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필승공식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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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전국 고교야구대회 등.
비록 고등학생 때지만 지금까지 꽤 많은 토너먼트 대회에 출전했었고, 나열한 대회에서 전부 우승했었다.
거기에 올해 치렀던 브리즈번 올림픽까지.
정규시즌과 토너먼트는 차원이 다르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건 이런 경험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뭔가 달랐다.
분명 가슴 떨리는 건 올림픽이 더했다.
하지만 경기장에 발을 딛자 심장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오늘 경기가 이전 대회들과 다른 게 있다면 다른 대회에선 2만 명의 관중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응원했던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스트라이....”
“와아아아아!”
스타즈의 1번 타자, 권민을 상대로 꽂은 스트라이크.
미트에 공이 꽂힌 순간 스트라이크를 확신한 듯한 환호에 심판의 콜이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오늘처럼 만원 관중이 온 경기는 꽤 많이 경험 해봤다.
심지어 며칠 전 스타즈와의 마지막 경기와 시즌 마지막 경기인 호올스와의 경기에도 만원 관중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함성을 들은 건 몇 번 없었다.
끽해야 홈런이 터졌을 때 정도?
허하준에게 공을 던지고 긴장에 살짝 굳은 손을 몇 번 쥐었다 피면서 나름대로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사인을 보냈는데.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어김없이 엄청난 함성이 동반됐고, 심판도 그걸 의식했는지 꽤 큰 소리로 콜을 했다.
‘어우 놀라라.’
함성이나 콜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갑자기 155km의 공이 복판에 꽂혀서 놀랐다.
사인을 보냈던 코스와 크게 어긋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놀란 덕분에 긴장이 풀리는 것 같기도···.
‘웃네?’
공을 허하준한테 던져주려는데 순간 눈이 마주쳤다.
‘설마 노린 거였어?’
어이없어서 한숨이 나왔다.
진짜 눈치 하나는 귀신이다, 귀신.
“스트라이크 아웃!”
이후 3구는 볼이 됐지만, 연속으로 던진 스플리터에 방망이가 끌려 나오면서 삼진.
나머지 두 타자도 무난하게 처리하면서 오늘 첫 번째 이닝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긴장한 모습 처음 보네?”
“언제부터 알았어요?”
“너 공 던져줄 때 박자가 있어. 가끔 볼 배합 고민할 때마다 늦었는데 오늘은 처음부터 늦더라?”
어이가 없는 대답이었다.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글쎄?”
그리고 싱긋 웃으면서 먼저 더그아웃에 들어가는데 순간 황당해서 가던 길을 멈췄다.
“안 들어가냐?”
“가야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직접 처리해서 기분이 좋아 보이는 이주학의 말에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무서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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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하준 덕분에 긴장이 풀린 덕분일까.
2회 말, 선두타자로 나서서 깔끔한 안타로 출루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민수 역시 만만치 않았다.
-딱!
“아웃!”
“아웃!”
강주호의 타구를 유격수가 잡아 그대로 2루에, 그리고 1루에 던지면서 더블플레이.
“후, 공 좋네.”
“싱커가 각이 미쳤어요. 차라리 싱커는 버리고 투심만 노리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어. 그게 낫겠다.”
강주호와 사이좋게 더그아웃에 들어오면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대기 타석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잭 미켈에게도 알려줬지만, 결과는 내야 뜬공.
이민수를 상대했던 지난 두 번의 경기를 떠올려보면 늘 5~6회까지 고전했었다.
항상 이민수에게 점수를 냈던 건 그 이후였고, 오늘도 경기 후반을 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공에 실린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심지어 바람도 역으로 불어서 한방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
물론, 이건 우리로서도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다.
스타즈 타자들의 한 방은 인천이 아니라 사직에서도 경계할 만했다.
이후 양 팀 투수들은 완벽한 투구를 펼치면서 3회도 삼자범퇴로 마무리했다.
문제는 4회 초 2아웃에 일어났다.
-따악!
돌아온 1, 2번 상위타순을 깔끔하게 잡아낸 뒤 타석에 선 3번 타자 전승빈.
높게 들어온 포심이 빗맞으면서 공이 외야 쪽으로 높게 떴다.
이준이 그 공을 잡기 위해 자세를 잡았지만, 마지막 낙구 지점을 놓치면서 공을 떨어트렸다.
그사이 타자 주자가 빠르게 2루까지 들어가면서 허무하게 득점권에 주자가 들어섰다.
오늘 바람이 많이 불어서 약간 불안불안했지만 설마 저걸 떨어트릴 줄은 몰랐다.
갑자기 찾아온 이번 경기 첫 번째 위기 상황에 존 윌슨이 타석에 들어섰다.
리그에서 두 경기, 올림픽을 포함한 세 경기에서 허하준에게 단 하나의 안타도 뽑지 못한, 일명 호구 잡힌 타자였다.
문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첫 타석에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었다.
다행히 3루수 정면으로 향해서 잡았지, 빠트렸으면 장타로 연결될 법한 타구였다.
첫 타석에 타격했던 공은 몸쪽 포심.
