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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24화 (124/203)

124화 처음이라고요?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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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주학이 머리를 민 의도가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한 거라면 100% 성공이다.

내가 괜히 홈런을 칠 때마다 더그아웃용 헬멧을 살까 고민하는 게 아니다.

야구 선수들은 맨날 공을 잡으면서 살아서 그런지 동글동글한 걸 좋아한다.

거기에 매일 방망이로 후려치고, 손으로 워낙 세게 잡다 보니 손속도 험한 편이다.

홈런을 치면 이때다 싶어서 선·후배 가리지 않고 머리만 노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 항상 조심해야 한다.

심지어 그 드센 황인재마저 국가대표에서 홈런 칠 때마다 머리 간수를 못 해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봤을 정도니, 선수들의 머리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그런 야구 선수 앞에 탐스러운 밤톨이 머리를 한 이주학이 나타났다.

“상무 가려고? 아직 좀 남지 않았냐?”

“잘 어울리긴 하네. 그래도 너무 홧김에 자른 거 아니냐?”

“뭐? 하스가 머리 밀면 활약할 수 있다고 해서 밀었다고? 야, 아무리 그래도 머리를 미냐. 쯧. 그래. 열심히 해라.”

듣기만 하면 딱히 이상 없는 대화였다.

하지만 이주학의 머리를 보고 말만 하는 선배가 없는 게 문제였다.

선배들이 지나가다 이주학을 발견하면 말을 걸기 전에 먼저 머리를 한번 만져보고, 감탄하고, 말하고 있다.

정확하게 이 순서대로 벌써 3명째.

이용기, 박은성, 최치호 순으로 지나갔다.

“...거기서 쪼개지만 말고 좀 도와줘.”

“딱히 도움이 필요한 상황은 아닌데? 왜, 선배들도 좋아하고 보기 좋잖아.”

“야, 진짜 그럴 거야!?”

“알았어, 알았어. 뭐 해주면 되는데?”

“나도 MVP 한번 받고 싶어.”

“한국시리즈 MVP?”

“미쳤냐? 나도 내 실력은 잘 알아. 솔직히 한국시리즈 MVP는 말도 안 되지만 한 경기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거 아냐?”

흠. 뭐 이주학이 MVP를 받으면 그 경기에서 우리가 이긴다는 거니까 좋은 일이다.

“뭔 말인지 알겠는데 너 오늘 라인업 모르냐? 어제 안 봤어?”

“어? 왜?”

“너 오늘 선발 아닌데? 민상 선배가 선발이야.”

근데 얘는 무슨 경기에 출전도 안 하는 놈이 무슨 MVP야.

내 말을 듣자 이주학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미친놈아, 어떻게 한국시리즈에서 라인업도 안보냐?”

“아니···. 어제 하스 찾아가느라 급해서···.”

최근에 이주학이 워낙 안정된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고, 출루도 쏠쏠하게 하고 있었으니 선발을 자신한 것도 이해는 됐다.

하지만 오늘 돌핀스의 선발 투수는 좌승사자라 불릴 정도로 좌타자에 강한 투수.

그런 만큼 오늘 라인업에서 좌타자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뭐, 좌타자라고 해봤자 채지훈, 이주학 둘 뿐이지만.

“그래도 노리는 게 MVP면 후반에 대타로 나와서 결승타 치면 되지 않을까?”

나름 이주학을 달래주기 위해 말했지만, 교체로 출전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아무튼 머리까지 밀었는데 이대로 풀 죽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안쓰러워서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너 요즘 잘하잖아. 내가 선발 투수 빨리 내려줄게. 불펜 나오면 너도 바로 나올걸?”

“진짜?”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데 밤톨이 머리로 그러니까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뭔데?”

“나도 한 번만 만지게 해주면 안 되냐?”

솔직히 말하면 저 머리를 보면 누구든 한 번쯤은 만지고 싶은 욕구가 들 거다.

두상이 동글동글한 게 그립감이 참 좋아 보인다.

“미친 새낀가?”

이주학의 밝았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들어갔지만, 이내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 왜 야구 선수들이 머리를 좋아하는지 알겠다.

웰시코기 궁딩이랑 느낌이 비슷하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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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시리즈 2차전 중계를 맡은 이명준입니다.]

[오연석입니다.]

[오늘 양 팀 라인업에 변화가 있죠?]

[예. 양 팀 모두 선발 투수를 좌투수로 예고했습니다. 돌핀스는 좌완 잭 랜들, 마린스는 요그 하스가 선발입니다.]

[먼저 마린스 선발 라인업입니다. 리드오프엔 중견수 박은성과 2루수 최치호, 이어서 3번 3루수 오준혁, 4번 포수 김수호, 5번 1루수 강주호입니다. 강주호 선수가 오랜만에 1루수로 출장합니다.]

