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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63화 (163/203)

163화 오늘은 000날, 우리들 세상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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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김수호가 양준에게 하는 말이 수정됐습니다.

어린이날 -> 마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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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이 강주호가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시비를 걸었다.

“후배 관리 똑바로 안 하냐?”

“뭐?”

“아니다. 너한테 말해 뭐하겠냐.”

강주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양준이 김수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을 떠올렸다.

‘마린이날이라고? 아오.’

최정윤한테 전해달라 했지만 어쩐지 양준 본인한테 한 얘기로 들렸다.

정확히 어떤 의미로 한 얘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어떻게 스무 살 때 너랑 똑같냐.”

양준의 머릿속에 20년 전, 강주호와 양준이 신인이었을 때 한 장면이 떠올랐다.

1군에 온 지 얼마 안 된 날, 선배 포수가 강주호 타석 때 골려주려다가 강주호가 사납게 반응한 덕에 한바탕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모습을 보며 양준은 저런 선배는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막상 당해보니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그동안 양준이 김수호를 괴롭힌 게 있으니 이 정도면 그냥 넘어갈 만했다.

그래도 어떻게 잡은 건순데 강주호에게 계속 불만을 투덜대며 방해했다.

“아오. 좀 조용히 좀 해라.”

“너 아니면 요즘 말할 애도 없다. 너도 비슷하지 않냐?”

“내가? 아닌데?”

“쯧. 마린스 애들이 고생이 많아.”

“복이 많은 거겠지.”

알 수 없는 자아도취에 양준이 고개를 젓고 최정윤에게 다음 사인을 냈다.

-딱!

“아웃!”

높이 들어온 공에 강주호의 방망이가 나가면서 내야 뜬공 아웃.

강주호가 이런 공을 칠 정도면 오늘 최정윤의 공은 정말 좋은 게 맞았다.

하지만 김수호에게 맞은 홈런 세 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새끼가 잘 친 거지.’

쯧.

혀를 찬 양준이 내야수와 최정윤을 향해 외쳤다.

“이제 아웃 두 개만 더 잡자!”

6회 초에 6대1의 스코어.

아직 포기하긴 일렀다.

강주호 역시 혀를 차긴 마찬가지였다.

‘공이 좋긴 하네.’

예전에 양준이 최정윤의 성공을 호언장담했을 때부터 최정윤의 공이 날이 갈수록 좋아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공을 어떻게 쳐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젊었을 때라면 감각을 믿고 쳤을 테지만 몸과 함께 늙은 감각을 믿기엔 강주호의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감각을 믿고 치자니 몸이 못 따라주고, 몸을 믿고 치자니 감각이 반응하지 않는다.

이런 몸 상태로 최정윤의 공을 제대로 때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후. 젊었어도 저런 공은 바로 넘겨버리는 건데.”

강주호가 더그아웃에 들어오자마자 들으라는 식으로 중얼거렸다.

목표는 당연히 김수호였다.

김수호도 보던 리포트를 집어넣고 강주호의 말에 반응했다.

“1년만 젊었어도요?”

최정윤의 공을 가늠하던 강주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 공이면 1년으론 안 돼. 최소 4년?”

4년 전이라면 강주호가 강기호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타격 2관왕에 올랐을 때였다.

개인 성적과 상관없이 그때부터 팀 성적은 형편없이 곤두박질쳤지만.

“근데 연타석 홈런 치려면 더 가야지. 대충 10년 전.”

강주호가 현재 김수호의 기세가 자신의 10년 전과 닮았다는 뜻을 에둘러서 말했다.

10년 전이라면 전성기를 넘어 강주호 야구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때.

그때와 김수호의 2년 차가 같다는 말이었다.

고작 2년 차가 이런데 그 이후는 어떨까.

‘은퇴해도 야구 보는 맛은 있겠네.’

“그때 선배님이면 가능하죠.”

김수호가 제 칭찬인 걸 알아듣지 못하는 걸 보고 강주호가 웃었다.

평소 눈치는 빠르면서 이럴 때만 둔해진다.

“왜 웃으세요?”

“너 양준이한테 뭐라 했냐? 내가 타석에 들어가니까 바로 너 관리 안 하냐는데?”

“아, 그게···.”

김수호가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강주호에게 털어놨다.

그에 대한 강주호의 반응은.

“표정을 못 봤다고? 하, 원래 그런 거 하고 나서 표정 보는 게 제맛인데.”

라면서 좋아할 뿐이었다.

“표정이 왜 그러냐? 내가 뭐 혼내기라도 할까 봐?”

“그래도 양준 선배한테 그런 거라 좀 걸리더라고요.”

“괜찮아, 괜찮아. 양준이니까 해도 돼. 더 해. 막 해 그냥. 어쩐지 표정이 똥 씹은 표정이드만 이유가 있었네. 원래 그런 건 경기장에서 지르고 사석에서 푸는 거야.”

강주호가 그렇게 말하자 김수호도 한결 나아진 표정을 지었다.

