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31화 (131/203)

131화 끝과 시작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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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냐. 왜 전화했어?

분명 뭐라 중얼거린 걸 들었는데.

중요한 건 아닐 테니까 그냥 넘겼다.

“왜겠어요. 내일 경기 때문이죠. 1차전이랑 어제 연장 보면 돌핀스 타자들이 빠른 공에 못 따라갔거든요? 초반에 포심 위주로 해도 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잠깐 정적이 흐르더니 대답 대신 웃음소리가 들렸다.

“왜 웃어요?”

-그냥 한결같구나 해서.

“예?”

-포심, 좋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자.

“그래도 내일만 이기면 우승인데, 완벽하게 해야죠.”

이 양반은 긴장도 안 되나?

물론 나도 1차전에 9이닝 1피안타로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던 허하준의 공을 돌핀스 타자들이 고작 3일 만에 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안 한다.

반대로 말하면 허하준 역시 3일 만의 등판이었지만, 딱히 걱정되진 않았다.

이미 3승을 거둔 상황, 딱히 무리할 이유가 없어진 감독님이 5차전 선발로 나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허하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홈에서 우승해야죠.’

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 걱정하는 건 사치였다.

그래도 돌핀스 입장에선 패배가 곧 시즌 종료이기에 생각지도 못한 수를 쓸 수도 있다.

잠도 미뤄둔 채 여러 가지 플렌을 세우는 것도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포심 위주로 짤 테니까 내일 같이 한번 봐요.”

-응. 좋아.

“넵. 그럼 컨디션 관리 잘하세요.”

-그런 소린 또 오랜만에 듣네.

“지금까지 잘 던지다가 마지막 경기에서 자빠지면 쪽팔리잖아요. 마지막까지 완벽해야죠.”

-맞는 말이긴 하네.

“그럼 끊을게요.”

-아, 잠깐만. 내일 하율이가 시구한데.

“그래요? 전 구단주님이 와서 시구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아마 직관은 오실걸?

“우승하면 보너스 많이 주겠죠?”

-무조건.

돈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많이 받으면 좋은 거니까.

잡담을 조금 더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었다.

이제 정말 다 왔다.

마무리만 잘하면 된다.

‘내일 끝내자.’

올해 한국시리즈는 4차전이 끝이다.

5차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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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바로 김수호의 나라인가···.”

평범한 사람은 쓰기 꺼릴 만큼 화려한 선글라스를 끼고 김해 국제공항에 들어온 한 남자가 나지막하게 일본어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감성에 젖어 들 무렵,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나카무라 상!”

“아아, 오랜만이군. 제이슨.”

일본인이 한국에 입국하자 백인이 일본어로 반겨주는 쉽게 보기 힘든 장면.

하지만 둘은 별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눴다.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점심은 드셨습니까?”

“아, 괜찮네. 그보다 빨리 구장으로 가지.”

나카무라 준, 일본 국가대표 에이스 투수이자 올 시즌 메이저 진출이 유력한 투수.

이미 그를 영입하기 위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계산기가 무수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관심이 대단했다.

그런 나카무라가 한국으로 들어온 이유는 간단했다.

“빨리 김수호가 보고 싶군.”

그건 바로 김수호의 경기를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함이었다.

올림픽 이후 김수호의 활약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챙겨 본 나카무라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당연한 활약이군.’

김수호는 그가 선택한, 아니 운명이 점지해준 라이벌이자 유일하게 그를 이해할 수 있는 포수.

주인공의 앞길을 가로막았지만, 결국 주인공에 동화되어 둘도 없는 동료로 같이 활약하는 역할이 바로 김수호였다.

물론 전부 나카무라 혼자만의 망상에 불과했지만, 스스로 가장 완벽한 투수라고 칭하는 나카무라를 단숨에 사로잡을 만큼 김수호의 임펙트와 실력이 엄청났다는 뜻이다.

제이슨이 주차장으로 나카무라를 안내했고, 준비된 차에 타서 사직으로 향했다.

