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26화 (126/203)

126화 처음이라고요? - 7

#

“솔찬이! 마! 이제라도 무조건 막아라!”

5회 초 마린스 공격.

환호하는 3루와 다르게 구장의 주인인 돌핀스 팬들은 그야말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나마 응원석에서 관람 중인 돌핀스 팬, 일명 마산 아재라 불리는 박충남 씨가 내지른 말에 응원단장이 말을 이었다.

“자, 이솔찬 선수에게 응원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솔찬! 이솔찬! 이솔찬!”

그 응원 덕분일까, 이솔찬은 강주호를 뜬공으로 마무리하면서 기나긴 5회를 마무리했다.

겨우 이닝이 끝나긴 했지만, 겨우 따라갔던 점수가 다시 벌어졌다.

하지만 박충남 씨의 가슴속에 들끓는 감정은 점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 타자들! 정신 똑디 차려라!”

박충남 씨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약간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원년 구단인 마린스와 창단한 지 20년이 넘은 돌핀스.

두 구단은 위치만 가까운 게 아니었다.

돌핀스가 창단할 때부터 반대했던 마린스였고, 돌핀스 팬 중 상당수는 원래 마린스를 응원했던 팬들이었다.

당시 마린스 수뇌부의 행태와 저조한 성적을 이유로 신생구단인 돌핀스를 선택했던 팬들이 많았다.

박충남 씨 역시 이때 돌핀스로 옮겨갔다.

전면드래프트 시행으로 연고지 문제는 괜찮아졌지만, 팬이나 구단이나 서로를 향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런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갈등보단 바로 옆에 있는 구단으로서 경남 라이벌리를 만들면서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로 발전했다.

하지만 마린스와 돌핀스의 성적이 점점 격차가 심해지자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 못했고, 이제는 유명무실해진 라이벌이 됐다.

그래서일까, 올 시즌 마린스의 약진에 가장 좋아했던 팬들이 바로 돌핀스 팬이었다.

-돌) 올 시즌 마린스 코시 오면 재밌긴 하겠다.

ㄴ 경남 더비면 ㄹㅇ 왔다 갔다 하기도 편하고 꿀잼각 아님?

ㄴ ㅋㅋㅋ 마린스가 코시를 어케 감?

ㄴ 네 다음 돌핀스 팬인 척 하는 꼴리건

ㄴ 아니;; 나 진짜 돌핀스 팬인데 진심으로 하는 얘기임.

[돌핀스 팬 61%, 한국시리즈 상대로 마린스 원해···. 프렌즈 2위, 스타즈 3위]

포스트시즌 직전에 이런 기사까지 나올 정도로 마린스를 원했던 게 바로 돌핀스 팬들이었다.

하지만 박충남 씨를 위시한 돌핀스 팬들이 원한 건 이런 장면이 아니었다.

어제도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상대 선발이 허하준이니 그래도 이해할만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라야 했다.

잭 랜들이 고작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고 내려가면 안 됐고, 이후 투수들도 추가 실점을 허용하면 안 됐다.

거기에 5회부터 셋업 이솔찬까지 올라왔는데 추가점, 그것도 3점이나 내주면 안 됐다.

지금 3루에서 환호하는 김수호가 망연자실하면서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들이 보고 싶어 했던 건 산왕을 꺾은 북산처럼 겨우 올라온 한국시리즈에서 허무하게 탈락하는 마린스였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거기에 벌써 이겼다는 듯 신나 하는 마린스 팬들을 보자니 가슴 속에서 무언가 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수호의 3타점으로 이제 점수 차는 5점.

하지만 마린스의 선발 투수는 내려갔고 뒤이어 올라온 투수는 올 시즌 데뷔한 이호민이었다.

이런 중요한 순간에 20살 루키라니, 곧 기운을 되찾은 박충남 씨가 응원단장의 구호에 맞춰 응원가를 따라불렀다.

“돌핀스 한! 상! 욱!”

비록 삑사리에 엇박자, 율동마저 엉거주춤했지만 돌핀스를 응원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강했다.

하지만 이호민의 초구가 꽂히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저, 점마 뭐꼬!”

가볍게 던진 것 같은데 구속이 154km가 나왔다.