물론 강주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면 표정이 바뀌겠지만.

‘양준 쪼잔한 놈. 별것도 아닌 거 한마디 가지고 기를 죽여? 에이스 놈들 다 뒤졌다.’

그렇게 남은 이닝동안 1루에서 강주호를 만나게 된 에이스 선수들은 때아닌 잔소리를 듣게 됐다.

#

최정윤은 6회를 끝으로 내려갔다.

6이닝 5피안타 6실점 5자책 10k 3피홈런.

볼넷도 없는데 고작 5피안타로 6실점이라.

한동안 최정윤한테 오는 연락은 텀을 두고 받아야 하나.

아무튼 웰링턴도 최정윤과 같은 5안타를 맞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7이닝 동안 5피안타 1볼넷 1피홈런 1실점 11k.

“이 정도면 엘리가 좋아하겠지?”

“당연하죠.”

온종일 말했던 대로 엘리를 포함한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피칭을 선물로 줬다.

5점의 점수 차가 무조건 이겼다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불펜진의 호투를 생각하면 넉넉한 점수다.

그래도 아직 부족했다.

지난 10연패를 극복하려면 최소 10점은 뽑아야 하지 않을까.

“야.”

“왜.”

“잠깐 이리 와봐.”

이주학이 방망이를 챙겨 들더니 나를 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스윙하기 시작했다.

“어때?”

“그냥 평소의 넌데?”

“아니, 나도 오늘 홈런 칠 수 있을까?”

“...네가?”

“네가? 네가? 아니 네가 오늘 홈런 3개 때린 거 누구 때문인지 몰라서 그래?”

“누구 때문인데?”

“당연히 나 때문이지!”

영문 모를 당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경기 전에 호민이랑 나랑 기운 불어넣어 준 거 벌써 잊었냐?”

“아.”

“아? 와, 진짜 나는 진심을 담아서 한 건데.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 너무한 거 아니냐?”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근데 사직을 넘기는 건 좀 힘들지 않을까?”

이주학의 처음이자 마지막 홈런은 홈런이 가장 많이 나오는 문학 구장에서 나왔다.

그것도 아주 살짝 넘기는 홈런.

높은 사직 담장을 넘기려면 비거리뿐만 아니라 타구 각도도 적당한 선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주학의 스윙 자체가 그런 타구를 만들어 내기 힘든 스윙이었다.

애초에 힘도 부족했고.

이주학이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한 거다.

홈런 잘 치는 유격수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주학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단번에 바꾸는 건 어렵다.

“그래도 할 수 있다 정도는 말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

이주학이 서운한 듯 툴툴거리자 조금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마 최정윤이 내려간 만큼 이번 이닝에 대타로 들어갈 가능성이 컸다.

5점 차.

에이스로서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필승조를 올릴 점수는 아니다.

그라운드를 보니 예상했던 선수 중 한 명이 나왔다.

한상수, 우리보다 2년 선배인 선수다.

오늘 경기 직전 2군에서 콜업됐다.

“너 저 선배 기억하냐?”

“어? 한상수? 음, 아. 그 유신고였나?”

“어. 저 사람 투구 패턴이 그대로라면 아마 좌타자 상대로 초구 포심을 주로 던지거든? 바깥쪽 높은 코스로. 그거 한번 노려봐.”

오늘 콜업된 걸 보고 급하게 찾아봤는데 고등학교 때 습관이 아직 있는 걸 발견했다.

그래도 시간도 많이 지났고 애초에 양준이 포수인 이상 틀릴 가능성이 훨씬 컸다.

“바깥쪽 높은 포심···.”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중얼거리던 이주학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물었다.

“넌 근데 이런 거까지 어떻게 아냐?”

“음. 글쎄?”

못 잊을 수밖에.

황인재가 나한테 처음으로 조언을 해줬던 게 한상수를 상대할 때였다.

그 이후 황인재가 어떻게 알아냈는지 궁금해서 한상수의 리포트를 얻어 꼼꼼하게 뒤져본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이주학도 더 묻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다시 스윙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민석과 최치호가 나란히 아웃당하고 이주학이 이민상 타석에 대타로 나갔다.

-따아악!

“오, 큰데?”

소리만 들어도 제대로 맞았다.

하지만 그게 사직 담장을 넘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담장을 때린 타구에 2루까지 들어간 이주학이 웃으면서 세레모니를 했다.

오랜만에 장타라 기쁘긴 한가 보다.

그리고 그 장타가 시발점이 됐다.

장타를 허용한 뒤 한상수의 제구는 급속도로 안 좋아졌고 이규영, 박은성에게 나란히 볼넷을 허용했다.

그리고 내 타석 역시 볼로 시작했다.

에이스 벤치에선 딱히 움직임이 없었고 그대로 투구를 이어갔다.

“볼!”

“볼!”

어느새 3볼.

다음 공이 존에 들어온다 해도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볼넷을 줄 거다.

하지만 그게 공을 지켜볼 이유는 되지 않았다.

-따아악!

