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형제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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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3 : 2 서울 프렌즈]
[투수들의 호투, 타선의 집중력, 그 끝은 강주호!]
[마린스 팬들의 가슴을 울린 장면, 노장의 눈물.]
[길었던 부진, 끝내기로 끝내다!]
[강주호, ‘번트는 이기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 특별한 건 없었다. 끝내기는 내가 잘한 게 아니라 그 상황을 만들어준 팀원들이 잘한 것.’]
[김수호, ‘강주호 선배가 진루를 시켜주겠다고 했을 때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마린스 감독, ‘마린스 역사에 남을 경기였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4차전 선발로 사무엘 우즈와 브릭 웰링턴 예고, 1차전 리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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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흔히 볼 수 없는 덩치를 가진 사내가 낡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를 보자 식당 주인이 반색했다.
"오랜만이네?"
"예. 이긴 기념으로 한 번 들렸어요. 늘 먹던 거로 주세요."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내리자 부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얼굴이 드러났다.
하지만 식당 주인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듯 기본 찬을 내왔다.
"크으, 진짜 간만이네. 손맛은 여전하시네요?"
"너도 잘하고 있지 않니? 올 시즌은 정말 다르다면서 바깥양반이 맨날 야구장 가고 그런다."
"저보단 다른 놈들이 잘해서 그렇죠. 아무튼 잘 먹을게요."
씁쓸한 미소를 지은 강주호가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흔적을 확인했다.
이제 막 데뷔한 스무 살 때 선배들에게 끌려왔던 게 처음이었고, 이후에 피곤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방문했던 식당.
그가 늙은 것처럼 식당도 낡고 헤진 부분이 가득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것마저도 자신을 닮은 것 같아 기꺼웠다.
적어도 자신 혼자 늙은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렇게 시킨 메뉴가 나오고 식당은 강주호가 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듣기 좋은 정적을 깬 건 주인이었다.
"주호야."
"예?"
"이 친구가 요즘 잘하는 친구라며? 바깥양반이 집에 오면 이 친구 얘기밖에 안 해. 그만큼 잘해?"
식당 주인이 보여준 화면엔 김수호의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강주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맞아요. 별명이 뭔지 아세요? 리틀 강주호에요. 그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
"정말? 그럼 진짜 잘하겠네. 여기 한 번 온 적 있거든."
"얘가요? 누구랑요?"
아는 사람만 오는 식당인 만큼 누군가와 동행하지 않으면 오기 어려운 곳에 있었다.
"하준이랑 어린 친구 두 명이랑 같이 왔어."
"둘이요? 혹시 이렇게 생겼었어요?"
"어, 맞네. 근데 이 친구는 너무 까만데? 그땐 인물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푸하하핫. 열심히 해서 그런 거죠."
아무튼 김수호 얘기를 시작으로 강주호가 그동안 쌓였던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한창 얘기가 길어질 때쯤 누군가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여기 있네."
"어떻게 알고 왔냐?"
"아오, 형 여기 있다는 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어. 그나마 지훈이며, 용기며 같이 오겠다는 거 다 떼놓고 온 거야. 이모님, 오랜만이에요."
"기호야, 잘 지냈니?"
"저야 뭐 그렇죠. 저도 같은 걸로 하나 주세요."
눈치껏 자리를 비켜준 이모님이 사라지자 강주호가 물었다.
“제수씨는?”
“처가. 장인어른이랑 같이 야구 본다고 갔어. 간 김에 그냥 내일까지 보고 오라고 했어. 최고지.”
“최고는 개뿔. 그런 말 솔로 앞에서 했다가 욕먹는다.”
“지 좋다는 여자들 다 차 놓고 무슨. 팬들이 형보고 뭐라는 줄 알아? 직무유기래. 결혼해서 애 좀 낳으라고. 어? 그래야 마린스 4번 타자가 이어지지 않겠냐고.”
“요즘도 그런 소리 해?”
“하겠어? 그냥 행복해 죽지.”
그 이유는 뻔했다.
“수호가 우리 은인이긴 해. 이런 욕도 안 먹게 해주고.”
솔로인 강주호와 결혼은 했지만 딸밖에 없는 강기호.
잠시 김수호를 떠올린 두 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형제는 오랜만에 그리운 식당에서 단둘이 밥을 먹었다.
