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필승공식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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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투수는 굉장히 예민한 존재다.
선발투수의 활약에 따라 그날의 승패가 바뀌기도 하고, 경기장을 찾은 관객,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타자, 거기에 방송 송출 중인 카메라까지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만큼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 성적이 달라지고,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중 투수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요소는 그날의 스트라이크 존이다.
단순히 공 반개 차이로 좁다, 넓다가 아니라 그날의 운영 자체가 달라지기에 투·포수들이 경기 시작 직후 하는 건 주심의 존을 살피는 거였다.
“공 어때?”
땅볼로 물러난 박은성에게 강주호가 묻자 박은성이 고개를 저었다.
“공도 공인데 존이 빡센데요? 바깥쪽은 건드려봤자 땅볼이에요. 그렇다고 안치자니 스트주고.”
예상하였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강주호가 이번엔 나를 바라봤다.
“네 말대로네.”
맞추긴 했지만, 그리 기분 좋지는 않았다.
애초에 너무 쉬운 문제였다.
내가 타자들에게 오늘 주심의 존에 대해 말한 것처럼 나이츠 배터리 역시 타자들의 얘기를 들었을 거고, 그걸 바탕으로 1회 볼 배합을 구성했을 거다.
문제는 오늘 투수였다.
“서동범이, 오늘 공 심상찮은데?”
이미 2패를 함으로서 절벽 끝에 내몰린 나이츠 선발투수는 서동범.
최고 구속 152km의 포심과 148km의 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을 던지는 투수로 현재 나이츠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투수였다.
이번에 부상 때문에 올림픽에 못 나갔을 뿐이지, 만약 부상이 없었다면 무조건 뽑혔을 투수다.
거기에 지난 3년 동안 가을에서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며 나이츠 팬들에게 빅게임 피처로 불리는 투수.
나이츠의 포수인 이기찬 역시 이전에 국가대표 예비 포수로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뛰어난 포수다.
그런 배터리가 있는 한 우리 선발이 허하준이라고 마냥 안심할 수 없다.
양 팀 모두 에이스 투수가 나온 만큼 넓어진 존이 더욱더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집중력이다.
“단디 집중해라.”
1실점이 곧 패배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실책이라도 나온다면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그 사이 최치호 역시 아웃됐고, 그걸 본 강주호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오늘 결과가 어떻든 하준이보다 저놈부터 마운드에서 끌어 내린다. 알겠지?”
“예!”
강주호의 말에 최대한 투구 수를 빼보겠다며 다짐했지만, 아쉽게도 1회엔 내가 타석에 설 일이 없었다.
오준혁마저 땅볼로 아웃.
타자들에겐 굉장히 험난한 하루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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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팀의 중심타선을 맞이하는 2회.
1회와 마찬가지로 나이츠는 아무도 출루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선두타자로 나서서 맞이한 초구.
“스트라이크!”
‘타석에서 보니까 장난 아닌데?’
확실히 멀긴 멀었다.
“볼!”
거기에 볼이 되긴 했지만, 평소보다 타석에 붙으니 평범한 몸쪽공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존도 넓은데 몸쪽도 쉽게 꽂을 수 있는 투수라.’
한 마디로 까다롭기 그지없다.
잠깐의 고민 끝에 원래 타격 위치로 돌아가기로 했다.
바깥쪽 공이 까다롭긴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기보단 차라리 내 스윙을 가져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나이츠 배터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집요하게 바깥쪽 승부를 이어갔다.
“파울!”
“파울!”
“파울!”
“볼!”
‘오우, 살았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공이지만, 본능적으로 방망이가 나갔다.
멈춰서 다행이지, 자칫하면 얼토당토않은 공에 헛스윙할 뻔했다.
그리고 7번째 공.
“스트라이크 아웃!”
“흐.”
‘몸쪽이라.’
계속 바깥쪽만 던지다 몸쪽에 던지니 대처하기 힘들었다.
물론 아예 예상 못한 공은 아니라 치려면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쳐봤자 땅볼이 될 것 같았고, 차라리 다음을 생각해 볼이 되길 기다렸을 뿐이다.
“마, 루킹 삼진이 뭐냐. 쯧.”
“그래도 공 좀 뺏잖아요.”
“내가 하는 거 잘 봐라.”
대기타석에 있던 강주호가 자신만만하면서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초구, 세차게 돌아간 방망이에 타구가 높게 떴다.
하지만 더 이상 뻗지 못하고 우익수가 가볍게 잡으면서 아웃.
“그건 무조건 쳐야 하는 공인 거 알지?”
본인이 했던 말이 뻘쭘한지 뒤늦은 변명이 뒤따랐다.
그 뒤로 3회가 끝났을 때, 양 팀 타자 중에서 그 누구도 1루를 밟은 선수가 없었다.
그렇게 타순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돌아온 나이츠의 1번 타자, 최재우가 타석에 섰다.
‘역시 다 같은 생각이네?’
