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69화 (169/203)

169화 가장 빛나는 별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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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 타자들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두 달이 넘도록 비슷했던 허하준의 투구 패턴이 달라졌다.

아니, 달라졌다기보단 작년 모습으로 되돌아왔다는 게 맞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갑작스러웠다.

세간에 떠도는 얘기론 허하준이 더 이상 스플리터를 못 던지게 됐다는 둥 예전만큼 위력이 안 나와서 볼 배합을 바꿨다는 둥 음모론까지 대두될 정도였다.

그만큼 허하준과 스플리터는 데뷔 이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물론 전부 근거 없는 얘기들일 뿐이고 올 시즌 허하준이 스플리터를 안 던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적어도 작년보단 허하준 상대로 ‘칠’만 하다는 것.

안타를 친다는 뜻보단 말 그대로 친다는 행위에 가까웠지만 어쨌거나 인플레이 타구가 되면 무슨 일이 생길 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포심 반, 스플리터 반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의 볼 배합을 보여주고 있다.

“스트라이크 아웃!”

4회 초,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오기택이 나가던 방망이를 급하게 멈춰봤지만, 곧바로 뒤에서 삼진 소리가 들렸다.

“일루심한테 물어봐 주시면 안 됩니까?”

“어. 안돼. 돌았어.”

괜히 주심에게 툴툴거려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결국 이번 이닝도 아무도 출루하지 못했다.

대기타석에 있던 황인재를 발견한 오기택이 다가가서 말했다.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황인재가 대답은 했지만, 눈은 오기택 뒤쪽을 향해있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마린스 배터리 쪽.

“그러다 싸우겠다. 그만 봐라.”

황인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황인재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지금은 임의탈퇴 후 아무도 찾는 팀이 없어 은퇴 수순을 밟은 최영준이 황인재를 처음 만났을 때 장난을 쳤었다.

그때 황인재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싫습니다.’

이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신인이 팀의 중심 선수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실력도 신인답지 않았지만, 아주 꽉 막힌 것도 신인답지 않았다.

팀의 중심인 최영준에게 반항한 대가는 컸다.

최영준을 중심으로 시작된 따돌림.

웬만한 선수라면 팀 케미 때문이라도 코치진이 1군에 올리는 걸 꺼렸겠지만, 황인재는 황인재였다.

오로지 실력과 재능으로 1군을 씹어먹었다.

그러다 최영준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고맙긴 한데.’

최영준이 딱히 싫진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았던 오기택은 그냥 이번 시즌이 끝나면 얻는 FA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희망도, 팀 분위기도 딱히 좋지 않은 이 팀을 빨리 떠나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으로.

그때쯤 황인재가 처음으로 오기택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전 우승 하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쇼.’

“그땐 뭐 잘못 먹었나 했는데.”

황인재의 목소리를 그렇게 가까이서 들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네?”

마침 방망이를 정리를 위해 옆에 있던 홍민우가 오기택의 혼잣말에 고개를 돌렸다.

“아냐. 하던 거 해.”

“아, 넵. 선배님 방망이 주시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그래, 이게 옳게 된 신인의 모습이다.

지금 태연하게 글러브를 챙기는 황인재나 저기 마린스에 있는 지 동기나 둘이 이상한 거였다.

김수호 하니까 생각났는데.

‘우리 스카우터는 대체 쟤 안 뽑고 뭐 한 거야.’

김수호를 뽑을 기회는 3번이나 있었다.

그 중 첫 번째는 황인재를 뽑았으니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 두 번에서 김수호를 픽했다면?

아마 지금 마린스가 보여주는 기세를 피닉스가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민우야. 그만 정리하고 슬슬 수비 할 준비해라.”

“넵.”

홍민우, 얘도 물건이지만 김수호와 비교하면 부족했다.

애초에 김수호는 지금 리그를 씹어먹는 타자인데 비교하는 게 미안했지만.

잡생각을 하며 그라운드로 나간 오기택이 1루 베이스 근처에 도착했다.

허하준이 호투하는 만큼 피닉스의 선발 투수인 차시원도 호투 중이었다.

3회까지 1안타로 마린스 타선을 틀어막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이번 이닝만 넘기면 6회까지 무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따악!

근처로 오는 빠른 타구에 오기택이 몸을 날려봤지만, 공은 외야로 빠져나갔다.

‘좆됐다.’

무사 주자 1루.

가장 무서운 타자 앞에 주자가 나왔다.

잠깐 공백이 생긴 시간에 갑자기 몸을 푸는 박은성한테 물었다.

“너 뭐하냐?”

“홈까지 뛸 준비요.”

“미친놈.”

노아웃인데 홈까지 뛴다?

말 그대로 미친놈만 하는 짓이다.

근데 어쩐지 진짜 실천에 옮길 것 같은 모습에 포수한테 신호를 줬다.

