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처음이라고요?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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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4 : 1 서울 프렌즈]
[마린스, 패승승승으로 플레이오프 승리! 이제 창원으로 간다!]
[3연타석 홈런 김수호, 시리즈 MVP 선정!]
[드디어 밟게 된 한국시리즈 무대, 강주호 20년 우승의 한을 풀 기회가 왔다!]
[사상 첫 경남 한국시리즈! 디펜딩 챔피언 창원 돌핀스 VS 최초로 와일드카드 우승을 노리는 부산 마린스.]
[11월 6일 미디어데이로 시작하는 한국시리즈, 돌핀스 홈에서 7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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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없던 시간.
마린스 팬들에겐 너무나 길었던 이틀이 지나고 미디어데이가 시작됐다.
마린스는 강주호와 이용기, 그리고 돌핀스는 우오준과 최지용이 나왔다.
각각 투수, 타자 중 최고참에 해당하는 선수들이 나온 만큼 수위가 높았다.
선공은 우오준이었다.
“강주호 선배님이나 용기나 이번 한국시리즈가 처음인 걸로 아는데 저희가 이번에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잘 알려주겠습니다.”
“강주호 선수도 한 말씀 해주시죠.”
사회자의 말에 강주호가 마이크를 잡았다.
평소의 강주호였다면 발끈하면서 화를 냈을 거다.
하지만 이번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느낀 게 있었다.
“그래서 너네 수호 있냐?”
“...예?”
“수호 있냐고?”
“...아뇨 없죠. 그래도 저희 민규도 수호에 뒤지지 않는 좋은 포수입니다.”
“정말?”
할 말을 잃은 우오준이 이런 말을 해도 되냐는 식으로 사회자를 쳐다봤지만 흥미로운 상황에 그저 신난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크흠, 아무튼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혼자 하는 거 맞던데?”
“....”
우오준이 다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강주호의 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올림픽 때 경험해놓고 벌써 잊었냐? 그때 수호가 너랑 규영이 살려줬다고 했던 거 기억 안 나냐?”
“아, 선배님. 그걸 공적인 자리에서···.”
순간 말하고 아차 한 우오준이 급하게 입을 막았지만, 이미 기자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기 시작했다.
“우오준 선수, 방금 강주호 선수가 말한 상황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자, 한국시리즈와 관련 없는 얘기는 다음에 따로 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투수분들은 이번 한국시리즈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먼저 마이크를 잡은 건 이용기였다.
“저흰 허하준 있습니다.”
“예?”
“이상입니다.”
할 말을 잃은 사회자를 대신해 최지용이 물었다.
“하준이가 잘 던지긴 하지만 4경기를 이겨야 하는데 혼자 다 던질 순 없잖아요?”
“하준이가 3승하면 나머지 한 경기는 정도는 제 팔 갈아서라도 이길 겁니다. 그럼 됐죠?”
“그럼 이번 첫 경기 선발투수가 허하준 선수라는 말씀이신가요?”
기자의 말에 이용기가 아차하고 이정훈 감독을 쳐다봤지만, 이정훈 감독은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누구나 예상하고 있던 만큼 비밀도 아니고, 딱히 특별한 전략도 아니다.
“예. 맞습니다.”
“그럼 돌핀스 선발투수도 공개해주시죠.”
“저흰 존 그레이가 나갑니다.”
누구나 예상했던 1선발의 맞대결.
반드시 이겨야 하는 첫 경기인 만큼 변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들 말씀 듣고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돌핀스 김진서 감독님.”
“상대가 마린스가 될 줄은 몰랐는데, 여기까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깔끔하게 4차전까지만 하고 빨리 끝내드리겠습니다.”
도발적인 돌핀스 감독의 말에 이정훈 감독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더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저는 여기까지 온 저희 선수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특히 수호와 하준이를 믿습니다. 이상입니다.”
“아···. 하하. 알겠습니다. 양 팀 선수들과 감독님에게 큰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역대 가장 어이없었던 미디어데이였지만, 충분히 이해되는 미디어데이기도 했다.
물론 그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김수호는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같이 보던 허하준이 내뱉은 한 마디에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맞는 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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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형님. 거기선 우리도 규영이 있습니다! 이러면서 딱 받아쳤어야죠!”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불쑥 화를 내는 이규영의 말에 잠시 김수호와 둘을 저울질한 우오준이 고개를 저었다.
