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뭐라 불러야 할까요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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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 논쟁 이후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호올스와의 3연전 스윕, 이후 울프즈와의 주말 3연전에서 한 경기 우천 취소, 두 경기 승리를 따내면서 5연승으로 마지막 주를 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목표로 삼았던 프렌즈와의 10경기 차이를 기록, 마린스는 기분 좋게 휴식기에 들어갔다.
이규영이 방아쇠를 당긴 호칭 논쟁은 이후에도 여러 선수의 노력이 있었지만, 상황의 전말을 들은 김수호가 ‘에이 설마. 애도 아니고.’라는 말을 했다는 소문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긴 마린스 선수들은 하나둘씩 사직 구장으로 모였다.
올스타로 선정된 선수는 총 50명.
그중 12명, 심지어 전원 투표로 당당히 선정된 선수들이었다.
거기에 이번 올스타전이 열리는 구장은 사직 구장이다.
사직 구장을 찾은 팬 중 상당수가 마린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올스타전 본 게임이 열리는 토요일도 아닌 금요일, 사직 구장은 이미 마린스 팬들로 가득 찼다.
다른 팬들은 금요일에 부산을 오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반면 마린스 팬들은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마린스 팬들이 금요일에 사직 구장을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금요일에 열리는 홈런 더비, 특히 홈런 더비에 참가하는 마린스 선수들을 보기 위해 온 것이었다.
퓨쳐스 올스타전이 끝나자 시상식이 진행됐고 이후 여러 명의 선수가 등장했다.
[2033 KBO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홈런 더비에 참가하는 선수는 총 8명.
[마린스 강주호와 김수호, 피닉스의 황인재, 챌린저스 김민주, 돌핀스 김효준, 호올스 강신이, 울프즈 조지 애서튼, 마지막으로 스타즈의 존 윌슨입니다.]
[지난 시즌엔 황인재 선수가 10번의 기회에서 8홈런을 치며 우승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선수들이 보입니다. 특히 김수호는 이번이 홈런 더비 첫 참가이자 우승 후보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역시 김수호 선수가 가장 기대되죠?]
카메라가 캐스터의 멘트가 나오자 김수호를 비췄다.
김수호는 오랜만에 만나는 국가대표 선수들과 웃으면서 대화하는 중이었다.
[그렇습니다. 이번이 첫 참가인데 또 황인재 선수와 스토리가 있잖아요? 과연 두 선수가 우승을 할 수 있을지, 그게 아니라면 다른 선수가 우승할지 기대가 됩니다.]
굳이 캐스터가 두 선수를 꼽는 건 간단했다.
내일 있을 결승에 오를 수 있는 선수는 단 두 명.
김수호와 황인재라는 두 젊은 선수는 스토리부터 완벽했다.
이미 고등학교 1학년부터 완성형 선수, 역대급 재능이라고 소문이 났던 황인재.
그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던 김수호.
하지만 그 김수호는 프로에 와서 마린스와 함께 기적 같은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반면 황인재는 개인 성적은 좋았지만, 팀 성적은 아쉬움이 따랐다.
거기에 이번 시즌에서도 나란히 홈런 개수 1, 2위에 이름을 올린 두 사람이다.
[김수호 선수는 현재까지 32개의 홈런으로 1위, 황인재 선수는 29개의 홈런으로 2위입니다.]
스토리는 완벽했고 이제 무대만 준비하면 됐다.
[이제 홈런 더비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 타자는 챌린저스의 김민주입니다!]
홈런 더비는 타자에게 7개의 아웃카운트가 주어진다.
홈런을 치면 아웃카운트 제외, 스윙을 했는데 넘어가지 않으면 아웃카운트가 올라간다.
김민주가 가벼운 마음으로 타석에 섰다.
그리고 결과는.
[한 개입니다! 김민주가 홈런 한 개를 기록합니다.]
“사직 담장 왜 저러냐.”
김민주가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툴툴거렸다.
“한 개가 뭐냐. 쪽팔리게.”
“아니, 홈런 더비 할 때만이라도 저거 좀 치워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려 3번의 타구가 펜스 위 철창을 때렸다.
사직 구장이 큰 건 아니지만 펜스 높이가 무려 6m로 상당히 높다.
어지간한 타구는 전부 철창에 걸려 떨어졌고, 김민주는 첫 번째 피해자가 됐다.
이어서 김효준, 강신이, 조지 애서튼, 존 윌슨 등이 차례로 나섰지만, 최고 기록은 김효준의 4개였다.
이제 강주호의 차례가 됐다.
“쯧. 잘 봐라.”
강주호의 파트너는 감독 추천으로 마지막 올스타전에 참가한 양준이 하기로 했다.
작년에도 합을 맞춰본 만큼 40살 친구의 호흡은 좋았다.
-따아악!
[넘어갑니다! 이걸로 다섯 개째! 남은 아웃카운트는 2개입니다!]
1위를 탈환한 것에 이어 2개의 홈런을 더 기록하면서 총 7개로 당당하게 돌아왔다.
“젊은 놈들이 말이야, 어?”
