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야구에 100%는 없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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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세를 잡았다.
선취점을 낸 것도 좋았고, 비슷한 내용으로 공격에서 득점, 수비에서 실점을 막았다는 게 컸다.
같은 상황, 정반대의 결과.
야구도 사람이 하는 스포츠인 만큼 심리적인 데미지가 있을 것이다.
특히 오늘같이 수식어가 많이 붙은 경기에선 이런 상황 하나가 결과를 바꾸기도 한다.
-따악!
“아웃!”
“아웃!”
점수 차 이상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는 데 점수만 한 게 없다.
빠르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인지 돌핀스 타자들의 방망이는 쉽게 끌려 나왔다.
물론 그 결과는 방금 3회 말 병살이었고.
2회에 이은 돌핀스의 두 번째 병살타였다.
“오늘 작두 탔는데? 뭐야 나 몰래 신내림이라도 받았어?”
“선배님 공이 좋아서 그렇죠.”
“계속 낮게 요구하면서 말은 잘해요. 공이 진짜 좋았으면 하준이처럼 가운데 꽂으라 했겠지.”
마지막에 툴툴거리긴 했지만 연속된 병살에 김호기가 신나는지 더그아웃에 들어오자마자 내 어깨를 주물렀다.
“다음 이닝도 잘 부탁드립니다. 후배님.”
기분 좋게 시작한 초반이었지만, 불안 요소가 있었다.
무실점인 결과에 비해 김호기의 피칭 내용은 썩 좋지 않았다.
1회부터 3회까지 전부 주자를 내보냈다.
아직 스코어는 1대0, 1점 차로 아슬아슬한 리드를 이어가고 있는 만큼 이번 공격에 추가점이 필요했다.
1점이라도 좋았고, 그만큼 이번 이닝 선두타자의 역할이 중요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알지? 딱 먹기 좋게 밥상 차려봐.”
“저도 차리는 것보다 먹는 게 좋은데.”
“내 앞에서 맨날 국물까지 다 먹고 찌꺼기만 남기는 놈이 불만 있냐?”
그 중요한 역할은 내가 맡게 됐다.
나를 향해 툴툴거린 강주호는 최근 3할 5푼의 고타율에 비해 별다른 타점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백하자면 범인은 나였다.
조금 억울한 게 이규영, 박은성이 활발하게 출루하면 그걸 가만히 놔둘 순 없지 않나?
아무튼 내가 4회 초 선두타자로 나서게 됐다는 건 내 적시타 이후 우리 타자들이 출루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거였다.
실제로 한명훈은 내 적시타 이후 8타자 연속 범타를 기록했다.
안타를 친 입장에서 말하기 좀 그렇지만 오늘 한명훈의 공은 치기 어려웠다.
이규영을 맞췄던 공을 제외하면 존 밖으로 빠지는 공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공격적인 투구였다.
마치 우리 팀의 누구를 연상케 하는데···.
확신을 갖고 오상엽을 찾아갔다.
“왜?”
“별건 아니고 혹시 한명훈 선배랑 친하세요?”
“명훈이? 어. 내가 신인 때부터 업어 키우다 했지. 이번 비시즌 때도 같이 운동했는데?”
바로 찾았다.
한명훈을 가르친 오상엽이 마운드에서나 평상시나 강조하는 게 있다.
저번 강의에서도 들었다시피 기세.
홈런을 맞더라도 초구는 과감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마치 지금 한명훈이 보여주고 있는 투구처럼 말이다.
자, 이제 저 기세의 출처를 찾았으니 공략을 할 차례다.
타석에 서서 한명훈을 바라봤다.
그러자 잠깐 눈이 마주쳤고, 한명훈이 먼저 최필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소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결국 이런 게 모여서 기세를 만드는 거다.
작은 싸움에서 이겼으니 이 기세를 큰 싸움으로 이어갈 차례다.
한명훈의 구종은 포심, 투심, 체인지업, 슬라이더.
딱히 특별한 것 없는 구종들이다.
하지만 스트라이크 비율이 70%가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결국 카운트가 몰리면 불리한 건 타자고, 그때가 되면 평범한 변화구도 위력적으로 바뀌게 되니까.
-따악!
“파울!”
스읍, 아깝다.
초구에 카운트를 잡으려고 들어오는 포심을 노려봤지만, 끝에 약간 휜 걸 보면 투심이 들어왔다.
그래도 코스가 좋았으면 충분히 장타가 될 만한 타구였는데 라인 밖으로 나가면서 남은 건 스트라이크 하나와 손을 울리는 진동밖에 없었다.
하던 얘기를 마저 하면 저런 선수를 공략하기 위해선 타자들도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낼 수밖에 없다.
어차피 공을 지켜봐봤자 초록 불 대신 노란 불만 들어올 테니까.
특히 투수의 공이 날카로운 날이라면 더더욱 불편해진다.
