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기록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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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이 끝나갈수록 느끼는 거지만 몸이 멀쩡한 선수보다 문제가 있는 선수가 더 많다.
얼마 전 최치호의 햄스트링도 그렇고, 다른 선수들도 몸에 무언가 하나씩 문제가 있다.
그냥 티를 안 내서 모르는 것뿐이다.
야구를 본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보통 이런 경우 휴식일을 주곤 하는데 현재 팀 상황상 여유가 없다.
당장 한 경기, 한 경기가 가을야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중요했고, 주전을 빼고 이긴다고 자신하기엔 주전과 후보의 차이가 너무 컸다.
그나마 야수와 투수, 모두 쉴 수 있는 날이 있다면 바로 오늘 같은 날.
“스트라이크 아웃!”
선발로 허하준이 나오고, 1회 홈런으로 선취점을 뽑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허하준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4일 휴식 후 등판이었고, 그 탓인지 처음엔 제구가 약간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허하준은 허하준.
1회에 이어 2회도 깔끔하게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오늘 슬라이더 제구가 좋은데요? 초반엔 슬라이더 위주로 갈까 봐요.”
“좋지.”
2회 선두타자로 나온 황인재를 깔끔하게 삼진으로 잡아낸 공이 바로 슬라이더였다.
황인재한테 통한다면 다른 타자들한텐 당연히 통한다고 봐야지.
이래서 나도 허하준이 나오는 날이 되면 편하다.
구종이 워낙 다양한데, 심지어 모든 구종이 결정구로 써도 될 정도였다.
구종이 많다 보니 사인을 내는 손가락이 조금 아픈 정도지 볼 배합을 결정하기 아주 아주 쉬운 편에 속했다.
이후 안타를 몇 개 맞긴 했지만, 4회까지 무실점.
반면 우린 세 번의 공격에서 7득점.
이미 점수 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피닉스의 선발 김태민은 결국 3회를 끝마치고 더 이상 올라오지 못했다.
새로 올라온 투수는 김성태.
작년 신인 투수로 사실상 이번 경기를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 이후 결과는 다들 예상한 대로.
이제 막 올라온 투수는 이미 불이 붙은 타선을 감당하지 못했다.
8번 이준의 안타, 이주학의 2루타, 박은성의 연속 안타로 순식간에 2득점.
최치호의 안타와 오준혁의 볼넷으로 무사 만루.
스코어는 이미 9대0.
여기서 대충 휘둘러도 욕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물며 큰 스윙이 나온다?
“와아아!”
“그렇지! 한 방 더 치자!”
“김수호 홈런!”
헛스윙에도 되레 이런 응원이 들렸다.
오랜만에 크게 돌려봤는데 응원받으니 뻘쭘했다.
근데 이 스윙이 상대 투수에게 부담을 준 모양이다.
“볼!” “볼!” “볼!”
첫 헛스윙 이후 볼 세 개가 연속으로 들어왔다.
강주호의 타격 이론에 의하면 3-1은 아주 좋은 타격 찬스였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만루 상황.
공짜로 점수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휘두르는 것만큼 멍청한 게 없다고 했었다.
“스트라이크!”
4구, 약간 빠지는 공에 그대로 헛스윙.
골라내려면 충분히 골라낼 수 있는 볼이었다.
만약 오늘이 평범한 경기였다면 저런 거에 휘두르냐며 한 소리 듣겠지만, 이미 경기가 넘어간 상황.
잔소리는 나중에 생각하고 그냥 멍청한 놈이 되기로 했다.
3-2 풀카운트.
포심을 예상하고 한 스윙.
하지만 공은 내가 생각한 궤적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에 맞춰 타이밍을 바꾸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오늘 컨디션이 좋기도 했고, 상대 투수의 공이 느린 것도 있었다.
-따아아아악!
타이밍이 약간 빠르긴 했지만, 공이 날아가는 걸 보면 큰 문제 없었다.
투수가 차마 뒤를 못 돌겠는지 고개를 푹 숙인 게 보였다.
홈런을 때려놓고 동정하는 게 웃기긴 했지만, 저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라 담담하게 홈으로 들어왔다.
오늘 홈런으로 두 번째 밟는 홈플레이트.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나이스!”
“김수호, 폼 미쳤다!”
“또, 또. 내 앞에 다 쓸어가는 거 봐라.”
툴툴거리는 강주호였지만 표정은 밝았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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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감독은 흐뭇하게 더그아웃에 들어오는 선수들을 바라봤다.
박은성이야 최근 폼이 너무 좋아서 타석에 설 때나 외야에 공이 갈 때마다 든든하다.
오늘도 벌써 3출루.
최치호도 주장으로서 책임을 지기 위해 부상이 다 낫지 않았음에도 빠르게 복귀했다.
오준혁 역시 최근 출루에 집중하며 팀플레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오준혁이 왜 그렇게 하느냐는 간단했다.
