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53화 (153/203)

153화 뉴 페이스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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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팬들은 순위표를 볼 때마다 무언가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라면 최하위권을 두고 마린스와 피닉스가 싸우고 있어야 했고 최상위권을 두고 돌핀스와 프렌즈가 싸워야 했다.

그나마 프렌즈가 2위를 하고 있긴 했지만, 마린스 1위, 피닉스 5위, 돌핀스 6위라는 성적표는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직 시즌 초반이라고 치부하기엔 마린스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드디어 마린스와 돌핀스의 경기가 다가왔다.

8연승을 거두고 있는 만큼 분위기가 좋은 마린스, 그리고 주전 중견수, 마무리, 1선발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고 있는 돌핀스의 대결.

그나마 우오준이 이규영의 빈자리를 메꿀 만큼 맹타(타율 0.414)를 휘두르고 있지만 34살의 나이로 언제 페이스가 줄어들지 모른다.

지난 한국시리즈의 복수와 FA 이적생들이 있는 만큼 돌핀스 선수들이 전의를 불태운 건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물론 그건 한국시리즈 재연을 꿈꾸는 마린스 선수들과 이적한 이규영도 마찬가지였다.

오상엽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규영은 처음으로 창원 구장의 원정 더그아웃에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봤다.

푸른색 유니폼 대신 검은 유니폼을 입고 창원으로 돌아온 소감은 간단했다.

“김수호! 오늘 나 출루하면 무조건 안타 쳐라. 아니, 그냥 홈런 때려버려. 알겠지?”

친정팀이라 살살하겠다? 아니, 친정팀이니까 더욱더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뭐 인마?”

공교롭게도 이규영이 그 말을 했을 때 더그아웃에 놀러 온 우오준이 딱 듣고 말았다.

“거, 남의 팀에 와서 엿듣는 건 좋은 습···. 그악. 아니 형! 이건 폭력이죠!”

오히려 당당하게 까불던 이규영을 폭력으로 제압한 우오준이 여기 온 두 번째 목적을 찾았다.

“수호야. 살살하자.”

“아, 이것 좀 풀어주세요. 아 형!”

실시간으로 팀의 1번 타자가 제압당하는 광경을 목격한 김수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딱 저번 한국시리즈만큼만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이규영의 목을 조르던 팔에 힘이 더 들어갔다.

“악! 아니 말한 건 쟨데 왜 나한테 그래요!”

“아, 미안.”

겨우 풀려난 이규영이 씩씩거리면서 우오준에게 항의했다.

“안 되겠다. 오늘 제 시즌 첫 번째 홈런 갑니다. 외야수들한테 다 구경할 준비 하라고 하십쇼!”

“홈런? 네가?”

다시 우오준이 다가오자 움찔거린 이규영이었지만, 이내 손이 자신의 등을 두드리자 의아한 얼굴로 우오준을 바라봤다.

“쯧. 잘해라 규영아. 거기까지 가서 못해서 구박받으면 쪽팔리잖아.”

“걱정 안 하셔도 잘합니다. 그나저나 오늘 경기 끝나고 오랜만에 형수님 좀 뵈러 가도 됩니까? 집밥을 먹고 싶네.”

“아, 맞다. 와이프가 너 오면 물 한 잔도 안 줄 거라고 하더라. 그래도 올래?”

그 말에 오늘 처음으로 이규영의 표정이 울상으로 바뀌었다.

“아, 진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너무 하시네. 그럼 포장은? 포장은 안 돼요?”

“포장 같은 소리 하네. 아 근데 수호는 한번 보고 싶다고 하더라. 수호야, 오늘내일 중에 우리 집에 한 번 올래?”

“저요?”

“어. 와이프가 너랑 친하다니까 믿을 생각을 안 하네. 약속 없으면 한 번 와.”

“야. 무조건 간다고 해. 형수님 음식 진짜 미쳤다. 무조건 가야지. 형. 저랑 수호 세트인 거 아시죠? 같이 갑니다.”

흥분한 이규영과 다르게 갑자기 한 제안에 김수호는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으면 갈게요.”

“야. 괜찮으면이 어딨어! 아, 진짜 무조건 가야 된다니까.”

“오케이. 그러면 오는 거로 알게. 오늘 경기 준비 잘해라.”

그렇게 우오준이 떠나자 이규영의 얼굴에 약간 씁쓸한 표정이 지어졌다.

하지만 그건 곧 사라지고 김수호에게 다시 애원하기 시작했다.

“야! 무조건 가야 된다고!”

“선배가 이번 시리즈에 홈런 한 번 치면 갈게요. 됐죠?”