카운트를 잡기 위해 들어온 한 가운데 빠른 공.

놓치기엔 너무 먹음직스러운 공이었다.

맞자마자 홈런을 직감했다.

오늘만 벌써 네 번째 도는 베이스.

그리고 길었던 어린이날의 저주을 끊어낸 홈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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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13 : 1 대구 에이스]

[솔로, 투런, 쓰리런, 만루 홈런! 김수호, 국내 최초의 사이클링 홈런! 상상 속의 기록이 현실이 되다!]

ㄴ 사이클링 홈런? 그런 게 있었음?

ㄴ ㅋㅋㅋㅋ 거의 이름만 있는 기록인데 이걸 하네? 마이너리그에서 2번 나온 거 제외하고 메이저, 일본에서도 없는 기록임 ㄷㄷ.

ㄴ 거기에 순서대로 솔로, 투런, 쓰리런, 만루임 ㅋㅋㅋㅋㅋ 이 경기 직관 간 내가 승잨ㅋㅋㅋ

ㄴ 이거도 그럼 내추럴 사이클링 홈런이라고 불러야 하냐?

ㄴ 아, 미친. 어린이날 때 또 질까 봐 아이랑 다른 데 갔는데 지금 울고불고 난리 났다. 이거 어떡하냐?

ㄴ 아재요···. 그러니까 갓수호를 믿었어야지.

ㄴ 김수호 걍 허하준이랑 같이 세트로 미국 보내면 안 댐? 아 제발.

[4홈런 10타점 김수호, 한 경기 최다 타점 경신!]

[어린이날 10연패 끝! 김수호의 괴력 쇼에 힘입어 마린스 위닝 시리즈!]

[최정윤은 잘 던졌다. 다만 상대가 김수호 였을 뿐.]

[김수호, ‘오늘 경기는 마린이들을 위한 선물.’이라며 ‘지난 10년간 어린이날을 즐기지 못했던 마린이였던 분들에게도 좋은 추억이 됐으면. 오늘은 마린이들의 날이다.’]

ㄴ 진짜 인터뷰 개미쳤다 ㅠㅠㅠㅠ

ㄴ 나 서른 넘었는데 오늘은 마린이 해도 될까.

ㄴ 우리 아빠 어린이날 노래 개사해서 부르심 ㅋㅋㅋㅋㅋ

ㄴ 이제 어린이날은 없다. 5월 5일은 마린이날이다.

ㄴ 방정환도 오늘 경기 봤으면 마린이날 찬성했을 듯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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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프로야구 소식입니다. 이번 시즌 가장 뜨거운 팀이죠. 부산 마린스가 원정 9연전을 6승 2패로 마무리하며 5월을 1위로 끝마쳤습니다. 김연진 기자입니다.

-어린이날 3연전을 시작으로 4월의 기세를 이끌어간 마린스가 5월 마지막 시리즈를 위닝시리즈로 장식했습니다. 이로써 5월에만 벌써 여섯 번째 위닝시리즈입니다.

우천으로 취소된 시리즈를 제외하면 루징 시리즈는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투수진을 이끄는 허하준과 타선을 이끄는 김수호의 활약에 힘입어 서울 프렌즈와의 경기 차를 8경기까지 벌린 부산 마린스는 이번 주 사직에서 챌린저스와의 승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엄마! 나 나갔다 올게!”

스포츠 뉴스를 들으며 나갈 준비를 하던 허하율이 준비를 마치자 급하게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생각보다 덥네.”

아직 바람이 불면 날씨가 선선하지만, 슬슬 강하게 내려 쐬는 햇빛을 보니 정말 여름이 왔나 싶었다.

황금 같은 공강, 월요일.

야구를 제외하면 집에서 잘 나가지 않는 그녀가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집 근처를 서성이자 익숙한 차 한 대가 그녀 앞에 섰다.

“일찍 나왔네? 덥지. 얼른 타.”

원정 9연전을 마치고 오랜만에 부산에 돌아온 김수호와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다.

익숙한 듯 차에 올라탄 허하율이 에어컨 바람을 쐬며 중얼거렸다.

“하아. 좋다.”

“더 세게 틀어줄까?”

“아, 응. 좀 덥네.”

이젠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는 허하율의 눈에 김수호의 팔찌가 들어왔다.

“그거 아직도 안 끊겼어?”

“이거? 그러게. 엄청 튼튼해.”

“이상하다. 오빠껀 금방 끊어진 거 같은데···.”

허하율은 아직도 허하준이 직접 끊은 걸 모르는 눈치였다.

허하준이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한 걸 떠올린 김수호가 그냥 웃고 지나갔다.

차가 출발하자 허하율이 물었다.

“그래서 우리 오늘 어디가?”

“좋은 곳?”

“나 기대한다?”

기대하지 말라고 해도 허하율은 이미 기대치가 꼭대기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김수호가 이렇게 나서서 자신 있게 말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김수호 역시 자신 있었다.

“기대해도 돼.”

자신만만한 김수호의 차 문에 수첩 같은 게 튀어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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