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뉴 페이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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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도루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아, 지금 도루했어야지.”
“아이고, 저걸 뛰네.”
큰일 났다.
1회 딜레이드 스틸에 성공한 후부터 팀에서 도루를 시도할 때마다 이규영의 훈수가 끊이질 않고 있다.
사실 현역, 아니 역대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이규영의 도루 실력은 최상위권이다.
그만큼 이규영의 말을 잘 들어보면 배울 점이 많았다.
그래, 인정한다.
근데 그걸 왜 내 옆에 딱 붙어서 말하냐고.
내 통산 도루는 스타즈 이민수를 상대로 했던 1개가 전부인데 말이다.
그나마 이규영을 말려줄 강주호나 오상엽 같은 선배들은 그냥 모른 척하고 있었다.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강주호한테 말려달라고 말해봤지만.
“팀에 와서 저렇게 좋아하는 거 처음 보는데 좀 들어줘라.”
라면서 거절당했다.
결국 다시 이규영의 곁에 와서 앉았다.
혼자 온 건 아니고, 같이 들을 타자 한 명을 데려왔다.
“나는 왜?”
“저 강의는 네가 들어야지.”
이규영이랑 형 동생 할 땐 언제고 인제 와서 도망치려고 하다니 나만 당할 순 없지.
아무튼 이주학까지 합류하자 신이 나는지 이규영의 말은 더 빨라졌다.
“자, 투수 봐봐. 도루의 기본은 타이밍이라고 했지? 가장 좋은 건 저 투수가 언제 투구 동작에 들어가느냐를 아는 거야. 근데 그건 영상 수백 번 틀어놓고 봐도 알까 말까 한 거지. 근데 투수가 한두 명이냐? 결국 우리는 모든 투수들을 알 수 없다는 거야. 그렇다면 뭐가 필요하냐.”
이규영이 손으로 어깨와 발을 가리켰다.
“보통 우완 투수가 홈에 던질 때 반드시 움직이는 부위, 왼발 뒤꿈치. 여길 들었을 땐 무조건 홈이라는 거지. 그리고 사이드암 투수는 어깨. 우리 밥줄이 여기에 달렸다. 사이드암이 어깨를 내렸다? 무조건 뛰어. 오케이?”
“좌완은요?”
“무릎을 들었을 때 직선이면 견제. 안쪽으로 들어가면 투구. 대신 밀당을 조금 해야 해. 무릎 세우면서 홈으로 던지는 것 같아도 이걸 이용하는 놈들이 있거든. 그래서 좌완 투수가 나오면 약간 몸을 1루 쪽으로 치우치는 거야. 그리고 던지면 바로 출발.”
이주학이 뭔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본인의 다리와 어깨를 여러 번 움직였다.
그런 이주학에게서 시선을 뗀 이규영이 이번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넌 팁이 뭔데?”
“예? 무슨 팁이요?”
“내 도루를 잡아낸 팁 말이야. 어떻게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잡냐? 거기에 선발이 호기일 때도 잡은 적 있었지?”
역시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할 말이 이거밖에 없었다.
“운이 좋았죠.”
“아니! 그런 말 말고! 제대로 좀 말해봐!”
이규영이 길길이 화냈지만 진심이었다.
김호기가 투수였을 때는 송구 방향이 너무 좋았고, 다른 경우에도 이규영만 뛰면 코스가 너무 좋았다.
이걸 운 말고 다른 말로 표현하면 뭐가 있을까?
“제 재능이 더 뛰어나서?”
“꺼져! 아오! 개새끼 진짜.”
이규영에게 쫓겨나자 드디어 자유가 찾아왔다.
역시 사람은 진실하게 살아야지, 이거 봐 강주호한테 말해도 안 되던 게 바로 해결됐잖아.
“쟨 갑자기 왜 저기서 웃고 있냐?”
“저도 모르겠는데요? 뭐 좋은 일 있나?”
주변에서 들리는 말은 애써 무시하고 오늘 경기에 대해 말하자면 오늘 양 팀 선발이 모두 사이드암 투수답게 1루에 주자가 나가기만 하면 코치진의 손이 바빠졌다.
그나마 느린 선수가 나가면 괜찮았지만, 6회 초밖에 안 됐는데 우리만 네 번의 도루 시도, 세 번 성공, 울프즈는 세 명 시도에 한 명 성공이었다.
우리가 앞서고 있긴 했지만, 점수를 보면 울프즈도 할 말이 있는 상황이었다.
6회 초를 앞두고 점수는 4대2, 우리의 리드.
이번 경기에서 김호기의 마지막 이닝이 될 6회 초가 관건이다.
김호기의 공이 충분히 눈에 익은 타자들을 막아내야 했다.
“세 타자, 딱 세 타자만 막자.”
나한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중얼거린 김호기가 마운드로 나섰다.
하지만 시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악!”
초구에 요구한 슬라이더가 손에서 빠졌는지 타자의 등을 때렸다.