자신보다 못 친 선수들을 향해 씨익 웃어준 강주호가 남은 두 명을 바라봤다.
“너넨 나보다 많이 쳐야지?”
이제 남은 타자는 김수호와 황인재.
그 중 황인재가 먼저 타석에 들어섰다.
파트너는 오기택.
-따아아악!
[넘어갑니다! 첫 번째 스윙부터 큰 타구!]
-따아악!
[넘어갔습니다! 황인재 벌써 두 개째!]
-따아악!
[갑니다! 세 번째 홈런! 이야, 황인재 선수 힘이 장난 아닙니다.]
“크. 힘 죽이네.”
강주호도 김수호 옆에서 구경하고 있다 중얼거렸다.
황인재는 거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타자다.
방금 공도 빗맞았는데 힘으로 넘겼다.
“이길 수 있겠냐?”
“그냥 하는 거죠.”
강주호가 은근슬쩍 김수호를 자극하기 위해 말했다.
하지만 김수호는 그냥 웃을 뿐이었다.
김수호를 바로 옆에서 봐온 강주호였지만, 둘 중 누가 이길지 고르라고 묻는다면 꽤 긴 고민 끝에 김수호를 선택했을 거다.
그만큼 오늘 황인재의 스윙은 터프했다.
-따아악!
아직 4개의 아웃카운트가 남았는데 벌써 강주호의 기록을 넘겼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까 피쳐 바꾸면 어떠냐? 이규영 쟨 믿음이 안 가는데. 내가 양준이한테 부탁해볼까?”
“진짜 괜찮아요.”
그 사이 황인재의 홈런 개수가 어느새 10개를 넘겼다.
이미 강주호를 넘긴 순간부터 결승 진출이 확정된 상황.
오기택이 힘을 아끼자는 사인을 냈고 황인재의 예선 기록은 12개에서 끝을 맺었다.
[대단합니다! 황인재 선수, 12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결승 진출을 확정 짓습니다!]
“준비됐냐?”
“예. 가죠.”
언제나 투수들과 같이 그라운드로 나섰던 김수호가 처음으로 투수가 아닌 타자, 이규영과 그라운드로 향했다.
“연습했던 대로 한다?”
“특타할 때처럼만 해주세요.”
“형만 믿어라.”
김수호의 목표는 간단했다.
어차피 예선이었고, 강주호의 7개만 넘기는 게 목표였다.
-따아악!
[쭉 뻗습니다! 그대로 넘어갑니다. 김수호 역시 첫 번째 공부터 홈런을 만들어 냅니다.]
-따아악!
[아, 넘어갔습니다! 두 번째 홈런!]
-따아악!
[이번에도 넘어갑니다!]
-따아악!
[아, 또 가나요? 김수호, 네 번째 홈런!]
-따아악!
[김수호! 또 넘깁니다! 대단한 파워입니다!]
-따아악!
[무려 여섯 번째!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 없이 여섯 번째 홈런입니다!]
-따아악!
[김수호가 벌써 강주호를 따라잡았습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무려 7개!]
-따아악!
[아, 대단합니다! 김수호, 아웃카운트 없이 여덟 번째 홈런을 기록하면서 결승에 진출합니다! 이 정도면 결승에서 몇 개를 칠지 벌써 기대되는데요?]
사직 구장이 경악으로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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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아악!
타구가 쭉 뻗는 듯하더니 마지막 철창을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담장 앞에 떨어졌다.
힘이 빠지긴 했나 보다.
“미친놈아. 이거 혹사야.”
이규영이 엄살을 부리면서 다가왔다.
“마지막은 뭐냐. 일부러 안 넘긴 거지?”
“일부러가 어딨어요. 그냥 안 넘어간 거예요.”
하지만 이규영은 썩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로써 홈런 더비 예선이 끝났다.
결과는 당연히 나와 황인재의 결승 진출.
황인재는 12개로 2등.
나는.
“15개면 진짜 잘한 거다.”
이규영의 말마따나 15개를 치면서 1등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선수들에게 다가가니 이상한 사람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네가 그렇게 치면 우린 뭐가 되냐.”
“아냐. 차라리 저게 낫지. 애매하게 5개보단 저렇게 압도적인 게 낫다.”
김민주(1개)랑 김효준(4개)이 투덜거리면서 반겨줬다.
“이러다 내일 3개, 4개 치면 안 된다?”
일명 북산 엔딩을 걱정하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다들 들떠있는 눈치였다.
역시 올스타전다웠다.
딱히 본인들이 못 쳤다고 화내는 사람 없이 즐기는 분위기로 오늘 일정이 끝났다.
중간에 황인재와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대로 퇴근하고 만날 사람이 있어 사직 구장 인적 없는 곳으로 향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김수호 선수, 여깁니다.”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주차돼 있던 차의 창문이 내려가더니 단장님의 얼굴이 나왔다.
차에서 내린 오민찬이 트렁크로 가더니 그대로 짐을 꺼냈다.
“집에서 확인해보세요. 물건 죽입니다.”
“단장님.”
“예?”
