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15화 (115/203)

115화 형제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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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어억!

“나이스! 오늘도 공 좋다!”

아직 1회 초 공격이 끝나기 전, 허하준이 등판을 앞두고 불펜에서 공을 던지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마린스 투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투구를 보고 감탄했다.

‘소리 봐. 돌았네.’

‘저게 힘 빼고 던지는 거지? 어떻게 내 전력투구보다 빠른 거 같냐.’

하루 이틀 보는 건 아니지만, 볼 때마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허하준의 투구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이호민이 가장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허하준의 투구를 보고 있자니 준플레이오프에서 김수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1선발이라고?’

허하준이 없다면, 그리고 한참 후에라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이런 투구를 보고 나면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허하준 선배의 반, 아니 반의반만큼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허하준을 본 팬들, 공을 받아본 김수호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여기까지 할게요.”

투구를 마친 허하준이 이호민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호민아, 뒤에 물 좀 줄래?”

“아, 넵.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

때마침 7번 타자 채지훈이 아웃 되면서 이닝이 끝났다.

그리고 타자들이 들어오자 허하준이 가장 먼저 마운드를 향해 뛰어갔다.

“오늘도 불펜 개점휴업 하겠구만.”

“이 정도면 하준이 등판일 때마다 우리 연봉 떼서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워낙 완봉을 밥 먹듯이 하는 허하준이라 불펜 투수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맞지. 하준이 뒤에 올라가면 타자들이 방망이 쉽게 내는 거 알지? 우리 공이 만만해 보이긴 한가 봐.”

“아까 그 공보다 더 빡센 공 던지는데, 우리 공은 그냥 종이지, 종이.”

“아무튼 수호가 은인이다. 하준이 뒤에 안 올라가는 것만 해도 구단 복지가 좋아졌어.”

귀 기울여 그 얘기를 듣던 이호민이 절로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췄다.

‘그래도 내 공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최고 구속으로만 따지면 자신이 조금 더 높은 거로 알고 있다.

비공식이긴 하지만 연습 투구 과정에서 158km을 찍었을 정도로 구속엔 자신 있었다.

‘그럼 뭐하냐. 나머지가 안 되는데.’

하지만 실전에서 그 공을 못 던지는 건 이유가 있었다.

제구가 하나도 안 되는 공은 큰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제구, 구위 등 구속을 빼면 그 어떠한 것도 허하준에게 내세울 만한 게 없다.

오직 미세하게 빠른 구속뿐.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더 자신 있는 게 구속뿐이면, 그걸 더 끌어올리면 되지 않나?’

물론 구속을 끌어 올리는 것, 그것도 150km 후반에서 더 앞으로 가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쩐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나이스!”

“역시 허하준!”

그런 이호민의 상념을 깬 건 선수들의 화이팅 소리였다.

이호민도 정신 차리고 박수를 쳤다.

‘그래. 이건 나중에 생각하자.’

이호민은 언젠가 허하준을 대신 저 곳에 오를 자신을 상상하며 경기에 집중했다.

#

두 점의 리드를 업은 허하준은 거침이 없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프렌즈 타자들은 포심, 투심, 스플리터 3지 선다와 추가로 던지는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연신 방망이를 돌리기 바빴다.

-따악!

운이 좋아 방망이에 맞는다고 해도 멀리 가지도 못하고 그대로 잡혀버렸다.

“아웃!”

이주학이 이닝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환하게 웃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1회 공격에선 선취점을 뽑았고, 수비에선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어제 패배로 우리에게 남아있던 찝찝함을 완벽히 털어버리는 1회였다.

그리고 그 기세는 2회에도 이어졌다.

“볼!”

풀카운트 승부 끝에 몸쪽에 바짝 붙는 공을 참아내면서 이준이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이주학이 곧바로 번트 자세를 취했다.

선발 투수가 허하준이었고, 상위타순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선택한 번트였다.

-딱!

“아웃!”

깔끔하게 주자를 2루에 보낸 이주학이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이제 오늘 안타가 있는 타자, 박은성의 차례.

“악!”

“뭐야! 은성아, 괜찮아!?”

마린스에서 한 명의 이탈은 고작 한 명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숫자였다.

다행히 몸에 공을 맞은 박은성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그렇게 주자가 채워지고, 최치호의 타석.

박은성이 몸에 맞는 순간, 경기 전부터 약속된 플레이가 나왔다.

“1루!”

최치호의 허를 찌르는 기습번트.

“...아웃!”

1루심도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릴 정도로 접전의 승부가 펼쳐졌고, 마린스 벤치에선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아웃!”

