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처음이라고요?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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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의미로 중요한 타석이었다.
한 점, 한 점 따라오던 돌핀스가 어느새 턱 밑까지 쫓아왔고, 마린스는 김수호의 3타점 이후 추가 득점이 없었다.
이용기가 김수호와 호흡을 맞춘 뒤부터 완숙한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마무리 투수 역할을 괜찮게 했지만 타오르기 시작한 돌핀스 타선을 막기엔 어딘가 불안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맞이한 추가 득점의 기회, 그리고 개인으로서도 팀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는 기록을 달성한 안타는 모두를 열광시켰다.
[초구! 김수호! 우측에 안타! 2루 주자 홈으로! 1루 주자 3루까지, 아! 김수호 2루를···. 노리다가 포기합니다!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완성하는 김수호!]
[마린스 팬들에게 꽤 익숙한 장면이었죠?]
[아, 그렇죠. 김수호 선수가 이전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걸 역이용하면서 2루까지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상대도 돌핀스였는데 기어이 완성하네요! 대단합니다! 김수호 선수!]
[이번 사이클링 히트는 한국시리즈뿐만 아니라 포스트 시즌에 기록한 첫 번째 사이클링 히트가 됩니다! 동시에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해설이 김수호가 세운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떠들 동안 강주호가 타석에 섰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고, 점수는 뽑을 수 있을 때 뽑아야 했다.
-따악!
[강주호! 중견수 앞에 적시타! 3루 주자 홈으로! 1루 주자는 2루에서 멈춥니다! 스코어 12 대 8! 다시 도망가는 마린습니다!]
이후 후속 타자 잭 미켈이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길었던 이닝이 끝났다.
가장 중요했던 점수를 뽑은 김수호와 강주호를 환영한 선수들이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이닝을 막으러 나왔다.
마운드엔 여전히 이용기.
[스트라이크 아웃! 가장 중요한 첫 타자를 삼진 처리하는 이용깁니다!]
[볼넷! 최강민, 이걸 참아냅니다!]
[헛스윙! 삼진 아웃! 이제 남은 아웃카운트는 하나!]
[쳤습니다! 날아갑니다! 계속 갑니다! 어디로! 담장 밖으로! 돌핀스의 마지막 희망을 살리는 투런 홈런! 스코어 12 대 10! 아직 경기 끝나지 않았습니다!]
9회 말 2아웃, 마지막 대타까지 쓴 돌핀스가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를 살렸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1번 타자 이규영.
-타악!
하지만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마지막 불씨는 허무하게 꺼져버렸다.
[유격수 잡아서 1루로! 아웃! 아웃입니다! 치열했던 한국시리즈 2차전, 그 승자는 부산 마린스입니다!]
장장 4시간이 넘는 혈투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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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돌핀스 10 : 12 부산 마린스, MVP 김수호]
[1차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의 경기, 그 치열했던 승부의 승자는 마린스!]
[기록의 사나이 김수호, 개인 통산 첫 사이클링 히트를 한국시리즈에서 장식]
[김수호, 사이클링 히트에 대해 듣자 ‘한국시리즈 처음이라고요?’ 하면서 되묻다]
ㄴ 수호야 ㅠㅠㅠㅠ 시바 ㅠㅠㅠㅠ 너밖에 없다 ㅠㅠㅠㅠ
ㄴ 그 와중에 2루 노리는 거 봨ㅋㅋㅋㅋ
ㄴ 그거 보고 지렸다. 진짜 김수호는 인간이 아님. 나였으면 1루에서 세레머니 할 텐데.
ㄴ 그 와중에 양 팀 수준 실화냐? 두 팀 합쳐서 20득점 넘게 했는데 실책 단 1.
ㄴ 걍 마린스가 4대0으로 털릴 줄 알았는데 개미쳤네 ㄷㄷ
ㄴ 이거 진짜 마린스 우승 각 아니냐? 허하준이 4차전, 7차전 등판이면 2승 확정인데?
ㄴ 허하준이라고 맨날 잘 던지냐 ㅡㅡ 타자들이 점수 못 낼 수도 있지
ㄴ 어. 맨날 잘 던지던데? 점수도 김수호 있어서 1점은 낼 거고
ㄴ ㄲㅈ
ㄴ ㅋㅋㅋㅋㅋ 마린스 올라왔다고 우승이라던 돌핀스 놈들 슬슬 무섭죠? 후회되죠?
ㄴ 프) ㅋㅋㅋㅋ 포스트 시즌 마린스 상대로 1승 거둔 팀 누구? 갓렌즈 재평가 ㄷㄷ
ㄴ 인정합니다
ㄴ 니가 뭔데
ㄴ 대 황린스 팬
ㄴ 인정합니다
ㄴ ㅋㅋㅋㅋㅋ 아오, 꼴린스 좋아하는 거 열받네
[돌핀스 감독,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반드시 홈으로 돌아와 우승컵 들 것.’]
