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기록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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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한국시리즈? 후반기 승률 1위 마린스 VS 전체 1위 돌핀스의 맞대결!]
“기사 막 쓰네.”
“왜요, 또 뭔데.”
창원에서 부산으로 가는 돌핀스 버스 안.
우오준이 기사를 보다 그대로 꺼버렸다.
옆에 앉은 이규영이 곧바로 핸드폰을 뺏고 기사를 확인하고 웃었다.
“뭐, 나름 사실만 적었는데 왜 그래요.”
“뭐냐, 그 반응은? 네가 언제부터 마린스를 좋아했다고?”
“저 원래 마린스 좋아했는데요? 만나기만 하면 성적이 뛰는데 왜 싫어해요?”
특히 약간 처진다 싶을 때 마린스만 만나면 날아다니는 이규영이었으니 마린스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보약도 쉽게 못 먹는 운동선수에게 합법적인 약이랄까.
“최근에 탈탈 털려놓고 무슨. 수호한테 도루 벌써 세 번 따이지 않았냐?”
“어허, 선배님, 두 번입니다. 그리고 한 번은 성공했어요.”
올 시즌 이규영의 도루 시도는 총 50회, 도루 실패는 단 4번.
그중 절반을 김수호가 잡아낸 거였다.
“자랑이다. 다 이긴 경기에서 도루한 게 뭐라고.”
“와, 자존심 상하네. 오늘 경기 보세요. 내가 왜 3년 연속 상대하기 싫은 타자 1위인지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그것도 걔한테 뺏겼잖아.”
“아오!”
할 말을 잃은 이규영이 목에 걸어놓은 헤드셋과 안대를 쓰고 그대로 대화를 단절했다.
그 모습을 본 우오준이 피식 웃고 다시 핸드폰을 뺏어서 기사를 마저 읽었다.
이규영의 말이 맞았다.
기사 내용은 전부 사실이었다.
7승 1패로 팬들 사이에서 맛집이라 불리던 대 마린스 전적이 최근 2승 4패로 안 좋은 것도, 특히 허하준에게 노히트노런을 당했던 것도 전부 사실.
이전의 마린스와 지금의 마린스는 완전히 다른 팀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었지만 한국시리즈에 올라올 팀은 프렌즈 아니면 마린스라고 예상했다.
프렌즈가 포스트시즌이 더 많고, 그에 반해 마린스는 선수 대부분이 단기전 경험이 없었다.
하지만 야구에서 단기전은 단 한 명의 선수가 게임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올림픽에서 보여줬던 김수호의 파괴적인 모습을 생각하면 더 경계되는 팀은 단연 마린스였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가 중요했다.
마린스의 잔여 일정을 생각해봤을 때 이번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둔다면 탈락할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두 경기 모두 내준다면?
아마 분위기대로 4위를 확정 짓지 않을까.
거기에.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면 골치 아프겠지.’
특히 오늘 선발 투수인 허하준을 반드시 공략해야 했다.
어떻게든 점수를 짜내던가, 그게 아니라면 일찌감치 내려보내야 했다.
다행히 그 두 가지 모두에 특화된 놈이 바로 옆에서 자는 척을 하고 있었다.
“규영아, 네가 해줘야 한다.”
순간 움찔거리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그렇게 버스는 달려서 부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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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한다.”
“예? 뭐가요?”
“팬들이 뽑은 상대하기 싫은 타자 1위 된 거.”
“그런 것도 있어요?”
“이게 얼마나 유서 깊고 공신력 있는 투푠데, 진짜 몰라? 모르는 척이 아니라?”
“처음 들어 봤는데요.”
이규영이 타석에 들어오자마자 이상한 투표를 들먹였다.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웃기긴 한데, 그렇게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사인을 못 보냅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이규영이 허하준을 바라봤다.
“하, 그게 얼마나 의미 있는 건데.”
반응을 보아하니 대충 예상이 됐다.
“그거 선배가 전에 1위 했던 투표죠?”
“... 몰라.”
상대하기 싫은 타자라, 내가 꼽으라고 해도 이규영이 1위긴 하다.
“근데 그거 투수 투표도 있어요?”
“어. 있지. 쟤.”
아하, 그렇구나.
투타 전부 우리 팀에 있다니, 우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아무튼 좋은 정보를 얻었으니 이제 경기할 차례.
모든 타자가 그렇지만, 초구를 스트라이크를 잡느냐, 혹은 볼이 되느냐에 따라 이후 운영이 달라진다.
