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33화 (133/203)

133화 끝과 시작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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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그것도 1회 말에 나온 1점이다.

돌핀스가 따라잡을 기회는 8번이나 있었고, 경기가 당장 끝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돌핀스 선수들은 그 1점의 무게감에 짓눌려있었다.

‘허하준한테 1점을 낼 수 있을까?’

노히트노런이라는 치욕의 기록을 시작으로 이후 허하준의 공을 제대로 쳐본 적이 없었다.

한 번의 스윙에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인 김수호의 간결한 스윙처럼 1점은 어려운 점수가 아니다.

하지만 1차전에서도, 3차전에서도 그 1점을 내지 못해서 졌다.

특히 김수호가 합류한 이후 허하준에게 점수를 뽑았던 기억이 없었다.

그 악몽과도 같았던 기억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따악!

“아웃!”

[오늘 돌핀스 타자들이 전체적으로 너무 급합니다. 이유야 알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요!]

선수 전원이 한국시리즈를 두 번 이상 경험해본 선수로 이루어진 돌핀스답지 않은 다급함이 스윙에 묻어 나왔다.

그나마 타자들이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마운드에서 자신의 공을 뿌리고 있는 존 그레이 덕분이었다.

타자들도 허하준의 공이 1차전과 같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방망이에서 느껴지는 힘도 그렇고, 전광판에 숫자 1이 쓰여 있는 H만 봐도 고작 2회에 1차전과 같은 성적을 기록했다.

거기에 4회 초 돌핀스의 공격.

2회에 안타로 출루에 성공한 한상욱에 이어 두 번째로 스티브 오웬이 출루에 성공했다.

비록 2사에 출루한 주자지만, 장타 하나면 홈까지 기대해볼 만한 상황.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한국시리즈 무대만 다섯 번을 밟아본 베테랑 한상욱은 몸쪽을 찌르는 완벽한 포심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를 살리지 못한 돌핀스 타선을 뒤로하고 다시 존 그레이가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 장타를 허용했던 오준혁이 타석에 섰지만 존 그레이 눈에는 그 뒤에 있는 김수호가 먼저 들어왔다.

아주 잠깐이지만 메이저리그까지 경험했던 존 그레이가 느끼기에 존재감만 따지자면 메이저리그급의, 아니 그 이상에 가까운 타자.

상위 리그에 도전할 생각을 하는 존 그레이에겐 피하고 싶지 않은 타자였다.

-따악!

“아웃!”

오준혁을 가볍게 땅볼로 처리하고 김수호가 타석에 섰다.

피하는 게 답이란 건 너무 잘 알고 있다.

팀은 1패만 하면 끝이고, 김수호 상대 성적도 유쾌하진 않았다.

물론 그를 상대로 성적이 좋은 투수가 있기야 하겠냐마는 그건 스스로에게 그다지 좋은 변명거리도 되지 않는다.

벤치의 사인을 확인한 최민규가 존 그레이에게 초구 사인을 보냈다.

초구는 낮은 투심.

거르라는 건 아니었다.

다만 최대한 어렵게 승부하고, 절대 정면 승부를 피하라는 뜻이었다.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1회에 답이 나왔지만, 존 그레이는 그 사인에 만족했다.

적어도 고의 사구는 아니었으니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 고의 사구를 걱정하는 건 해본 적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의 야구 인생에서 다양함을 느끼게 해줬던 2년간의 한국 생활.

그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경기가 오늘이 아니었으면 했다.

만약 그 경기가 오늘이라면, 적어도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

‘오케이 초이. 너의 초이스를 믿어보자고.’

그의 파트너가 머뭇거릴 때마다 존 그레이가 해줬던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김수호만큼은 아니지만, 최민규도 좋은 포수다.

그와 함께한 2년 동안 실패보다 성공이 많았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투구를 준비하자 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김수호를 상대로 힘을 아낄 생각은 없다.

다만 3일 전 8이닝을 투구하면서 쌓인 피로 때문인지 그가 던질 수 있는 최고의 투심은 아니었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향하는 궤적은 원하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저 정도면.’