“세이프!”

“마!”

“세이프!”

“마!”

“세이프!”

“마!”

연속 세 번의 견제에 귀가 터질 듯 사직구장 특유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차시원이 네 번째 만에 김수호를 향해 공을 던졌다.

-따아악!

“쒯.”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크다.

1루 주자였던 박은성 역시 확신이 들었는지 멈춤 없이 내달렸다.

-탕!

사직구장 최상단을 때리는 소리와 함께 공이 아래로 떨어졌다.

“홈! 홈!”

타구 속도가 워낙 빨라서 스타트가 좋았던 박은성도 3루에서 멈췄다.

무사 2, 3루.

타석엔 오늘 유일하게 첫 타석에 안타를 친 강주호.

-따악!

멀리까지 뻗은 타구가 담장 앞에서 우익수에게 잡혔다.

그 사이 주자들은 한 베이스씩 진루.

1대0.

-따악!

그리고 오준혁이 날카로운 땅볼을 쳤다.

다행히 오기택의 글러브에 걸렸지만, 그 사이 3루 주자인 김수호가 홈으로 들어왔다.

오기택이 전광판을 보니 마린스 옆에 숫자 2가 추가됐다.

‘...저거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 만큼 오늘 상황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기택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피닉스는 6회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하지 못했다.

그리고 맞이한 7회 초.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앞 두 타자가 삼진을 당하는 모습을 본 오기택이 슬쩍 뒤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 무표정인 황인재가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이내 시선을 거둔 오기택이 속으로 되새겼다.

‘나가기만 하자. 나가기만.’

아직 점수는 2대0 그대로.

자신이 나가서 황인재 앞에 주자만 만들어 놓는다면 아직 모른다.

“하압!”

타석에 들어서기 전 해본 적 없는 기합을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래쪽에서 의문스러운 시선이 느껴지자 오기택이 저도 모르게 변명했다.

“루틴이야. 루틴.”

물론 그런 루틴 같은 건 없었다.

‘출루. 출루.’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생각하며 타격에 임한 오기택은 결국 목적을 이뤄냈다.

나가다 멈춘 방망이.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일루심이 팔로 일(一)자를 그렸다.

“나이스!”

오늘 경기, 피닉스의 첫 번째 출루가 만들어졌다.

‘기합 지른 게 효과가 있었나?’

오기택이 1루 베이스를 밟고 일루심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역시 매의 눈.”

“감사한 일 아냐. 네가 잘 멈췄어.”

현재 퍼펙트 상황이라 일루심도 판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거다.

“새끼가. 눈치가 없어.”

강주호도 아쉬운지 오기택한테 툴툴거렸다.

오기택에게도 강주호는 어려운 선배, 그냥 웃고 넘겼다.

드디어 황인재 앞에 주자가 출루했다.

‘인재야. 한 방치자.’

제 세상이던 최영준도 무시하는 것 말고는 아무 짓도 못 하게 만드는 재능.

피닉스는 황인재가 해줘야 하는 팀이었고, 해줄 수 있는 선수고, 지금까지 해왔던 선수다.

2아웃인 만큼 장타가 나온다면 홈까지 노려볼법한 상황.

적당한 리드폭을 유지한 채 타석에 집중했다.

그렇게 허하준이 공을 뿌렸고, 황인재의 방망이가 기다렸다는 듯 공을 강하게 때렸다.

-따아악!

아까 박은성이 그랬던 것처럼 공을 보지도 않고 내달렸다.

그렇게 3루에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함성이 들렸다.

여긴 마린스 팬들로 가득 찬 사직구장.

함성이 들렸다는 건 피닉스에게 그다지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잡혔어요?”

오기택이 3루 코치에게 묻자 코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규영. 후, 아깝네.”

오기택이 고개를 돌리자 공을 번쩍 들고 있는 이규영과 2루에 서서 가만히 그쪽을 바라보는 황인재가 보였다.

이내 황인재가 뒤를 돌고 오기택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정확히는 오기택의 뒤쪽에 있는 그라운드를 향하는 발걸음이었다.

걸어오는 황인재를 쳐다보던 오기택이 놀랐다.

‘저런 표정은 처음 보네?’

굉장히 분해 보이면서 미련이 남아있는 듯한 얼굴.

맹세코 황인재에게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오기택이 자신을 지나쳐서 가는 황인재를 불렀다.

“인재야.”

그 소리에 잠깐 걸음을 멈춘 황인재가 작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그 대답을 듣자 오기택이 한 가지 깨달았다.

‘그때 한 말, 진심이었구나.’

우승하고 싶다는 말.

너무 뜬금없길래 그냥 한 말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황인재는 정말 진심이었던 거였다.

물론 꼭 저것 때문만은 아닐 거다.

