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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28화 (128/203)

128화 끝과 시작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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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던지시는데요?”

“정말요? 너무 긴장했는데···.”

나도, 박민수도 무려 한국시리즈에서 공을 주고받을 거라고 생각 못 했다.

하긴 이번 시즌 마린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거라 생각한 사람도 얼마 없을 거다.

박민수가 아직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어릴 때부터 사직을 몇 번을 왔는지 몰라요. 김수호 선수 덕분에 여기서 시구를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요? 오늘 정말 의미 있는 시구네요.”

“오늘 파이팅 하세요!”

박민수에게 시구한 공을 건네주고 홈플레이트로 돌아왔다.

평범한 팬이 시구를, 그것도 한국시리즈에서 했다는 건 평생 남을 기억이다.

그리고 거기에 몇 가지 수식어를 붙여주면 평생 술안주로 써먹을 수 있을 거다.

예를 들면 21세기 사직에서 처음 열린 한국시리즈에서 승리 시구를 한 박민수.

좀 길긴 하지만 괜찮지 않나?

혼자 마음에 들어서 실실 웃고 있는데 옆에서 바로 딴지가 들어왔다.

“좋냐? 하긴, 좋겠지. 새꺄, 그래도 아직 5경기나 남았다. 7차전까지 가야지?”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는 사직인데요?”

“우리 구장이 얼마나 좋은데. 거기서 몇 경기 더해야지.”

“창원도 깔끔해서 좋긴 한데 전 부산 사람이라 사직이 좋더라고요. 선배님도 여기 좋아하셨잖아요.”

“아오, 한 마디를 안 져요. 내가 말을 말지. 됐고, 공이나 던져라. 한가운데로.”

“초구부터 한가운데요? 좋죠.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면 그대로 사인 보낼게요.”

“뭔데?”

“초구 그냥 흘려보낸다고 약속하시면 한가운데로 던지라고 할게요.”

“오케이 콜.”

약속한 우리 둘은 사이좋게 같은 행동을 했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카운트를 뺏기 위한 커브.

살짝 낮게 들어오는 커브에 그대로 방망이가 지나갔다.

“안 휘두른다면서요?”

“이게 한가운데야? 한가운데로 왔으면 안쳤지.”

“오늘 웰링턴 제구가 별로네요. 전 분명 가운데 요구했는데요.”

웰링턴을 팔고 카운트를 얻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교환이면 웰링턴도 이해할 거다.

이규영과 얘기하면서 다음 사인을 보냈다.

이규영의 방망이가 나오다 멈췄고, 곧바로 3루심에게 확인을 요청했다.

“세이프!”

이걸 참아?

아쉽지만 빠르게 미련을 버리고 다음 공으로 돌아갔다.

웰링턴은 투구폼과 구종은 높낮이에 변화를 주는 볼 배합이 잘 어울린다.

특히 낮은 공을 얼마나 위력적으로 던질 수 있느냐에 따라 그날의 성적이 좌우된다.

공을 두 개밖에 받지 않았지만, 오늘 꽤 날카롭게 들어왔다.

방망이를 참은 이규영이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로.

“볼!”

바깥쪽에 하나 찔러봤지만 나오지 않는 방망이.

-따악!

“파울!”

노리던 코스였는지 이번엔 약간 몸쪽에 몰리자 귀신같이 방망이가 나왔다.

그리고 2스트라이크가 되자 귀신같이 타석에 바짝 붙었다.

몸쪽에 붙인 팔꿈치, 짧게 쥔 방망이.

이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투구 수를 뽑아먹든, 볼넷으로 나가든,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를 노리겠지.

여기서 밀리면 9이닝 내내 고생할 게 눈에 선했다.

‘과감하게 하나 꽂죠.’

“볼!”

“야, 이거 조금 붙었다고 너무한 거 아니냐?”

“너무 가까우면 부담스러워서요.”

몸쪽의 하이패스트볼.

머리까진 아니지만, 어깨높이의 볼에 이규영 역시 예상했다는 듯 괜히 한 마디하고 다시 바짝 붙었다.

풀카운트에 다시 몸쪽에 붙이는 건 부담이 있었다.

그렇다고 공을 6개 던진 타자를 공짜로 내보내는 건 수지가 안 맞는다.

방금 높은 공을 참아냈지만, 아직 그 잔상이 남아 있을 때 낮은 공을 요구했다.

초구에 던지고 던진 적 없던 커브.

“스트라이크 아웃!”

어렵게 잡은 이규영에 이후 들어온 두 타자는 깔끔하게 범타로 처리하고 1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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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했지만, 메이저리그를 노크할 정도의 선수라면 KBO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의미였다.