“시끄러워 임마.”
“하, 내가 나갔으면 바로 그 말 했을 텐데.”
“그랬으면 평생 박제돼서 놀림 받았을 텐데?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제가 저런 핏덩이랑 비교해서 크게 떨어지진 않잖아요?”
우오준에겐 이규영이나 김수호나 어린 건 마찬가지였다.
“너 저 핏덩이 성적 모르냐?”
“알죠.”
“저 정도 할 수 있어?”
“홈런 빼면 가능할 거 같은데요?”
“새꺄.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김수호의 플레이오프 성적은 타율 0.538, 출루율 0.647, 거기에 장타율은 무려 1.615에 홈런이 4개였다.
OPS가 무려 2.2란 소리니, 강주호의 말처럼 혼자 야구한다에 걸맞은 성적이었다.
물론 한국시리즈 상대로 프렌즈를 뽑았던 우오준에겐 마린스가 여기까지 온 건 의외긴 했다.
아무래도 경험의 차이와 체력의 저하는 무시하기 힘들 요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실력은 우오준의 생각마저 바꿔버릴 정도로 뛰어났다.
김수호뿐만 아니라 마린스 팀 자체가 충분히 한국시리즈에 올 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근데 가장 선두에 서서 마린스를 공략할 이놈은 저런 속 편한 말이나 하니 답답했다.
“형님.”
“어.”
“저기 수호가 쳐다보는데요?”
반대편 더그아웃을 보자 김수호와 눈이 마주쳤다.
‘국대에선 쟤만큼 든든한 놈이 없었는데.’
이젠 상대 팀, 그것도 한국시리즈에서 만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인사 안 하냐?”
“예. 이따가 타석에서 볼 건데 나중에 하죠.”
“그래?”
“그리고 생각해둔 인사가 있거든요.”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경기에 집중해.”
“알죠. 걱정하지 마세요.”
이규영이 김수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원래 처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이잖아요?”
영문 모를 말에 우오준이 한숨을 내뱉었지만, 이규영의 입꼬리는 내려갈 줄 몰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수호 역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전하시네.’
돌핀스에 워낙 추억이 많은 김수호로선 이 상황이 그저 재밌었다.
첫 타석, 안타, 타점, 홈런, 득점, 끝내기, 심지어 허하준과 첫 호흡을 맞춘 것도 돌핀스전이었다.
그 결과는 노히트노런.
“무슨 생각해?”
“한국시리즈 노히트노런 기록이 있는지 생각이 안 나서요.”
“있어.”
“진짜요?”
“어. 근데 퍼펙트게임은 없지.”
“그거 좋네요.”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저혈압도 병이야. 알아?”
“이젠 익숙해질 때 되지 않았냐?”
“아니? 저건 평생 가도 안 익숙해지는데?”
“분위기 좋네요.”
“그러게?”
김호기의 말에 모두 웃으면서 경기를 준비했다.
2032년 시즌 우승자를 가리는 한국시리즈가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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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창원에서 인사드립니다! 창원 돌핀스 대 부산 마린스, 부산 마린스 대 창원 돌핀스의 한국시리즈 1차전 중계를 맡은 캐스터 이명준입니다.]
[반갑습니다. 해설 위원 오연석입니다.]
[마린스가 결국 돌핀스를 만나러 창원까지 왔습니다. 참 여러 일이 있었죠?]
[예. 전반기를 대부분 10위에 있다가 겨우 9위로 마무리한 마린스가 결국 한국시리즈까지 왔습니다. 스타즈, 나이츠, 프렌즈까지 잡아낸 마린스가 그 끝을 어떻게 장식할지 기대됩니다.]
[반면 디펜딩 챔피언인 돌핀스 입장에서도 굉장히 당황스러울 것 같거든요?]
[제가 익명의 돌핀스 선수에게 물어봤는데 당연히 올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아, 그런가요? 대단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군요.]
[하하하. 그렇죠. 눈 하나만큼은 대한민국 최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2032시즌의 우승팀을 결정짓는 한국시리즈, 그 첫 경기가 시작합니다. 돌핀스의 선발투수는 존 그레이입니다. 시즌 21승으로 리그 1위, 평균자책점이 무려 1.98로 리그 2위입니다.]
KBO에서 사무엘 우즈와 더불어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받는 선수가 바로 존 그레이였다.
그리고 관중들의 환영을 받으며 타자가 들어섰다.