그 대표적인 예로 멀리 갈 것도 없이 매번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가 가까이 있다.
바로 허하준.
허하준이 매 경기 완봉에 가까운 피칭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점과 연관이 있다.
적극적으로 존 안에 넣으면서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근데 거기에 공도 좋아 타자들이 쉽게 건들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투구 수는 줄어들고 긴 이닝을 효과적으로 던질 수 있게 됐다.
이런 점을 봤을 때 한명훈은 허하준의 하위호환이라고 봐도 됐다.
하지만 이렇게 적극적인 투구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좋았으면 모든 투수가 이렇게 던졌지.
문제는 장타.
구위로 타자를 찍어누르지 못하면 그대로 공이 맞아 나갈 수밖에 없다.
-따아악!
이렇게.
외야수들이 공을 쫓아가다 멈추는 걸 바라보면서 그대로 홈까지 돌아들어 왔다.
강주호와 약속했던 걸 지키진 못했지만 홈에서 본 강주호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치사한 놈. 밥상 좀 차리라니까 차리고 먹고 혼자 다 하냐?”
“밥 차렸으면 설거지까지 해야죠.”
“효자 납셨네. 부모님이 좋아하시겠다. 알겠으니까 빨리 들어가.”
“넵.”
가장 좋아한 건 역시 김호기였다.
“수호야.”
“고맙다는 말은 따로 안 하셔도 되는데.”
“뭐래. 자. 저번에 부탁한 거. 형이 다 준비해놨다. 홈런 값, 이 정도면 되지?”
지난번 등판 때 둘이 있을 만한 식당을 물어봤던 게 드디어 정리가 됐나 보다.
근데 생각보다 수첩에 적힌 곳이 많았다.
“이렇게 많아요?”
“원래 알던 곳도 있었고, 전해져 내려오는 곳도 있어. 나도 찾아보는 김에 추가한 거라 그래. 아무튼 그걸로 홈런은 퉁이다?”
“감사합니다.”
수첩을 조심스럽게 챙기고 김호기가 내민 주먹에 나도 주먹을 갖다 댔다.
“결제됐습니다.”
내 드립에 김호기가 헛웃음을 지었다.
“너도 가만 보면 미친놈이라니까?”
“칭찬이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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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양 팀의 젊은 선발투수는 성공적으로 제 역할을 마쳤다.
김호기는 6이닝 1실점, 한명훈은 7이닝 3실점.
두 투수 다 할 말이 있는 성적이었다.
김호기는 매 이닝 주자를 출루시켰지만, 연속타는 허용하지 않으면서 실점을 최소화했다.
한명훈은 효율적인 투구로 김호기보다 긴 이닝을 소화하면서 돌핀스의 필승조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두 선발투수의 호투가 있는 만큼 이번 경기는 양 팀 모두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경기였다.
마린스는 2점의 리드를, 돌핀스는 2점을 따라가기 위한 총력전이 펼쳐졌다.
먼저 김호기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김동준.
자신의 1군 데뷔전이 창원 구장이었던 만큼 적당한 긴장감을 안고 마운드에 올랐다.
그에 맞춰서 돌핀스 벤치도 움직였다.
[김동준 선수를 상대하기 위해 대타가 나옵니다! 좌타자 김경민 선수입니다!]
[만약 이 타자를 내보내면 마린스 배터리가 상당히 골치 아파질 겁니다. 뒤에 상위타순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좌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지만 마린스 벤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김동준의 좌타 상대 피안타율은 0.231.
우타 상대 피안타율(0.212)보단 높지만 그게 필승조로 자리 잡은 김동준을 바꿀 이유는 되지 않았다.
주자가 쌓이면 2점은 눈 깜짝할 사이에 따라잡힐 수도 있는 만큼 김수호는 적극적인 승부를 요구했다.
[초구! 쳤습니다. 2루수 잡아서 1루로! 아웃입니다!]
[김동준 선수가 큰 고비 넘겼습니다. 김경민 선수는 너무 급했어요. 지금은 한 방보다는 출루가 필요한 시점이었는데요.]
뒤이어 오늘 컨디션이 좋은 박광민이 출루에 성공하면서 아쉬움은 커졌다.
하지만 1사 1루라도 점수는 나올 수 있다.
이젠 2번 타자 자리에 적응한 우오준이 외야로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다.
[쳤습니다! 중견수 방면! 아, 잡았습니다! 슈퍼 캐치 이규영! 저 타구를 잡는군요!]
[이건 이규영 선수가 잘 잡았다고밖에 설명할 말이 없네요. 타구 판단, 점프 타이밍, 포구까지 완벽했습니다!]
펜스 앞에 서서 정확한 타이밍에 점프하면서 그대로 우오준의 타구를 낚아챘다.
[돌핀스 팬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보고 싶지 않았던 장면일 겁니다.]
