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22화 (122/203)

122화 처음이라고요?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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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이규영이 타석에 들어서면서 먼저 말을 걸었다.

“어땠냐? 이제 이 선배님을 리스펙할 생각이 좀 드냐?”

“뭔 소리예요? 전 항상 선배님을 리스펙 하고 있었는데요?”

“이봐, 이봐. 지금도 말대답 꼬박꼬박하면서 리스펙은 무슨.”

“안 믿을 거면 왜 물어본 거예요?”

“하, 내가 진짜 어디 가서 이런 대접 받는 놈이 아닌데.”

내가 이규영에게 한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다.

이규영은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한 선수고, 그걸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까 이규영을 상대할 땐 절대 방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로 허하준한테 초구 몸쪽에 바짝 붙는 포심을 요구했다.

“볼!”

“야.”

“예?”

“취소.”

“뭘 취소해요?”

“나 그냥 무시해. 나는 그냥 무시 받아 마땅한 사람이야. 리스펙? 그딴 거 필요 없으니까 그냥 만만하게 봐줘라. 어?”

“선배님.”

“어. 말해.”

그렇게 말하면서 여전히 타석에 바짝 붙어있는 걸 보면 전혀 설득력이 없잖아요.

이걸 줄여서 말했다.

“존경합니다.”

“개새끼.”

이규영이 루상에 나가면 골치 아픈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홈런보다 출루가 더 까다로운 타자라고 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건 내 선에서 처리하는 건데.

‘초반이니까 과감하게 가자.’

허하준과 오늘 경기에 관해 얘기했던 건 절대 기세를 내주지 말자는 거였다.

한국시리즈의 첫 경기, 첫 타자인 만큼 허하준도 나도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초구가 볼이 되긴 했지만, 154km의 빠른 포심이 몸쪽에 바짝 붙어왔으니 이규영도 분명 의식할 거다.

그럼 이 타이밍에 아주 좋은 변화구 하나가 있다.

사인을 보내니 허하준이 마음에 드는지 씨익 웃었다.

“스트라이크!”

“하아.”

공이 미트에 들어올 때까지 멍하니 공을 바라본 이규영이 내뱉는 한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하긴, 150이 넘는 포심을 보고 곧바로 느린 커브가 들어오면 한숨이 나올 만하지.

“오늘 점심 된장찌개 먹었어요?”

“뭔 개소리냐.”

“그냥 된장찌개 냄새가 나서요.”

아님 말고.

경기에 많아야 3~4번 던지는 커브를 처음부터 썼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래도 이왕 쓴 거 뽕이라도 뽑아야지.

다음으로 요구한 공은 스플리터.

“스트라이크!”

뚝 떨어지는 궤적에 이규영의 방망이가 맥없이 끌려 나왔다.

이제 마무리할 차례.

“스트라이크 아웃!”

몸쪽을 찌른 140km의 포심에 방망이도 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존경합니다.”

이규영이 아무 말 없이 물러났다.

마지막 공에 꼼짝없이 당한 게 자존심이 꽤 상한 거 같은데 만족스럽다.

이규영이 부진하면 부진할수록 우리한테 좋은 거니까.

거기에 오늘 허하준의 구위는 물론, 제구도 정말 좋았다.

오늘 이규영을 상대로 던진 공들은 전부 내가 요구한 위치에 정확히 들어왔다.

마치 게임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던져주는 투수가 공까지 좋은데 타자를 출루시키면 그건 포수 자격 미달이다.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첫 타석은 아쉽긴 했지만, 허하준과 나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 무대, 그 첫 이닝은 완벽했다.

“아까 뭔 얘기 했어?”

“규영 선배랑요? 그냥 실없는 얘기 했죠. 점심 메뉴 같은 거요.”

“그래? 뭐 먹었다는데?”

“된장찌개요.”

허하준과 함께 더그아웃에 들어간 뒤 2회 초 공격이 시작하기 전 선두타자인 강주호가 몸을 풀고 있었다.

“수호야. 니랑 행님이랑 공통점이 뭔지 아나?”

“강주호 선배님이랑요?”

글쎄.

채지훈의 질문에 고민해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강주호도 궁금한지 슬쩍 우리를 쳐다봤다.

내가 대답이 없자 채지훈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둘 다 이번이 한국시리즈 첫 타석이라는 거지.”

“시끄럽다. 지도 첫 타석이면서 말이 많아.”

