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끝과 시작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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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1점을 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홈런, 안타, 실책, 밀어내기, 희생타, 심지어 병살타를 쳐도 점수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1점이라도 상황과 과정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예를 들면 10점 차에 1점과 동점 상황에서 1점이 다르고 같은 스윙 한 번이지만 홈런과 병살로 낸 1점이 다르듯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김수호가 낸 1점은 상황과 과정 등을 포함한 모든 관점에서 봐도 만점을 줄 수밖에 없는 점수였다.
[단 한 번의 스윙! 이 균형을 무너트리기 위한 스윙은 단 한 번이면 충분했습니다!]
[이게 거포의 가치죠! 특히 김수호 선수는 클러치 상황에서 반드시 기대에 부응하는 선수입니다! 최지용 선수의 공도 좋았지만, 김수호 선수가 너무 잘 쳤어요!]
물론 끝내기 상황이 아니라면 1점을 냈다고 해서 안심할 점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홈런의 가치는 단순히 1점에 그치지 않는다.
[볼넷! 강주호가 1루에 걸어 나갑니다!]
김수호와 강주호.
거포가 연속되는 타선, 직전에 맞은 홈런의 잔상이 돌핀스에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결국 최지용 선수가 내려갑니다!]
돌핀스 팬들은 비록 4실점을 했음에도 자신들의 에이스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럴수록 최지용의 고개는 더더욱 아래를 향할 뿐이었다.
그렇게 투수가 교체되고 기세를 탄 마린스 타선이 바뀐 투수를 두드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돌핀스를 지탱하는 힘이 발휘됐다.
[유격수! 잡았습니다! 빙글 돌면서 2루! 아웃! 1루로, 아 1루는 던지지 못합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가 꼼짝도 못 합니다!]
[중견수, 좌익수 사이에 떨어지는 타구! 중견수! 나이스 캐치! 좋은 수비, 이규영!]
우오준과 이규영의 힘으로 무사 1루의 위기를 막아냈다.
수비엔 슬럼프가 없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경기는 후반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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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을 치고 들어오자 곧바로 감독님이 부르셨다.
용건은 간단했다.
바로 웰링턴의 교체 여부.
내 말 대로 교체 여부를 판단하시는 건 아니지만, 6이닝 동안 공을 받은 포수의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오늘 선발인 웰링턴은 6이닝 6피안타 2볼넷 3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비록 안타는 꽤 허용했지만 투구수도 90개로 관리가 잘 됐고, 공의 위력도 좋았다.
가장 중요한 건 1이닝을 더 소화할 수 있냐는 건데.
상대 타순은 9번 타자부터 시작이다.
대타가 나온다고 가정하면 꽤 위력적인 타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 괜찮습니다.”
고민 끝에 말을 하자 고민이 깊어지는지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알겠다. 고생했다.”
축객령을 듣고 투수코치와 활발한 상의하는 감독님을 뒤로하고 장비를 챙겨 입었다.
그러고 있자 웰링턴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웰, 더 던지고 싶죠?”
안 보인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말을 걸자 움찔했다.
“봤어?”
“이 조그만 더그아웃에 2미터가 넘는 사람이 안 보일 리 없잖아요.”
“엘리는 맨날 모르던데.”
설마 이제 돌이 갓 지난 아기랑 같은 취급을 받을 줄이야.
“그래서 감독님이 너한테 뭘 물어본 거야?”
“웰의 공이 어떤지 물어봤죠.”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긴장하는 웰링턴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제 말대로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긴장하고 그래요. 저야 뭐 있는 그대로 말했죠.”
“뭐라고?”
말없이 엄지를 들었다.
“후, 고마워.”
“뭘요. 만약 웰의 공이 안 좋았다면 무조건 말렸을 거예요.”
“알지. 브로, 넌 이런 부분에선 철저하잖아? 그래도 네가 공이 좋다고 말하니 안심이 된다. 오케이. 나 몸 푸는 것 좀 도와줄래?”
“좋아요.”
가볍게 캐치볼을 하면서 몸이 식지 않게 도와줬다.
그리고 강주호가 2루에서 아웃되자 결정을 내렸는지 투수코치님이 다가왔다.
“웰링턴, 다음 이닝에도 잘 부탁해.”
통역이 전달해준 말에 말없이 주먹을 불끈 쥐더니 내게 다가왔다.
“브로,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라고 하려고 했죠?”
“어떻게 알았어?”
매번 똑같이 말하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다.
1회와 6회, 웰링턴의 공을 비교해보면 6회에 들어온 공이 좀 더 가벼웠다.