[마린스의 1번 타자, 박은성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박은성의 임무는 간단했다.
‘수호를 견제하지 못하게 무조건 출루해야 한다.’
강주호가 미디어데이에서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번 시리즈, 특히 오늘 경기는 김수호가 어떤 활약을 펼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돌핀스는 최대한 김수호 대신 다른 타자를 상대하려 들 거고, 반면 마린스로선 김수호가 편안하게 상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야 한다.
가장 좋은 상황은 만루.
그게 아니라도 주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좋은 찬스가 될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김수호를 견제한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김수호를 제외한 타자들과 적극적인 승부를 한다는 말이다.
‘공이 사기네.’
투심으로 보이는데 구속이 무려 153km가 찍혔다.
한국에 빠른 포심을 던진다는 투수들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 구속.
“볼!”
이어서 볼을 하나 골라낸 박은성이 다음 공을 노리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쳤습니다! 느린 타구!]
하지만 생각보다 느리게, 그리고 낮게 떨어진 공에 제 스윙을 하지 못한 박은성이 타구를 확인하자 1루를 향해 전력으로 뛰었다.
오히려 빗맞은 덕에 빠른 발을 활용해 1루까지 노릴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공이 향한 곳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수비를 잘하는 내야수가 있는 곳이었다.
[우오준 맨손으로 1루로! 아웃입니다!]
[이야, 맨손으로 공을 정확히 잡고 러닝스로로 완벽한 송구를 보여줬습니다!]
처음부터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호수비가 나오자 창원 구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반면 박은성은 아쉬움을 삼키고 최치호에게 투수에 대한 정보를 말해줬다.
“투심이랑 체인지업 분간이 빡시네요. 평소보다 컨디션이 더 좋아 보여요.”
KBO의 1위 팀은 장단점이 분명했다.
장점은 긴 시즌을 치르면서 쌓인 피로를 풀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
반대로 거의 3주가량 실전을 치르지 못했다는 게 단점이었다.
그걸 이용해 1회부터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낸 건데 돌핀스의 수비, 그리고 존 그레이의 공이 마린스의 예상보다 좋았다.
최치호가 박은성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과 다른 건 아쉽지만, 수원 나이츠 시절 이미 한국시리즈에서 돌핀스와 맞붙은 경험이 있는 최치호로선 크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파울!”
최치호가 박은성과 마찬가지로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냈다.
“파울!”
“파울!”
“볼!”
볼 카운트가 몰린 상황에서 가까스로 방망이를 멈춰서 얻어낸 기회.
-따악!
[좌측에 빠지는 안타! 1회부터 출루에 성공하는 부산 마린스, 최치호입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의 숨겨진 주인공이죠, 오준혁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플레이오프에서 김수호 다음가는 뜨거운 타격감을 과시했던 오준혁이 초구부터 노림수를 갖고 타격했다.
-딱!
하지만 박은성, 최치호에겐 던지지 않았던 포심이 들어왔고 투심을 노렸던 방망이 윗부분에 맞고 그 자리에 높이 떴다.
“아웃!”
결과는 포수 플라이 아웃.
하지만 마린스 팬들은 실망하는 대신 다음 들어올 타자의 이름을 목청이 터지도록 불렀다.
“4번 타자! 김수호!”
김수호가 타석에 서자 돌핀스 수비진들이 긴장했다.
김수호의 타구 속도는 황인재에 이은 2위.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간 잡을 수 있는 타구도 순식간에 놓치게 만드는 타자였다.
이번에도 초구.
-따아악!
날카로운 타구가 중견수를 향해 날아갔다.
문제는 오늘 11월 다운 추운 날씨와 일요일 경기라 낮에 경기가 열렸다는 거였다.
고글을 끼고 있지만, 자칫하면 태양 빛에 공이 들어가 치명적인 실책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돌핀스의 중견수, 이규영은 순식간에 글러브로 햇빛을 가리고 낙구 지점을 포착했다.
“아웃!”
[이야, 이규영! 대단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타군데 여유롭게 처리합니다!]
잡히긴 했지만, 워낙 빠른 타구라 이규영이 아닌 다른 중견수였다면 충분히 안타가 될 법한 타구였다.
‘어서 와. 한국시리즈는 처음이지?’
‘아오, 진짜 저 선배는 내 타석에만 그러냐.’
그렇게 김수호를 향한 이규영의 인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