“미친. 그냥 안 간다고 말해라.”

참고로 이규영의 통산 홈런은 34개였다.

매년 4~5개 정도의 홈런을 치긴 했지만, 치고 싶다고 칠 수 있는 타자는 아니었다.

“아오, 스윙을 좀 더 퍼 올려야 되나? 야. 스윙 좀 봐줘봐. 이건 어떠냐? 제대로 맞으면 우측 담장 그냥 넘기지 않을까?”

“내야 뜬공인데요?”

“응 꺼져. 홈런이야.”

“내기할래요?”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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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생활을 하면서 데뷔한 팀에서 은퇴하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FA로 팀을 바꾸는 일도 있지만, 트레이드, 방출 등 본인 의지와 상관없는 경우도 많았다.

강주호 같은 케이스는 오히려 낫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매달리는 게 선수가 아니라 구단이 되면 본인이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선수는 그러지 못했고, 씁쓸한 표정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는 일이 많았다.

그나마 이규영은 본인 선택으로 한 결정이라 아쉬움은 없었다.

이규영이 입장과 동시에 헬멧을 벗으며 한때, 아니 지금도 자신을 열정적으로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에 박수로 화답하는 돌핀스 팬들.

그렇게 박수가 끝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던 이규영이 이제 돌핀스 선수가 아닌 마린스 선수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투수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이규영이 돌핀스 투수들을 상대한 경험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됐다.

그런 만큼 낯선 투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규영은 달랐다.

외야 수비의 기본은 첫발을 어떻게 떼느냐에 달려 있다.

그 첫발을 정하는 데 있어서 투수의 성향은 꽤 많은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바깥쪽과 몸쪽 승부 중 어느 곳을 선호하는지에 따라 좌우의 첫발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곤 했다.

물론 그게 타구의 방향을 결정하는 전부는 아니지만, 알고 있어서 나쁠 건 없었고 이규영은 돌핀스 포수 최민규에게 종종 투수들의 성향을 묻곤 했다.

그게 돌고 돌아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이규영이나 최민규나 예상하지 못했다.

‘명훈아. 형 홈런 하나 치게 가운데 하나 꽂아봐라.’

오늘 돌핀스의 선발로 올라온 한명훈은 꽤 저돌적인 선수다.

몸쪽 승부를 피하지 않는 투수.

최필주의 사인이 몸쪽으로 바뀔 때까지 고개를 돌린 한명훈이 원하는 사인이 나오자 드디어 투구를 시작했다.

이규영은 최명훈이 신인일 때부터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은 좋은 선배였다.

그런 만큼 오늘 승부에서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퍼억!

“악!”

그런 생각 때문에 힘이 들어가서일까.

공이 손에서 빠졌고 그대로 이규영의 등에 가서 맞았다.

“으, 저 새끼. 축하빵을 이렇게 때리냐.”

당연히 고의로 그럴 리 없다는 걸 아는 이규영이 등을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75억 받았으면 빨리빨리 나가라.”

“네네. 60억님. 갑니다.”

혼잣말에 대답한 최필주의 말에 통증을 참고 일어섰다.

그러자 한명훈이 모자를 벗고 사과를 했고 이규영이 주먹을 한 번 들어 올리면서 분위기를 풀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규영이 괜찮다고 한들 결과는 무사에 주자가 나간 거였다.

이규영이 까다로운 주자라는 걸 한명훈이 모를 리 없었고 타석에 들어온 박은성 대신 자꾸 이규영이 신경 쓰이는지 1루를 자꾸 쳐다봤다.

계속된 견제에도 리드폭을 유지하던 이규영이 순식간에 내야를 뒤흔들었다.

“볼!”

“뛰었다! 2루!”

“세이프!”

창원 구장에서 이규영이 도루를 한다는 건 항상 좋은 의미였던 돌핀스 팬들에겐 딱히 달가운 장면은 아니었다.

그나마 박은성의 타구가 유격수 우오준이 잡아내면서 주자는 그대로 2루.

그리고 타석엔 돌핀스 팬들은 도저히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선수, 김수호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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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야! 한 방 쌔리자!”

“김수호 홈런! 김수호 홈런!”

분명 오늘 화요일에 홈 경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들리는 함성은 홈의 그것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저번 대구 원정도 비슷했다.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큰 힘이 됐다.

스포츠에서 홈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작년에 1군에 막 올라왔을 때 당시 원정 경기는 일방적으로 상대 팀의 응원을 들으면서 경기를 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반반, 아니 그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사실상 홈팀의 이점 중 하나가 없어진 것과 같았다.

“마!”

“마!”