거기에 타자들도 눈에 익었을 거고.
하지만 직전 경기에서 5실점을 했던 불펜보단 당장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 웰링턴이 나았다.
물론 무실점 호투 중인 김호기도 있긴 하지만 다음 돌핀스 타선은 좌타가 쫙 깔려있다.
우완 사이드암인 김호기에겐 부담되는 상대들이었다.
이런 판단 속에서 웰링턴을 추천한 거였지만 나도 확신은 없었다.
야구는 완벽한 공을 던져도 홈런이 되고, 실투가 아웃이 되는 스포츠.
그것과 웰링턴의 승부욕을 믿을 뿐이다.
“아웃!”
이규영의 좋은 수비에 이준이 아웃되고 이닝이 끝나자 나갈 시간이 됐다.
웰링턴에게 주어진 아웃카운트는 3개, 혹은 그 미만.
“가서 보여주죠.”
“오케이, 브로.”
웰링턴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각자의 위치에 들어갔다.
예상대로 9번 타자 타순에 대타가 들어왔다.
들어선 타자는 구민기.
시즌 타율 2할 7푼과 3할 5푼의 출루율을 기록한 타자로 출루가 필요한 타이밍에 돌핀스에서 가장 애용하는 대타였다.
예상한 대로였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이 타자의 출루는 반드시 막아야 했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돌핀스의 상위 타선을 상대하는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대타로 나온 타자가 노리기 쉬운 건 포심이나 상대 투수가 오늘 가장 많이 던진 변화구였다.
그런 의미에서 초구는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커브를 노리네?’
포심을 노렸다면 이 공에 방망이가 안 나왔을 리가 없다.
아쉬움을 숨기고 원하는 공을 던져주기로 했다.
개인 의견이긴 하지만 웰링턴의 공은 리그에서 쉽게 보기 힘든 타입의 공이다.
그런 웰링턴을 상대로 대타로 나와 커브를 노림수로 설정하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다.
“스트라이크!”
떨어지는 낙폭이나 역동적인 투구폼은 타석에서 한 번만 보고 바로 맞추긴 불가능에 가깝거든.
“스트라이크 아웃!”
바깥쪽 커브에 헛스윙한 구민기가 순식간에 몰린 카운트에 타석에 물러났다 들어왔지만, 바깥쪽 꽉 찬 포심에 3구 만에 물러났다.
구속은 149km.
미트에서 느껴지는 힘도 괜찮았다.
웰링턴의 컨디션을 묻는 벤치의 사인에 좋다는 사인을 보내자 다음 타자가 들어왔다.
오늘 3타석 2타수 1안타 1볼넷.
그리고 도루 실패 1개.
성적표를 보면 나쁘지 않은 듯 나빴다.
3회 도루가 성공했다면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거다.
또 뛴다고 해도 잡아낼 자신은 있었지만, 그 상황 자체를 만들어주지 않는 게 최선이다.
사인을 교환하고 던진 초구.
“스트라이크!”
오늘 웰링턴의 제구가 좋은 코스, 우타자 바깥쪽, 그리고 좌타자의 몸쪽에 절묘하게 들어간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았다.
이번 공이 워낙 잘 들어가서 되려 이규영이 무슨 공을 노리는지 얻은 정보가 없었다.
‘이번엔 슬라이더요.’
굳이 잘 던지는 곳을 놔두고 다른 코스를 던질 이유가 없었다.
-따악!
“파울!”
몸쪽을 파고드는 슬라이더에 파울.
타자가 기다리는 공이 아닌, 우리가 짜 놓은 판에 타자를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
2스트라이크를 잡은 이상 반쯤 됐다고 보면 된다.
이제 남은 건 마무리인데.
“볼!”
처음엔 바깥쪽 커브.
“파울!”
다음은 그보다 살짝 존에 붙인 포심.
제구가 틀어지면서 존에 들어갔지만, 다행히 파울이 됐다.
이렇게 바깥쪽을 보여주고 다시 몸쪽.
“스트라이크 아웃!”
하이패스트볼로 마무리.
“이게 스트라이크라고요?”
방망이도 내지 못하고 아웃당한 이규영이 항의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이어서 들어온 박광민은 이규영의 타석에 느낀게 있는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내봤지만.
-따악!
몸쪽 공을 당긴 타구가 1루수에게 굴러가면서 그대로 아웃.
“Broooo!”
여전히 적응 안 되는 포효와 함께 웰링턴의 마지막 이닝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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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점.