바로 세 명의 선수 바로 뒤에서 여유롭게 걸어들어오는 김수호.
이유는 그 세 글자면 충분했다.
“나이스! 잘했다!”
그렇게 선수들을 반겨준 뒤, 코치진을 불러 모았다.
“타선 한 바퀴 돌면 바꿀 수 있는 애들 전부 바꿔.”
“예. 알겠습니다.”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점수 차.
코치진도 이미 예상했는지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그때, 투수 코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준이는 어떻게 할까요.”
“바꿔.”
“예? 오늘 완봉하면 최다 완봉승 타인데 바꿀까요?”
“내가 가서 말할 테니까 지호 준비시켜.”
“예. 알겠습니다.”
코치들이 분주하게 교체 라인업을 짜는 사이, 이정훈 감독이 직접 허하준에게 다가갔다.
기록이 중요한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을야구에서 활약해야 할 선수가 승리가 확정된 상황에서 더 던지는 건 낭비였다.
더군다나 다음 등판 역시 4일 휴식이 예정된 터라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했다.
설명을 들은 허하준은 별 상관없다는 듯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이제 남은 건 한 명인데.
이정훈 감독이 김수호를 바라봤다.
“수호야, 체력 괜찮니?”
“예. 괜찮습니다.”
곧바로 나온 말에 이정훈 감독이 흡족해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김수호도 예외는 아니었다.
“5회까지만 하고 교체하자. 타격을 더 하고 싶으면 1루수로 출장하고.”
오랜만에 1루수 제의에 김수호가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그냥 쉬겠습니다.”
김수호도 큰 고민 없이 휴식을 선택했다.
이젠 정말 가을을 대비할 때가 됐다.
이정훈 감독이 돌아가고 김수호가 마저 장비를 차며 물었다.
“안 아쉬우세요?”
“딱히? 어차피 내년에 다시 세우면 돼.”
여유 미쳤네.
“그게 말처럼 쉬울까요?”
“쉽지.”
허하준의 자신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내년에도 이렇게만 던질 수 있으면 최다 완봉승은 확정에 가까웠다.
그 외에 잡담하다 보니 4회가 끝났고 5회 초, 공 10개로 이닝을 마무리한 허하준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리고 풀린 내 장비도 다시 채워진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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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15 : 4 대전 피닉스]
[쏟아진 기록들! 마린스 구단 최다 연승 기록 12연승 5할 승률 달성!, 영광의 주인공은 에이스 허하준!]
[스타즈 패배하면서 6위 추락, 마린스 4위 등극! 챌린저스는 승리하면서 5위.]
[김수호, 3홈런만 치면 30홈런 달성, 혼돈의 신인왕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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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경기 전, 잠깐 시간을 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동안 MVP 인터뷰를 제외하면 따로 들어오는 인터뷰를 거절했었다.
단장님이 편의를 봐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어제 경기 승리로 더 이상 거절하긴 어려웠다.
하긴, 어제 승리로 많은 일이 일어나긴 했다.
5할 승률, 12연승, 그리고 4위.
인터뷰 내용도 대체로 이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딱 한 가지, 그것과 다른 질문이 있었는데.
“지금 신인왕 경쟁이 모른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말에 곧장 고개를 저었다.
“신인왕은 사실상 확정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내 성적도 좋지만, 아무래도 시즌 처음부터 전 경기 출장 중인 황인재를 넘기는 어려웠다.
어제 시즌 38호 홈런을 치면서 40홈런까지 2개 남긴 황인재.
나도 시즌 초부터 나왔으면 모를까, 지금 내 성적으로 신인왕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의외일 정도였다.
포스트 시즌 성적이 투표에 영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군요. 아쉽겠습니다. 만약 김수호 선수도 황인재 선수처럼 시즌 초부터 뛰었다면 판도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텐데요.”
“아뇨. 그러면 제 포지션은 포수가 아니라 1루수였겠죠. 전 지금이 좋습니다. 그리고 신인왕보다 더 좋은 타이틀을 따낼 거라 괜찮습니다.”
“무슨 타이틀이죠? 골든글러브?”
“한국 시리즈 MVP요.”
너무 당당하게 말한 탓에 기자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그 역시 프로,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 말은 올 시즌 마린스가 우승할 수 있다는 말이시죠? 단 한 번도 와일드카드를 치룬 팀이 우승한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도 우승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현실적으로 마린스의 정규시즌 최대치는 4위.
4위로 진출한다고 해도 수많은 난관을 헤쳐야 했다.
“영광이네요. 저희가 첫 번째라서.”
김수호의 자신감에 기자가 웃으면서 마무리 지었다.
“김수호 선수의 자신감에 가을야구가 정말 기대되는군요.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거두셔서 말씀하신바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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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 네 타이틀을 위해서 오늘 꼭 이겨야겠는데?”
