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가장 빛나는 별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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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0의 팽팽한 경기.
이런 경기는 기세를 누가 가져가느냐의 싸움이다.
그렇다면 그 기세를 어떻게 가져오느냐.
방법은 많았다.
가장 좋은 건 역시 점수다.
특히 홈런 한 방이면 팽팽했던 경기가 순식간에 기우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기일수록 투수들도 홈런을 의식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방법이다.
점수를 뽑아내는 게 어렵다면 다른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안타를 훔치는 호수비라던가,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가 나온다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끓어오르게 된다.
괜히 야구에 호수비 뒤에 안타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수비에서의 활약이 공격으로 연결되는 건 심심찮게 나오는 장면 중 하나였다.
그런 의미에서 마린스는 기세를 탈 준비를 완벽하게 마쳤다.
황인재의 파울 타구를 잡아낸 김수호의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
그 장면을 본 팬 중 대다수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수호야!”
화면을 통해 보고 있던 오민찬 단장도 마찬가지.
이내 김수호가 끝내 놓치지 않은 공을 잡고 더그아웃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을 봐서 망정이지 당장이라도 구장으로 뛰어나갈 기세였다.
그런 팬들과 오민찬의 마음은 모르는지 김수호는 몸을 일으키고 공을 들며 그라운드로 걸어 나왔다.
이내 김수호의 멀쩡한 모습에 흥분은 가라앉았고 오민찬이 냉정하게 방금 상황을 생각했다.
‘호잰데?’
방금 상황은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됐다.
당장 아웃카운트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수호가 다치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만약 방금 김수호가 다쳤다?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 일 뿐, 실제로 일어난 장면은 아니었다.
야구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는 스포츠고, 사람이 보는 스포츠다.
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선수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고, 선수들은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방금 김수호가 보여준 장면은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저게 진짜 스타플레이어지.’
자고로 스타플레이어란 팬들을 흥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타고나야 하는 재능이다.
그리고 김수호는 오민찬이 봐왔던 선수 중 가장 스타플레이어의 재능을 타고난 선수였다.
타고난 재능에 운까지 좋다.
지금도 호수비 이후 곧바로 김수호의 타석이 돌아왔다.
“김수호! 김수호!”
따로 창문을 열지도 않았건만 김수호의 이름을 외치는 팬들의 함성이 단장실을 울린다.
팬들이 원하는 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달아오른 분위기를 더욱 크게 불태울 수 있는 결정적인 한 방.
-따아악!
화면을 뚫고 들린 타구음에 오민찬이 생각했다.
‘지금까지 헛고생했네.’
서상길에게 보내려던 문자를 지웠다.
그리고 새로운 내용으로 문자를 보냈다.
-김수호 기사 안 써줘도 됩니다.
이젠 필요 없어졌다.
아니, 원래 필요 없었다.
다만 오민찬이 그 사실을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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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5 : 4 대전 피닉스]
[따라가면 도망가고. 부산 마린스, 대전 피닉스의 끈질긴 추격 따돌리며 1점 차 신승]
[Today Photo – 더그아웃에 몸을 날리는 김수호.]
[호수비 뒤 홈런! 김수호 시즌 22호 홈런 작렬!]
[김수호, 올스타 투표 전체 1위 탈환! 황인재, 허하준에게도 밀리며 3위.]
[우리는 김수호 같은 선수를 원했다. - 서상길의 야구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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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와 두 번째 경기.
처음으로 주에 두 번 경기에서 빠지게 됐다.
“안돼. 돌아가. 들어오면 2군 보낸다.”
단호한 강기호의 말에 슬쩍 안에 있는 선수들과 아이컨택을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병원에서도 괜찮다고 하는데 왜 그러세요.”
“감독님 말씀이니까 나한테 말해봤자 소용 없다. 그냥 순순히 집에서 쉬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그 공 포기했지.
어제 경기가 끝난 뒤 간단한 검사 이후 오늘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아픈 곳 없다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검사도 별 이상 없다고 나왔지만 오늘 경기 라인업에 내 이름은 없었다.
“그럼 더그아웃에만 있을게요.”
최후의 딜을 시도했고 강기호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공 받을 생각 하지 마라.”
이 말을 하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무튼 더그아웃엔 들어갈 수 있으니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훈련하는 걸 지켜봤다.
몸이 근질거렸지만 나를 계속 지켜보는 강기호의 시선에 별다른 행동은 하지 못했다.
혹시 대타로 나갈 수도 있으니 강기호가 지켜보는 가운데 간단하게 몸을 푸는 정도만 움직였다.
