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봄린스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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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스프링캠프와 2차 스프링캠프는 성격이 약간 다르다.
1차 스프링캠프는 훈련이 주된 목적이라면 2차 스프링캠프는 옥석을 골라내기 위한 실전을 치르는 곳이다.
특히 한·일 여러 구단이 모이는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리그라고 불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자랑한다.
오키나와에 모인 구단 중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은 구단은 바로 마린스였다.
“피닉스, 프렌즈, 스타즈, 울프즈, 돌핀스. 거기에 소프트뱅크, 주니치, 요코하마, 닛폰햄, 야쿠르트, 요미우리? 누가 우리 맛집이라고 소문냈냐? 웨이팅이 왜 이렇게 길어? 너냐 이주학?”
“제가요? 저 일본어도 못하는데요?”
난데없이 지목받은 이주학이 당황해하자 이규영이 웃으면서 좋아했다.
“저기 저 머리 큰 놈 보다 네가 최고다.”
“얘가 네 장난감이냐? 그만 좀 괴롭혀라.”
“반응이 이렇게 찰진데 어떻게 그만둡니까. 주학아, 이리 와봐.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뭐 사줄까? 오키나와 맛집 아냐?”
강주호에게 한 소리를 듣자 놀리는 걸 그만두긴 했지만, 이규영이 이주학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쟤 데려오자고 한 사람 누구냐.”
“그래도 적응 못하는 것보단 낫죠.”
아무튼 이규영의 말처럼 오키나와에 온 구단들은 한국, 일본 가릴 것 없이 거의 다 마린스한테 러브콜을 보냈다.
약팀이라 붙자는 게 아니다.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우습게 볼 구단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 구단은 전력 누수가 없는 프렌즈와 함께 올 시즌 가장 유력한 우승팀으로 꼽히는 마린스를 원했고, 일본은 한 선수의 인터뷰 때문이었다.
[나카무라 준, 김수호와 허하준 배터리라면 메이저구단에 승리 가능.]
같이 훈련했던 허하준에 대한 립서비스일 수도 있지만, 나카무라를 잘 아는 일본 구단들은 인터뷰를 신중하게 검토했다.
나카무라와 립서비스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단어이다.
팀의 선·후배 가릴 것 없이 자신의 기준에 차지 않으면 서슴없이 거친 인터뷰를 했던 나카무라였다.
그랬던 선수가 말한 만큼 일본 구단의 두 배터리에 관한 관심은 커졌다.
때마침 오키나와에서 맞붙을 기회가 찾아왔고, 적극적으로 마린스 구단에 경기를 제안했다.
마린스 코치진이 일본 구단에서 보내준 제안서를 보고 한데 모였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좋습니다. 하준이랑 수호가 선발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하지만 일본도 전부 1군 선수가 출장합니다. 선수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저도 강 코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일본 리그가 우리나라보다 수준이 높은 건 사실이니까요. 여러 가지 실험도 해볼 수 있고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일정상 모든 팀과 연습경기를 치를 수 없었던 마린스 코치진은 고심 끝에 상대를 정했다.
한국 구단과는 전부, 일본 구단은 소프트뱅크와 요미우리까지 총 일곱 구단과 연습경기를 치르게 됐다.
그렇게 개막한 오키나와 리그.
마린스에게 오키나와 리그는 주전이 아니라 백업 선수를 찾는 경기였다.
그건 선수들 역시 잘 알고 있었고, 몇몇 선수들은 의욕을 먼저 내세우다가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내세운 선 몇몇이 있었는데, 김동준과 박우주, 그리고 이주학이었다.
-따악!
“스윙이 엄청 깔끔해졌는데?”
“주학이 나이스!”
마린스와 요리우리의 연습경기에서 1번 타자로 출장한 이주학이 첫 타석부터 깔끔한 안타로 경기 시작을 알렸다.
“또 또 힘 들어간다. 홈런 욕심 좀 버려. 내가 홈런 치는 거 봤냐? 우리한테는 2루타가 홈런이고 도루가 타점이야.”
이주학과 비슷한 스타일의 이규영이 밤낮 가릴 것 없이 꾸준히 조언해준 결과였다.
이후 다른 경기에서도 매 경기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주전 유격수 자리를 확정 지었다.
박우주 역시 처음엔 좌타자만을 상대로 나오다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자 점점 많은 기회를 받았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피닉스와의 연습경기에서 황인재를 상대로 등판한 경기였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 중 한 명인 황인재를 상대로 꿋꿋하게 자신의 공을 뿌렸고, 마지막 몸쪽에 완벽하게 제구된 150km의 포심을 던진 순간 박우주는 확신했다.
‘됐다!’
하지만 황인재는 그런 박우주의 생각을 비웃듯 그대로 담장을 직격 하는 2루타를 만들어냈다.