판독 끝에 원심이 유지됐다.

프렌즈 입장에선 천만다행인 상황, 하지만 마린스라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준혁이 최근 성적이 좋지?”

“예. 한 건 해줄 겁니다.”

가을 야구 동안 오준혁의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오늘도 안타가 있었고, 어제 경기에서도 장타와 타점이 있었다.

거기에 다넬 제이스와의 상대 전적도 11타수 4안타로 뛰어났다.

1루가 비어있긴 하지만 뒤에 있을 선수를 생각하면 거를 생각은 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오준혁은 벤치의 믿음에 보답했다.

“볼!”

3볼 1스트라이크 상황, 공이 완전히 빠져버리자 오준혁이 기다렸다는 듯 보호구를 풀고 1루로 걸어갔다.

이걸로 2아웃 주자 만루.

그리고 타석엔 프렌즈가 그렇게 피했던 타자, 김수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어떡할까요?’

코치의 지시를 보기 위해 벤치를 바라본 박희준이 순간적으로 든 울컥한 마음에 숨을 골랐다.

‘만루에서도 물어봐야 해?’

프렌즈 벤치는 경기 전 박희준에게 최대한 승부를 피하라고 했다.

하지만 주자가 가득 찬 이상 거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가뜩이나 프렌즈 타자들이 허하준을 상대로 몇 득점을 할 수 있을지 계산이 안 서는 상황.

1점이라도 줬다간 경기 자체를 내주는 수가 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한 가지 뿐, 바로 김수호와 승부를 하는 것.

벤치의 사인을 받은 박희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매번 안타 치는 것도 아니고 몸이 근질근질하겠지?’

어제 경기에서 프렌즈 배터리는 김수호에게 제대로 된 공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타석에서 반드시 노리려고 할 거고, 김수호의 방망이가 나올 확률이 가장 높은 건 역시 초구였다.

‘슬라이더 하나 가자.’

바깥쪽 아래로 가라앉는 슬라이더를 요구한 박희준이 자세를 잡았다.

“볼!”

‘이걸 안 쳐?’

분명 타격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타자라면 무조건 속일만한 공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공이라도 타자가 반응하지 않으면 그냥 볼일 뿐이다.

‘한 번만 더!’

고민 끝에 다시 슬라이더를 요구했다.

투수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방망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볼!”

‘돌겠네! 아예 지켜볼 생각인가? 한 번 포심 꽂아봐? 아니, 그러다가 큰 거 맞으면 게임 날아간다.’

다시 변화구를 요구했지만, 이번엔 투수가 거절했다.

투수가 원하는 공은 포심, 그것도 몸쪽.

‘그래. 이 상황에서 이 코스로 공을 던질 수 있는 건 아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

하지만 투수가 저렇게 완고한 경우는 포수로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결국 박희준이 공을 받을 준비를 했다.

“스트라이크!”

‘시발, 이건 또 왜 안쳐!?’

아예 공을 끝까지 볼 셈인지 김수호의 방망이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래, 너 죽고 나 죽자’

어차피 투수가 자기 말도 안 듣는 상황, 자신감을 얻은 투수가 다음 코스로 지정한 곳은 바깥쪽 높은 코스.

바깥쪽 아래, 몸쪽 아래, 바깥쪽 높게.

어찌 보면 정석과 같은 투구 패턴이다.

정석이라는 말은 그만큼 효과가 좋기 때문이고, 반대로 말하면 타자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코스라는 말이다.

‘이게 맞냐?’

하지만 투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투수가 공을 던지자, 김수호의 방망이가 나오다가 멈췄다.

“노스윙! 볼!”

박희준이 급하게 1루심을 쳐다봤다.

“이게 안 돌았다고?”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스윙 여부는 비디오 판독 대상도 아니었고, 박희준의 항의는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이제 완전히 몰려버린 상황.

‘어쩔 수 없다. 차라리 내보내더라도 변화구 하나 던지자.’

투수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아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공은 완만한 궤적을 그리며 미트를 향해 날아왔다.

‘아, 이건···.’

-따아아악!

박희준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벼락같이 공을 강타한 김수호의 방망이.

타구를 바라보는 박희준 곁으로 세 명의 마린스 선수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홈에서 출발해 홈에 도착한 김수호가 지나가자 박희준이 무의식적으로 김수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졌다.’

그 말이 의미가 이 경기인지, 아니면 포수로서인지는 박희준만 아는 채로 경기가 진행됐다.