1루도 비어있는 상황이라 초구에 바깥쪽 투심으로 타자를 한 번 떠보기로 했다.
“볼!”
“볼!”
“스트라이크!”
‘대놓고 몸쪽을 노리네?’
오늘 존을 보면 바깥쪽이 약간 좁긴 했다.
2구도 평소라면 스트라이크가 될 법한 코스였는데 볼이 됐고, 3구에 던진 몸쪽 스플리터에 시원하게 돌린 걸 보면 몸쪽을 노리는 게 분명했다.
다음 공은 포심.
-타악!
“파울!”
“Shit!”
‘어후 목소리 봐라, 살벌한데?’
잠시 타석에 빠져나와 나를 노려보길래 한 번 웃어줬다.
존 윌슨이 허하준을 상대로 성적이 최악인 이유는 바로 간간이 활용했던 체인지업 덕분이었다.
당연히 존 윌슨에 머리에는 체인지업이 가득할 거라 생각하고 느린 포심을 요구했다.
효과는 좋았다.
구속만 보면 체인지업이라고 생각할 법한 포심으로 파울.
타이밍이 조금만 더 빨랐으면 뜬공으로 잡아낼 수 있었는데 아쉽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존 윌슨이 타석에 돌아오는 동안 다음 사인을 미리 보내놨다.
그리고 허하준은 심판의 시작 사인을 보자마자 빠르게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아웃!”
155km의 포심.
그것도 몸쪽 아래쪽 코스로 완벽하게 들어간 공에 존 윌슨이 얼어붙었다.
위기는 있었지만, 다행히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선취점이 필요한데.
4회 말 공격,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초구부터 노림수를 가지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아웃!”
싱커 대신 투심을 노리는 것까진 좋았지만 코스가 별로였다.
결국 라인드라이브로 아웃.
역시 오늘 경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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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오늘 양 팀 선발투수들의 호투가 정말 눈부시네요. 벌써 8회 말이 됐습니다. 타석엔 오늘 삼진 하나, 땅볼 하나가 있는 이준입니다.]
최지용 이후 마땅한 국가대표 에이스가 없다고 평가하던 사람들에게 오늘 경기를 보여준다면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오늘 두 투수의 투구는 눈부셨다.
허하준은 8회까지 3피안타 무실점 12k.
4회 실책으로 2루까지 간 걸 제외하면 득점권에 주자가 들어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민수 역시 7이닝 4피안타 1볼넷 무실점 호투하면서 8회 말에도 마운드에 올라왔다.
원래 스타즈 벤치의 계획은 6회까지 이민수에게 맡기고 7회부터 불펜을 꺼낼 생각이었다.
이전 두 번의 마린스전에서 6회 이후 무너졌기도 했고, 언더핸드 투수 특성상 긴 이닝을 소화하다 보면 타자들이 익숙해지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그런 벤치의 생각을 뒤집을 만큼 오늘 이민수의 공이 심상치 않았다.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5위 경쟁하느라 투수진의 출혈이 컸던 스타즈였기에 가능하면 이민수가 긴 이닝을 던져주면 좋았다.
거기에 8회는 오늘 이민수의 공을 건들지도 못했던 이준부터 시작할 차례.
이닝 전부는 아니더라도 하위타선은 충분히 맡길 수 있었다.
이게 바로 향후 스타즈의 미래를 책임질 토종 에이스에게 거는 기대와 믿음이었다.
[오늘 마린스의 선두타자 출루가 2회 김수호 선수를 제외하곤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준 선수가 나가주면 상위타순까지 연결되면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린스로서도 대타를 쓰면서 승부수를 걸어볼 만한 타이밍이지만, 이준의 출루율은 3할 3푼.
2할 5푼도 안 되는 타율에 비해 높은 출루율과 오늘 이민수의 공을 많이 봤던 이준을 믿기로 했다.
[초구, 몸쪽 스트라이크입니다!]
‘역시 초구는 무조건 흘린단 말이야?’
최필주가 만족스럽다는 듯 글러브를 탕탕 치면서 이민수에게 공을 던져줬다.
반면 이준에게 불리하게 시작한 상황.
‘괜찮아. 아직 여유 있어.’
이준이 마음을 다잡고 특유의 무표정으로 이민수를 바라봤다.
이어지는 공 두 개.
“볼!”
“볼!”
3구마저 볼이 되자 최필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것도 볼이라고? 존이 갑자기 별 모양이 됐나.’
쯧.
어쩔 수 없이 바깥쪽은 버리기로 하고 초구에 잡았던 몸쪽 공을 요구했다.
그렇게 던진 네 번째 공은 최필주의 미트가 아닌 이준을 향해 날아왔다.
이민수의 공은 언더 투수답게 느리게 날아왔고, 피하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퍽.
[아, 맞았습니다! 이준 선수, 몸에 맞는 볼로 1루에 출루합니다!]
[이준 선수, 이민수 선수의 공이 느려도 꽤 아플 텐데 아픈 기색도 없이 곧바로 1루를 향해 뛰어갑니다!]
하지만 이준은 피하지 않았다.
묵묵하게 몸에 공을 맞고 1루로 걸어 나갔다.