밥을 거의 다 비우자 강기호가 말했다.
"형."
"어."
"그거 아쇼?"
"뭐."
“수호가 훈련하다가 점점 스윙이 커지더라? 그래서 물어봤지. 왜 그렇게 휘두르냐.”
강주호가 그 말을 듣자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이유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형 때문이래.”
“....”
“나 참. 지가 홈런을 쳐야 형이 마음 편하게 타석에 설 수 있다고 하던데?”
“뭐?”
하지만 강기호가 말한 이유는 강주호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더 물어봤더니 형이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어후, 나이 40 먹고 이제 스물 된 애한테 걱정 받으니 좋겠수?”
장난스러운 강기호의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강주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강주호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누군가 기대는 나무였지, 스스로가 기댄 적은 없었다.
이번 슬럼프를 겪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자신 대신 짐을 짊어질 선수가 있다는 것.
하지만 이미 그 부담감을 알고 있는 강주호로선 김수호에게 자신이 짊어진 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절실했고, 절박했다.
다만 김수호는 강주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더 큰 존재였을 뿐이다.
“일어나자.”
“어? 다 먹었어?”
“어. 이제 집에 가야지.”
“그래. 이모님 계산이요.”
“됐어. 오랜만에 왔는데 그냥 가.”
“뭔 소리예요. 저 형이 돈을 얼마나 벌었는데.”
강기호와 식당 주인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세차게 뛰는 가슴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강주호의 머릿속은 그저 한 생각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다음 경기가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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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승리의 여운은 길었다.
끝내기가 주는 짜릿함도 있었지만, 그 끝내기의 주인공이 강주호라는 사실이 더욱 와닿았다.
그렇지만 아직 플레이오프는 끝나지 않았다.
“어제 평소보다 늦게 잔 사람 거수.”
강주호의 말에 몇몇 선수들이 눈치를 봤다.
“손 들어!”
그러자 가장 먼저 이주학이 쭈뼛쭈뼛하면서 손을 들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지만, 손을 든 사람은 이주학 혼자였다.
당황한 듯 흔들리는 눈동자에 강주호가 웃었다.
“얌마, 그냥 한 번 물어본 거다. 네가 애도 아니고 설마 늦게 잔 거로 뭐라 할까 봐? 손 내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을 내린 이주학을 보고 다시 한번 웃은 뒤, 이번엔 선수단을 훑어봤다.
“어제 힘든 경기였는데 다들 집중력 있게 잘 해줬다. 하지만 아직 경기 끝난 게 아니란 거 다들 알고 있을 거다. 어제 승리에 대한 회포는 우승하고 한 번에 풀자. 불만 없지?”
“예! 좋습니다!”
“행님이 쏘는 겁니까?”
“저번에 호민이네 갔더니 좋더라. 한 번 제대로 팔아드려야지.”
“오케이! 마! 퍼뜩 준비 안 하고 뭐 하나! 오늘 깔끔하게 이기고 창원으로 가자!”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선수는 단연코 웰링턴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마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스트 시즌의 세 명 중 유일한 패전 투수기도 했고, 그만큼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거다.
심지어 오늘 시구는 아내 엠마 웰링턴이 한다.
“오늘.”
“예?”
“오늘 반드시 이겨서 브로에게....”
“잠깐만요!”
“왜 그래?”
웰링턴이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전형적인 클리셰인데 설마 모르나?
방금 웰링턴이 하려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발언이다.
“그런 거 말하면 보통 안 좋은 결과가 일어난다고요.”
애초에 왜 대상이 나인건데?
후 머리야.
그래도 그 대사를 전부 말하진 않았으니 괜찮지 않을까.
대상도 이상하고.
아무튼 이번 경기에 임하는 웰링턴의 마음은 잘 알겠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 날씨도 좋고 어제 타자들 보니까 득점도 충분히···.”
“잠깐. 난 아무 걱정 없는데?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을 해.”
늘 느끼지만, 웰링턴은 말하는 게 너무 스윗하다.
나쁘게 말하는 것보단 좋은데.
“그런 말은 엠마한테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왜? 엠마도 너도 내 소중한 사람이야.”
“그래요···.”
그래, 몇 마디 말을 들어주고 선발 투수가 기분이 좋다면 남는 장사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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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의 시구를 시작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시구를 하기 전 웰링턴과 웃으며 대화한 엠마가 좋은 시구를 보여주고 내게 다가왔다.
