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봄린스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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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연석의 구단 스케치 – 10. ‘원 나우’ 부산 마린스]
지난 시즌 우승팀인 부산 마린스가 시즌 종료와 동시에 말 그대로 원 나우를 선언했다.
데뷔 직후 투타의 중심이었던 허하준과 강주호와의 이별을 앞둔 마린스는 그 마지막 1년을 장식하기 위해 스토브리그에서 광폭 행보를 보였다.
국가대표 중견수 이규영을 2년 옵트 아웃이 포함된 계약으로 잡고 불안했던 마무리 역시 오상엽을 잡으면서 해결했다.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던 외국인 3인방과도 재계약에 성공했다.
전력 누수가 없는 마린스는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봤듯이 빈틈없는 막강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팬들의 기대치가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불안한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린스의 고질적인 문제인 주전과 백업 선수 간의 격차, 미래의 얘기지만 1선발과 4번 타자의 예고된 공백, 그리고 올해 2년 차를 맞는 세 명의 선수, 김수호, 이호민, 이주학이 가장 큰 불안 요소다.
그나마 이호민과 이주학은 박지호, 이민상이라는 대체제가 있지만 김수호는 대한민국에 그 어떤 선수를 데려와도 공백을 메꾸기 어렵다.
타선의 강화, 투수진과 내야진의 안정화 등 마린스의 중심에는 김수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김수호의 이번 시즌 성적에 마린스의 ‘원 나우’가 달려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1군에 합류한 김수호는 반년 사이에 수많은 부담과 불신을 이겨내고 정상에 섰다.
과연 이번 시즌에도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지, 그리고 팀의 ‘원 나우’를 이뤄낼 수 있을지 이번 시즌 마린스의 성적이 궁금하다면 김수호를 바라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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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온 마린스는 거침이 없었다.
며칠 동안 집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며 시범경기를 준비한 선수들은 첫 경기를 그야말로 박살을 내버렸다.
[부산 마린스 13 : 2 서울 호올스]
일본의 강팀,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압도적인 피칭을 보였던 허하준은 한국 복귀 경기에서도 좋은 피칭을 보여줬고 쉴 곳 없는 타선은 호올스 투수들을 압도적으로 공략했다.
호올스와의 시범경기 2연전을 연승으로 장식한 마린스는 다음 제물을 찾아 인천으로 갔다.
그에 맞서는 스타즈는 선발투수로 이민수를 냈지만, 최필주의 공백은 생각보다 컸다.
흔들리던 이민수는 쉴 틈 없는 마린스 타선에 3이닝 5실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이후 올라오는 투수들마다 실점을 기록하며 자신들의 홈에서 참패를 당한 스타즈가 다음 경기를 준비했지만, 선발인 이호민 대신 불펜을 상대로 4득점 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부산 마린스 8 : 4 인천 스타즈]
시범경기 개막 후 파죽의 4연승.
ㄴ 꼴린스가 연승하는 거 보니까 벌써 봄이네 ㅋㅋㅋ
ㄴ 작년은 여름, 가을 대신 봄이었냐?
ㄴ 우리 작년 시범경기 압도적 꼴찌 아녔냐? ㅋㅋㅋㅋ 봄린스 봄린스 하는 것도 이제 옛말이지 ㅋ
ㄴ 응~ 부러운 거 다 알아~
ㄴ 너네 근데 ㄱㅊ은 거 맞음? 요즘 김수호 좀 못 하던데?
ㄴ 수호는 걍 수비만 잘해도 만족함
투타 밸런스는 완벽했고, 실제로 본 뉴 페이스들의 실력은 팬들을 만족시켰다.
한 가지, 딱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김수호가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때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하는 거였다.
수비에선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공격은 약간 아쉬웠다.
4경기 동안 3번 타자로 나서 12타석 9타수 2안타 1홈런 4타점.
타/출/장이 0.222/0,417/0.556으로 준수했지만, 작년 김수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약간 답답함을 느꼈다.
고작 4경기, 그것도 정규시즌도 아니고 시범경기에서 팀이 4연승을 달리는 동안 기록한 성적이었다.
안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팬들이 은은한 불안감을 느끼는 건 겨우내 쏟아졌던 기사 때문이었다.
[김수호의 특명!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하라!]
[김수호는 다를까? 로열로더의 2년 차 성적 모음]
[야구계 원로, ‘김수호는 내년이 관건. 문제가 없지 않다.’]