[마린스 감독, ‘홈에서 트로피를 들 준비가 끝났다. 팬 여러분께 반드시 선물하겠다.’]
[3차전 선발로 브릭 웰링턴과 최지용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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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
“나쁘지.”
“내가 MVP 타고 싶다고 말했는데 지가 받은 거 봐.”
“양아치네.”
“양아치지.”
치열했던 2차전이 끝나고 승리로 잊힌 피곤이 찾아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뜨니 두 명이 보였다.
뭐 부산에 본가가 있는 이호민과 다르게 이주학은 집이 서울이라 부산에서 잘 때마다 집으로 데려와서 부모님과 친해졌다.
부모님이 좋아하셔서 그러려니 하는데 아침부터 찾아올 줄은 몰랐다.
“이주학은 그렇다 쳐도 넌 부모님이 뭐라 안 하셔?”
“어. 너네 집 간다고 하니까 좋아하시던데?”
하, 골이야.
“그래서 저 말 하려고 온 건 아닐 거고. 왜 아침부터 찾아와서 난린데.”
“아침? 너 시계 안 봤냐?”
“뭐?”
그 말에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보니 이미 오후 한 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와, 미친. 얼마나 잔 거야.”
어쩐지 개운하더라.
“그래서 왜 온 건데?”
둘이 같이 왔지만, 용건은 달랐다.
“어머니한테 드렸는데 부모님이 좋은 고기 들어왔다고 너 먹으래.”
“나는?”
“넌 없던데?”
“진짜?”
이주학이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자 이호민이 낄낄거렸다.
“너껀 우리 집에 있으니까 이따 가서 같이 먹자.”
“역시 한국시리즈 승리투수는 다르긴 해. 변화구가 좋은데?”
나름대로 회심의 드립이었지만 반응은 다른 부분에서 나왔다.
“어? 너 승투 먹었어?”
이주학의 다급한 물음에 이호민은 그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몰랐냐? 어제 하스가 4회 끝나고 내려간 담에 얘가 올라왔잖아. 그니까 승투지.”
“나, 한국시리즈 1승 투수.”
이호민이 본인을 가리키면서 그렇게 말하자 이주학이 망연자실했다.
“넌 사이클링 히트에 MVP고, 넌 승리투수고···. 나는? 난 머리까지 밀었는데···?”
“어제 마지막 아웃카운트 잡았잖아.”
“맞아. 어제 경기 하이라이트 나올 때마다 너 나오겠네.”
“닥쳐···. 이 기만자 놈들···. 닥쳐! 내가 어제 마지막 타석에 어떤 생각으로 뛰었는데···. 나만 기록 없어 나만!”
중얼거리는 이주학을 보자 안쓰럽기보단 웃겼다.
빡빡머리로 억울하다 외치는데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저렇게 생각하는 게 마냥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저런 마음가짐이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스텝업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넌 왜 온 건데?”
“그냥. 혼자 있기 심심해서.”
“진짜 그게 다야?”
“어.”
황당한 이유에 머리가 지끈거리려는 찰나, 이 상황에서 날 꺼내줄 전화가 왔다.
“잠만. 여보세요?”
-어. 뭐해?
“지금 호민이랑 주학이랑 있어요. 선배는요?”
-나도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 바빠?
그 와중에 통화 상대가 궁금했는지 이주학이 조용히 물었다.
“누구?”
“허하준 선배. 아뇨 안 바빠요.”
-그럼 잠깐 나올래?
“지금요?”
-아니, 천천히 나와도 괜찮아.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 집에 붙어 있는 저 두 놈을 보고 있자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네. 지금 나갈게요. 어디로 가면 돼요?”
-내가 문자 보내놓을게. 출발할 때 말해.
“넵.”
“왜? 뭔데?”
“너네 빨리 꺼져. 나 나가야 돼.”
“나도 가면 안 돼?”
“나도.”
“응 안돼. 가뜩이나 지금 난리가 났을 텐데 넷이서 몰려다니자고? 무조건 알아보지.”
내 말에 둘 다 수긍하는 듯 했다.
하지만 오류를 발견한 이주학이 말했다.
“애초에 허하준 선배랑 네가 문젠 거 아냐?”
“시끄럽고 빨리 가!”
힘으로 밀어내자 그제야 항복한 둘이 방문을 열고 사라졌다.
“어후, 정신없어.”
그나저나 허하준은 또 왜 보자고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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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수호야, 여기.”