“마!”

거기에 투수가 이규영을 향해 견제구를 뿌리자 들리는 특유의 응원에 이규영이 흙을 털며 씨익 미소 짓는 게 보였다.

저 사람 즐기는 거 같은데.

그래도 한명훈은 흔들리지 않고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두 개의 스트라이크.

2구는 바깥쪽으로 나가는 공인데 약간 아쉬웠다.

프레이밍이 없었으면 그냥 볼이 될 공인데.

그래도 저런 코스를 한두 개 알아두면 나중에 포구할 때 도움이 되니 머릿속에 새기고 타석에 집중했다.

“볼!”

바깥쪽으로 빠지는 147km의 빠른 공이 들어왔다.

이제 문제는 다음 공인데.

2스트라이크 이후 바깥쪽 빠른 공은 일종의 정석과 같다.

전부 이 다음 공을 위한 작업이었고, 보통 변화구, 그중에서 오늘 한명훈의 구종을 생각해보면.

-따악!

슬라이더.

존보다 낮게 들어오는 슬라이더를 쳐내려고 왼쪽 무릎을 굽히면서 타격했다.

코스에 비해 꽤 잘 맞은 타구가 그대로 2루 베이스 위를 뚫고 외야로 나갔다.

1루로 달리면서 이규영을 봤다.

멈출 생각이 없는지 속도를 더 살리면서 3루를 통과했다.

동시에 중견수 최강민도 공을 잡고 홈으로 던졌다.

‘공이 더 빠른데?’

송구가 꽤 정확하게 홈으로 향했다.

하지만 송구가 바운드 된 위치가 좋지 못했다.

“세이프!”

결국 최필주가 잡지 못하면서 이규영이 홈에 들어왔다.

후속타 불발로 내가 홈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선취점을 냈다.

“야. 형이라 홈에 들어온 거 알지? 형이 네 타점 하나 챙겨줬다.”

더그아웃에 들어가자 이규영이 으쓱대면서 말했다.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앞으로 형이 많이 챙겨줄게. 형만 믿고.”

선취점을 낸 만큼 팀 분위기는 좋았다.

오늘 선발 투수인 김호기도 웃으면서 마운드에 올랐다.

하지만 그 웃음이 오래가진 않았다.

-따-악

이제 이규영 대신 돌핀스의 톱타자가 된 박광민이 깔끔한 안타를 만들어냈다.

이어서 타석엔 우오준.

“규영이 웃는 거 보니까 열 받네.”

“원래 웃상이잖아요.”

“쟤가? 쟤 정색할 때 못 봤냐?”

“자주 보긴 했죠.”

특히 저번 한국시리즈에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정색하는 이규영을 봤었다.

우오준도.

“너 이상한 생각 중이지?”

“아뇨?”

귀신같은 우오준의 말에 빠르게 부정하고 김호기에게 사인을 보냈다.

아무래도 병살을 노리고 낮게 승부하는 게 좋긴 한데 우오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딱!

완전히 힘이 죽은 타구가 1루로 흘렀다.

의도적으로 밀어치면서 주자가 2루에 들어갔다.

1사 주자 2루.

그리고 아까 좋은 송구를 보여줬던 최강민이 타석에 들어왔다.

한 방이 있는 좌타자.

-따악!

꽤 잘 맞은 타구가 2루 베이스 위를 통과했다.

박광민은 3루에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규영 역시 빠르게 달려 나오면서 타구를 잡았다.

마스크를 벗고 주자와 공을 지켜봤다.

이규영 역시 송구가 좋게 날아왔다.

하지만 바운드 된 위치가 썩 좋진 않았다.

바운드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약간 뒤로 물러나면서 공을 잡았다.

물러나는 바람에 태그 타이밍이 늦었다.

하지만 그게 세이프라는 말은 아니다.

어차피 주자는 홈 베이스를 노릴 수밖에 없다.

홈 베이스를 노리는 박광민의 손 대신 그 손이 노리는 홈 베이스를 향해 미트를 뻗었다.

손이 베이스에 닿는 것보다 먼저 내 미트가 손에 닿았다.

“아웃!”

“나이스!”

박광민이 억울한지 비디오판독까지 신청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 사이 주자가 2루에 들어갔지만, 다음 타자를 땅볼로 처리하면서 무실점.

이규영이 더그아웃에 들어오기까지 기다렸다 말을 꺼냈다.

“제가 보살 하나 챙겨드렸어요. 앞으로도 저만 믿으세요.”

“...이거 하려고 기다렸냐?”

아까 타점과 이번 홈 승부보다 이규영의 똥 씹은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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