#

마린스 팬들에게 가장 안심하고 보는 경기를 묻는다면 당연히 허하준이 선발인 경기를 꼽을 것이다.

특히 타선에서 1점을 뽑으면 ‘이겼다.’, 2점 이상 뽑으면 ‘이미 이겼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7대0이라는 스코어는 ‘질 수가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물론 9회까지 점수를 못 내도 괜찮다.

그땐 ‘김수호가 끝내기 홈런 치면 되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마린스 벤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정말 저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다만 최근 마린스 불펜과 5차전까지 갔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허하준이 8회 이상 던지는 건 낭비라는 결과가 도출됐다.

그렇게 허하준은 7이닝 2피안타 1볼넷 8k의 평범한(?) 성적을 끝으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예고도 없이 내려간 터라 허하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팬들의 아쉬움도 잠시, 이어서 올라온 투수의 이름을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구원 투수! 이호민!”

이호민이 포스트시즌에서 맡은 역할은 스윙맨.

여유로운 점수 차이거나 선발이 일찍 무너졌을 때 여러 이닝을 책임지기로 했다.

오늘의 역할은 남은 두 이닝을 최소 실점으로 막아내는 것.

“오늘은 안 떠는 것 같다?”

“어. 깨달음을 얻었거든.”

“깨달음? 그게 뭔데?”

“그런 게 있어.”

“싱겁긴. 아무튼 8회를 깔끔하게 막아야 9회가 그나마 편할 거야. 알지?”

“당연하지.”

“오케이. 굿. 한번 보여주자고.”

김수호가 이호민의 엉덩이를 미트로 툭 치고 내려왔다.

‘저렇게 자신감 넘치는 건 오랜만에 보는데?’

김수호의 기억으론 아마 2군에서 호흡을 맞출 때였으니, 대략 반년 정도 됐다.

그때 생각을 하니까 떠올랐는데, 당시 허하준이 3이닝만 던지고 내려간 뒤 투수가 이호민으로 바뀌었다.

왜 하필 자기냐며 하소연했던 때가 진짜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그런 말도 없네.’

그땐 단순히 2군 경기였고, 오늘은 무려 플레이오프 경기다.

불과 얼마 전 준플레이오프에서도 긴장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좋지. 한 번 던져봐.’

김수호의 사인을 본 이호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초구부터 포심이라.

마치 김수호가 묻는 것 같다.

자신 있냐고.

허하준 선배의 공을 보던 타자들이 날카롭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던질 수 있겠냐고.

그리고 이게 이호민의 답이었다.

‘넌 잡을 수 있겠어?’

“스트라이크!”

“와아아아!”

전광판을 보지 않아도 들리는 함성으로 알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공이 손을 떠난 순간부터 알았다.

154km/h.

155km/h.

154km/h.

그리고 156km/h.

이호민이 이번 시즌 자신의 최고 구속의 포심을 뿌리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미쳤네?’

심판에게 공을 건네받은 김수호가 곧바로 이호민의 생각을 눈치챘다.

그리고 곧장 몸을 일으키고 공을 던지면서 타자 바깥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대충 봐도 제구는 존 안 또는 밖, 두 가지뿐.

‘몸쪽을 던질 수 있으면 좋지만 그건 좀 위험하지.’

타자에게도 그렇고, 장타를 허용할 확률도 높았다.

차라리 바깥쪽 승부를 하면서 제구가 튀어도 잡을 수 있게 바깥쪽에 앉았다.

그리고 프렌즈 벤치에서 대타가 들어왔다.

우투수인 이호민을 겨냥한 좌타자가 타석에 섰다.

“스트라이크 아웃!”

하지만 결과는 156km의 빠른 포심에 대처하지 못하면서 루킹 삼진.

9번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김혁을 땅볼로 잡아내면서 무사히 이닝을 마쳤다.

“어땠냐?”

이호민에 말에 김수호는 그저 엄지를 치켜세웠다.

“말해 뭐해.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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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프렌즈 0 : 7 부산 마린스]

[1승씩 나누어 가진 두 팀, 이젠 부산으로 간다!]

[오늘 경기의 승부처, 피할 수 없던 프렌즈와 증명한 김수호.]

[7이닝 완벽투 허하준, 2이닝 동안 2볼넷을 허용했지만, 무실점으로 막은 이호민. 부산고 선후배 간의 명품 투구!]

[야속한 방망이! 강주호, 플레이오프 9타수 무안타 수모. 타순 조정 이뤄지나?]

[김수호, ‘팬들에게 3차전으로 끝내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반드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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