[돌핀스의 잭 랜들 선수가 워낙 좌타자에 강하다 보니 채지훈 선수가 선발에서 빠졌습니다. 강주호 선수도 최근 무릎 부상이 좋아져서 수비에 나설 수 있다고 합니다.]

[이어서 6번 우익수 잭 미켈, 7번 지명타자 김민석, 8번 좌익수 이준, 9번 유격수 이민상입니다. 오연석 위원님. 오늘도 역시 김수호 선수를 투데이 플레이어로 뽑았습니다.]

[이 선수를 뽑지 않고 도저히 다른 선수를 뽑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큼 공격에서나 수비에서나 마린스의 핵심 선수죠. 어제 경기에선 4타수 1안타로 약간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기가 막힌 슬라이딩으로 선취점을 만들어냈고, 또 마지막 캐치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죠.]

[마린스에겐 반드시 김수호 앞에 주자를 쌓아놓으려고 하겠네요. 자, 그걸 막아야 하는 돌핀스의 선발, 잭 랜들입니다.]

[이번 시즌 존 그레이와 최지용 사이에서 좌투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올 시즌 14승 6패,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좌타자에게 극강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오늘 우타자밖에 없는 마린스 타선을 상대로 어떤 피칭을 할지 기대가 됩니다. 자, 1번 타자 박은성이 타석에 섰습니다. 잭 랜들 초구!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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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3루수와 유격수를 꿰뚫을 듯한 코스로 공이 날아갔다.

하지만 공은 내야를 벗어나기 직전 우오준의 글러브에 잡혔다.

백핸드 캐치 후 1루로 강하게 날아간 공.

“세이프!”

하지만 박은성의 발이 공보다 빨랐다.

“나이스!”

“저놈은 늙질 않냐. 은성이 아니었으면 잡혔겠는데?”

과정이 어찌 됐든 발이 빠른 선두타자가 나간 상황.

최치호가 적극적으로 승부를 이어가며 주자를 진루시키기 위해 애썼다.

-따아악!

“아웃!”

풀카운트에서 중견수 쪽에 높이 뜬 타구, 아쉽지만 박은성이 진루하기엔 약간 부족했다.

하지만 분명 소득이 있었다.

풀카운트까지 끌고 가면서 오늘 주심이 바깥쪽이 몸쪽보다 후하다는 것과 최치호에게 공을 7번 던질 동안 견제를 다섯 번 할 정도로 주자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정도만 해도 경기 초반에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다고 봐도 된다.

이어서 대기타석에서 오준혁의 타석을 지켜봤다.

나도 투수의 공에 타이밍을 맞춰 휘두르는 동안 오준혁의 방망이가 날카롭게 돌아갔다.

-따아악!

투수 옆을 뚫고 2루 베이스를 지나 외야로 빠져나간 타구.

이번 공은 우오준도 막지 못했다.

박은성이 가속을 살리면서 3루까지 들어가면서 1사 주자 1, 3루.

내 앞에 세 명의 타자밖에 없었지만 생각보다 얻은 정보가 많았다.

박은성과 오준혁의 안타, 그리고 최치호의 타구질을 생각했을 때 분명 투수의 공에 힘이 없었다.

거기에 잭 랜들은 타자당 평균 투구수가 4개 미만인 투수.

최치호가 공을 계속 걷어냈다는 건 위닝샷으로 쓰던 구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거다.

잭 랜들의 구종은 포심, 슬라이더, 커터, 체인지업 등.

우타자를 상대할 때 주로 쓰는 구종은 체인지업이었고, 체인지업은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느린 포심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으니 이제 남은 건 수 싸움이다.

‘공이 안 좋은데 과연 강주호와 승부하려고 할까?’

강주호를 떠나서 1회부터 만루를 채우겠다는 생각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잭 랜들은 다행히 평범한 사람에 속했다.

“스트라이크!”

초구를 흘린 건 투수가 나와 붙으려는 마음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방금 저 공은 좀 아쉬운데?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간 146km의 포심.

꽤 빠른 공이었지만, 밋밋했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허용했지만, 주자가 1, 3루인 이상 아직 내가 유리하다.

어제 1점으로 경기가 끝난 걸 생각하면 최소 실점으로 이닝을 마치고 싶어 할 거다.

그러면 배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낮은 공뿐.

“볼!”

“볼!”

공 두 개가 연속으로 낮게 들어오면서 볼이 됐다.

심지어 마지막 공은 초구에 던진 밋밋한 포심과 비슷했는데, 구속은 130km 중반 남짓.

‘조금만 더 위로 왔으면 억울했겠는데?’

아마 체인지업이 제대로 안 떨어진 것 같은데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욕심이 생겼다.

원래 목표는 1점이라도 뽑는 것.