못 잡았다면 최소 1사 2, 3루인 상황이 2사 1루로 바뀌었다.
이제 스티븐 오웬이 타석에 들어섰다.
[스티븐 오웬, 오늘 홈런 하나가 있습니다! 초구! 쳤습니다! 내야 높이 뜬 공, 유격수가 잡아내면서 쓰리 아웃! 김동준이 이규영의 도움을 받고 2점 차를 지켜냅니다!]
그리고 돌핀스도 필승조가 올라왔다.
이젠 당당한 셋업맨으로 자리 잡은 최진하가 삼자범퇴.
기세를 살려 이용기를 상대로 4번 타자 한상욱이 솔로 홈런을 치면서 점수는 1점 차.
하지만 나머지 타자들을 처리해내면서 결국 리드를 지켰다.
돌핀스 역시 새로운 마무리 이솔찬까지 꺼내면서 오늘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그렇게 9회 말, 돌핀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스코어 3대2.
이 치열했던 경기를 끝내기 위해 익숙한 음악과 함께 오상엽이 마운드로 향했다.
돌핀스 팬들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그저 오상엽을 바라봤다.
언제나 든든했던 공 끝이 이젠 본인들을 향한다.
그래도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오상엽의 블론 세이브 기록을 꺼내면서 혹시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스트라이크 아웃!”
그 소리는 경기를 끝내는 주문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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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3 : 2 창원 돌핀스]
[많은 것이 걸린 양 팀 간의 1차전, 웃는 건 마린스였다!]
[결승 득점 & 8회 호수비 이규영, 삼자범퇴 세이브 오상엽. 친정 사랑은 없었다.]
[시즌 4호 홈런 김수호 단독 홈런 1위 등극! 팀의 9연승 이끌어.]
[개막 이후 연승 타이까지 단 1승. 이호민 앞세워 연승을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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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많은 것이 걸린 2차전.
많은 관심을 받은 그 경기는 하루 미뤄지게 됐다.
갑자기 내린 비에 경기가 취소되자 마린스 팬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ㄴ 3차전 선발 허하준인 거 보고 일부러 방수 대충 한 거 같은데?
ㄴ 아니 경기 직전에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잖아 ㅡㅡ
ㄴ ㅋㅋㅋㅋ 아니 내려봤자 얼마나 내렸다고. 지금 해 떴는데? 30분 기다렸다 야구하면 되는 거 아님?
ㄴ 와 ㅋㅋㅋㅋ 낼 돌핀스 선발 떴다. 우린 이호민 그대로인데 쟤넨 잭 랜들 ㅋㅋㅋㅋㅋㅋㅋ 어후
ㄴ 졸핀스 수준 ㅉㅉ
ㄴ 와 개졸렬하네? 허하준 무서워서 일부로 우취 만들고 거기에 선발 당겨쓰기? 에라이.
진실은 돌핀스 구단만 알겠지만 여론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사정이 어떻든 선수들은 당장 찾아온 휴식을 즐겼다.
“형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제가 겨울에 찾아왔어야 했는데. 어이쿠, 제가 들겠습니다! 야, 수호야! 빨리빨리 움직여! 준우야! 삼촌 왔다!”
결국 김수호를 설득한 이규영이 우오준의 집을 찾았다.
우오준의 아내는 천연덕스러운 이규영의 행동과 김수호의 등장에 결국 못이기는 척 이규영을 집으로 들여보냈다.
“실례하겠습니다.”
“어, 수호 왔냐.”
김수호의 등장에 우오준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대했지만, 그의 가족들은 달랐다.
“허억! 김수호!”
이규영의 품에 반 강제적으로 안겨있던 우오준의 아들이 김수호의 이름을 듣자 눈이 커졌다.
“우준우! 김수호가 뭐야! 수호 형이라고 해야지!”
“잠깐만. 아니 나는 삼촌인데 수호는 왜 형이야?”
“얘랑 쟤랑 나이 차이가 열두 살밖에 안 되는데 무슨 삼촌이야.”
우오준과 이규영이 별것도 아닌 걸로 티격태격해도 우준우의 눈에는 김수호밖에 안 들어왔다.
우준우는 모태 돌핀스 팬이지만 기본적으로 야구팬이다.
“그, 형. 저 사인 좀 해주세요.”
“그래. 어디다 해줄까?”
용기 낸 말에 내일 학교에서 자랑할 일이 잔뜩 생긴 우준우가 신난 표정으로 김수호를 끌고 방으로 향했다.
“야! 준우야!”
뒤늦게 이규영이 나라 잃은 표정으로 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절망도 잠시, 코를 자극하는 냄새에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향했다.
“아이고, 저 주십쇼. 제가 옮기겠습니다.”
창원의 한 아파트에 오랜만에 떠들썩한 온기가 돌았다.
그렇게 짧은 휴식은 순식간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