[찬란했던 1년 차 선수들이 겪는 부진의 이유는?]
[허하준의 동생과 연애? 김수호의 따뜻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봉사!]
겨울이 지겨운 건 팬들뿐만 아니라 야구 담당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야구가 멈춘 만큼 쓸 기사가 없었다.
그저 구단들이 주는 소스 하나가 뜨면 그것에 후속, 그 후속, 또 그 후속까지 끝없이 기사를 쓰고 나서야 다른 글을 썼다.
그나마 올해 겨울은 나았다.
마린스가 우승했고, 워낙 이슈가 많은 팀이라 마린스 위주의 기사를 써내면 됐다.
특히 올림픽으로 야구팬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에 이름이 알려진 김수호라는 아주 좋은 기삿감이 있었다.
기자들이 마치 짠 듯이 한마음 한뜻으로 김수호를 소재로 자극적인 제목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걸 본 팬들의 마음속에 아주 약간 불신의 씨앗이 생겼고 그게 시범경기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시범경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악의적인 기사는 끝을 모르고 나왔다.
[시범경기 8경기 동안 2할대 타율, 김수호가 사라졌다.]
[김수호 선발 제외, 김성준이 마스크 써. 요그 하스와 호흡.]
[무리한 벌크업의 후유증? 김수호 시범경기 부진.]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비상 걸린 마린스, 김수호의 빈자리 어떡하나.]
물론 마린스 구단에서도 대처를 했고 마냥 부정적인 기사만 나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극적인 타이틀을 가진 기사들이 쏟아지자 사람 심리상 이름 모를 불안함이 감돌았다.
ㄴ 진짜 김수호 망하면 시즌 어카냐?
ㄴ ㅋㅋㅋㅋ 이제 시범경기임. 애초에 지금 성적만 유지해도 못하는 거 아님.
ㄴ 호들갑 ㄴ 작년 김수호 하이라이트나 보면서 진정 하셈
ㄴ ㄱㅅㄱㅅ
이런 분위기와 다르게 마린스 더그아웃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수호야. 내 생각인데 힘들땐 동기에게 기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꺼져. 미친놈아.”
시범경기에서 3할의 타율을 기록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은 이주학도.
“괜찮아 인마. 형이 2루타를 치든 도루를 하든 2루로 나가고 은성이가 3루로 보내주고, 네가 희플 치면 되잖아. 그것도 타점이다?”
이때다 싶어 김수호를 놀리는 이규영도.
“아이고. 리틀 강주호 다 죽었네!”
김수호가 리틀 강주호라는 별명을 받자 싫어했다는 강주호도 모두 김수호를 놀리기 바빴다.
모두 김수호가 스프링캠프에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리고 그가 작년에 보여줬던 퍼포먼스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였다.
김수호도 딱히 쏟아지는 기사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저런 기사들을 쓰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작년에 황인재 기사들 본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네.’
작년 초반 황인재가 잠시 부진하는 것 같자 미친 듯이 쏟아졌던 기사들을 전부 봤던 김수호였다.
그래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글을 쓰는 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황인재가 좋은 성적을 기록하자 그 기사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말이다.
물론 이 틈을 타 놀리는 이주학이나 이규영이 있긴 했지만 김수호가 정말 의식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마린스는 시범경기 마지막을 승리로 장식하며 정규시즌 준비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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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 10승 3패.
한 경기가 우천 취소됐고, 패배한 경기도 내용이 나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꽤 좋은 결과였다.
거기에 아무리 시범경기라지만 우승까지 했다.
팀 분위기가 안 좋을 수 없다는 얘기다.
“마! 한 잔 따라봐라!”
이규영이 채지훈의 말투를 흉내 내면서 내 쪽으로 잔을 들었다.
“술도 못 마시면서 뭐에요.”
“스읍. 분위기 모르냐. 에후, 주학아. 저런 딱딱한 놈이랑 같이 있으니까 작년에 얼마나 힘들었겠냐. 자 한 잔 받아.”
“넵! 한 잔 드리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규영은 프로의식이 넘치는 사람이다.
이주학이 물을 술 대신 따르고 이규영이 원샷했다.
“크으, 쥑이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이규영이 센터라인은 마음이 잘 맞아야 한다면서 갑작스럽게 만든 자리였다.
사실 그냥 심심해서 부른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둘이 얘기하는 걸 듣고만 있어도 꽤 재밌거든.
“이주학 선수. 개막전 MVP로 꼽힐 소감이 어떠신가요!”
