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가장 빛나는 별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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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뭐하냐? 아니, 애초에 집에 어떻게 들어왔냐? 미친놈들아. 너네 집 가서 자.”
집에 돌아와 씻고 방에 들어왔는데 이주학과 이호민이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어머님이 열어주셨지.”
어쩐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엄마가 묘한 표정을 보이시더라니.
아무튼 저 두 명은 대화를 하면서도 내 책상을 손가락으로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이내 어디선가 정각을 알리는 효과음이 들렸다.
“김수호. 오늘이 무슨 날인 줄 아냐?”
“경기 없는 날?”
내 말에 두 사람의 희비가 엇갈렸다.
“거봐. 내가 말했지? 쟤가 넌 줄 아냐? 모를 줄 알았어. 이주학, 다음에 네가 밥 사라.”
“아니, 오늘을 어떻게 몰라?”
“오늘 뭐가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뭐가 없다.
발끈한 이주학이 핸드폰을 들고 내 쪽으로 내밀었다.
“6월 27일. 어제 드디어 올스타 투표가 끝났잖아. 발표는 오늘이고.”
미친놈들.
“그거 때문에 이 새벽에 우리 집에 왔다고?”
“어. 당연하지. 허하준 선배와 너, 둘 중 누가 투표 1위가 될지 정해지는 데 당연히 같이 봐야지.”
“어머님은 우리 오시니까 좋아하시던데? 자고 가라 하시는데 그래도 되냐?”
“맘대로. 아빠는?”
“딜.”
이주학이 그렇게 말하더니 손으로 무언가 그리는 시늉을 했다.
대충 해석하자면 사인을 대가로 허락받았다는 뜻이다.
내가 종종 선수들 사인을 전해드리긴 했지만 직접 받는 건 의미가 다를 테니까.
휴일에 푹 쉬려고 했더니 오히려 머리 아픈 일만 늘었다.
일단 저 둘이 순순히 나갈 것 같진 않아서 침대로 가서 앉았다.
그나저나 시간 참 빠르다.
벌써 일주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날도 더워지고 포수 마스크를 끼고 쪼그려 앉아있다 보면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다.
슬슬 체력적으로 부담도 커질 즈음에 올스타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떤데?”
“몰라. 저번 주부터 확인 안 했어. 맛있는 건 아껴먹어야지.”
“주학아. 너도?”
“아니? 난 맨날 봤는데? 캡쳐도 맨날 떠놨어.”
당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 뭐,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니까.
슬슬 시작하려는지 이호민이 주머니에서 꾸깃하게 접은 종이를 꺼냈고 이주학은 내 방에 있던 방망이 뒤쪽을 들어 이호민쪽으로 대줬다.
저건 언제 준비했대.
“자, 결과 발표에 앞서 허하준 선배와 김수호간의 투표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잠시 브리핑이 있겠습니다.”
“준비 많이 했네.”
순수한 감탄이었다.
“자, 먼저 노히트노런이 있었던 다음날인 6월 12일 월요일. KBO의 첫 번째 중간 발표가 있었습니다! 김수호는 517,291표! 허하준 선배는 519,011표! 황인재 515,192표로 허하준 선배 1등, 김수호 2등, 황인재 3등!”
“확실히 노히트노런의 영향이 크군요. 아, 번외로 저 이주학은 당당히 37만 표를 받으며 드림 올스타 유격수 부분 1등에 올랐습니다.”
판을 깔아주니까 아예 각 잡고 둘이 놀고 난리 났다.
웃으면서 다음 발표를 기다렸다.
이번에도 이호민이 먼저 투표수를 얘기해줬다.
“다음으로 허하준 선배의 등판이 없었던 6월 셋째 주 중간 발표입니다. 김수호 1,071,419표! 허하준 선배 1,069,290표! 황인재 991,877표로 김수호가 1위를 탈환합니다!”
“등판이 없던 허하준 선배의 빈자리와 그 주 스타즈와의 경기에서 결정적인 홈런을 기록한 김수호의 역전이 있었습니다! 황인재는 사실상 1등 경쟁에서 탈락한 모양새군요.”
꽤 재밌게 듣고 있는데 둘의 표정이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리고 대망의 지난주, 허하준 선배의 완봉승과 김수호의 홈런 세 방이 터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그래서 대망의 최종 투표 결과, 어떻게 됐죠?”
“두구 두구 두구 두구.”
“바로!”
“바로!”
이호민이 한 박자 쉬더니 외쳤다.
“잠시 후에 발표합니다!”
“미쳤냐?”
나도 모르게 말이 나갔다.
설마 이 타이밍에 저 금지된 기술을 쓸 줄은 몰랐다.
“근데 어쩔 수 없는 게 이거 수동으로 더해야 해서 좀 걸려.”