“그냥 한 소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요. 그보다 몸은 괜찮아요?”
인터뷰 기사는 나중에 정리돼서 나오지만, 웰링턴이 그새 얘기를 전해 들었나 보다.
무슨 놈의 구단이 비밀이 없어.
“완벽해. 걸리적거리던 것도 사라졌어.”
어깨를 돌리면서 과시하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음부턴 꼭 경기 전에 말하세요. 그러다가 괜히 부상만 커져요.”
“알겠어. 방금 완전 엠마 같은 거 알아?”
“엠마요?”
여기서 와이프 이름이 왜 나오지?
“어. 엠마도 한 잔소리 하거든.”
이건 잔소리가 아니라···.
후, 참자.
양준의 별명이 왜 양줌마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몸에 이상이 없다는 웰링턴의 말은 진짜였다.
포심의 구속도 150km를 넘나들면서 묵직했고, 특유의 커브도 잘 떨어졌다.
다만 상대 투수가 1선발 에릭 니콜라스라 서로 사이좋게 1회는 무실점.
본 게임은 이제 시작이었다.
피닉스의 선두타자는 황인재.
어제 나와 허하준이 내려간 뒤 홈런을 쳤다.
경기에 영향이 있는 홈런은 아니었지만, 타격감이 꽤 괜찮다는 소리였다.
“어제 나 없으니까 할 만했나 보다? 홈런도 치고?”
“네가 아니라 허하준 선배겠지.”
“원래 배터리는 세트인 거 모르냐?”
“구종 알려줄 거 아니면 닥치지?”
어후, 무서워라.
저번 그 사건 이후 황인재가 좀 편해지긴 했다.
“내 덕 좀 봐놓고 너무한 거 아니냐?”
“무슨 덕.”
“지금 피닉스 선수단, 바뀌기 전보다 네 입맛에 맞지 않냐?”
그 말에 황인재가 잠시 말을 멈췄지만 금방 대답이 들렸다.
“아직 멀었어.”
거참, 욕심도 많은 놈이다.
근데 이해도 됐다.
어제 황인재를 상대할 때 좀 급해 보였으니까.
아마 자신을 받쳐줄 타자가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 싶은데.
나도 경험해본 적 있어서 공감됐다.
“내가 그립지?”
“하, 진짜 미쳤냐?”
“뭘 그리 정색해. 농담이야, 농담.”
대화는 이쯤하고, 초구는 일단 한 번 떠보기로 했다.
오늘 포심의 구위와 제구가 나쁘지 않으니 바깥쪽으로.
-따악!
“파울!”
순식간에 날아가서 1루 쪽 그물을 강타했다.
역시 힘 하나는 진짜다.
내가 알기로 타구 스피드가 타자 중 1위라는데.
특히 웰링턴 상대로 성적이 좋다.
올림픽 평가전을 포함하면 홈런 3개, 타율 0.357.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
카운트가 유리하니 하나 정돈 빼기로 했다.
“볼!”
스읍, 꽤 좋았는데 방망이가 안 나오네.
황인재가 무슨 공을 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슬라이더도 있긴 하지만 사실상 포심과 커브 50%이다.
황인재라면 포심 타이밍에 방망이가 나와도 슬라이더에 대처가 가능할 터.
나한테 ‘포심 타이밍에 맞추고 변화구가 오면 쳐라’ 같은 조언을 했던 게 황인재인 만큼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이래서 까다롭다.
차라리 황인재에 대해 잘 몰랐다면 고민하지 않고 슬라이더 사인을 냈을 텐데.
일단 연달아 빠른 공을 던졌으니까 커브 하나를 섞었다.
120km 후반까지 떨어지는 커브.
거기에 타격 포인트가 공 하나 크기에 불과해서 헛스윙률이 무려 47%
-따악!
하지만 황인재는 기어이 존 아래로 가는 커브를 건드렸다.
“파울!”
그래도 자세가 무너진 걸 보면 타이밍 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다시 커브? 아니면 포심?
그때 웰링턴과 눈이 마주쳤다.
혹시 몰라 포심 사인을 내니 곧바로 끄덕이는 고개.
아무래도 그동안 홈런 맞은 게 꽤 쌓인 거 같은데.
예전에 이호민이 이러다 홈런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원하는 대로 포심 한번 던져보지 뭐.
주자도 없고 경기 초반이니 홈런을 맞아도 치명적이지 않았다.
무조건 홈런을 맞는 것도 아니고.
구종은 웰링턴이 원하는 대로 포심, 그리고 코스는 몸쪽.
“스트라이크 아웃!”
흐, 좋은데?
웰링턴의 강점을 제대로 살린 코스, 위에서 아래로 꽂히듯 들어온 몸쪽 낮은 포심.
황인재도 꼼짝 못 할 만큼 완벽한 공이었다.
들어가는 황인재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인재야, 너 적이 많다?”
우리 팀에만 벌써 세 명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