“아, 행님 나는 이제 수호가 매년 한국시리즈 보내줄 텐데 내년에 은퇴하는 행님이랑 느낌이 다르다 아임니꺼.”

“퍽도. 내가 없는데 그게 그렇게 쉽겠냐?”

강주호의 반응에 낄낄거리면서 웃은 채지훈이 강주호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니까 행님. 후회 없이 안타든, 홈런이든 잔뜩 치고 오소.”

“아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할 것이지.”

퉁명스럽게 말한 강주호 역시 입가엔 미소가 있었다.

채지훈이 그렇게 말한 덕일까.

-따아악!

“행님! 나이스!”

강주호는 깔끔한 안타로 본인 커리어 첫 번째 한국시리즈 타석에서 첫 안타를 기록했다.

“마! 거기서 땅볼을 치면 어떡하냐!”

이후 강주호가 만든 기회를 채지훈이 살리진 못했지만, 한국시리즈의 부담감 대신 좀 더 가벼운 분위기가 더그아웃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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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존나 재밌다.”

저도 모르게 나와버린 말에 흠칫 놀라고 주변을 살폈지만, 주변 역시 그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무려 마린스의 30년 만의 한국시리즈였으며, 부산에서 가까운 창원 경기, 거기에 허하준의 등판일이 겹치자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마린스 팬들이 티케팅에 참여했다.

역대 한국시리즈 중 가장 치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시리즈의 1차전부터 직관에 온 박민수였다.

겨우겨우 자리를 얻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박민수는 굉장히 여유롭게 경기장을 찾았다.

김수호의 최소 경기 20홈런 공을 김수호에게 양보하며 얻게 된 기회였고, 당시에는 약간, 아주 약간 아쉽긴 했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아주 만족스러웠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 마린스 단장이 한국시리즈 표와 시구 기회를 준다고 했을 때 공수표라고 생각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마린스가 한국시리즈에 갈 수 있을지 자체가 불투명했던 상황이라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마린스는 그야말로 미친 횡보를 보이며 결국 한국시리즈에 도착했고, 박민수는 그때 공을 흔쾌히 넘긴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아무튼 이번 경기를 본 소감은 간단했다.

다른 걸 다 떼고 봐도 그냥 재밌다.

KBO를 예능에 비유할 때 느끼는 그런 재미가 아니라 순수 야구로서의 재미.

이미 경기 전부터 투수전이 예상됐던 만큼 허하준과 존 그레이의 호투도 좋았지만, 그 호투를 도와주는 호수비도 눈을 즐겁게 했다.

‘그래도 무조건 마린스가 이겨야지.’

모태 마린스 팬인 그에게 가장 좋은 건 역시 마린스가 이기는 거였다.

“나이스!”

허하준이 무난하게 이규영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번에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듯 어정쩡한 스윙으로 당한 삼진.

‘뭐지? 컨디션이 안 좋나?’

뭐가 됐든 이규영이 두 타석 연속으로 삼진을 당했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

그렇게 허하준은 3회까지 1안타, 존 그레이는 2안타만을 허용하고 4회가 시작됐다.

그리고 선취점의 기회는 마린스에게 먼저 찾아왔다.

마린스의 공격, 선두타자는 오준혁.

-따아악!

날카로운 타구음이 들리고 박민수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환호하려는 순간, 유격수 우오준이 2루 베이스 왼쪽을 빠져나가려는 공을 다이빙으로 잡아내고 1루로 던졌다.

“와, 저 미친 새끼.”

“수비 존나 잘하네. 하, 저거 빠지면 무사 1루에 김수혼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우오준이지만 여전히 국가대표급 수비를 보여주며 마린스 팬들의 극찬을 들었다.

하지만 무사 1루든, 1사 주자 없는 상황이든 언제나 자신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아쉬워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김수호의 이름을 외쳤다.

“4번 타자! 김수호! 홈런! 김수호!”

아무리 김수호의 페이스가 좋다고 하지만 주자 없는 상황에서 돌핀스가 김수호를 거를 리 없었다.

큰 거 한 방을 쳐서 김수호가 0의 균형을 깨주길 기대했다.

초구는 한가운데 들어온 스트라이크.

“야! 저걸 안 치면 뭐 치려고 그러냐!”

“아오, 쳤으면 홈런인데!”

아무리 김수호라고 해도 팬들의 입야구는 막을 수 없다.

2구는 관중석에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볼이 됐다.