저 정도 높이에 자신의 투심이라면 충분히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유감스럽게도 김수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딱 치기 좋게 들어온 공이라고.

-따아악!

‘저 정도면 리가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투구동작 이후 존 그레이의 눈이 타구를 따가라며 시답잖은 생각을 해봤지만, 저 타구를 잡을 수 있는 선수는 전 세계를 살펴봐도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이 구장 안에 있는 사람 중 저 공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구장 자체를 넘겨버리는 타구를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존 그레이는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겠군.’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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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

“아웃!”

6회 초, 이닝의 첫 번째 타자로 나온 이규영이 땅볼을 치고 아웃되자 헬멧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오늘 세 타석 모두 범타로 아웃됐고 심지어 선두타자로 나와서 초구를 치고 아웃됐으니 화날 만도 했다.

돌핀스 입장을 생각해보면 1점이라도 따라가기 위해선 출루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타자가 바로 이규영이었다.

반대로 우리로선 최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규영을 포함한 돌핀스 타자들이 부담을 느끼면 느낄수록 쉽게 방망이가 나오고 그건 곧 허하준의 부담을 덜어주게 된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박광민에게 초구, 2구 연속으로 투심을 요구했다.

초구는 볼, 2구는 존에 들어오자 박광민이 곧바로 휘둘렀다.

-따악!

방망이 밑에 맞은 공이 크고 느린 바운드를 형성하며 최치호에게 날아갔다.

포구한 공을 순식간에 빼내면서 1루로.

“아웃!”

공 3개 만에 2아웃.

이 광경을 보고 있는 돌핀스 팬들은 아마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선발을 빠르게 내려야 할 판에 공을 볼 생각도 안 하고 초구부터 타격이나 해대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전부 의도한 대로였다.

6회까지 안타 2개, 볼넷 1개를 허용했지만 투구수는 고작 54개.

삼진은 허하준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3개뿐이었지만, 좋은 흐름이었다.

초구, 2구 적극적으로 존에 공을 집어넣고 유인구는 최소화한다.

허하준의 구위를 믿고 짠 단순한 볼 배합이었지만 효과적이었다.

존에 들어가는 공을 그냥 지켜만 볼 수 없으니 돌핀스 타자들이 초반부터 방망이를 내는 거였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다.

물론 매 타석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인플레이가 되면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거고 실책의 변수도 존재한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수비수들이 보여준 실력이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이어서 두 번째 타석에 볼넷으로 출루한 스티브 오웬의 차례.

이번에도 초구를 존 안에 요구했다.

점수가 2대0이 된 순간부터 돌핀스는 한 방으론 뒤집지 못한다.

결국 주자를 쌓아야 했고, 스티브 오웬이 전 타석 볼넷을 잊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다.

-따악!

“파울!”

하지만 출루만으로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냈는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냈다.

그러면 뭐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2구 사인을 보내자 허하준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스트라이크!”

“Shit! Damn it!”

뚝 떨어지는 커브에 스티브 오웬의 방망이가 제대로 헛돌았다.

‘반쯤 정답이네.’

구종은 맞추는 데 성공했지만, 궤적이 틀렸다.

방망이와 한참 차이 날 정도로 허하준의 커브는 거의 바운드되다시피 한 높이로 미트에 들어왔다.

그나저나 이번 경기에서 처음 꺼낸 공인데 어떻게 예측한 거지?

의심이 가는 게 있긴 하다.

유독 커브 사인을 낼 때마다 허하준이 웃는 일이 많았다.

기껏해야 경기당 2~3개 정도 던지는 커브를 이렇게까지 연구해오다니, 역시 대단하다.

“스트라이크 아웃!”

카운트에 몰린 스티브 오웬을 스플리터로 마무리한 뒤 허하준을 기다렸다.

“왜?”

“커브 사인 낼 때마다 왜 웃는 거예요?”

“아, 그거? 너 커브 사인 낼 때 약지만 피잖아. 손가락이 부들부들하는 게 웃겨서 그런 건데?”

