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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55화 (155/203)

155화 야구에 100%는 없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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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져도 되는 경기는 없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는 있다.

돌핀스엔 오늘 경기가 그랬다.

시즌은 길다.

144경기나 되는 만큼 시즌 전에 구상한 대로 흘러가는 팀은 없다.

주전인 선수가 갑자기 극심한 부진에 빠질 수도 있고, 부상으로 이탈할 수도 있다.

차라리 경기 중 부상이면 모르겠지만, 계단에서 미끄러져서, 택시 문에 손이 껴서 등 어처구니없는 일도 일어난다.

그만큼 변수가 많은 게 시즌 운용이다.

그중 가장 변수가 많은 요소가 바로 선발 투수 로테이션이다.

보통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선발 로테이션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그 주의 성적이 뒤바뀐다.

특히 주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등판할 수 있는 에이스 투수가 언제 나오느냐에 따라 한 주의 성적이 바뀌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돌핀스 감독은 마린스와의 2차전에 도박 수를 던졌다.

바로 우천 취소된 경기의 선발 투수 김광윤 대신 3연전의 마지막 투수로 예고된 에이스 잭 랜들로 변경했다.

반면 마린스는 로테이션대로 이호민이 마운드에 오르게 됐다.

1선발과 5선발.

우천 취소가 잦은 KBO 특성상 로테이션이 꼬이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 특별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시즌 초부터 이런 도박 수를 던지면서까지 잭 랜들을 선발로 내세울 이유가 있냐는 거였다.

표면적으로는 잭 랜들의 루틴 때문이라 해명했지만, 실상은 약간 달랐다.

마린스와 돌핀스의 첫 경기가 있기 전날, 돌핀스의 단장이 돌핀스 감독을 찾아왔다.

그가 전해준 말은 간단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스윕이라도 당하면 저희 정말 짐 싸야 합니다.”

현재 창원 돌핀스는 창단 이후 최악의 여론을 겪고 있었다.

지난 시즌 준우승, 그리고 이번 시즌 중위권에 머물며 순조로운 출발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돌핀스의 이름값에 비하면 초라했다.

당장 팬들의 머릿속에 작년 한국시리즈 4대0 패배가 선명한데 설상가상으로 팀의 주축 선수 중 두 명이 마린스로 이적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최악인데 마린스에게 스윕을 당한다?

단장의 말처럼 정말 교체될 수도 있다.

물론 시즌 중, 거기에 최근 성적이 좋았던 돌핀스의 감독이 바뀌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마냥 없던 일도 아니다.

모기업으로선 어떻게든 여론을 돌릴 방법이 필요했고, 그럴 때마다 유용하게 사용하는 게 바로 감독의 교체였으니까.

“감독님. 제가 드린 말씀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단장이 살벌한 말을 남겨두고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성사된 두 선발의 대결에 이름값만 놓고 봤을 때 잭 랜들 쪽에 무게감이 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직전 경기에서 이호민이 호투하긴 했지만 잭 랜들 역시 KBO를 대표하는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이다.

돌핀스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

그리고 마린스는 지면 아쉽지만, 5선발 대 1선발이라는 할 말이 있는 경기를 팬들을 설렘 반 불안한 반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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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시즌 1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KBO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인 22연승엔 한참 못 미치는 기록이지만 팀 연승 기록을 경신했다.

그때도 느꼈지만, 연승은 쉽지 않다.

6연승만 해도 한 주의 경기를 전부 승리해야 했고 13연승을 하려면 무려 2주 하고도 한 경기에서 더 이겨야 한다.

물론 최근 분위기를 보면 13연승 그 이상도 가능할 것 같지만 긴 연승을 이어가려면 팀의 모든 사람이 잘해야 했다.

특히 타선에서 한 명 정도는 못 쳐도 된다면 한 명도 못 해선 안 되는 포지션이 있다.

바로 선발 투수.

자신들의 역할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부담감도 심하게 느꼈다.

그리고 오늘, 그 선발 투수 중 한 명에게 위기라면 꽤 큰 위기가 찾아왔다.

“몸 좀 괜찮냐? 이거 좀 마셔라.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속 안 좋을 땐 매실차가 짱이래.”

“어. 땡큐.”

어제 휴식이 독이 된 걸까, 오늘 선발 예정인 이호민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다행히 무슨 사고를 치거나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긴 이호민이 그렇게 프로 의식이 없는 선수는 아니다.