“일본시리즈는 아깝게 됐습니다.”

“제이슨.”

“예.”

“그 얘기는 그다지 하고 싶지 않군.”

“아, 알겠습니다.”

나카무라가 속한 소프트뱅크는 나카무라를 중심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국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패해 일본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마지막 경기의 패전 투수는 나카무라.

그건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이었다.

우승을 자신했던 올림픽과 일본시리즈 진출도 실패한 올해.

그 치욕을 애써 삼키고 중얼거렸다.

“이 고난들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

물론 그 덕분에 한국시리즈까지 보러 올 수 있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김수호의 팀이 이기면 우승인가?”

“예. 맞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길 겁니다.”

“그래?”

제이슨은 나카무라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서포터(에이전트)였다.

그런 제이슨이 확답에 가까운 답을 한 건 분명 확실한 이유가 있을 터.

“김수호 때문인가?”

“음, 크게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래?”

“올 시즌 우승까지 노릴 수 있는 건 킴의 활약은 맞습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어려웠겠죠.”

그 말에 공감한 나카무라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했다.

이런 나약한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주인공이 해서는 안 될 생각이다.

올림픽도, 파이널 스테이지도 자신이 더 잘 던졌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멍청한 놈. 아직 멀었다.’

그런 나카무라의 생각도 모르고 제이슨이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마린스엔 나카무라 상처럼 데뷔부터 에이스로 활약한 허하준이란 선수가 있습니다.”

“허하주느?”

“예. 혹시 아십니까?”

“김수호의 하이라이트를 볼 때 몇 번 언급된 걸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에 제이슨이 살짝 놀랐다.

자신 외에 다른 투수들에겐 관심이 없다시피 한 그가 허하준을 들어봤다니.

“예. 그 선수 역시 좋은 투수지만 꼴찌팀을 우승으로 이끌기엔 혼자 힘으론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때 등장한게....”

“김수호군.”

말을 끊은 게 기분 나쁠 법도 했지만, 제이슨은 그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예. 맞습니다.”

초롱초롱한 눈을 보면 참 어이가 없다가도 귀여웠다.

마치 영웅담을 들려줄 때 집중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제이슨이 미소를 지었다.

많은 에이전트를 뚫고 제이슨이 그의 담당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속한 리암 에이전트는 최고였고, 그중에서 제이슨은 나카무라를 가장 잘 다루는 에이전트였다.

“허하주느란 투수는 운이 좋군.”

“예. 운이 좋았죠.”

이어서 제이슨이 김수호가 포수를 하게 된 이유를 말해줬다.

그 얘기를 몇 번이나 들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즐거웠고, 곱씹게 됐다.

어쩐지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그렇게 얘기가 끝나가고, 슬슬 사직구장이 보이기 시작하자 제이슨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만약 킴을 만나게 되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제이슨을 포함한 여러 에이전트이 꾸준히 김수호와 계약을 맺기 위해 노력했지만, 우승 이후에 고민하겠다며 일갈했다.

마린스가 우승한다면 김수호와 자리를 만드는 건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지난번 김수호에게 접근했을 때 나카무라가 일러준 게 떠오른 리암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맞는 걸까.’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차는 사직에 도착한 이후였다.

불안한 눈으로 나카무라를 쳐다봤지만, 나카무라는 곧 김수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 찰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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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잘 할 수 있다.”

허하율이 긴장한 표정으로 사이즈가 한참 큰 유니폼을 점검했다.

어쩌다 보니 시구를 하게 됐지만, 화장도 잘 됐고, 김수호가 잘 어울린다고 했던 모자도 잘 챙겼다.

김수호가 선물해줬던 유니폼을 입겠다고 하자 구단 직원의 표정이 약간 이상해졌지만 그냥 저냥 넘어갔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시구를 알려준 게 김수호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포수가 경기 전에, 특히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 해야 할 일이 워낙 많다는 걸 듣자 이해가 됐다.