특히 이규영을 상대할 땐 반드시 스트라이크를 잡고 가는 게 좋았다.
볼이 몰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던지게 만드는 게 장기니까.
차라리 안타를 맞더라도 짧게 끊는 게 더 낫다.
그런 의미에서 초구는 역시 투심.
이규영을 포함한 돌핀스 타자들이 본 적 없는 공이었다.
-퍼억!
“스트라이크!”
한 가운데 들어오는 거라 스윙이 나올 것 같았는데 이걸 참아?
그래도 카운트를 잡았으니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했다.
한 번 더 떠보기 위해서 2구는 스플리터.
“볼!”
이것도 그냥 보낸다고?
볼이 되긴 했지만 한 가운데로 오다가 뚝 떨어지는 공이었다.
2스트라이크 이후였다면 무조건 스윙 유도를 해낼 수 있는 공.
한 가운데 가는 공도 흘리고, 방금 스플리터도 참아냈다.
그렇다면?
‘오늘 공 좀 빼겠다는 거네?’
놀랄 일은 아니다.
허하준을 상대로 이런 시도를 했던 팀이 한두 팀이 아니니까.
근데 지금까지 허하준이 완봉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상황을 뚫어낼 힘이 있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상대 타자의 목적을 알아냈으니 이제 간단해졌다.
쳐볼 테면 쳐보라지.
-따악!
“파울!”
-탁!
“파울!”
-타악!
“파울!”
2스트라이크가 되자 귀신같이 방망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규영을 상대하는 투수들이 겪는 끈질긴 승부가 이어졌다.
이젠 대놓고 타석에 붙었고, 방망이도 짧게 잡는 걸 보면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허하준의 공을 언제까지고 커트해낼 수 없다.
-딱!
결국 빗맞아 높이 뜬 공이 내 미트 속으로 그대로 사라졌다.
“아웃!”
일단 원 아웃.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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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영 이후에 들어오는 타자들도 생각이 비슷했다.
아무래도 투심을 처음 보기도 하고, 공개수도 빼놓을 겸 아예 한 가운데 들어가는 공이 아니면 방망이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그래도 1회는 삼자범퇴.
이규영에게 던진 공 개수가 조금 많아서 15개나 던졌다.
적어 보이지만, 최근 허하준의 이닝당 평균 공 개수가 10개 조금 넘는 걸 생각하면 아쉽다.
“2회도 빠르게 갈게요.”
“어. 오늘 작정하고 나온 거 같은데?”
허하준 역시 돌핀스 타자들의 생각을 알고 있었고, 빠른 템포를 유지하는 데 동의했다.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었는데, 오늘 돌핀스 선발로 나온 존 그레이가 문제였다.
거의 1위를 확정지은 돌핀스는 우리처럼 빠듯하게 선발을 내보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4일 휴식으로 1선발 존 그레이가 나왔다는 건 투수 본인의 의지나, 포스트시즌을 준비한다는 거였다.
허하준의 노히트노런 때 상대 선발이 존 그레이였고 포스트시즌에선 4일 휴식은 물론, 3일 휴식도 종종 나오니까.
아무튼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오늘 이를 갈고 나온 건 확실했다.
존 그레이뿐만 아니라 수비, 특히 유격수와 중견수가 호수비를 밥 먹듯이 하니 출루도 부진했다.
역시 국가대표라고 해야 하나.
양 팀 모두 꽉꽉 막힌 듯한 타선을 뚫으려고 노력했고, 먼저 기회를 잡은 건 돌핀스였다.
3회 초 공격, 주자 없는 2아웃에 타석에 들어온 이규영이 기습 번트로 살아서 출루했다.
이미 이닝에 들어가기 전부터 얘기가 된 상황이었지만, 코스도 좋았고 이규영의 발이 너무 빨랐다.
투아웃이라 뛸 가능성이 상당히 컸다.
이규영이 슬슬 리드폭을 늘려갔지만, 부담되는지 일정 수준 이상으론 나가지 않았다.
허하준이 우투수지만 워낙 견제에 일가견이 있는 투수라 지속해서 이규영의 발을 묶는 사이, 내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돌핀스가 가장 좋아하는 전술은 이규영이 발로 내야진을 흩트려 놓고 2번 타자 박광민이 빈틈을 노려 타격하는 것.
허하준에게 초구 사인을 보내고 집중했다.
허하준의 손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 이규영이 곧바로 스타트를 끊었다.
“2루! 뛴다!”
동시에 박광민의 방망이가 주저 없이 움직였다.
“스트라이크!”