“윽, 나 잠깐만.”

단지 어제 먹은 게 얹혔는지 화장실을 자주 들락날락할 뿐이었다.

그래도 공을 못 던질 정도는 아니었고 선발 투수는 그대로 이호민이었다.

본인의 의지도 강했고.

저 상태를 보아하니 긴 이닝을 던지는 건 힘들어 보이긴 하는데 그건 감독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그나저나 어제 경기가 취소되고 상대 선발 투수가 바뀔 때부터 온 세상이 우리의 연승을 끊기 위해 억까하는 것 같다.

이호민의 컨디션이 이렇다 보니 모든 불펜 투수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게 대기한 상태로 경기가 시작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몸 상태와 별개로 공에서 느껴지는 힘은 좋았다.

1회부터 157km의 빠른 포심으로 빠르게 투 아웃.

여기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타석에 들어선 스티브 오웬을 상대로 공을 던지고 이호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 파트너 표정이 심상찮은데? 올라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걱정 해줘서 고맙지만 괜찮아요.”

스티브 오웬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오늘 등판하기 전 이호민과 한가지 약속했다.

절대 이호민이 사인을 주기 전에는 올라가지 않겠다고.

이호민을 믿고 사인을 보내자 끄덕임도 없이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결과는 공 4개 만에 삼진.

그리고 이호민이 평소보다 미세하게 빠른 걸음으로 순식간에 더그아웃에 들어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타자들. 오늘 공 좀 많이 봐라.”

상대 투수 때문이 아니라 우리 투수 때문에 공을 많이 보라는 주문이 나온 건 처음이다.

아무튼 완벽하면서 불안한 출발을 한 경기는 빠르게 진행됐다.

잭 랜들도 지난 연습 경기와는 다르게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두 선발 투수 모두 3회까지 무실점.

특히 이호민은 단 한 명의 주자로 1루로 내보내지 않았다.

저 몸 상태로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호민의 안중에 상대 타자들은 없다는 거다.

특히 원래도 사인을 잘 거절하지 않는 이호민이었지만, 오늘은 내가 사인을 보내면 곧바로 던진다.

심판에게 셋업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경고받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덕분에 바쁜 건 나였다.

사인 내는 시간을 끌면서 적절한 템포를 조절해야 했다.

물론 이호민은 그런 내 정성을 알아주지 못했다.

“아웃!”

호수비가 나와도 야수의 수비를 칭찬할 시간에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속도가 더 빠를 정도였으니 이해는 한다.

아무튼 그렇게 3회까지 9타자 연속 범타.

심상치 않은 시작을 기록한 이호민이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두 번째 타석이 돌아왔다.

첫 타석엔 우익수 뜬공.

잭 랜들에겐 좋은 기억이 많아서 기대한 타구가 담장 앞에서 잡혔다.

그래도 투수에게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효과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했는데.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들어오는 걸 보면 실패한 것 같다.

4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0-1로 시작한 볼 카운트.

낮게 들어온 2구는 그대로 흘려보내고 3구를 노렸다.

-따악!

“파울!”

바깥쪽 빠지는 공에 파울.

이제 여기서 공을 하나 뺄 수도 있고 아니면 바로 승부를 들어올 수도 있다.

특히 가끔 강심장인 투수들이 여기서 몸쪽을 찔러 넣는다.

잭 랜들 역시 꽤 강심장인 투수에 속했다.

-퍼억!

“끄으.”

근데 이건 너무 몸쪽 아니냐고.

제구가 틀어졌는지 공이 피할 수도 없게 엉덩이에 날아와 꽂혔다.

가끔 몸을 스치는 타구에 1루로 걸어나간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정통으로 맞은 적은 처음이다.

그래도 불리한 카운트였으니 마냥 나쁘진 않았다.

“괜찮냐? 어디 맞았어?”

최필주도 급하게 내 몸을 살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보다 나보다 흥분한 관객들이 문제였다.

“마! 돌았나!?”

“이 새끼가! 야! 니가 지금 누구 맞췄는지 아나!?”

얼른 1루로 나가야지, 안 그러면 그물을 뚫고 내려올 기세였다.

그나마 1루로 나가서 손을 흔들자 관객들이 진정했다.

아무튼 결과만 놓고 보면 출루에 성공한 거다.