“예? 아, 예. 어, 일단 제가 MVP로 뽑힐 줄은 몰랐···.”
“스읍. 그게 아니지. 자, 잘 들어. 오늘 경기장을 가득 채워주신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항상 좋은 조언으로 제게 큰 도움을 주시는 이규영 선배님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는 거야.”
“선배님 이름 앞에 존경하는 이규영 선배님 이렇게 할까요?”
“크. 역시 주학이밖에 없다. 그냥 형이라고 해. 오늘 형 집에서 자고 가라. 아니, 그냥 살아!”
둘의 헛소리를 반찬 삼아 밥을 비웠다.
한참을 떠들던 둘이 이제 할 말이 떨어졌는지 이미 육즙이 다 빠져버린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야. 그래서 기사 뭐냐?”
“무슨 기사요?”
또 지겨운 부진 어쩌구 기사일 줄 알았는데 이규영이 보여준 기사 내용은 좀 달랐다.
[허하준의 동생과 연애? 김수호의 따뜻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봉사!]
잠시 대답이 없자 이규영이 호들갑 떨기 시작했다.
“어, 얘 봐라? 진짠가 본데? 뭐야, 나 촉 좋아.”
“뭔데요? 어? 뭐야?”
“저 저, 한국시리즈 시구할 때부터 내가 알아봤다. 에후, 주학아. 우린 이게 뭐냐. 자 마셔.”
“그냥 하준 선배가 도와달라 해서 간 거예요.”
“정작 하준이는 없었다며?”
“선배님 저 팔찌. 저거 그 하준 선배 동생이 해준 겁니다.”
그 말을 듣자 이규영과 이주학의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결혼은 언젠데? 자식은?”
“와, 김수호 진짜 나한테도 말 안 하고 너무한 거 아니냐.”
“아니라니까요. 물이나 더 마셔요.”
고기를 먹으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그치지 않는 두 사람의 입에 쌈까지 싸서 고기를 넣어줬다.
“우엑. 미친놈아. 와사비를 때려 박았냐?”
“아, 실수.”
“이게 뭐가 실수야! 야! 어디가!”
“잠깐 전화 좀요.”
호들갑 친 이규영을 와사비로 처리하고 잠깐 바람 좀 쐬러 밖으로 나갔다.
저번 봉사 이후 허하율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긴 하다.
근데 훈련 때문에 워낙 바쁘기도 했고 해외로 스프링캠프를 가면서 둘이 따로 본 적은 없었다.
연락은 하지만 따로 만난 적은 없는 사이.
이게 지금 허하율과 나의 관계였다.
사실 만나려면 만날 순 있었다.
근데 처음 시작부터 연결고리가 허하준이라 그런지 따로 만나자고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애초에 여자랑 둘이 만나본 적 자체가 저번 크리스마스가 처음이었다.
뭔가 진전이 있든, 만남이 있으려면 용건이 있는 게 제일 좋은데.
그때 허하율이 만들어준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끊어질 생각도 안 했다.
허하준도 본인이 마운드에서 끊었으니까.
‘끊어?’
“그냥 끊어버릴까?”
그 핑계로 만나자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뭘 끊어?”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옆을 보니 허하율이 서 있었다.
놀라서 말도 안 나왔는데 오히려 허하율이 당황해했다.
“괜찮아? 너무 갑자기 말 걸었나? 그냥 지나가는데 보이길래···.”
“아, 아냐. 오랜만이네?”
“응. 김치 전달해준 뒤로 처음인가? 훈련은 잘 갔다 왔어?”
놀란 마음이 사라지자 곧 반가운 생각이 가득 찼다.
“잘 갔다 왔지. 어떻게 지냈어?”
“나는 방학이라 알바하고, 이제 개강해서 학교 다니는 중!”
“하준 선배가 용돈 안 줘?”
“용돈? 그 사람이?”
허하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돈이나 안 뺏어가면 다행이지.”
“연봉이 10억이 넘는 데 네 돈을 써?”
“어. 완전 짠돌이야.”
같이 허하준 흉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진동했다.
“잠깐만. 여보세요?”
-야! 볶음밥 먹을 건데 먹냐?
아 맞다.
나 지금 밥 먹고 있었지.
“아, 미안.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잠시 고민했지만, 답은 빨리 나왔다.
“나 배불러. 먼저 집 간다.”
전화를 끊고 허하율을 바라봤다.
“데려다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