허하준은 혼자가 아니었다.
“안녕?”
“안녕하세요···.”
분명 말을 놓기로 했음에도 또 존댓말로 돌아오는 답에 김수호가 웃으면서 물었다.
“그 모자 좋아하나 봐?”
그 말에 움찔한 허하율이 김수호 몰래 허하준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뒤진다. 진짜···.’
“어? 뭐라고?”
“아, 아니에요···.”
오늘도 허하준에게 낚여 제대로 꾸미지도 못하고 나온 허하율이었다.
그나마 김수호와 모자가 같다는 이유로 내심 기분이 좋았다.
물론 김수호는 그냥 경기 때 쓰는 모자를 쓰고 온 거지만.
거기에 김수호의 손목에 자신이 해줬던 팔찌를 발견하자 금세 흐뭇해졌다.
솔직히 카메라에 저 팔찌가 잡힐 때마다 주변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렀다.
실제로 한 사람도 아니고 둘이, 그것도 허하준과 김수호가 동시에 비슷한 팔찌를 하고 나오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허하준 돈 별로 못 버냐?
ㄴ ㅈㄴ 허접한 팔찌 뭐임?
ㄴ ㅋㅋㅋㅋㅋ 김수호도 비슷한 거 했던데? 마린스에서 유행인가 보지.
아무튼 허하준의 동생으로서 괜한 어그로는 독이 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 허하율로서는 부모님을 제외하곤 이 사실을 숨겼다.
“뭐 마실래?”
“저 달달한 거 아무거나요.”
“그래? 하율아, 너 마시는 걸로 하나만 시켜줘.”
허하준과 김수호가 직접 주문하기엔 너무 눈에 띄었고, 허하율이 주문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예요?”
“별건 아니고 둘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허하율은 플레이오프 표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김수호는 팔찌를 만들어준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걸로 두 사람에게 소원권을 받았었다.
김수호는 큰 신경 쓰지 않았지만, 허하율은 그간 허하준이 해온 기행에 살짝 긴장했다.
“시즌 끝나고 봉사하는 곳이 있는데 같이 가자.”
“봉사요?”
“어. 매년 하는 게 있는데 작년엔 부상 때문에 못 갔었거든. 괜찮지?”
“좋죠. 어딘데요?”
김수호는 관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었지만, 허하율은 그저 허하준이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봉사를 한다는 걸 모르진 않았지만, 너무 뜬금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고, 허하율도 승낙하면서 다음 약속을 잡았다.
“저 지금 웰링턴 만나러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좋지. 하율아, 넌 집에 가지?”
“어. 가야지.”
“다음에 보자.”
김수호의 웃는 얼굴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어진 후, 김수호는 궁금했던 걸 물어봤다.
“원래 저렇게 말이 없어요?”
“음···. 그렇지?”
잠깐 고민하던 허하준이 그냥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는 모르겠지만, 그가 살면서 허하율에게 도움이 된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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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 선수들은 하루의 휴식을 피로를 풀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데 썼다면 돌핀스는 그 반대였다.
두 경기가 양상은 달랐지만 접전이었다.
항상 이런 접전에서 승리하는 건 돌핀스였던 만큼 데미지는 더욱 컸다.
심지어 한국시리즈에서 당한 패배니 그 피로는 배가 됐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지기엔 선수와 코치진들이 겪어온 디펜딩 챔피언의 무게가 남달랐다.
“지금 마음속에 마린스를 깔보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전부 비워라.”
돌핀스 감독의 말에 선수들이 움찔거렸다.
지난 4년간 두 팀 간의 상대 전적은 50승 14패.
돌핀스가 1위를 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준 팀이 마린스였다.
“우리가 상대하는 건 지난 5년간 항상 밑바닥에 있던 그 팀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날얘기였다.
코너에 몰린 건 돌핀스였고, 이젠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우리는 반드시 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거기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 알겠나!”
“예!”
“지용이, 민규. 오늘 김수호가 타석에 서면 전부 걸러도 좋다. 너네 판단에 맡길 테니까 원하는 대로 해봐.”
배터리를 이루는 두 선수에게만 해도 될 말을 굳이 모두가 모인 장소에서 한 건 감독이 다른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거였다.
봐라, 고작 20살이 된 루키를 거르는 지금 이 모습을.
그 광경을 보고 마음이 평온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프로 자격이 없는 거였다.
그렇게 결연한 마음으로 선수들이 경기를 준비하고.
[오늘 시구는 최소 경기 20 홈런볼을 김수호 선수에게 양도한 마린스 팬 박민수입니다!]
박민수의 시구와 동시에 21세기 최초의 사직 구장 한국시리즈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