“대타는 얼어 죽을. 계속 그딴 소리 할 거면 그냥 집에 가.”
확고한 강기호의 반응을 보면 오늘 경기 출장은 포기하는 게 나아 보였다.
경기에 나가진 못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었다.
“이호민 화이팅! 삼진 잡자!”
더그아웃 맨 앞에서 열심히 소리 질렀다.
가끔 강기호와 눈이 마주치긴 했지만, 이거까지 못 하게 할 마음은 없는지 딱히 간섭은 없었다.
경기가 후반부에 접어들고 어제처럼 팽팽한 경기가 이어졌다.
몇 번씩 대타가 나가긴 했지만 내 이름이 불리진 않았다.
“너무 서운해하지 마라.”
이닝 교체 시간에 잠깐 쉬고 있는데 강주호가 옆에 와서 앉았다.
“하나도 안 서운해요. 신경 써주시는 건데 오히려 감사하죠.”
딱히 서운하다고 느낀 적 없다.
2위 프렌즈와 여유가 있다지만 벌어놓을 수 있을 때 벌어놔야 한다.
지금 리그에서 이 정도로 관리해줄 수 있는 팀도, 상황도 얼마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올스타전 준비는 잘하고 있냐?”
“아직 한 달도 넘게 남았는데요? 그리고 준비할 게 있어요?”
“쯧. 나때는 말이야 한 달 남았다 하면 바로 내일인 것처럼 준비했어. 넌 거기다 전체 1등 아니냐? 무조건 해야지.”
앞에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야겠다.
“선배님은 뭐 준비하셨는데요?”
“나? 난 안 했지. 매번 참가할 때마다 그런 거 하려면 머리 빠져.”
당당한 강주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내 표정을 봤는지 강주호가 웃었다.
“간단한 거라도 준비하면 좋지. 너 잘하잖아. 깜짝 이벤트 같은 거.”
강주호의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네. 준비해 볼게요.”
강주호와 대화하는 사이 어느새 공격이 끝나있었다.
“마! 공격 대충대충 할래? 또 수호 빠졌다고 졌다는 소리 듣고 싶어?”
그 말에 선수들과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시죠?
대충 틀린 건 아니지 않냐는 선수들의 눈빛을 강주호도 느꼈는지 버럭 소리 질렀다.
“후배 보기 쪽팔리지도 않냐! 안 되겠어. 요즘 내가 너무 편해졌지? 3년 전, 4년 전으로 돌아가 봐?”
“자자. 다들 1루까지 전력으로 안 뛰면 내 선에서 죽는다!”
그때 강주호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자 선수들이 빠릿빠릿하게 바뀌었다.
아쉽지만 결과는 패배.
7회 말, 1점 차까지 쫓아갔지만, 황인재와 홍민우가 도망가는 점수를 뽑아내면서 결국 3점 차 패배했다.
그래도 경기 막판에 보여준 집중력이 보기 좋았는지 팬들이나 강주호도 딱히 뭐라 하진 않았다.
물론 내일 경기도 지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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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가 라인업에 돌아왔다.
고작 하루 공백이었지만 김수호가 없는 타선은 팥 없는 찐빵, 김치 없는 김치찌개 같았다.
김성준이 못한 건 아니었지만 가끔 이호민의 빠른 공을 제대로 포구하지 못하는 장면이 나왔고 타격에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김성준 없었으면 이재익이랑 주동훈 봐야 함.]
하지만 어제 패배를 김성준 탓으로 돌리는 팬들은 거의 없었다.
김성준이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다른 포수들 봤던 마린스 팬들은 그저 백업 포수라는 존재 자체에 감사했다.
현재 마린스 포수들을 보면 만약 김수호가 포지션을 바꾸지 않았더라면 김성준이 주전 포수로 활약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김성준은 딱히 불만이 없었다.
‘저 비난이 나한테 왔다면?’
지금보다 많은 출전은 했겠지만 그만큼 많은 비난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김성준도 나름 욕심이 있었다.
현재 선발 투수 다섯 명 중 김성준과 배터리를 이루는 선수는 요그 하스 한 명뿐.
이번에 이호민의 공을 받아봤으니 실전에서 김호기, 웰링턴의 공도 받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허하준은 예외였다.
솔직히 말하면 엄두가 안 났다.
당연히 김성준도 훈련 때 허하준의 공을 받는다.
하지만 김수호와 배터리를 이룰 때 던질 때와 자신을 향해 던지는 것엔 분명한 차이가 느껴졌다.