“그게 보여요?”

“보이진 않는데 한 번 보고 나니까 상상되더라고. 그래서 그거 때문에 타자가 돌린 거야?”

“아직은 예상인데 그거 말고는 예측할만한 게 없어서요.”

“그래? 그럼 이따 테스트해보면 되겠네.”

딱히 치명적인 쿠세도 아니고, 바로바로 고칠 수 있는 거였다.

반대로 돌핀스 타자들이 동아줄인 줄 알고 매달린다면 가위로 자르기만 해도 뚝 떨어질 정도로 돌핀스에 치명적이었다.

이건 아껴두기로 하고 곧바로 타석에 나갈 준비를 했다.

바로 나가는 건 아니었고, 이번에도 오준혁 뒤였다.

오늘 돌핀스 배터리 역시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파울!”

첫 타석에 장타를 맞은 오준혁한테 초구, 2구, 3구 전부 존에 넣으면서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간 뒤 던진 체인지업이 빛을 발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앞에 주자가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오히려 큰 걸 노리고 돌려봐도 좋은 상황이다.

“볼!”

바깥쪽에 빠진 볼을 골라내자 다음 공은 몸쪽 낮게 들어왔다.

“볼!”

전광판에 뜬 존 그레이의 볼넷은 0개.

최대한 이유 없는 출루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 말은 즉 2볼 노 스트라이크에서 한 번쯤 돌릴만하다는 뜻.

공이 손을 떠난 시점에 맞춰 왼 다리를 크게 들었다 내려놨다.

그 반동으로 회전하는 골반과 뒤따라오는 상체가 그대로 공을 향해 움직인다.

-따아악!

두 번째 타석의 타구음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타자에게 그 어떤 소리보다 청량한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전율케 하는 함성이 들린다.

“와아아아아!”

“김수호! 김수호!”

가볍게 손을 들자 그에 화답하듯 더욱 큰 함성이 들린다.

마치 내 손으로 이 구장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조종하는 그런 착각이 들 정도였다.

홈을 밟자 4회에도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강주호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영영 대치만 할 것 같아서 먼저 말을 꺼냈다.

“뭐에요? 안 반겨주세요?”

그러자 강주호답지 않은 속도로 그대로 나를 껴안고 헬멧을 몇 번 두드렸다.

따로 한 말은 없었지만, 강주호의 진심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들어간 더그아웃.

“멈춰!”

아까 관중들을 조종했던 손을 들면서 외쳐봤지만.

“일로 와! 미친놈아!”

“대가리 대! 우와아아아!”

“진짜 미친 새끼야! 와아!!”

“사랑한다 수호야! 평생 같이하자!”

헬멧은 순식간에 벗겨지고 머리로 떨어지는 손들의 환영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만큼 이번 홈런이 좋았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억울했다.

아오, 머리야.

누가 진심을 담아 때린 거 같은데.

“이주학 너냐?”

“뭐가?”

싱글벙글하는 이주학을 의심해봤지만 연기라기엔 너무 진심처럼 보였다.

-따악!

“나이스!”

“선배님 굿입니다!”

웃고 떠드는 사이에 강주호의 추가 안타가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돌핀스의 투수 교체.

존 그레이가 아쉬운 듯 몇 번이고 마운드를 쳐다보는 게 보였다.

결국 존 그레이가 미련을 버리고 내려가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계속 눈싸움해야 하나 싶었지만 먼저 눈을 돌린 건 존 그레이였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한국을 떠난다는데, 더 이상 볼 일이 있을까 싶다.

“둘이 뭐해?”

“그냥 어쩌다 눈이 마주쳤어요.”

딱히 얘기를 해본 적은 없지만 내 야구 인생에서 잊기 힘든 선수로 기억되지 않을까.

결국 허하준을 넘지 못한 비운의 투수 같은 걸로.

이번 시즌, 허하준과 배터리를 이룬 첫 번째 경기와 마지막 경기의 상대로 알맞은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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