이호민을 처음 본 건 아니었지만, 저 정도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아니었다.

2구, 3구 공을 던질 때마다 구속이 1km씩 늘어나더니 4구를 던지자 구속이 뚝 떨어졌다.

143km.

분명 어지간한 투수의 패스트볼 정도 되는 구속이었지만, 좀 전에 본 구속에 비하면 선녀였다.

하지만 갑자기 구속이 낮아졌다는 건, 다른 공을 던졌다는 거다.

“스트라이크 아웃!”

바깥쪽으로 급속도로 휘어 나가는 공에 헛스윙한 한상욱이 팬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듯 이호민을 쳐다봤다.

물론 완벽투를 한 건 아니었다.

공은 빠르고 묵직했지만 제구가 이곳저곳 빗나가기 일쑤였고, 반대 투구는 일상이라 김수호의 미트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볼넷으로 타자들이 나가긴 했지만 결국 무실점.

“우짜면 좋노···.”

나지막하게 나온 박충남 씨의 말이 돌핀스 팬들 귓가에 맴돌았다.

#

“오늘 터프한데? 누가 보면 눈 감고 던진 줄 알겠어?”

“....”

볼넷 두 개를 내줬지만 삼진 3개를 잡으며 이닝을 마친 이호민을 반기며 같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갔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너 진짜 눈 감고 던졌냐?”

“야.”

“어.”

“나 심장 존나 뛰어. 이러다 죽는 거 아니겠지?”

눈 감고 던진 거 맞네.

그제야 대답을 한 이호민이 숨을 몰아쉴 때 이주학이 싱글벙글하면서 다가왔다.

“어후, 이 한국시리즈 선배님이 어떻게 멘탈 관리하는지 알려줘?”

“너 어제 나한테 카톡 한 거 벌써 까먹었냐? 호민아, 나 공 더듬었을 때 오줌쌀···.”

“미친놈아!”

이주학이 급하게 이호민의 입을 막았지만 오히려 관심을 끄는 꼴이 됐다.

“읍읍.”

“오프 더 레코드를 막 공개하면 안 되지. 더 말할 거야, 안 할 거야?”

이호민이 고개를 젓자 천천히 입을 막은 손이 떨어졌다.

“너 근데 왜 더그아웃에서 모자 쓰고 있냐?”

“왜겠냐.”

“부끄러워할 거면 왜 민 거야?”

“그냥 신경 좀 꺼주면 안 될까?”

하지만 이주학을 보면 절로 머리에 시선이 갔다.

이런 내 시선을 의식한 걸까, 이주학이 타격 연습을 한다는 핑계로 도망갔다.

“그래서 수호야, 나 다음 이닝에도 나올 수 있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야 코치님들이 너 의견 맨날 물어보는 거 다 알아. 네가 오케이면 되는 거 아냐?”

“그 정돈 아니고.”

강기호 때문인지는 몰라도 유독 코치님들에게 공을 받는 포수가 투수를 가장 잘 안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만약 오늘도 나한테 묻는다면.

“수호야.”

“넵.”

기가 막힌 타이밍에 강기호의 호출이 있었다.

용건은 역시 이호민의 멀티 이닝.

“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제구는 어떤데?”

“가끔 튀는 공 제외하면 좋습니다.”

“가끔 맞지?”

강기호의 물음에 그냥 웃음으로 대답했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필승조인 김동준 – 정태석 – 이용기가 가동하려면 아직 1이닝이 남았다.

김호기나 박상훈이 있긴 했지만 이 둘은 원포인트로 사용할 수 있으니 이호민이 멀티이닝을 책임지는 게 가장 좋았다.

거기에 돌핀스 마운드를 지키는 이솔찬이 빠르게 이닝을 끝내기도 했고.

“호민아, 준비해라.”

“넵!”

아까 심장이 터져서 죽는다느니 앓는 소리를 했지만, 역시 야구 선수라면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거다.

“이 형님이 다 잡아줄 테니까 다 내 쪽으로 보내.”

어느새 돌아온 이주학이 한마디 보탰다.

“그걸 내 맘대로 어떻게 하냐.”

“못해? 진짜?”

이놈들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시끄러. 빨리 준비나 해.”