최지용 역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 전 돌핀스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돌아와서도 에이스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구속이 빠르지도, 구위가 좋지도 않은 그가 메이저리그 스카우터의 눈길을 끈 건 다양한 구종을 활용하는 능력이었다.

“스트라이크!”

최지용이 공식 경기에서 사용한 구종은 총 7개로 전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의 공이었다.

거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완숙해지는 경기운영에 오히려 힘으로 상대했던 과거보다 성적이 좋아졌다.

“스트라이크!”

하지만 그런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건 가끔 나오는 실투가 너무 치명적으로 작용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따악!

포수는 빠진 볼을 요구했지만 한 가운데로 들어간 공, 그 공을 놓치지 않고 박은성이 안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1회에 마린스 타자가 출루했다는 건 병살이 나오지 않는 한 김수호와의 승부를 피해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아웃!”

“아웃!”

최치호와 오준혁을 잡아내긴 했지만, 주자가 2루에 들어간 상황.

김수호가 타석에 서자 경기장의 모든 곳이 분주하게 돌아갔다.

팬들은 각자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좋은 결과를 내길 바랐고, 선수들은 그것에 맞춘 선택을 했다.

“볼!”

고의 사구 대신 바깥쪽 위주로 승부하면서 방망이를 끌어 내려 했지만, 볼 4개를 던지는 동안 김수호의 방망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고의 사구와 다름없는 투구 내용에 1루가 채워지고 타석에 들어선 강주호.

최지용이 벽을 느꼈던 메이저리그 타자들에 가장 근접한 타자가 바로 강주호였다.

강주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최지용이 애써 표정 관리하며 긴장된 마음을 숨겼다.

‘저 양반도 참 안 늙어.’

김수호와 강주호, 두 선수 중 돌핀스 배터리가 선택한 건 강주호였다.

김수호나 강주호나 둘 다 상대하기 싫은 타자였다.

다만 둘 중 하나를 고를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많이 상대해봤고, 자신과 비슷하게 늙은 강주호를 선택했을 뿐이다.

‘늙은이들끼리 놉시다.’

이제 20살이 된 타자를 걸러야 한다는 자존심?

그런 건 승리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차라리 1루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컸다.

생각을 정리한 최지용이 선택한 초구는 올해 쏠쏠하게 써먹었던 커브.

-따악!

하지만 그건 최악의 선택이 됐다.

우측으로 강하게 날아간 타구에 최지용이 급하게 포수 뒤쪽으로 이동했다.

이미 2루 주자는 홈을 밟는 상황, 관건은 1루 주자였다.

2아웃에 워낙 좋은 코스라 충분히 홈에 들어올 수 있는 타구.

김수호가 거침없이 3루를 밟고 홈으로 뛰어 들어왔다.

접전의 타이밍, 그리고 거침없는 슬라이딩.

“세이프!”

그리고 그 장면은 최지용도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국가대표에서 침체된 분위기를 단번에 끌어올렸던 주루플레이.

‘저러니 사람들이 미치지.’

상대 투수인 자신마저 미워할 수 없는데 응원하는 팬들, 같이 뛰는 선수들이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최지용이 후속타자를 마무리하고 더그아웃에 돌아갔다.

어찌 됐든 자신이 했던 선택.

후회는 없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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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최지용, 최지용 하는 게 아니다.

볼넷 이후 2타점 2루타.

흔들릴만한 상황이었지만 채지훈을 잡아내면서 이닝을 끝냈다.

“땡큐 브로, 2점이면 충분하지.”

“제가 낸 거 아닌데요?”

그러면서 김수호가 터덜터덜 더그아웃에 들어오는 강주호를 바라봤다.

“네가 뛰지 않았으면 1점으로 끝났잖아. 네 덕분이지.”

“그건 맞죠.”

“참나, 내가 1년만 젊었으면 네가 뛸 일도 없었어.”

어느새 근처에 온 강주호가 얘기를 들었는지 끼어들었다.

“웰링턴, 그래도 내 덕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냐?”

“당연하죠, 캡. 이따가 한 번 더 부탁해요.”

“오케이. 사직에서 사이클링 히트 보여줄게. 기대해.”

“선배님이 3루타를요?”

“마, 내가 그래도 3루타 꽤 쳤다. 한 7번인가?”

“정말요?”

“이번 이닝 깔끔하게 마무리하면 내가 보여준다. 기대해.”

그 말에 웰링턴이 웃으면서 마운드로 나갔다.

그 덕분일까, 2회 초는 무난하게 끝났다.

안타 하나를 허용했지만 무실점.

최지용도 감을 찾았는지 2회를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문제는 3회였다.

“볼!”

선두타자가 볼넷으로 출루했고 점수를 위한 번트가 이어졌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이규영.

-따악!

커브가 가라앉기 전 빠른 타이밍에 친 타구가 2루 베이스 위를 지나갔다.