“어제 경기 끝나고 우리도 바로 너네 집으로 온 거라 시간이 없었어. 뭐 그렇게 빨리 씻냐?”
현실적인 이유로 잠시 광고(?) 타임을 가진 뒤 다시 둘이 자세를 잡았다.
“자, 발표합니다!”
“두구 두구 두구 두구.”
“김수호! 최종 득표 1,627,911표! 허하준 선배! 최종 득표 1,624,158표! 단 2,000표밖에 차이 나지 않는 격차로 김수호가 승리를 거둡니다!”
“축하합니다! 김수호 선수,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주학이 옆에 다가와서 마이크 겸 사용하고 있던 방망이 밑 부분을 내밀었다.
소감이라.
“제 소감은 간단합니다. 이제 다 했으니 제 방에서 꺼져줬으면 합니다.”
“뭐? 재워준다며!”
“와, 김수호 이러기냐!”
“내가 언제. 빨리 나가. 여기 아파트야. 새벽까지 떠들면 욕먹어.”
격렬하게 저항하는 두 사람을 끌고 현관까지 끌고 갔다.
결국 현관까지 끌려오자 신발을 신은 두 명이 공손하게 말했다.
“어머님. 저희 이만 가보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실례인 건 아네. 빨리 가.”
“두고 보자. 김수호.”
“언젠가 여기서 꼭 자고 만다.”
“두고 보자는 사람이 제일 만만한 거 알지? 잘 가라. 내일 보자.”
두 사람을 내쫓고 나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오랜만에 왔는데 같이 자지.”
“저런 거 다 받아주면 안 돼요. 저 먼저 잘게요.”
엄마가 쫓겨난 두 사람이 안쓰러웠는지 뒤늦게 말씀하셨지만,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올스타 투표 1위라.
저 두 명의 비공식 발표 말고 KBO 공식 발표는 오후에 있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혼자 편안하게 잠들고 다음 날 아집을 나서는데 이상한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분명 어제 집에 들어올 땐 못 본 거 같은데.
느낌이 싸해서 돌아보니 현수막에
–축 김수호 KBO 올스타 투표 1위 하-
라고 적혀있었다.
미친, 저거 뭔데.
“김수호 선수 축하해요!”
마침 지나가던 아파트 주민분이 그걸 보셨는지 나한테 외쳤다.
“예. 감사합니다.”
쪽팔림을 무릅쓰고 사진을 같이 찍었는데 다시 촬영을 요청하셨다.
“죄송한데 현수막도 같이....”
하. 지금 이 쪽팔림 꼭 갚는다.
범인은 보나 마나였다.
빠르게 출근하고 범인을 찾았는데 그 둘 대신 다른 선배들이 오고 가며 축하해줬다.
“너네 아파트에서 이런 것도 해줬다며? 이야, 장난 아닌데? 역시 슈퍼스타.”
“어떻게 아셨어요?”
“인스타에 떴던데? 아, 너 인스타 안 하지?”
최치호의 말에 핸드폰을 빌려 확인해보니 아까 같이 사진 찍으셨던 분이 올렸던 거였다.
“오, 사람들이 이거 보러 간데. 나도 가도 되냐?”
“...제발 참아주세요.”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축하받으면서 그 두 명을 찾을 때까지 돌아다녔다.
“여깄었냐?”
그리고 훈련장 구석진 곳에서 낄낄거리던 이주학과 이호민을 찾아냈다.
이주학이 나를 발견하자 급하게 말했다.
“타임! 먼저 우리 얘기부터 들어봐.”
“뭔데.”
“아니, 네가 먼저 우리 재워준다고 해놓고 쫓아냈잖아. 그래서 한 거지.”
“맞아. 순순히 재워줬으면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걸?”
안 재워줘서 걸었다고?
“현수막을 새벽에 만드는 곳이 있냐? 애초에 할 생각이었으면서 어디서 구라를 쳐.”
“오, 똑똑한데.”
“역시 올스타 1등.”
그러더니 서로 눈을 마주치고 순식간에 도망쳤다.
도망을 쳐?
어차피 곧 있으면 만나게 될 거 굳이 힘 빼지 않았다.
이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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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은 자유 훈련이다.
다음 날 원정 경기가 있으면 월요일에 모여서 출발하고 그게 아니라면 휴식이든 훈련이든 선택은 본인에게 있었다.
나는 보통 훈련에 참여하는 편이다.
집에만 있으면 좀이 쑤시기도 하고 집중도 잘 안된다.
그럴 바에 그냥 맘 편하게 나와서 훈련이랑 이번 주 상대 팀들의 리포트를 공부한다.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럼 수비 코치님 불러올까?.”
“다시 생각해보니까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공부할 때 보통 이주학과 같이하는 편이다.