“넵.”

“넵.”

어후.

6회 말, 두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한 이호민이 이규영에게 안타를 허용했다.

그 뒤로 박광민 타석에 두 개의 볼이 꽂히자 마운드로 올라갔다.

“왜 왔어.”

“왜 왔겠어.”

“나 안 쫄았어.”

“알아. 내가 모르겠냐?”

제 딴엔 존에 넣으려고 하는 데 그게 잘 안되는지 주춤주춤하길래 올라온 거였다.

“야. 이거 봐봐.”

“뭔데?”

미트를 열었다 닫았다 하는 모습을 본 이호민이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깔끔하게 공 3개 집어넣고 끝내자. 어때?”

“그게 쉽냐?”

“얘가 지금까지 네 공을 잡으려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이젠 좀 편안하게 잡게 해줘야지. 안 그래?”

“미트가 사람이냐, 얘라고 하게.”

괜한 트집을 잡은 이호민이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봤다.

“오케이. 쫄리면 말해. 주학이 쪽으로 공 보내줄 테니까.”

“꺼져. 절대 안 보내.”

그러면서 이주학을 살짝 쳐다보자 입 모양으로 ‘왜?’ 하는 이주학이 보였다.

“나 간다. 더그아웃에서 보자.”

“오케이.”

이호민과 글러브를 맞대고 내려왔다.

벤치에서 이호민의 상태를 묻는 사인이 나왔고 고개를 저었다.

이호민이 내가 보낸 사인에 숨을 한 번 내쉬고 미트를 향해 공을 던졌다.

“파울!”

스트라이크를 던질 걸 예상한 듯 방망이를 낸 박광민이었지만, 힘으로 이겨냈다.

이제 2구 같은 5구째.

“스트라이크!”

이번엔 헛스윙.

‘157?’

손맛 좋은데?

허하준과 호흡을 맞출 때도 느껴보지 못한 손맛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오케이. 여기 넣고 끝내자.’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이닝을 끝낼 준비를 했다.

“2루 뛰었다!”

견제가 없다시피 한 이호민의 투구에 이규영이 뛰어봤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바깥쪽 꽉 찬 158km의 포심에 박광민이 얼어붙었다.

물론 살짝 끌어오긴 했지만, 이호민이 던졌던 공 중에 최고의 공이었다.

“어땠냐?”

“낭만 있네.”

“야! 내 쪽으로 보내라니까 왜 안 보내!”

아오, 저 분위기 파악 못하는 놈.

#

이솔찬과 이호민의 호투로 잠시 식었던 두 팀의 타선은 두 투수가 내려가자 다시 불타올랐다.

7회 초 공격에서 바뀐 투수를 상대로 2루타를 친 이주학이 이어진 박은성의 안타 때 홈에서 아웃당하면서 아쉬운 플레이가 나왔다.

이후 최치호가 안타, 오준혁이 삼진.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김수호를 상대로 투수가 볼넷을 허용하자 3루 응원석에서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김수호의 성적은 홈런 – 2루타 – 3루타.

단타 하나면 사이클링 히트가 완성되는 타이밍에 볼넷은 평소라면 욕이라도 나올법한 투구였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한국시리즈.

사이클링 히트도 딱히 허용하고 싶지 않은 기록이지만 그게 강주호 앞에 굳이 만루를 채울 이유가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강주호가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마린스 팬들은 아쉬움이 두 배가 됐다.

이어서 올라온 투수는 김동준.

140km 중반의 묵직한 포심으로 첫 타자를 안정적으로 처리했지만 이어지는 중심타선에 고전했다.

김효준에게 안타, 스티브 오웬에게 홈런을 허용하고 고개를 떨군 김동준이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이어서 등판한 김호기가 남은 두 타자를 잘 처리하면서 10대7.

8회 초에서 마린스가 또다시 무득점으로 침묵했고, 돌핀스는 하위타순에 대타를 기용하기 시작했다.

김호기부터 시작한 투수는 박상훈, 정태석을 거쳐 2사 만루에 몰렸다.

그리고 정태석이 4번 타자 김효준에게 볼넷을 허용하면서 2점 차.