들어오자마자 타석에 바짝 붙고 배트를 짧게 쥔다.
아마 몸으로 날아오는 공이 오면 얼씨구나 하고 오히려 몸을 댈지도 모른다.
물론 150 중반의 패스트볼에 겁먹지 않을 타자는 없지만, 그만큼 지금 타자들이 출루에 진심이라는 말이다.
일단 나가기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야구니까.
그런 만큼 아예 변수를 지워버리는 게 중요했다.
최근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내야 대신 내 손에서 끝내는 게 제일 안전하다.
초구는 바깥쪽으로.
“스트라이크!”
주심의 존을 생각하면 복판에 가깝다고 생각할 정도의 공이 들어왔다.
하지만 최재우는 꼼짝하지 않았다.
‘2스트라이크까지는 지켜보겠다?’
아니면 이걸 미끼로 다음 공을 노릴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좋다.
허하준한테 사인을 보내자 곧바로 투구에 들어갔다.
-따악!
좀 전보다 약간 빠지는 투심에 방망이가 나왔다.
하지만 공이 라인을 벗어나면서 파울.
2구가 파울이 되자 급한 건 타자였다.
바깥쪽 공을 치기 위해 타석에 붙은 만큼 몸쪽 공도 위력적이다.
바로 직전 타석에서 내가 경험한 거라 효과가 확실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낫아웃!”
스플리터로 바운드가 된 공에 최재우가 1루를 노려봤지만, 어차피 공은 바로 앞에 있었다.
여유롭게 잡아서 1루로 던졌다.
“아웃!”
다른 타자들도 최재우와 다를 것 없는 최후를 맞이했다.
-딱!
“아웃!”
-퍼어억!
“스트라이크 아웃!”
4이닝 동안 8k.
경기 중반을 지나는 시점에 완벽한 피칭이었다.
문제는 우리도 별반 다를 것 없다는 건데.
4회 말 공격, 박은성과 최치호가 범타로 물러났지만, 오준혁이 이번 경기 처음으로 출루에 성공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절묘한 위치에 떨어지는 안타였지만 출루는 출루.
그 기세를 살려 초구 바깥쪽 낮게 들어오는 공을 그대로 퍼 올렸지만, 담장 앞에서 잡히고 말았다.
아, 너무 욕심냈나.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게 쌓이고 쌓이면 경기 후반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
“마! 공 좀 보라 했지!”
잠깐의 잔소리 정도는 이겨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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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취소.
내 앞에 주자가 있는 경우는 그때 한 번뿐이었다.
3타수 무안타.
다른 타자들도 성적은 비슷비슷했지만, 그래도 출루에 가끔 성공하면서 어떻게든 점수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양 팀 선발투수가 전부 미쳤다.
넓은 존의 영향이 없다곤 말은 못 하겠지만, 평소 같았어도 큰 차이는 없을 거다.
두 투수 모두 8이닝 무실점 호투 중.
허하준이 8이닝 15k 2피안타 무사사구.
서동범은 8이닝 9k 3피안타 무사사구.
삼진과 안타의 개수에만 차이가 있을 뿐, 볼넷도 0개로 엄청난 투수전이었다.
그 덕분에 더그아웃은 숨도 편하게 쉬지 못할 만큼 무거워졌다.
그나마 8회 선두타자였던 이주학이 기습 번트로 만든 안타가 기회였는데 아쉽게 됐다.
이제 나이츠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9번 타자 성민환부터 시작이다.
이전 경기에 5회 대타로 바뀌면서 자존심을 구긴 타자였지만, 나이츠 벤치는 빠른 발로 변수를 만들겠다는 생각인지 3타수 무안타에도 타석에 섰다.
타자가 타석에 서자 오준혁과 채지훈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초구.
-딱!
이주학이 그랬던 것처럼 번트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수였다.
3루로 느리게 흐르는 타구에 오준혁이 빠르게 반응했고, 러닝스로로 강하게 1루에 뿌렸다.
“아웃!”
“역시 우리 수호야. 크, 아주 좋아.”
“선배님도 알고 계셨잖아요.”
“그래도 인마. 그렇게 딱딱 집어주면 우리가 편하지.”
오준혁이 엄살 어린 말을 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슬쩍 손을 보니 덜덜 떨리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긴장을 풀기 위해 한 말 같다.
실책 한 번에 게임이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에 러닝스로라.
‘숨 막히긴 하네.’
오준혁이 잘 처리하긴 했지만, 아직 긴장을 놓기엔 아웃카운트가 2개 남았다.
아니, 그보다 더 남았을 수도 있다.
‘그럴 일은 없게 해야지.’
아무튼 나중 일은 이따 생각하기로 하고, 당장 타석에 들어온 타자가 문제다.
나랑 마찬가지로 3타수 무안타지만, 직전 타석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던 최재우.
하지만 이번 타석은 땅볼로 물러났다.
그리고 등장한 보스, 최건우.
“오늘 자주 뵙는 것 같네요.”