“제구 존나 구리네.”
큰 무리는 없는지 타자가 중얼거리면서 1루로 나갔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1루 주자는 오늘 도루를 성공시켰던 적이 있었고, 대타로 들어온 차도훈도 만만한 타자는 아니다.
이 타자까지 출루시키면 울프즈의 상위 타순으로 연결된다.
그건 반드시 막아야 했다.
‘일단 초구는 낮게 가죠.’
낮은 쪽 제구가 그리 좋진 않았지만 한 방이 있는 타자를 상대로 선택지는 넓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김호기가 견제를 한 번 하고 던졌지만, 공이 그대로 바운드가 돼버렸다.
“2루!”
막긴 했지만, 약간 옆으로 흐른 공에 1루 주자가 스타트를 끊었다.
공이 흐르긴 했지만, 주자도 공을 보고 출발한 만큼 많이 늦지 않았다.
공을 2루로 강하게 던지자 마스크가 벗겨지면서 땅에 떨어졌다.
그렇게 훤해진 시야에 보이는 2루 상황.
“아웃!”
“김수혼데! 김수혼데! 김수혼데!”
오늘만 세 번째 들리는 팬들의 함성에 남몰래 주먹을 움켜쥐고 마스크를 주웠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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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크 아웃!”
결정적인 순간에 친 홈런만큼이나 짜릿했던 도루저지에 힘을 얻은 김호기가 6회 초를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6이닝 2실점.
첫 선발등판에 좋은 기록을 낼 수 있었던 건 8할이 김수호 덕분이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냐?”
당연히 김호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마운드에서 내려오자마자 신난 표정으로 김수호에게 말을 걸었다.
“음. 선배님 잠시만요.”
그 말에 김수호가 김호기를 끌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다.
“뭔데?”
김수호가 쭈뼛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 혹시 부산에 여자랑 둘이 밥 먹을 만한 곳 없나요?”
“너,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았다. 형이 다 알아서 해줄게.”
야구계엔 사직 CCTV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구단이 선수들을 감시하는 사건을 계기로 부정적인 말로 쓰였다면, 요즘엔 마린스의 호성적에 힘입어 선수들이 가는 어디에나 팬들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김호기는 마린스의 리포터와 연애하면서 지금까지 들키지 않은 능력자였다.
그렇게 김호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라운드에 있을 땐 살벌한데 저런 면도 있네.”
저 말을 들으니 오랜만에 나이에 맞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아무튼 자신에게 부탁한 이상 노하우를 모두 전수할 생각이었다.
계속 생각나는 김수호의 모습에 실실 웃는 모습에 지나가는 선수들마다 의아한 듯 쳐다봤지만, 오늘 성적이 좋아서 그러겠지 하고 넘어갔다.
6회 말 마린스의 공격은 바뀐 투수를 공략하지 못하면서 무득점으로 끝났다.
김호기에 이어 7회 초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박상훈.
“볼!”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올라온 좌투수였지만 9번 타자인 안문빈에겐 볼넷.
결국 주자만 쌓은 채 내려갔다.
그리고 올라온 투수는 정태석, 타석엔 1번 타자 조지 애서튼이 섰다.
장타력과 주력을 모두 갖춘 선수.
그리고 그 능력을 오늘도 증명해냈다.
-따악!
[쭉 뻗는 타구! 우익수 잡지 못합니다! 아, 공을 잠깐 놓친 사이에 1루 주자는 홈으로! 타자주자는 3루까지 들어갑니다!]
우익수 방향의 큰 타구를 날린 조지 애서튼이 순식간에 3루까지 들어가며 경기는 4대3 한 점 차.
다음 타자는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끝끝내 플라이를 허용하며 4대4 동점이 됐다.
허무하게 날아간 김호기의 승리.
그나마 김규완를 삼진 처리하며 한숨 돌렸지만, 최악의 결과였다.
그래도 승리가 날아간 김호기가 가장 먼저 나서서 선수들을 위로했다.
“타자들이 1점 내주겠지. 안 그러냐 수호야?”
하지만 경기는 김호기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4대4 동점 상황에 투수들은 이 점수를 지켜냈고, 9회까지 동점으로 끌고 왔다.
이제 9회 초, 울프즈의 공격.
9번 타자 안문빈부터 시작된 타순에 마린스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투수를 선택했다.
[이젠 익숙해진 유니폼, 마린스의 새로운 마무리 오상엽 선수가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시즌 두 경기에 나와 1세이브, 0.0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입니다.]
-따악!
“아웃!”
지난 일요일과 화요일 경기에 등판하며 세 경기 연속 등판한 오상엽이 첫 타자를 완벽하게 잡아내며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이제 문제의 타자, 조지 애서튼의 타석.
오늘 조지 애서튼은 뜨거웠다.
비록 도루 실패가 있었지만, 직전 타석에서 3루타를 기록하면서 사이클링 히트까지 홈런 하나만 남겨둔 상황.
9회 초, 동점, 사이클링 히트.