사인을 확인하고 강주호가 휘두르는 걸 기다렸다.

-따악!

멀리 가는 타구에 2루 베이스 가까이 붙어서 타구를 바라봤다.

잡히면 바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 하지만 중견수가 공을 잡지 못했다.

그 사이를 노려 3루까지 들어갔다.

강주호는 1루에서 멈췄지만, 득점을 올릴 좋은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다음 타자 오준혁은 최소한의 역할을 완수했다.

-따악!

이번에도 높이 뜬 타구.

“아웃!”

잡히긴 했지만 내가 홈으로 들어오는 데엔 충분한 비거리였다.

“나이스! 몸에 맞은 건 괜찮냐?”

“어디 잘못된 곳 있으면 바로 말해야 한다. 너 잘못되면 우리 팬들한테 죽어. 알지?”

“괜찮습니다. 엉덩이 맞았어요.”

어째 축하보다 걱정이 많은 거 같은데?

그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홈런만 치면 사람 머리를 그렇게 때리나?

내가 최고참이 되면 그 문화 자체를 바꿀 거다.

아무튼 맞은 엉덩이 반대쪽으로 힘을 줘서 자리에 앉아 장비를 끼고 있을 때 이호민이 돌아왔다.

“괜찮냐? 얼굴이 반쪽이 됐는데?”

“죽겠어. 엉덩이 존나 뜨거워.”

“나도 엉덩이 아프다.”

“뭐? 너도 뭐 잘못 먹었냐?”

“아까 맞았어. 자, 봐봐. 형이 몸 바쳐 낸 1점.”

이호민한테 자랑스럽게 그라운드를 가리켰지만, 동시에 둔탁한 타격음이 들렸다.

“아웃!”

잭 미켈이 땅볼을 치면서 그대로 이닝 종료.

“힘들면 말해. 바꿔 달라고 하게.”

“던질 수 있을 때까진 던져야지. 후, 빨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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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묘하다.

사실 이호민이 던질 수 있는 이닝은 길어야 4이닝이라고 생각했다.

이호민이 제구가 정교한 타입도 아니었고 볼넷만 많이 안 내줘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 시작 한 시간 반 만에 벌써 6회가 끝났다.

그것도 단 공 10개 만에.

컨디션이 최악인 날에 6이닝 무실점.

팀으로선 너무 좋은 기록이다.

컨디션 안 좋은 5선발이 상대 1선발을 상대로 6이닝 무실점이면 당연히 좋을 수밖에.

근데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가 9번 타자였다.

그 말은 뭐냐.

“지금 퍼펙트 중인 거지?”

이주학도 잘 믿기지 않는 지 나한테 조심스럽게 와서 물었다.

평소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선배들의 잔소리가 날아들겠지만, 다행히 이호민은 더그아웃에 없었다.

이닝이 끝나기 무섭게 화장실로 갔거든.

“어. 맞아.”

“쟤 오늘 아픈 거 아니었어? 뭐 잘못 먹은 게 아니라 혼자 좋은 거 먹다 저러는 거 아니야?”

“진짜 그럴 수도 있겠는데?”

아무튼 이렇게 되자 감독님도 머리가 아프실 거다.

이 상황에서 내린다? 그건 말도 안 된다.

근데 잭 랜들도 못던지고 있는 건 아니라 아까 그 선취점 이후 우리도 득점을 못 올리고 있다.

그래서 점수는 아직 1대0.

불안한 1점 리드에 선발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근데 퍼펙트 중이라 기록이 깨지기 전까진 바꿀 수 없다.

그나마 이호민도 슬슬 괜찮아지는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빈도와 시간이 줄고 있다.

“야. 오늘 왜 이렇게 더그아웃이 조용하냐?”

지금도 나름 금방 돌아와서 나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걸 보면 괜찮아진 것 같은데.

문제는 저런 걸 물어본다는 거였다.

예상은 했지만 이젠 확신이 들었다.

이호민은 자기가 퍼펙트 중인 걸 모른다.

배탈 덕분이라고 할지 아무튼 인지를 못 하는 상황.

평소 이호민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모르고 던지는 게 더 낫다.

그러니까 절대 전광판을 보여주면 안 된다.

근데 저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이주학이 사고 쳤다고?

하지만 마땅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제 어쩔 수 없다.

“다 너 때문이잖아.”

“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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