“그래? 내일도 지겹도록 볼 텐데, 그럼 오늘은 인제 그만 보자.”
아쉽지만 최건우를 보는 건 내일이 아니라 내년이 될 거다.
“스트라이크!”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승부, 최건우가 초구를 그대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두 번째 공.
느린 궤적을 그리면서 바깥쪽에 떨어졌다.
약간 벗어난 것 같은데 이 정돈 끌어넣을 수 있다.
“스트라이크!”
이건 생각 못했는지 바깥쪽 커브에 꼼짝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유리한 카운트를 잡았다.
마무리 짓기 위해 허하준에게 사인을 보내자 곧바로 알겠다는 사인이 돌아왔다.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공이 하나 있다.
“스트라이크 아웃!”
“와아아아!”
마지막을 장식하는 몸쪽 하이패스트볼.
허무하게 돌아간 방망이를 쳐다보던 최건우가 그대로 더그아웃에 돌아가고 허하준이 다가왔다.
“후, 힘들다.”
“고생하셨어요. 이제 집에 가야죠.”
“점수는? 네가 치려고?”
“당연하죠. 약속했잖아요.”
허하준은 제 몫을 다했다.
이제 나만 약속을 지키면 된다.
“너무 부담 갖지 마. 어떻게 사람이 맨날 홈런 치고 싶다고 홈런을 치겠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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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타석, 루킹 삼진.
두 번째 타석, 바깥쪽 낮은 공을 퍼 올려서 펜스 앞에서 잡힘.
세 번째 타석, 바깥쪽 낮은 공을 다시 펜스까지 보냈지만, 호수비에 걸려 아웃.
이번 세 타석의 결과들이다.
세 번째 타석이 아깝게 됐지만 이미 잊은 지 오래다.
다만 이 세 타석을 복기한 건, 이번 타석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운드에는 여전히 서동범이 서 있다.
투수를 바꿀 수도 있지만, 나이츠 벤치의 판단도 이해가 됐다.
지금 이 상황에 불펜을 올린다면 당연히 마무리 투수가 올라와야 한다.
하지만 나이츠의 마무리인 강우진은 저번에 나한테 끝내기 만루 홈런을 맞았던 투수.
차라리 오늘 3타수 무안타를 이끈 서동범으로 가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투수가 누구든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노리는 건 볼 배합을 하는 이기찬이니까.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가 들어왔다.
역시 바깥쪽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볼 배합이었고, 저 공은 쳤어도 좋은 타구를 만들기 힘들었다.
“볼!”
“볼!”
-따아악!
“파울!”
‘쯧, 무겁네.’
여전히 방망이에서 느껴지는 힘이 좋다.
별로 아쉽지 않았다.
어차피 승부는 이번 공에서 보려고 했으니까.
‘과연 들어올까?’
유리하지도, 불리하지도 않은 2-2 카운트.
이전 두 타석에서 모두 2스트라이크 이후 바깥쪽 낮은 공을 던졌다가 큰 타구가 나왔다.
거기에 방금도 무시 못 할 파울 타구가 나왔고.
‘하지만 몸쪽 낮은 공은 재미를 봤지.’
첫 타석, 내가 꼼짝 못 하고 삼진을 당했던 그 공.
그리고 나는 이기찬이 그 공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지 못했다는 것에 판돈을 걸었다.
배팅은 당연히.
‘올인!’
-따아아악!!!
모두 숨을 죽이고 타구가 떨어지는 곳을 바라봤다.
잠시간의 정적 이후.
“와아아아아아!”
“미친 새끼야! 와! 시발!!”
“빨리 돌아!”
“진짜 미친새끼 아니야? 와, 살다 살다 저런 놈은 처음 보네.”
구장을 울리는 함성, 뛰쳐나온 선수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나이츠 선수들.
그 모든 것들을 보면서 베이스를 돌았다.
그렇게 모든 베이스를 밟고 홈으로 돌아올 때 외쳤다.
“살살!”
“닥쳐! 빨리 오기나 해!”
“맞기 싫으면 홈런을 치지 말던가!”
“뼈! 뼈! 살! 살!”
“으악! 거긴 진짜 아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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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1 : 0 수원 나이츠]
[부산을 수놓은 명품 투수전, 그 마무리는 김수호!]
[준플레이오프 시리즈 부산 마린스 3 : 0 수원 나이츠로 부산 마린스 플레이오프 진출!]
[파죽의 3연승, 이제 다음 행선지는 잠실이다!]
[9이닝 16k 허하준! PO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갱신!]
[허하준, ‘수호가 던지라는 곳으로 던지면 항상 좋은 결과가 이어진다. 다음 상대인 프렌즈 역시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
[김수호, ‘프렌즈 역시 3차전에 끝낼 생각, 시즌 초반에 했던 말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올라왔다. 우리의 목표는 창원.’]
[마린스 감독, ‘오늘은 감독의 역량이 필요 없는 경기였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