하지만 이제 목표가 바뀌었다.

“볼!”

다시 하나 빠지는 볼.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3-1 카운트가 됐다.

얼토당토않은 볼을 던진다면 걸어 나갈 준비가 됐다.

하지만 저렇게 밋밋한 공을 이 타이밍에 던지면 지켜만 보기엔 너무 먹음직스럽잖아.

-따아악!

의도적으로 퍼 올린 타구가 그대로 담장을 향해 날아간다.

이규영이 공 위치를 확인하면서 따라가 봤지만 최치호의 타구를 잡았던 것과 다르게 이번 타구는 이규영이 잡을 수 없는 위치에 떨어졌다.

21세기 마린스의 한국시리즈 첫 홈런,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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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1회에 3점을 내줬다지만 선발 투수를 바로 바꾸는 결정은 하기 힘들다.

하지만 홈런 이후 강주호에게 볼넷, 잭 미켈에게 안타, 이민석에게 다시 볼넷을 내준다면 선택은 쉬워진다.

특히 시리즈 전적이 1대0으로 뒤지고 있는 한국시리즈라면 더더욱 쉽다.

1사 주자 만루, 타석엔 이준이었다.

“볼!”

선발 잭 랜들이 내려가고 올라온 투수는 돌핀스의 4선발이었던 한명훈.

한국시리즈 동안 롱릴리프로 보직을 바꾼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몸을 풀고 만루 상황에서 제 공을 던지기란 쉽지 않았다.

“볼!”

이준이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내면서 4대0.

여기서 한 방이 더 터지면 이번 경기도 쉽게 갈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민상이 초구에 친 타구가 그대로 우오준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웃!”

“아웃!”

만루에서 병살이 나왔지만, 더그아웃 분위기는 좋았다.

아쉽지만 1회부터 4점이면 충분한 점수다.

그나저나 어쩌다 보니 선발 투수를 빨리 내려주겠다는 이주학과의 약속을 지켰다.

나 혼자 한 건 아니지만 어찌 됐든 이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이주학이 그동안 보여줬던 퍼포먼스가 얼마나 감독님의 마음에 들었는지다.

물론 이주학을 걱정하기엔 마냥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다.

선두타자로 나선 이규영이 초구를 받아치면서 깔끔한 중전 안타로 살아나갔다.

하스가 이규영이 1루에 있다고 해서 흔들릴 투수는 아니지만 볼 배합에 영향이 가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규영이 갈듯 말듯 하면서 심기를 건들고 있다.

그리고 2번 타자 박광민은 그걸 아주 잘 이용하는 타자다.

정규시즌 1위다운 참 까다로운 타선이다.

박광민을 지나면 한상욱, 김효준, 스티브 오웬 등 한 방이 있는 타선을 상대해야 한다.

주자를 쌓는 건 최악.

-따악!

“아웃!”

그나마 아웃카운트와 진루를 교환했다.

이제 1사 주자 2루에 한상욱.

시즌 17홈런을 친 만큼 한 방이 있는 타자다.

2루 주자가 이규영인 만큼 단타에 홈으로 들어오는 건 감수해야했다.

하지만 장타는 다르다.

홈런이면 2점, 2루타 이상만 나와도 1점에 득점권에 주자가 남는다.

오늘 위력이 좋은 포심과 커터 위주로 바깥쪽 승부를 이어갔다.

“파울!”

“볼!”

“볼!”

“스트라이크!”

후, 아슬아슬한데?

이번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투심을 요구했다.

-딱!

강하게 맞은 타구가 유격수 방향으로 날아갔다.

이민상이 뒤늦게 몸을 날려봤지만 이미 공은 내야를 뚫은 이후였고 이규영이 여유롭게 홈으로 파고들었다.

‘조금 아쉽네.’

1루에 못 던져도 공을 묶어놓기만 했으면 이규영이 3루에서 멈췄을 거다.

물론 이규영이 대담한 것도 있다.

조금 머뭇거릴 법도 한데 주저 없이 홈에 들어온 걸 보면 타구 판단이 정말 빠르다.

1점을 허용했지만, 아직 4대1.

이제 4번 타자 김효준의 타석.

-따악!

강습 타구를 최치호가 몸으로 막고 2루로 던졌다.

“아웃!”

이민상이 공을 꺼내면서 빠르게 1루로 던졌다.

“세이프!”

하지만 급했던 탓일까, 송구가 약간 빗나가면서 강주호의 발이 떨어졌다.

“후. 아쉽네.”

한상욱의 걸음이 느린 걸 모를 리는 없었을 거고, 아마 한국시리즈라는 무대가 부담이 된 것 같다.

“스트라이크 아웃!”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면서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언제든 잔불이 큰 산불로 번질 수 있는 상황.

아직 안심하기엔 위기가 산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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