드려볼까?”

“어허. 거기까지. 선은 지켜야지. 그래서 어제 뭐 했는데?”

“어제? 친구 만났지.”

“응. 개소리하지 말고. 너 우리 말고 친구 없잖아.”

갑자기 훅 들어온 팩트에 가슴이 아팠다.

“솔직히 말해봐. 뭐 했는데.”

점심 먹고 허하율이 가격을 듣고 살짝 놀라는 걸 보고, 카페에서 음료를 사서 드라이브하다가 영화 보고 저녁 먹고 데려다줬다.

이걸 요약하면?

“데이트했어.”

“데이트?”

그 말을 들은 이주학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개소리.”

“진짜로.”

“진짜 개소리.”

“왜 못 믿는데?”

“내가 너 평소에 어떻게 사는지 아는데? 네가 여자 만날 시간이 어딨어.”

“몰라. 난 말했다.”

이주학은 끈질기게 계속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러다 이호민이 오자 이호민한테 달라붙었다.

“호민아, 쟤 어제 데이트했대. 믿어지냐?”

“진짜? 수호야, 너 여자친구 생겼어?”

“음. 아직 여자친구는 아니고.”

“그럼 썸?”

“뭐야? 이호민 너 저 말을 믿는다고?”

“그럼 믿지 안 믿냐?”

생각과는 다른 이호민의 반응에 이주학이 얼타고 있을 때 이호민이 주변을 살피더니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너 어디서 데이트하냐? 사람들이 다 알아보지 않아?”

“어젠 차에 주로 있었는데?”

“아, 그래? 나도 면허 따야 하나?”

“타임.”

이주학이 이호민과 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뭐야 이 분위기? 설마 김수호 진짜야? 이호민 넌 뭐고.”

“뭐긴 뭐야. 솔로는 모르는 그런 게 있다. 수호야. 팁 좀 줘봐.”

“저번에 호기 선배가 알려준 식당 있거든? 거기 가볼래?”

“아, 진짜? 어떤데? 거기 괜찮아?”

얼어붙은 이주학을 내버려 두고 이호민이랑 같이 훈련장으로 향했다.

뒤에서 괴성이 들리긴 했는데 무시했다.

“쟨 생긴 건 멀쩡한데 왜 저러냐.”

“몰라 나도.”

“아무튼 고맙다. 이따 보자.”

이호민과 같이 훈련장에 도착하니 오늘 선발투수인 웰링턴이 있었다.

허하준은 올스타전에 선발로 뛴 탓에 로테이션이 밀렸다.

던지는 데 무리는 없지만, 허하준을 푹 쉬게 해주겠다는 감독님의 생각이었다.

“브로. 올스타전 멋지던데?”

“고마워요. 웰은 잘 쉬고 왔어요?”

“완벽하지. 한번 확인해볼래?”

웰링턴이 웃으면서 훈련장 안쪽을 가리켰다.

어차피 경기 시작 전에 공을 한 번 받아보려고 했는데 잘 됐다.

“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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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오랜만에 감독님이 선수단 전원을 불렀다.

“다들 얼굴색이 좋군. 푹 쉬었나?”

“예!”

“그래. 쉬는 동안 소식 들었겠지? 프렌즈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강신이의 트레이드.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놀라지 않은 선수가 있었을까?

나도 집에 있다가 기사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프렌즈는 강팀이다. 10년 동안 매번 가을야구를 하면서 경험도 많이 쌓았고, 이번에 승부수를 던지는 걸 보면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올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이렇게 보면 우승은 역시 쉽지 않다.

사실 올스타전 전까지만 해도 선수들 사이에서 이미 우승을 확정지은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딱히 부상자도 없었고 기세도 좋았다.

겉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여유가 있었고 그만한 자신감도 있었다.

“나는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프렌즈, 강팀이지.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고작 선수 한 명의 영입으로 무너질 만큼 엉성하게 쌓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맞습니다!”

“후반기에 프렌즈가 우릴 잡아먹을 듯이 달려들 거다. 하지만 우리는 프렌즈보다 더 강팀이다. 달려들면 겁먹지 말고 그대로 우리가 잡아먹으면 된다. 먹잇감이 달려든다고 무섭다고 하는 겁쟁이는 없을 거라고 믿는다.”

“말년에 폭식하게 생겼네. 어후.”

마무리는 강주호의 농담이었다.

프렌즈와 만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다음 주 주말에 있을 원정 3연전.

그 시간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대구 에이스와의 3연전을 위닝시리즈로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경기를 보고 있었다.

[쳤습니다! 우중간에 떨어지는 안타! 강신이가 이 길었던 경기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프렌즈가 이겼냐?”

경기가 끝나자 핸드폰을 끄고 눈을 감았는데 누가 머리를 툭툭 치더니 목소리가 들렸다.

슬쩍 올려다보니 눈만 빼꼼 내민 이규영이 보였다.

“네. 강신이 선배가 끝내기 쳤어요.”

“잘하긴 하네.”

“근데 왜 그렇게 조용하게 말해요?”

“네가 크게 말하는 거야. 다들 자는 거 안보이냐?”

그 말에 살짝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피니 전부 곯아떨어져 있었다.

이어폰 끼고 있어서 몰랐네.

다들 그럴 만했다.

대구의 여름, 그것도 가장 더운 시기에 치열한 3연전을 치렀다.

괜찮아 보여도 한 경기 한 경기가 정말 힘들었다.