“근데 굳이 여기서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뭐예요?”
그러자 오민찬이 민망한 듯 웃었다.
“그냥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오늘 차 안 가져왔죠? 타세요. 짐도 많을 텐데 집까지 태워다 줄게요.”
“감사합니다.”
차가 천천히 출발하고 오민찬이 가장 먼저 꺼낸 얘기는 역시 오늘 있었던 일이었다.
“크. 오늘 홈런 더비 장난 아니던데요? 내일 자신 있어요?”
“자신은 있는데 아까 인재 표정 보니까 내일은 좀 힘들어 보이던데요?”
“황인재 선수요? 하긴, 12개도 많이 친 거긴 하죠. 그래도 전 김수호 선수만 믿고 있습니다.”
저 말은 딱히 부담스럽진 않았다.
어차피 이벤트일 뿐이다.
오히려 부담만 따지자면 이후의 말이 더 심했다.
“그리고 내일 첫 타석,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더 궁금하네요. 참고로 저만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한텐 전부 비밀로 했거든요.”
강주호의 지나가는 말에 시작된 게 이렇게 커질지 몰랐다.
“잘 되면 좋겠네요.”
그렇게 차가 집에 도착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재밌었어요. 오늘 고생하셨고, 내일 봅시다.”
그렇게 짐을 챙겨 내리려는데 오민찬이 한마디 덧붙였다.
“한 가지 말씀드리면 내일은 김수호 선수의 날이 될 겁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그렇게 오민찬이 마지막 부담을 안겨주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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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을 기다려왔다.
오민찬 휘하 마린스 직원들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올스타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쨍쨍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 날씨였지만, 비가 오는 것보단 이게 훨씬 났다.
올스타전답게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장 큰 건 역시 경기 전에 열리는 팬 사인회였다.
인원이 가장 많이 몰리고 날씨가 날씨인 만큼 사고가 날 수도 있는 행사였다.
팬 사인회 이후에는 귀빈들을 모셔야 했고, 특히 오늘 사직 구장을 방문한 사람 중 가장 큰 손님은 역시 마린스 구단주 임상훈.
사장과 오민찬이 직접 나서서 임상훈을 모셨다.
“오 단장은 바쁜 사람이 일 보지 그래.”
“괜찮습니다. 사장님이 새로 뽑은 운영팀장이 아주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올스타전이 시작됐다.
선수들이 한 명 한 명씩 호명을 받고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들어온다.
“드림 올스타, 부산 마린스입니다.”
오민찬은 그 외에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팀 전체가 올스타였고, 여긴 마린스의 홈 사직 구장이다.
팬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마린스 선수들이 차례로 그라운드에 들어섰다.
가장 많은 환호를 받은 건 역시 강주호였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 화려하게 불태우고 있고 또 올스타전까지 왔다.
“주호 섭섭하지 않게 준비해.”
“예. 걱정하지 마시죠.”
강주호는 스무 살 때부터 임상훈이 직접 나서서 대우해주라고 할 만큼 애정을 쏟았던 선수다.
“그래도 말년에 우승하니까 저렇게 웃는 거지.”
“예. 맞습니다.”
“코치는?”
“당장은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 언제든지 생각 있으면 바로 말하라고 해. 비용 생각하지 말고.”
강주호가 들어서고 곧 허하준이 들어섰다.
허하준의 포스팅은 이미 구단에서 수락한 상황.
이미 미국에 진출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마린스를 지탱했던 두 선수가 떠난다.
두 선수는 팀의 상징이었고, 어떨 땐 팀보다 더 위대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런 두 선수가 떠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팬들은 걱정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축하, 기쁨, 아쉬움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 이유는 꽤 간단했다.
“김수호! 김수호!”
마린스의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할 수 있었던 건 강주호 덕분이었고.
마린스의 현재를 보고 버틸 수 있었던 건 허하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마린스의 찬란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건 김수호 덕분이었다.
김수호가 있었기에 팬들은 진심 어린 마음으로 두 사람과의 이별을 기뻐하고, 축하하고, 추억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마린스 선수단이 전부 들어오고 팬들은 다시 한번 박수와 환호로 선수단을 환영했다.
그건 세 사람도 마찬가지.
이어서 나눔 선수들도 차례로 들어왔다.
오늘 말 공격은 당연히 마린스 선수들이 있는 드림 올스타의 것이었다.
마린스 선수들은 항상 그래왔듯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임상훈의 눈에 한 명의 선수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오늘 있어선 안 될 선수가, 아니 그런 선수처럼 보이는 한 명의 선수가 보였다.
“네. 맞습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손목까지 내려오는 특유의 하얀 내의.
검은색 유니폼과 잘 어울리는 검고 흰 프로텍터.
그리고 붉은 기가 감도는 포수 마스크까지.
이 장비들은 마린스 팬이라면 누구나 보자마자 알아챌 한 선수의 상징과도 같았다.
많은 마린스 팬이 그리워하지만, 지난 5년 전부터 볼 수 없었던 선수.
바로.
“강기호 선수입니다.”
강기호의 모습을 한 김수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