“괜찮니? 불편한 곳은?”
1루 코치가 이준이 공에 맞은 공을 살짝 누르면서 물었지만, 이준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어찌 됐든 선두타자 출루라는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이준이 1루로 나가자 스타즈 벤치에선 급해졌다.
일단 최필주가 먼저 마운드에 올라가 이민수의 상태를 확인하고 벤치에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돌아온 답변.
‘이번 타자까지.’
“민수야. 걱정하지 마. 애들이 잡아줄 거다.”
“예. 괜찮습니다.”
최필주가 돌아오자 이주학이 타석에 섰다.
그리고 곧바로 방망이를 눕히고 번트 모션을 취했다.
스타즈 내야 역시 전진 수비를 하면서 이주학을 압박하는 상황.
그렇게 초구가 날아왔을 때 이주학이 과감하게 번트를 댔다.
‘김수호한테 잔소리를 그렇게 들으면서 연습했는데!’
어제, 오늘 귀에 딱지가 안도록 들었던 번트 강의를 떠올리며 공에 방망이를 갖다 댔다.
-딱!
절묘하게 투수와 1루수 사이로 굴러간 공.
“아웃!”
비록 아웃이 되긴 했지만, 주자를 2루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마린스에게 찾아온 천금 같은 기회에서 투수가 교체됐다.
“이민수! 이민수! 이민수!”
[멀리 부산까지 찾아온 스타즈 팬들이 호투를 펼친 자신들의 에이스를 향해 함성을 보냅니다!]
이민수에 이어 올라온 투수는 150km의 묵직한 포심과 슬라이더, 그리고 체인지업을 던지는 강영우.
130km를 던지는 우완 언더 이민수를 상대하다 150km의 빠른 공을 던지는 강영우는 분명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문제는 제구였다.
“볼!” “볼!” “볼!”
단 한 경기만 지면 떨어지는 상황.
거기에 1사 2루라는 위기에 올라온 강영우는 제구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스트라이크!”
“볼!”
결국 3-1 상황에서 내준 볼넷.
“괜찮아. 병살 잡으면 되지!”
그렇게 외친 최필주였지만, 잔뜩 독이 오른 마린스 타자들을 상대로 어려운 승부를 이어갔다.
다행히 2번 타자 최치호를 풀카운트 끝에 삼진 처리하면서 일단 위기를 넘겼다.
이제 2사 주자 1, 2루.
‘시발, 무조건 여기서 끝내야 된다.’
만약 점수를 내주거나 오준혁이 출루한다면?
최악의 상황에서 도저히 김수호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바로 야구.
“볼!”
“와아아아아!”
세 개의 초록빛이 켜져 있는 상황에서 볼 선언이 들리자 사직 구장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2사 주자 만루.
마린스 팬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김수호가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 교체!”
스타즈 역시 곧바로 승부수를 띄었다.
벌써 3시즌 연속 스타즈의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근 마무리 투수, 양선웅.
“형, 쟤 진짜 미친놈이에요.”
“호들갑은. 마, 형만 믿어.”
양선웅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린스 팬들이 이미 이겼다는 듯이 구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것도, 최필주나 감독님이 호들갑을 떠는 것도 전부.
‘어차피 투수랑 타자가 붙으면 셋에 두 번은 투수가 이겨.’
야구는 확률 게임이다.
이 마인드를 장착한 양선웅은 그다음부터 스타즈의 마무리가 됐다.
그리고 김수호를 대하는 마음가짐 역시 마찬가지.
‘오늘 안타를 쳤으니 못 칠 확률이 더 높지.’
김수호와는 오늘이 첫 만남, 거기에 주자가 가득 차 있는 상태.
공을 쥔 왼손에 힘이 들어가고, 최필주가 보낸 사인대로 공을 뿌렸다.
나름 나쁘지 않게 뻗는 공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거 치면 분명 뜬공이다.’
그리고 나온 김수호의 방망이.
-따아아아악!
[쳤습니다!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자신만만했던 양선웅마저 식겁할만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오늘 바람은 홈런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안쪽으로 강하게 부는 상황.
거기에 양선웅 역시 구위 하나는 리그에서 손꼽을 정도로 좋은 불펜투수였다.
심지어 사직 구장은 투수 친화적 구장.
이 모든 걸 고려하면.
‘펜스 앞에서 잡히겠....’
어, 저게 왜 안 떨어져?
[우측 담장! 넘어갑니다!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오늘도 역시 김수호가 해냅니다! 김수호의 그랜드 슬램!!]
-와아아아아아!
천천히 베이스를 도는 김수호를 바라보던 양선웅의 머릿속에 최필주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쟤 진짜 미친놈이에요.’
“시발....”
뒤늦은 후회는 안 하느니만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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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4 : 0 인천 스타즈]
[오늘도 통한 필승 공식! 허하준이 던지고 김수호가 친다! 김수호 만루포! 허하준 완봉승!]
[가볍게 스타즈를 꺾은 마린스, 다음 목표는 수원 나이츠!]
[가을밤을 달군 두 에이스의 명품 투수전, 이래서 가을 야구, 가을 야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