나야 그나마 오늘 경기는 쉬어서 괜찮았는데 다른 선수들은 온통 땀 범벅이었다.

“넌 안 자냐?”

“경기 끝났으니까 저도 자려고요.”

“그래. 푹 자라.”

이규영이 고개를 내렸고, 나도 마지막 하나만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후반기가 시작된 지 벌써 9경기째.

우리는 우천으로 취소된 두 경기를 제외하면 5승 2패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프렌즈와 우리의 격차는 조금이지만 좁혀져 있었다.

후반기 7경기 7연승.

늦은 새벽, 무서운 기세의 프렌즈가 기다리고 있는 잠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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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트레이드 기사가 나왔을 때 프렌즈 팬들의 반응은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단장 미친 거 아님? 시발 황정현이랑 마승수를 준다고?]

- 거기에 모자라서 3라 지명권? 그래 놓고 데려온 게 노땅 두 명? 한 명은 시즌 끝나고 FA인데?

ㄴ 그니까. 진짜 우리 ㅈ댐 ㅋㅋㅋㅋ 올 시즌 우승 못하면 팀 터진다.

ㄴ 그래도 할만하지 않았냐? 어차피 유망주는 유망주임. 강신이 정도면 도움 많이 되는데? 최주열도 대타로 쏠쏠할 듯?

ㄴ 암만 그래도 저 세 명주고 데려올 정도냐? 그것도 반년을? 시발 이건 아니지.

ㄴ 메쟈에서 이런 거 자주 하잖아. 마린스도 우승했는데 우리도 우승해야지.

ㄴ ㅋㅋㅋ 그건 메쟈고. 크보에서 이런 거 했다가 피 보는 거 모름?

ㄴ 진짜 올해 우승 못하면 단장이랑 감독 손잡고 같이 나가라.

ㄴ 돌) 제발 우리도 ㅠㅠㅠㅠㅠ

그리고 후반기가 시작되고 정확히 10일이 지났을 때, 여론은 완벽하게 기울었다.

[갓신이 끝내기 ㅅㅅㅅㅅㅅㅅㅅㅅㅅ]

-갓호준이 데려온 갓신이 끝내기 ㅅㅅㅅㅅ 7연승 ㅅㅅㅅㅅㅅ

ㄴ 존나 잘하넼ㅋㅋㅋㅋ 아니 걍 미쳤는데?

ㄴ 이맛현! 이맛현! 이맛현! 이맛현!

ㄴ 현질이 아니라 트레이드 아니냐?

ㄴ 이맛트! 이맛트! 이맛트! 이맛트!

ㄴ 피드백 존나 빠르넼ㅋㅋㅋㅋ

ㄴ 뭔가 어감이 이상한데?

ㄴ 캬. 진짜 강신이 조온나 잘한다. 아니, 진짜 너무 잘하는 거 아니냐?

ㄴ ㅋㅋㅋㅋ 위에 강신이랑 단장 찬양하는 놈들 다 지난주에 욕하던 놈들임.

ㄴ 죄송합니다. 제가 갓호준님의 뜻을 몰라뵙고 실언을 저질렀습니다 ㅠㅠㅠㅠㅠ

강신이는 자신을 둘러싼 갖갖은 물음에 말 대신 실력으로 증명했다.

7연승 기간 동안 4할이 넘는 타율, 3개의 홈런과 세 번의 결승타.

강신이만 성적이 오른 게 아니었다.

강신이 앞뒤에 있는 타자들도 덩달아 타격이 지표가 상승세를 그렸다.

투수는 원래 잘했고 타자들이 잘 친다.

어쩌면 프렌즈의 7연승은 반쯤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증명이 남았다.

[이번 마린스 3연전이 진짜 중요한 듯]

-7연승도 잘한 거지. 근데 결국 마린스 못 이기면 말짱 꽝임. 특히 일요일 경기에 허하준 나올 텐데 허하준 상대로 3득점만 해도 이번 트레이드는 성공이라고 봄.

ㄴ 미리 보는 한국시리즈 드가자~

ㄴ 캬. 존나 재밌겠다.

ㄴ 잠실 이미 금요일 경기도 매진됨 ㅋㅋㅋㅋ 화력 미쳤고.

ㄴ 난 큰 기대 없고 위닝까진 기대해볼 만하다고 봄. 김호기, 이호민은 털만하지 않냐?

ㄴ ㅇㅈ. 허하준 상대로 걍 우리 선발도 잘해서 불펜 싸움 해야 됨. 쟤네 필승조는 좋은데 다른 투수들은 별로야.

리그에서 압도적인 전력의 1위 마린스와 후반기 시작부터 화제의 주인공이 된 프렌즈의 대결.

두 팀의 팬들은 물론 야구팬이라면 흥미를 안 가질 수 없는 매치였다.

두 팀 간의 시즌 전적은 마린스가 7승 2패로 압도적인 상황.

2위 자리를 꾸준히 지킨 프렌즈가 마린스와 격차가 생각보다 크게 나는 건 전부 상대 전적 때문이다.

만약 이번에 마린스가 스윕이라도 한다면 우승은 포기해야 했다.

반면 마린스를 스윕한다면 격차는 순식간에 5경기로 줄어든다.

강팀 간의 대결이라 스윕을 예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뭐가 됐든 7월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충분한 3연전이었다.

팬들은 잠실 구장을 가득 채우면서 그 기대감을 표출했다.

그리고 7월 28일 금요일 18시 30분.

“플레이 볼!”

경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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