김수호.

김수호는 비슷한 상황에서 득점을 만드는 2루타를 쳤다.

황인재는 이규영의 호수비든 뭐든 결국 잡혔고.

지난 시즌 우승 이후 올 시즌에 1위를 달리는 마린스.

지난 시즌 가을 문턱도 못 밟고 이번 시즌에도 확신할 수 없는 피닉스.

두 차이가 아마 황인재가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황인재가 제 나이답게 좀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황인재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오기택이 웃으면서 황인재에게 돌진했다.

손으로 머리를 휘저으면서 말했다.

“야 인마. 표정 풀어. 야구 하루 이틀 하냐.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지. 너도 이따 호수비 보여주면 되지.”

그리고 생각했다.

이 팀에 조금 더 있어도 나쁘진 않겠다고.

#

퍼펙트는 깨졌지만 아직 기록은 진행 중이다.

노히트노런.

이미 투구 수도 110개를 훌쩍 넘긴 허하준이었지만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 주 벌써 두 번의 등판.

거기에 이번 시즌 최다 투구 수를 돌파했지만, 이 상황에서 허하준 본인이 내려가겠다고 말하는 게 아닌 이상 투수를 바꾸는 건 어떤 감독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감독님은 허하준이 마운드에 오르기 전 한마디 거들었다.

다음 주 등판은 없다.

그러니까 이번 이닝, 무조건 끝내라고.

7회 오기택의 출루 이후 8회에도 볼넷 하나를 내주면서 9번 타자부터 시작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 허하준의 공을 한 번도 건드린 적 없는 9번 타자는 곧바로 대타로 교체됐다.

하지만 대타라고 딱히 특출난 강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좌타자에 발이 약간 빠른 정도.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어떻게든 맞춰서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눈에 선해서 변화구 3개를 요구해 삼진을 잡았다.

이제 남은 타자는 두 명.

현재 스코어는 4대0.

타자의 머릿속에 과연 당장의 패배와 노히트노런 중 뭐가 먼저 생각날까.

만약 여기서 둘 중 하나에 배팅해야 한다면 노히트노런이라는 거에 이번 시즌 연봉을 전부 걸 수 있다.

반대로 타자가 생각하는 우리는 어떨까.

승리가 거의 확실한 상황.

당연히 기록을 우선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 입장에서 가장 좋은 건 역시 삼진이다.

안타의 변수도 없고 만약 타자가 낫아웃으로 출루해도 기록에 영향이 가지 않는다.

삼진을 잡기 위해선 당연한 말이지만 2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아야 한다.

반대로 타자로선 2스트라이크에 몰리면 부담스럽다.

그렇다면 노릴 만한 건 역시 초구.

생각 정리가 끝나자 허하준한테 사인을 보냈다.

타자의 방망이가 가운데로 오는 듯한 공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 나왔다.

가운데로 온 건 맞다.

하지만 홈플레이트에 가까워지면서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스플리터였다면 그냥 헛스윙이 됐겠지만, 스플리터만큼의 낙차는 아니었다.

체인지업.

타구가 그대로 이주학의 품에 가 안겼다.

“아웃!”

9회가 시작되기 전 이주학이 조심스럽게 와서 본인 쪽으로 보내지 말라고 한 것 치곤 좋은 수비였다.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하나.

야수들에게 아웃카운트를 상기시키고 자세를 잡았다.

초구 체인지업을 봤다.

그럼 이제 어떻게 대응할까.

이 정도까지 왔으면 더 이상 예측하는 건 큰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내가 받았던 공 중 가장 좋았던 공을 요구했다.

“스트라이크!”

몸쪽에 들어온 포심으로 스트라이크.

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타자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2구는 바깥쪽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마지막에 잠깐 고민했다.

바로 승부를 들어갈지, 아니면 하나 빼고 갈지.

마지막 공을 정하고 미트를 피자 허하준이 곧바로 공을 뿌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가운데 들어온 스플리터.

실투였지만 의표를 찌른 한 수가 됐다.

“으아아아! 미친! 벌써 몇 번째야!”

“하준아! 수호야! 고생했다!”

“허하준! 허하준! 허하준!”

기록이 완성된 순간은 언제나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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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4 : 0 대전 피닉스]

[허하준 개인 2호 노히트노런! 피닉스 강타선 상대로 9이닝 2볼넷 무실점 14k 완벽투!]

[퍼펙트게임 2회, 노히트노런 2회. 김수호와 호흡을 맞추면 뭔가가 다르다!]

[허하준, ‘수호가 경기 전 스플리터 위주로 하자고 한 게 잘 통했다. 볼넷은 아쉽지만 미련 없다.’]

[순위 경쟁만큼 뜨거운 올스타전 투표! 1위 두고 내부 경쟁! 허하준 vs 김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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