오늘도 역시 다양한 이유로 도망치다가 나한테 붙잡힌 이주학이 반강제로 같이 공부를 하는 중이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말하고 이주학이 듣긴 하지만 나도 알려주면서 머릿속에 넣고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이주학의 칭얼거림을 무시하고 리포트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호들갑 떨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올스타 명단 떴다!”
그 소리에 이주학이 미어캣마냥 순식간에 일어나서 주변을 살피더니 내 뒤로 들어왔다.
“뭐해?”
“나 무서워.”
“뭐가?”
“올스타 떨어졌으면 어떡해.”
새벽에 확인한 건 팬 투표 결과였다.
선수단 투표까지 합친 정확한 명단이 나온 건 오늘.
“네가 대신 확인해주라. 나 못 보겠어.”
이주학도 다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꽤 차이가 있긴 했는데 정확히 어떻게 될진 확신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까 소란이 났던 곳으로 다가갔다.
“오, 1등 왔냐? 넌 볼 필요 없지 않냐?”
“주학이가 대신 봐달라고 해서요. 그게 명단이에요?”
김호기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종이를 들고 있었다.
“어. 볼래?”
“네. 감사합니다.”
천천히 명단을 살피고 김호기에게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음. 의외의 결과였다.
“봤냐?”
이주학한테 걸어가자 무서운 것보다 궁금증이 더 컸는지 곧장 물어봤다.
“어. 봤지.”
“어떤데.”
“음. 일단 나는 됐어.”
“미친놈아! 넌 당연한 거고. 나, 나 어떻게 됐냐고!”
“너....”
잠깐 말을 흐리자 이주학이 발광했다.
“아, 선생님. 제발 그냥 말씀해주세요. 나 진짜 떨린다고.”
사람들이 왜 발표 직전에 잠깐 뜸을 들이는지 알겠다.
이 맛에 하는 거구나.
좀 더 끌고 싶긴 했는데 이대로 가면 이주학이 진짜 기절할 것 같아서 바로 말해줬다.
“축하한다.”
“어? 진짜? 진짜로?”
“어. 가서 봐봐.”
내 말에 이주학이 순식간에 김호기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확인했는지 이상한 고함이 들렸다.
“끼야후!”
저건 대체 무슨 말이냐.
의외의 결과라고 했던 건 별거 아니었다.
“야. 우리 다 뽑혔는데?”
선수단 투표까지 합친 결과, 마린스 선수 12명이 전부 뽑혔다.
아슬아슬한 포지션도 있었지만 팬 투표 효과가 크긴 한가 보다.
우리 성적도 성적이니 선수단 투표에서도 대부분 절반 이상 표를 받았다.
“내가 올스타!”
이주학이 진짜 기쁜지 춤까지 추면서 기쁨을 만끽할 때, 누군가 훈련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 김수호 선수!”
단장님이 급한 볼일이 있는지 두리번 거리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아이고, 고생했어요. 내가 우리 김수호 선수가 1등 할 줄 알았어. 아이고.”
갑자기 다가와서 껴안는데 조금 당황했다.
올스타 1등이 그렇게 중요한 거였나···?
“내가 진짜 피닉스한테 1등 뺏기는 줄 알고 얼마나 긴장했나 몰라. 진짜 고마워요.”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팬들이 뽑아주신 건데.”
“말하는 거 봐. 이러니까 1등 하지.”
뭐, 저렇게 좋아하니까 기분이 좋긴 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뭐 물어볼 게 있어서 온 건데 너무 기뻐서 깜빡했네. 혹시 홈런 더비 나갈 생각 있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고민은 짧았다.
“당연하죠.”
올스타전의 메인 이벤트라고 볼 수 있는 게 홈런 더비다.
나갈 수 있으면 당연히 나가고 싶었다.
“그럼. 우리 김수호 선수가 안 나가면 누가 나가요. 오케이.”
단장님도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누구누구 나가나요?”
“음. 오늘 KBO에서 연락 온 거라서요. 아마 우리 팀에선 강주호 선수랑 김수호 선수? 근데 대충 명단은 추리려면 추릴 수 있죠.”
하긴 나갈만한 사람들은 정해져 있긴 하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고생했어요.”
그 말을 마치고 가려는 단장님을 붙잡았다.
“단장님. 혹시 뭐 하나만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뭔데요?”
오민찬이 내 말을 듣더니 표정이 묘해졌다.
별론가?
“김수호 선수.”
“네?”
“혹시 은퇴하면 마케팅팀장으로 올 생각 있어요?”
“예?”
“농담.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그냥 농담 한번 해봤어요. 그건 내가 무조건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요. 아이디어 진짜 최고.”
저렇게 까지 말해주니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게 단장님의 도움을 받아 준비에 탄력이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단장님으로부터 물건이 준비됐다는 소식을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