“마지막 공 좋았다! 굿 굿!”
투수코치의 칭찬을 들었어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박우주가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기 시작할 무렵 불펜의 키라고 할 수 있는 김동준도 경기를 치를수록 점점 안정된 제구를 뽐냈다.
요미우리 – 1이닝 2피안타 3볼넷 2실점.
프렌즈 – 1이닝 1피안타 1볼넷 1실점.
스타즈 –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퍼어억!
“스트라이크 아웃!”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판한 돌핀스와의 경기에서 1이닝 동안 퍼펙트를 기록하며 작년과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오키나와에서 치른 7번의 연습경기.
유일하게 2경기를 치른 프렌즈와 1승 1패를 나눠 가진 걸 제외하면 나머지 구단에 총 4승 1패를 거두면서 총 5승 2패의 성적으로 팬들의 기대를 안은 마린스가 마지막 연습경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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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소프트뱅크는 잘 아냐?”
“아니? 모르지.”
메이저리그도 잘 모르는 내가 일본 리그에 대해 잘 알리가.
“뭐야? 그 나카무란가 그 사람이랑 친하지 않냐? 그 사람이 있었던 곳이 소프트뱅크 아냐?”
“맞을걸? 근데 누가 친하다 그래?”
이호민이 말없이 기사를 보여줬다.
[짧은 인터뷰에 김수호 언급만 5번. 나카무라 준의 김수호에 대한 애정.]
갑자기 없던 두통이 생기는 기분이다.
왜 리그를 씹어먹고 메이저까지 간 사람이 사사건건 내 이름을 걸고넘어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전에 상대했던 요미우리나 소프트뱅크나 둘 다 일본의 강팀이다.
리포트를 보긴 했지만, 연고도 없던 일본 선수들의 정보를 단기간 안에 머릿속에 넣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애초에 연습경기에 굳이 그런 노력을 쏟을 이유도 딱히 없었고.
“나도 내일 던지고 싶은데 기회가 있으려나?”
“요미우리 때 생각나서 그러냐? 맘에 두지 말라니까. 걔네 일본 타격 1위잖아.”
“씁. 그 얘기 금지다.”
요미우리 강타선에 호되게 당한 이호민이 복수의 칼날을 갈았지만, 이호민한테 기회가 올진 미지수다.
그래도 얻은 게 없지는 않았다.
“만약 내일 올라오면 몸쪽만 던지려고.”
“오, 나랑 같은 생각이네?”
아무리 강심장인 타자라도 150km이 넘는 공이 몸과 공 하나 차이로 들어오면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특히 이런 연습경기에선 더더욱.
치사하다고?
“욕먹진 않겠지?”
“어차피 못 알아들어.”
원래 야구가 그렇다.
다음 날, 소프트뱅크 선수들이 있는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먼저 제안한 건 소프트뱅크인데 우리가 움직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소프트뱅크의 홈인 후쿠오카가 오키나와에서 가까운 데 있었고, 이번 경기는 소프트뱅크의 홈구장인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에서 열린다.
거기에 관객도 들어온다.
연습경기에 구단끼리의 경기였지만 분위기가 미니 한일전이 돼버렸다.
그 말인즉슨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거였다.
“드디어 해보는구나.”
“뭘요?”
“일본 팀 홈에서 이기는 거. 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거든.”
이규영이 실실 웃으면서 짐을 정리했다.
“상상해봐. 이 관객들이 과연 우리가 이기는 걸 보러 왔을까? 아니지. 오랜만에 하는 야구에서 소프트뱅크가 이기는 걸 보러 왔겠지? 근데 거기에 찬물을 촥 끼얹는 거야. 크.”
“무슨 변태예요?”
“어허. 무엄하도다. 이게 다 다 내 피에 있는 이순신 장군님의 의지다.”
“진짜 조상님이에요?”
“아니? 몰라 나도.”
싱거운 농담이 뒤따랐지만, 버킷리스트는 거짓말이 아닌지 이규영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경기를 준비했다.
상대 선발 투수는 우카이 유우마.
듣기로는 나카무라 준이 떠난 에이스 자리를 노리는 3년 차 젊은 투수였다.
처음 보는 투타의 맞대결은 보통 투수가 유리하다.
이규영이 가진 정보라곤 고작 투수의 구종과 구속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지 공을 여러 개 커트해낸 이규영이 끝내 안타를 치고 1루에 나갔다.
이어서 아까 한 말을 지키기 위한 이규영의 괴롭힘이 시작됐다.
“세이프!”
“세이프!”
신경을 거스르는 리드폭에 연이은 견제.
박은성은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용했다.
2스트라이크에 몰리기 전까지 방망이를 참으면서 이규영이 충분히 괴롭힐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줬다.