결국 이용기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아무리 이용기가 많은 경험이 있는 투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만루를 막기 위해 등판한 경험은 없었다.

그렇게 스티브 오웬을 상대로 던진 7번째 공.

“스트라이크 아웃!”

이용기가 주먹을 불끈 쥐자 3루 쪽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가 던진 7개의 공 중 포심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오직 포크볼로 승부를 이겨내고 이제 9회 초, 마린스의 마지막 공격.

선두타자는 이주학이였다.

#

오늘 이주학은 대타로 출장해 2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상대는 마무리 오상엽.

섣불리 방망이를 내봤자 먹힌 타구가 나올 게 분명했다.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하지만 연속된 스트라이크에 순식간에 카운트가 몰리자 급해졌다.

“자, 잠시만요!”

‘무조건 나가야 하는데.’

마린스가 앞서고 있지만 마린스는 점수를 못 뽑고 있었고, 5점 차였던 점수는 어느새 2점으로 좁혀졌다.

이제 정말 턱 밑까지 쫓아온 돌핀스를 생각하면 반드시 추가점이 필요했다.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호한테 한 타석 더 줘야지.’

사이클링 히트가 어디 쉽게 나오는 기록인가.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그런 기록은 더더욱 나오기 어려웠다.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운 기록이었다.

“타자, 그만하고 들어와.”

“넵.”

시간이 지체되자 심판이 경고를 했고 이주학이 급하게 타석에 섰다.

‘시바. 그래. 나도 오늘 2안타 쳤어. 해볼 만해.’

-따악!

“파울!”

“파울!”

“파울!”

방망이를 꽤 잘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주학이 얕은 숨을 내쉬었다.

‘공이 뭐 저래.’

그리고 여섯 번째 공.

-따악!

빗맞은 타구가 이번엔 그라운드 안쪽으로 흘렀다.

이주학이 전력으로 뛰었고 느리게 흐른 공은 우오준이 잡고 1루로 뿌렸다.

“세잎!”

마지막에 몸을 날리면서 쓰고 있던 헬멧이 날아갔다.

부끄러웠던 밤톨이 머리가 드러났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저 들린 목소리에 행복해하던 찰나.

‘목소리가 익숙한데?’

“아웃!”

그가 들은 목소리는 아쉽게도 1루 코치가 외친 거였고, 결과는 아웃이었다.

비디오판독까지 진행됐지만, 원심이 유지됐고 고개를 떨구고 더그아웃에 돌아왔다.

“나이스! 파이팅 좋았다!”

“고생했다. 잘했어.”

투지 넘치는 플레이에 선배들이 칭찬을 해줬지만, 이주학은 그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MVP?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딴 건 별로 필요 없었다.

그냥 이번 이닝엔 꼭 살아나가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래서 너무 아쉬웠다.

“야, 멋있는데?”

김수호가 웃으면서 다가왔지만 할 말이 없었다.

“왜 그래?”

“그냥.”

풀이 죽어 돌아가는 이주학의 모습을 본 건 김수호뿐만이 아니었다.

투수조에 막내라고 하면 이호민이 있지만, 타자조엔 김수호와 이주학 둘이 있었다.

하지만 김수호는 막내라고 하기엔 너무 커버렸고, 타자들이 생각했을 때 정말 막내 같다 느끼는 건 이주학뿐이었다.

그런 이주학의 파인 플레이에 선배들, 특히 같은 키스톤을 구성하고 있는 최치호에게 큰 자극이 됐다.

박은성이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최치호의 강한 타구가 내야를 뚫어냈다.

그리고 오준혁이 8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내면서 결국 김수호까지 타석에 들어섰다.

“김수호 파이팅!”

이주학이 타석에서 큰 소리로 외쳤고 그 소리는 곧 팬들의 응원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그리고 초구.

-딱!

욕심 없이 공이 흘러오는 궤적에 거스르지 않고 적당히 밀어 친 공이 1루수 키를 넘겼다.

“와아아아!”

2아웃에 스타트를 끊은 최치호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깔끔한 적시타.

그리고 한국시리즈라는 무대에서 처음으로 기록한 사이클링 히트였다.

“미친 새끼.”

그 와중에 2루를 노리는 걸 보면 그냥 딱 이 말이 맞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