“킴, 오늘도 브릭을 지켜줘요.”
난 도대체 저 집안에서 어떤 존재일까.
아무튼 좋다.
엠마의 시구가 효과가 있었는지 3일 휴식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은 공을 던졌다.
-따악!
“아웃!”
오준혁이 파울 라인 바깥에 높이 뜬 타구를 무난하게 처리했다.
특히 몸쪽 승부에 주저하지 않고 연달아 꽂는 게 주효했다.
신장이 2미터가 넘는 투수가 150km에 가까운 속구를 몸쪽에 꽂으면 그 어떤 타자라도 움찔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몸쪽을 의식한 타자는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느린 커브에 대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트라이크 아웃!”
까다로운 프렌즈의 1, 2, 3번 타순을 상대로 깔끔하게 삼자범퇴를 막아내자 마운드에 사무엘 우즈가 올라왔다.
사무엘 우즈 역시 3일 휴식 후 등판이었다.
거기에 1패만 하면 떨어지는 상황이 큰 압박으로 느껴질 테지만 더그아웃에서 본 공은 상당히 좋았다.
며칠 전 제구에 고생했던 것과 많이 달라진 모습.
아니, 이게 원래 모습에 가까웠다.
하지만 완벽한 건 아니었다.
3일을 쉬고 공을 던진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우리 타자들은 어제 김형주를 상대로 끝내기 승리를 맛본 상황, 사무엘 우즈에 맞서 주눅 들지 않고 잔뜩 독이 오른 모습을 보여줬다.
“스트라이크 아웃!”
선두타자로 나선 박은성이 8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을 당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선발 투수가 첫 타자에게 공을 8개를 던진 건 나쁘지 않은 수확이다.
그래서인지 더그아웃에 들어오는 박은성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이대로 하면 4회에 강판당하겠는데요?”
“그거로 만족하냐? 3회에 내려보내야지.”
“그럴까요? 들었냐? 수호야 한 번 보여줘라.”
얘기를 한 건 박은성과 강주호인데 왜 결론은 내가 되는 걸까.
“왜 대답이 없어. 자신 없냐? 어제도 마지막에 방망이 한 번 안 휘두르더니.”
“제가요? 하. 어제 끝내기 원래 제껀데 양보해드린 거죠.”
“긁혔네.”
“긁혔네요.”
“아니거든요.”
강주호가 이쯤 하겠다는 듯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뒤에 이 형님이 있으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와.”
“앞 타자들이 출루해야 나가죠.”
-따악!
하지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치호의 안타가 나왔다.
“나왔네?”
오늘 참 안 풀리네.
아니, 잘 풀리는 건가.
3일 휴식한 웰링턴이 1회를 깔끔하게 막는 것도, 강주호가 저런 농담을 하는 것도, 아웃을 당한 박은성이 더그아웃에서 웃으면서 농담을 하는 것도 전부 좋은 일이다.
그래, 이런 좋은 날엔 역시 축포가 필수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딱히 그 축포를 쏠 사람을 정하진 않았다.
누구든 쏘기만 하면 된다.
유력한 후보였던 오준혁은 아쉽게 땅볼로 물러났다.
그 사이 최치호가 2루에 들어갔다.
어제 끝내기를 친 강주호가 버티고 있는 한 1루가 비어있다고 해도 나와의 승부를 피할 것 같진 않았다.
강주호와 박은성이 한 말도 있었고, 홈런 욕심이 나는 건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단타만 쳐도 1점을 뽑는 상황에 굳이 큰 스윙은 필요 없었다.
-따아아악!
그냥 초구에 던진 스플리터가 떨어지는 결에 맞춰 가볍게 퍼 올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뿌우우우우!
-우와아아아!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썩 나쁘지 않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베이스를 돌고 홈에 도착했다.
홈에 도착하자 대기타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강주호가 보였다.
딱히 별말은 하지 않고 웃으면서 하이파이브만 했다.
그러자 강주호가 딱 한 단어만 내뱉었다.
“징한 놈.”
그런 강주호를 뒤로하고 더그아웃에 들어가자,
“브로!”
환하게 웃는 웰링턴과 선수들이 반겨줬다.
자화자찬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축포로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