2스트라이크 이후 떨어진 스플리터에 헛스윙하면서 삼진을 당했지만, 포수가 공을 흘린 사이 이규영이 2루를 파고들었다.
“세이프!”
어쩐지 마린스 옛 포수들의 향기가 나는 모습을 보며 타석에 섰다.
응?
타석에 서서 발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포수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포수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뭐지?
포수에 신경을 끄고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1사 주자 2루, 2루 주자는 리그에서 가장 발이 빠른 이규영이다.
짧은 타구라도 충분히 홈에 들어올 수 있는 주자.
처음 보는 투수라 장타 욕심을 내기보단 정확히 맞추는 데 집중했다.
-퍼어억!
“스트라이크!”
박은성이 존이 생각보다 넓다고 했는데 말 그대로였다.
낯선 투수의 공은 날카로웠고 존은 넓다.
심지어 처음 오는 구장에서 첫 타석.
그래서 못 칠 정도냐고 묻는다면.
-따아악!
내 대답은 아니요 였다.
빠른 타구가 투수와 유격수를 뚫고 2루 베이스 위로 빠져나갔다.
좋은 판단으로 재빨리 출발한 이규영은 3루에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센타! 홈! 홈!”
일본 더그아웃에서 홈 승부를 하라고 크게 외치는 걸 들으며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이어서 홈으로 날아가는 공의 위치를 확인하며 2루로 뛰었다.
“세이프!”
“세이프!”
두 번의 세이프 소리.
비록 유니폼은 시작부터 흙투성이가 됐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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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호의 적시타에 홈으로 들어온 김수호가 웃으면서 이규영에게 다가갔다.
“적막하니 좋은데요?”
“책 읽으면 잘 읽히겠다.”
1회부터 2대0.
승리를 자신하고 구장을 찾은 소프트뱅크 팬들은 충격에 말없이 경기를 지켜봤다.
아직 1회, 그것도 자신들의 공격은 시작도 안 했다.
곧 원하는 대로 함성을 지를 수 있다는 생각에 숨죽여 지켜보는 것도 잠시 마린스의 선발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자 악몽이 떠올랐다.
2028년 LA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만난 한국의 21살의 젊은 투수에 의해 탈락해버린 악몽 같은 기억.
그 투수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허공에 귀신을 본 것처럼 공을 제대로 맞히지도 못하는 타자들을 보자 불현듯 떠올랐다.
“스트라이크 아웃!”
특이한 성을 쓰는 한국인 투수.
“스트라이크 아웃!”
그 이름이 바로.
“스트라이크 아웃!”
허하준이라는 것을.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퍼시픽 리그 정규시즌 1위로 만들어준 일본 최강 타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나마 우카이 유우마가 2회는 삼자범퇴로 마무리하며 한숨 돌렸지만 그건 허하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시즌 53개의 홈런을 치며 홈런왕의 자리에 오른 사토 테츠야도, 세 시즌 연속 90타점 이상을 기록한 최고의 용병 오펠로 샌즈도, 30홈런은 거뜬히 칠 수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도 전부 허하준의 공을 제대로 치지 못했다.
그래도 더 이상 실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두타자로 나선 저 얄미운 한국의 1번 타자를 볼넷으로 내준 순간 우카이 유우마가 크게 흔들렸다.
이어진 박은성에게까지 볼넷을 내주며 맞이한 김수호의 타석.
우카이 유우마가 김수호를 바라봤다.
김수호가 누군지 안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나카무라 준이 올림픽에 다녀온 후 매일같이 입에 달고 살던 한국인 타자.
그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않았던 나카무라 준이 인정한 타자였다.
‘상대를 앞두고 물러나면 안 된다.’
절대 방심하지 않고 나카무라 준이 해줬던 말을 되새기며 공을 던졌다.
하지만 아직 몸 상태가 제대로 올라오지 않아서일까.
-따아아악!
한 가운데로 들어간 실투는 매섭게 휘두른 김수호의 방망이에 걸리며 타격음이 고요한 후쿠오카 야후오쿠 돔을 울렸다.
스코어 5대0.
젊은 에이스는 애써 눈물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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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7 : 3 소프트뱅크 호크스]
[허하준, 일본 최강 타선을 상대로 5이닝 무실점하며 예열 완료! 김수호도 1홈런 3안타 4타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 이끌어.]
[소프트뱅크의 새로운 에이스 우카이 유우마, 김수호라는 벽에 가로막히다!]
[고요했던 야후오쿠 돔을 울리는 소리, 김수호의 올해는 더욱 뜨겁다!]
[연습경기 9전 7승 2패 마린스, 시범 경기 앞두고 한국 귀국!]
[2033년 시범 경기 개막! 팀당 14경기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