“나이스! 그거지!”

“눈야구 좋다! 수호야, 출루하자!”

세 번째 공을 쳤고, 그 공에 다시 한번 우오준이 움직였다.

“와아아아아!”

하지만 타구가 우오준을 뚫어내자 그제야 숨죽였던 팬들이 크게 환호했다.

박민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이전 타석 자신의 한국시리즈 첫 타석에 안타를 만들어낸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강! 주! 호!”

웅장한 음악과 함께 거대한 덩치를 지닌 타자, 강주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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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강주호 선수 앞에 주자가 나갔습니다. 김수호 선수도 꽤 빠른 주자거든요?]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끝내기를 치고 폼이 상당히 많이 올라온 강주호 선수. 오늘 첫 타석에 안타 하나가 있습니다!]

김수호는 리드폭을 넓히면서 작전을 되새겼다.

히트 앤 런.

정규시즌엔 거의 쓰지 않았던 작전이지만 오늘 이 상황은 조금 특별했다.

우선 존 그레이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땅볼 투수.

거기에 강주호는 워낙 느린 주자기 때문에 느린 땅볼이 나와도 병살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배트 컨트롤 만큼은 국내 타자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며 그걸 이용한 타격은 아직 녹슬지 않았다.

2-1의 카운트.

작전대로 투수가 공을 던지자 김수호가 곧장 2루를 향해 뛰었다.

[주자 뛰었습니다! 타자 타격, 2루수 옆을 빠지는 안타! 1루 주자 3루까지, 1사 주자 1·3루가 됩니다!]

[지금 김수호 선수가 뛰니까 2루수가 커버를 들어갔거든요? 그 틈을 강주호 선수가 잘 밀어 때렸습니다!]

[역시 강주호라고 해야 할까요? 마린스가 선취점의 기회를 잡습니다!]

에이스 대 에이스, 특히 마린스의 선발이 허하준이기 때문에 1점을 내주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

병살타로 이닝을 끝내기 위해 돌핀스 배터리가 낮은 볼 배합을 가져갔지만, 잭 미켈은 침착하게 공을 골랐다.

“볼!”

3-1의 카운트에서 볼을 골라내면서 1사 만루.

그리고 타석엔 채지훈이 들어섰다.

극단적인 어퍼 스윙을 하는 타자와 리그 최고의 땅볼 투수의 대결은 금방 결판이 났다.

-따아아악!

[초구에 높이 뜬 타구, 중견수가 잡을 준비를 합니다!]

이규영이 공을 잡은 동시에 김수호가 홈을 향해 달렸다.

충분히 홈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상황.

공도 날카롭게 홈으로 향했고 완벽한 동 타이밍이 이뤄졌다.

그때 김수호가 바깥쪽으로 슬라이딩을 하면서 왼손으로 베이스를 쓸면서 들어왔다.

“와아아아아!”

21세기 마린스의 첫 번째 한국시리즈 타점의 주인공은 채지훈, 득점은 김수호가 됐다.

“저런 건 언제 또 배웠냐?”

대기타석으로 나가기 위해 준비하던 이주학의 물음에 김수호가 웃었다.

“저기 좋은 교보재가 있더라고?”

돌핀스를 공부하면서 가장 경계했던 인물은 단연코 이규영.

특히 홈에서 태그 상황이 나올 걸 대비해 공부한 게 엉뚱한 곳에서 발휘됐다.

“수호야, 좋았는데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너 다치면 큰일난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대화를 듣던 최치호가 걱정되는 듯 한 마디 붙였다.

이후 이준이 타석에 들어서고 아직 끝나지 않은 공격을 준비했다.

아직 2사 주자 1, 2루의 찬스 상황, 김수호가 숨을 돌리는 사이 이닝은 계속 이어졌다.

-따악!

8번 타자 이준의 추가 안타가 나오면서 2사 만루를 만들었지만, 이주학이 삼진을 당하면서 길었던 공격이 끝났다.

“왜 나만 못 쳐···.”

“괜찮아. 너답고 좋은데 뭐.”

“욕이지 그거?”

“에이, 그럴 리가.”

그렇게 마린스도, 돌핀스도 아쉬움이 남는 이닝이 끝나고 2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4회 말 돌핀스 공격이 시작됐다.

좋은 타선에 돌핀스 팬들이 기대해봤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아웃!”

“아웃!”

돌핀스 야수들이 다시 그라운드로 나오는 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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