‘어쩔 수 없지.’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걸 인정 못할 만큼 김성준은 바보가 아니었다.
-퍼어억!
“좋은데요?”
속이 뻥 뚫리는 포구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진다.
허하준의 포심이라면 김성준도 저런 소리를 낼 자신이 있다.
하지만 방금 저 공은 포심이 아니라 투심이었다.
-퍼어억!
이건 스플리터.
-퍼어억!
슬라이더.
김성준이 김수호를 보며 가장 놀란 게 바로 이것이었다.
어떤 공을 던져도 완벽하게 포구한다.
눈을 감고 들었다면 같은 구종을 던졌을 거라고 착각이 들 만큼 완벽한 포구음.
허하준이 구종 두어 개를 던지는 투수가 아닌데도 무리 없이 소화한다.
이내 투구가 다 끝났는지 허하준과 김수호가 걸어 나왔다.
부러워만 하면 발전은 끝이다.
김성준까지 합류해 오늘 경기를 준비했다.
“어제 느꼈는데 중심타선에 똑같은 방법은 두 번 안 통하더라고.”
“공 받아보니까 오랜만에 스플리터 위주로 가면 타자들이 좋아할 거 같은데 어때요?”
“나야 좋지.”
허하준이 웃는 걸 보고 김성준이 생각했다.
오늘 경기는 편안하게 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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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올해 허하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삼진을 잡는 투수에서 비교적 맞춰 잡는 투수로 변했다는 점이다.
구위가 떨어지거나 문제가 생긴 건 전혀 아니었다.
작년엔 허하준이나 나나 여름에 합류하면서 비교적 체력적인 여유가 많았다.
그래서 후반기에 매 경기 9이닝씩 소화하면서 밥 먹듯이 완봉승을 기록한 거였고.
불펜의 불안함도 한몫했다.
지난 후반기, 김동준이 합류하긴 했지만 가장 불안한 포지션이 바로 불펜이었다.
반면 이번 시즌엔 1점, 2점을 지켜낼 필승조가 든든해졌다.
김동준도 제 페이스를 찾았고 이용기도 셋업 자리가 잘 맞는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상엽은 지금까지 단 1실점만 하며 블론세이브가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프렌즈의 김형주조차 뛰어넘는 기록이다.
오상엽이 정도까지 잘 해줄 줄은 몰랐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다.
허하준이 이번 시즌에 앞서 코칭스태프들과 상의하에 맞춰 잡는 방향성을 잡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안정을 찾은 5선발, 완성된 필승조.
이제 허하준이 굳이 무리해가면서 경기를 전부 책임질 이유가 사라졌다.
지난 시즌만큼 압도적인 기록을 내지 못하는 건 전부 이 때문이다.
물론 작년 허하준의 기준이지 이번 시즌 역시 대부분 지표에서 1위를 달리고 있긴 하다.
근데 최근에 느낀 건데 허하준의 공에 방망이를 적극적으로 내는 타자들이 많아졌다.
느낌에서 끝난 게 아니라 기록을 찾아보니 더 확실해졌다.
지난 경기에 이주학 쪽으로 공을 많이 보낼 수 있는 배경엔 타자들의 바뀐 대처법도 한몫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스플리터를 제안했다.
슬슬 느슨해진 상대 타자들에게 긴장감을 줄 때가 됐다.
그 첫 번째 제물이 될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피닉스의 타선을 보면 목적이 한눈에 보인다.
황인재를 제외하고 출루율이 가장 높은 타자들을 앞쪽에 배치해 최대한 주자를 모은다.
그리고 황인재가 해결한다.
황인재가 해결 못 한다면 홍민우까지 가는 게 피닉스의 타선이었다.
간단하지만 이게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홍민우가 제 몫을 해줬기 때문이다.
신인에게 가혹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이겨냈으니 맞는 판단이 됐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1번 타자에게 허하준이 공 세 개를 던져 세 번의 헛스윙으로 삼진.
“스트라이크!”
“볼!”
“파울!”
“스트라이크 아웃!”
2번 타자가 겨우 공을 맞추긴 했지만 역시 스플리터에 속으면서 삼진.
“파울!”
3번 타자 오기택이 뭔가를 느꼈는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냈다.
하지만 라인을 벗어나면서 파울.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어제 3출루에 성공하면서 제 몫을 톡톡히 한 오기택 역시 삼구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 황인재가 무섭다면 그런 일 자체를 안 만들면 된다.
한 가지 예언하자면 오늘 황인재 앞에 주자가 있는 일은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