하지만 스플리터가 떨어지고, 방망이는 그저 허공을 돌았다.
여기까진 예상한 대로였다.
초구 스플리터를 요구한 것도, 이규영이 뛰고 박광민이 휘두를 것도 전부.
문제는 지금이다.
홈플레이트 바로 앞에서 바운드가 된 공.
공이 미트에 들어온 동시에 미트를 끌어올리면서 공을 잡고 바로 2루로 던졌다.
허하준의 스플리터가 다른 변화구보다 빠르긴 하지만 이미 바운드 된 순간 속도에서 손해를 본 상황.
이규영을 2루에서 잡아내기 위해선 빠르게 던지거나, 혹은 정확하게 던지는 수밖에 없다.
공이 커버를 들어온 최치호에게 정확히 도착하면서 그대로 글러브를 내렸다.
“아웃!”
허망한 표정을 짓는 이규영이 보였다.
“크, 역시 수호 어깨 쥑이네!”
“네가 그냥 투수하지 그러냐?”
채지훈과 최치호의 말에 그냥 웃었다.
“운이 좋았어요.”
“운이 어떻게 맨날 좋냐. 다 실력이지.”
바운드 된 공이 단번에 미트에 들어온 것도, 또 그 공이 한 번에 손에 잡힌 것도 운이다.
그리고 의식해서 강하게 던진 송구가 정확하게 도착한 것도 운이 좋았다.
거기에 리드폭을 줄인 허하준의 견제나, 슬라이더 스텝도 좋았다.
라고 말해봤자 통하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그냥 웃고 넘겼다.
“예. 그냥 제가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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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루에서 돌고래 포경에 성공한 뒤, 분위기를 가져오는 듯했으나 존 그레이는 멀쩡했다.
되려 불타오르는 듯 연신 날카로운 공을 던졌고 5회까지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허하준 역시 6회 초를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양 팀 선발 투수가 똑같이 3피안타 무실점을 한 상황.
이번 이닝의 선두타자는 나였다.
“파울!”
스읍, 투심을 예상했는데 체인지업이 들어왔다.
어쩐지 내 타석이 되면 공이 더 좋아지는 느낌인데.
오늘 첫 타석엔 땅볼, 두 번째 타석엔 삼진이었다.
확실히 존 그레이의 투심과 체인지업의 조화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더군다나 두 구종을 던질 때 폼의 변화가 거의 없어 까다롭기 그지없다.
평균자책점 1위, 다승 1위를 그저 땅따먹기로 딴 게 아니란 말이다.
물론 허하준이 오늘 경기를 포함해 남은 경기에서 10이닝만 던지면 규정이닝을 충족해 평균자책점 1위가 되긴 한다.
아무튼 잘 던지는 투수라는 거다.
거기에 날 쳐다보고 있는 우오준, 이규영도 위험 요소다.
워낙 수비가 좋은 선수들이다 보니 그쪽으로 날리면 아웃이라고 보면 된다.
왜 이렇게 적이 많은 느낌이냐.
곧 두 번째 공이 날아왔다.
“볼!”
몸쪽 바짝 들어오는 볼.
자칫하면 맞을 뻔했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설마 저런 눈을 한 투수가 맞출 생각으로 던졌을까.
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마! 도랏나!”
“쉐키가! 눈 똑바로 뜨고 던지라!”
“우리 수호 맞추면 니도 몸 성히 못 돌아간다!”
오늘 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이 나 대신 존 그레이에게 소리쳤다.
존 그레이의 표정을 보니 뭐라 하는지는 몰라도 대충 의미는 전해지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걸로 투수가 흔들린다면 땡큐였다.
하지만 3구 역시 몸쪽에 약간 빠지는 공.
“볼!”
보통 멘탈이 아니다.
역시 올 시즌 끝나고 메이저에 갈 투수라는 건가.
유리한 볼카운트인 2-1.
-따악!
“파울!”
“으, 까비.”
방망이에 공이 맞자마자 냅다 달렸지만, 공은 아슬아슬하게 라인을 벗어났다.
너무 아쉬운데.
미련을 버리고 다시 타석에 섰다.
약간 흥분되어 보이는 투수.
그리고 다음 공.
-따악!
존 바깥쪽에 약간 들어온 공을 그대로 퍼 올렸다.
코스는 좋은데, 이규영이 타구에 곧장 반응했다.
1루를 밟는 동시에 이규영이 다이빙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공이 글러브를 비껴갔다.
그대로 가속을 살려 2루에.
-와아아아!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이번 경기 양 팀 통틀어 첫 번째 장타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