4차전의 선발을 떠올리면 이제 정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돌핀스로선 이번 경기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저 1점, 고작 1점이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필승조를 가동한 돌핀스는 7회 말 최진하, 8회 말 김수호가 껴 있는 중심타선을 상대로 오상엽을 내는 승부수를 두면서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8회 초, 한상욱과 김효준이 김동준에게 막히고 시티브 오웬을 김호기가 삼진으로 마무리하면서 남은 공격 기회는 9회 초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선두 타자는 오늘 3타수 무안타의 우오준.
시리즈 전체로 봐도 성적이 좋지 않은 우오준이였기에 돌핀스 펜치는 긴 고민 끝에 대타 대신 우오준을 선택했다.
대타 자원이 마땅찮은 것도 있었고, 뒤를 이어 나올 타자들이 우오준보다 못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우오준은 자신을 믿어준 벤치에 보답했다.
“볼!”
풀카운트 끝에 이용기의 포크볼을 골라내면서 성공한 출루.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우익수 최강민이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다.
-따악.
“1루!”
“아웃!”
번트 타구에 3루수 오준혁이 1루로 던지면서 이제 1사 주자 2루.
그러자 곧바로 대타가 나왔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얻은 동점의 기회.
-따악!
날카로운 타구에 최치호가 몸을 날리면서 공을 내야에 묶는 데 성공했다.
[1루! 세잎! 세잎입니다!]
하지만 공을 잃어버린 사이 1루 주자가 살아나갔다.
[9회 초, 동점의 기회를 만든 창원 돌핀스! 이제 1사 주자 1, 3루가 됩니다!]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상황에 경기를 보는 모두가 숨죽여 상황을 지켜봤다.
타석엔 이전 타석 대타도 들어왔던 구민기.
[헛스윙! 삼진 아웃!]
풀카운트 승부 끝에 포크볼로 삼진을 잡아냈다.
우오준에겐 실패했지만, 다시 과감한 볼 배합으로 아웃카운트를 얻어낸 김수호와 이용기.
그리고 이 상황에서 가장 상대하고 싶지 않은 타자가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방망이를 꽉 쥔 채 타석에 들어선 이규영.
-따악!
공이 방망이에 맞는 순간 모두가 숨을 죽였고, 이내 흥분한 캐스터의 말이 쏟아졌다.
[이규영! 이규영의 적시타가 터집니다! 3루 주자 홈으로! 1루 주자 3루까지! 9회 초, 돌핀스가 드디어 경기를 원점으로 만듭니다!]
아쉬움에 고개를 떨군 이용기를 향해 김수호가 올라갔다.
“미안하다.”
“아닙니다. 제가 너무 급하게 들어갔나 봐요.”
이전 타석, 하이패스트볼에 루킹 삼진을 당한 이규영을 높은 공으로 방망이를 유도한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방망이에 맞은 이후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선배님, 다시 포크볼로 하죠.”
“...그래.”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
마린스의 공격 기회가 남아있고, 역전도 아니고 동점이다.
이용기가 김수호의 말에 정신을 가다듬고 투구를 준비했다.
“스트라이크!”
변화구로 잡은 카운트.
그리고 2구.
-탁!
방망이 끝에 맞은 타구가 완전히 힘이 죽은 채 3루 방향으로 굴러갔다.
1루 주자인 이규영은 망설임 없이 2루로 뛰었지만, 3루 주자가 움찔거리면서 김수호를 살폈다.
‘늦었다.’
공을 향해 달리던 김수호는 직감했다.
코스가 너무 좋은 탓에 1루에 송구해도 늦은 상황.
공을 잡고 1루로 뿌리는 척을 했다.
그러자 홈을 노릴 듯 움찔한 3루 주자의 눈에 김수호의 손에 잡힌 공이 보였다.
‘미친!’
김수호가 망설임 없이 3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역모션에 걸린 3루 주자도 곧장 돌아갔지만, 오준혁의 글러브에 정확히 들어간 공이 베이스보다 먼저 손에 닿았다.
“아웃!”
“나이스 수비!”
돌핀스의 적극적인 주루플레이가 이번엔 독으로 작용했다.
반면 마린스로선 동점이 되긴 했지만, 어찌 됐든 만루가 될 뻔한 위기를 막아냈다.
이젠 마린스의 마지막 정규이닝 공격이 남았다.
하지만 8회에 이어 9회에도 올라온 오상엽은 마린스의 하위타순을 가볍게 요리했다.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9회 말, 삼자범퇴.
두 팀이 승부를 가르기엔 정규이닝으론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