이 모든 걸 조합했을 때 타자의 몸에 힘이 실리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조지 애서튼도 기록을 인지하고 있었고 충분히 때려낼 자신이 있었다.
“볼!”
초구는 바깥쪽 빠진 속구.
‘148km. 충분히 칠만 하다.’
7회에 정태석을 상대로 3루타를 쳤던 공과 구속이 비슷했다.
이전 타석의 기억을 살리며 타이밍을 가늠한 조지 애서튼이 몸쪽을 찌르는 공에 반응했다.
-따악!
“파울!”
파울을 치고 잠시 인상을 쓴 그가 잠시 타석을 벗어났다.
‘타이밍이 밀린다.’
손을 찌르르 올리는 게 확실히 아까 상대한 정태석과 구위부터 다른 오상엽의 공에 배트를 몇 번 돌려보고 다시 타석으로 돌아왔다.
이제 볼 카운트 1-1.
오상엽의 한 이닝 평균 공 개수는 15개 남짓.
항상 공격적인 승부를 한다는 뜻이었다.
그 정보를 머리에 새겼던 조지 애서튼이 강하게 돌렸다.
“스트라이크!”
하지만 그의 생각을 비웃듯 떨어지는 공에 혀를 찼다.
몰린 카운트.
그리고 마린스의 배터리가 이번 이닝 처음으로 높은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가장 까다로웠던 타자를 150km의 하이 패스트볼로 삼진 처리한 배터리가 기세를 살리며 다음 타자까지 마무리했다.
“기세 좋았다.”
오상엽이 투구 내용이 마음에 드는 듯 김수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마린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선두타자는 외야에서 뛰어오고 있는 이규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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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울프즈의 타선이 좋은 만큼 마린스 역시 강타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규영부터 시작하는 타순.
시리즈 첫 경기를 패배로 시작한 만큼 오늘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했다.
“태형이 준비시켜!”
울프즈 감독의 선택은 마무리 유태형.
한 이닝은 충분히 무실점으로 막아낼 수 있는 투수였다.
하지만 이규영 역시 한 번의 출루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한 선수.
-딱!
“세이프!”
1-1의 카운트에서 허를 찌르는 기습 번트로 1루까지 살아나갔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박은성이 곧장 번트 자세를 취했다.
-딱!
“파울!”
-딱!
“파울!”
하지만 두 번의 번트 실패.
이후 카운트를 2-2까지 끌고 간 박은성이었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변화구에 속아 삼진을 당했다.
마린스 배터리가 조지 애서튼이라는 강타자를 상대할 때 고전한 것처럼 울프즈 배터리 역시 침을 꿀꺽 삼키고 타석에 들어오는 타자를 바라봤다.
‘김수호.’
‘거르는 건···. 말도 안 되지.’
원 아웃인 만큼 확실한 장타가 아니라면 아무리 1루 주자가 이규영이라지만 홈에 들어오긴 어렵다.
반면 위치가 2루가 되면 얕은 타구에도 들어올 수 있는 게 이규영이다.
애초에 김수호 뒤에 있는 강주호가 만만한 타자도 아니었다.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울프즈 입장에선 최상의 결과는 병살.
그걸 위해 낮은 공 위주의 볼 배합을 이어갔다.
“볼!”
“스트라이크!”
“볼!”
하지만 공 3개를 볼 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 김수호의 방망이에 울프즈 포수가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더 몰리면 끝이다.’
속구가 됐든, 변화구가 됐든 승부수를 걸 타이밍이었다.
‘변화구? 포심?’
고심 끝에 선택한 공은 2, 3구와 비슷한 코스인 바깥쪽.
대신 구종을 포심으로 바꿨다.
“뛰었다!”
-따아악!
자신이 김수호와 이주학에게 알려줬던 것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뛰기 시작한 이규영이 곧 들리는 타구음에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그대로 전력으로 질주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타구 파악을 마친 이규영이 2루를 돌아 3루로 가는 동안 우익수 조지 애서튼이 공을 잡기 위해 전력으로 달렸다.
잡으면 더블 아웃으로 연장, 못 잡으면 경기 종료.
그리고 승자는.
“와아아아아아!”
이규영이었다.
김수호의 빠른 타구가 결국 우익수의 글러브가 도착하기 전에 땅에 닿았다.
“백 홈! 백 홈!”
조지 애서튼이 땅과 펜스를 닿고 튀어나온 공에 급하게 홈으로 공을 던졌지만, 공이 내야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이규영이 홈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세이프!”
“우와아아아아!”
심판의 콜이 들리자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물병을 들고 김수호와 이규영에게 달려들었다.
“이규영 폼 미쳤다! 와!”
“저걸 어떻게 알고 뛴 거예요?”
“김수호 나이스! 이겼다!”
선수들의 흥분 섞인 말과 관중들의 함성이 섞여 혼란스러운 그라운드에서 김수호의 귓가에 이규영의 말이 꽂혔다.
“이게 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