다행히 2루 주자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니라 3루에서 멈췄지만 처음 맞는 위기였다.

1루에 까다로운 주자가 나간 상황.

하지만 웰링턴은 견제만 몇 번 하고 곧 타자에 집중했다.

불과 몇 개월 전이였다면 상상도 못 할 모습.

실제로 메이저리그까지 올라갔던 그가 실패한 건 제구의 문제도 있었지만, 주자가 나갔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것도 컸다.

가뜩이나 제구가 그다지 좋지 못한 투수, 흔들린 평정심에 볼넷을 내주기 일쑤였다.

‘브로가 해주겠지.’

하지만 김수호를 믿기 시작한 이후,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주자가 어디에 있든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김수호만 바라본다.

견제 역시 김수호의 사인 때문이었지, 사인이 없었다면 견제가 없이 던졌을 거다.

견제 사인 이후 들어온 사인에 투구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마린스 내야를 흔들기 위한 돌핀스의 작전도 이어졌다.

이규영이 뛰고, 동시에 3루 주자가 홈으로 뛸 기회를 엿본다.

“볼!”

타석에선 박광민이 공을 골라냈다.

아니, 골라낼 수밖에 없었다.

바깥쪽에 어깨 높이로 한참 빠지는 공을 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송구하기 가장 적합한 자세로 2루로 쏘아진 공, 이규영이 노련하게 바깥쪽으로 돌면서 손만 베이스를 잡기 위해 뻗었지만.

“아웃!”

코스가 너무 좋았다.

3루 주자도 꼼짝 못 하고 3루로 돌아갔다.

[완벽한 피치아웃이었습니다! 마린스 배터리가 돌핀스를 제대로 읽었습니다!]

‘역시 브로!’

이후 박광민의 플라이에 주자가 홈으로 들어왔지만 최소한의 실점으로 이닝을 막아낸 웰링턴이 애써 표정관리를 하면서 돌아왔다.

하지만 김수호와 눈이 마주치자 자동으로 지어지는 미소를 참기 힘들었다.

“브로, 네가 투수하는 건 어때? 던지는 걸 보면 나보다 잘 던질 거 같은데?”

“전 포수가 좋아요. 그리고 웰링턴만큼 던지려면 10년은 고생해야 할걸요?”

“브로라면 금방 배울걸? 내가 알려줄게.”

“그러면 제가 던지고 웰링턴이 받아주나요?”

잠시 진지하게 고민한 웰링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너만큼 포수를 할 자신이 없어. 없던 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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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1차전과 2차전이 그랬던 것처럼 3차전 역시 팽팽하게 진행됐다.

양 팀 투수들이 완벽하게 타선을 묶은 건 아니었지만, 실점을 최소화하면서 6회 초에 3대3 동점.

특히 최지용이 다시 한번 김수호 대신 첫 타석에 2루타를 허용한 강주호를 선택하고 당당히 삼진으로 이닝을 끝낸 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돌핀스 배터리도 김수호를 상대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6회 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선 김수호.

아무리 김수호라고 해도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는 건 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어떡할까요?’

포수의 사인에 최지용이 고민 끝에 승부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동점이 아니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거다.

물론 쉽게 갈 생각은 없다.

승부는 하되 카운트가 몰리면 볼넷으로 내보낼 각오를 하고 던진 초구.

-따아악!

바깥쪽 낮게 잘 들어간 공이 방망이에 맞으면서 살벌한 타구음을 냈다.

“파울!”

하지만 아무리 강한 타구라도 라인을 벗어나면 의미가 사라진다.

담장을 넘겼지만, 라인을 벗어난 타구에 김수호가 갸웃거리면서 타석을 잠깐 벗어났다.

그 모습을 본 최지용의 눈에 과거 자신의 공을 배팅볼 치듯 치던 몇몇 타자들이 오버랩됐지만 애써 그 기억을 떨쳐냈다.

파울이 아무리 커봤자 파울이다.

오히려 볼카운트가 유리해진 건 자신이었고, 연이어 적극적인 투구로 볼 카운트 1-2.

‘한 번 뺄까요?’

돌아가자는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돌린 최지용이 원하는 사인을 포수에게 보냈다.

고개를 끄덕인 포수가 위치를 잡고 최지용이 미트가 위치한 곳을 향해 공을 뿌렸다.

-따악!

공이 손을 떠날 때까진 분명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최고의 공을 던졌다고 했지만, 깔끔한 타격음이 들리자 방금 자신이 공을 던졌던 손을 바라봤다.

“선배님.”

어느새 마운드에 올라온 포수가 말을 걸었지만, 최지용의 시선은 그의 뒤를 보고 있었다.

“괜찮아.”

그러자 홈에 들어가는 김수호가 보였다.

“익숙해.”

익숙해지지 않는 그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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