‘시구 끝나고 잠깐 얘기할 수 있겠지?’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심장이 미칠 듯이 뛴다는 거였다.

사직구장을 하루 이틀 온 게 아니었지만 지금 느껴지는 감정은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엄마, 나 어때?”

“응. 이뻐.”

그녀의 모친도 긴장된 건 마찬가지인지 대답이 어째 간결했다.

아직 경기가 시작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들리는 엠프 소리나 실시간으로 사람이 차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후회됐다.

‘시구 괜히 한다고 했나? 오빠는 어떻게 맨날 이런 곳에서 공을 던지지?’

난생처음으로 허하준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스텝이 모녀를 찾았다.

“이제 준비하실게요.”

“아, 넵.”

마지막으로 점검을 마친 모녀가 떨리는 발걸음으로 경기장으로 향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도착한 구장엔 이미 가득찬 사람들과 모녀를 기다리고 있던 응원단장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단장님!”

우스갯소리로 마린스의 진정한 단장은 응원단장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여느 선수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는 응원단장의 등장에 슬슬 실감 되기 시작했다.

“오늘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고 시구할 겁니다.”

아까 설명을 들었지만, 다시 설명을 듣고 긴장된 눈으로 경기장을 바라봤다.

이제 진짜 시작인지 마린스 선수들이 수비를 위해 각자 자리로 이동했다.

김수호와 허하준 역시 제 자리를 찾았다.

“이제 가실까요?”

“넵!”

발걸음을 떼자 수만 명의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오늘 시구에는 마린스의 에이스! 허하준 선수의 동생인 허하율양이, 시타는 저희 에이스를 낳아주신 허하준의 모친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허하율과 모친을 보자 허하준의 외모를 떠올린 팬들이 생각했다.

‘닮았네.’

‘닮았어.’

먼저 어머니의 인터뷰가 진행되고 이제 허하율 차례.

“왜 오빠분이 아니라 김수호 선수 유니폼을 입으셨나요?”

“아.... 그, 수호가 준거라서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허하율이 당황해하자 시구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역대 최악의 포수, 김수호]

ㄴ 인정합니다.

ㄴ ㅋㅋㅋ 실력도 돌았는데 여친도 존예네 하.

ㄴ 둘이 사귐?

ㄴ 허하준이랑 김수호랑 친하니까 소개해줄 법한데? 솔직히 둘이 잘 어울리긴 함.

ㄴ 하. 김수호 개같네 ㅡㅡ 진짜 걍 빨리 메쟈로 꺼졌으면.

ㄴ ㅋㅋㅋ 보기 좋기만 한데 왜 그러냐.

당황한 허하율의 반응에 짓궂은 표정을 지은 응원단장이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역시 남매는 남매네요. 저도 제 동생이랑 별로 안 친하거든요.”

상황이 정리되고 이제 시구할 시간이 됐다.

안내에 따라 마운드에 오르니 허하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던져라.”

“시끄러.”

후.

심호흡을 한 허하율이 나름 반나절 동안 연습한 폼으로 공을 던졌다.

하지만 공은 땅을 두 번 치고 김수호에게 도달했고, 그걸 김수호가 편안하게 받으면서 시구가 끝났다.

그리고 이제 공을 건네주기 위해 김수호가 허하율에게 다가왔다.

“잘 던지는데?”

“정말?”

이번엔 반말로 대답한 허하율의 시야에 자신이 선물한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끊어지기 전엔 뺄 수 없는 사이즈로 만들었기에 못 뺀 걸 수도 있지만, 기분이 좋았다.

“오늘 꼭 이겨!”

“고마워.”

더 길게 얘기하고 싶었지만, 만약 그거 때문에 오늘 김수호가 실수한다면 여기 모인 2만 명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니 응원을 하고 들어갔다.

‘어, 근데 오빠 손목에 팔찌가 있었나?’

뒤를 돌아본 허하율의 눈에 허하준의 손목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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