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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99화 (99/203)

99화 기록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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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춥다 추워.”

9월에서 10월로 넘어가는 새벽에 비가 온 뒤, 귀신같이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떠 있을 시간이라 괜찮긴 했지만, 해가 떨어지면 생각보다 추울 것 같다.

다행히 구단에서 내복 같은 걸 지원해준 터라 든든하게 갖춰 입고 몸을 풀고 있었다.

이런 궂은 날씨에도 팬들은 속속히 원정 응원석을 채우기 시작했고, 경기 시작이 가까워지자 빈 곳은 찾기 어려웠다.

호올스의 홈이지만 우리 팬들이 많이 온 듯 보였다.

하긴, 서울 원정을 올 때마다 워낙 많은 팬이 오기도 했고, 최근 연승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워낙 좋다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반대로 호올스는 이미 꼴지가 거의 확정된 상태니, 웬만하면 찬다는 응원석도 일부 비어있었다.

마치 우리의 전반기를 보는 듯했다.

그땐 허하준의 경기를 제외하면 응원석 매진도 어려웠다는데.

이럴 때마다 느끼지만 팬들은 참 냉정하다.

호올스같은 인기구단도 고작 1년 못했다고 이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직관을 오는 수가 줄어든 걸 보면.

부디 부산에 그럴 일이 없길 바라며 관중석을 바라보던 중이었다.

“캬, 슬슬 입는구나.”

“뭘요?”

“저거. 가을 점퍼.”

옆에 앉은 채지훈의 말에 유심히 살펴보니 곳곳에 점퍼를 입은 팬들이 보였다.

“작년엔 열에 한 명꼴로 입었는데, 올해는 벌써 입네.”

일종의 가을 야구를 상징하는 거라고 할까.

슬슬 팬들도 느끼고 있는 거다.

우리가 가을에 야구를 할 수 있다는걸.

“마, 니 시즌 끝나고 보너스 좀 받겠는데?”

“보너스요?”

“어. 다 니 때매 산 거 아이가?”

“에이, 다들 잘하니까 그런 거죠.”

“어이구, 퍽도!”

진지하게 저런 걸로 보너스를 준다면 거절하진 않겠지만, 점퍼가 유니폼처럼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 소리다.

아무튼 나는 저런 보너스 말고 다른 보너스를 받고 싶다.

예를 들면, 우승 보너스?

갑자기 의욕이 솟는 기분인데?

그 전에 5등이든 4등이든 확정 짓는 게 먼저긴 하지만.

슬슬 해가 지고, 바람이 조금 더 쌀쌀해질 때쯤 경기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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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참 묘한 게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주 나온다.

오늘 경기만 놓고 보면 우리의 승리가 당연시되어 보였다.

상대는 리그 꼴찌팀이었고, 오늘 호올스의 선발 투수는 이제 막 1군에서 세 번째 선발 등판인 신영진.

기세로 보나, 선수진으로 보나 11연승은 떼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한 팬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근데 상황은 미묘하게 흘러갔다.

일단 선취점을 낸 건 우리였다.

박은성의 안타와 최치호의 번트, 그리고 오준혁의 적시타.

난 볼넷으로 출루했고, 강주호의 병살타에 이닝 종료.

이후 4회까지 추가 득점이 없었다.

반면 점수를 내주는 과정은 단순했다.

2회 말,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선 강신이의 홈런.

우리도 추가 실점은 없었지만, 계속해서 주자를 출루시키면서 결국 4회 말 2사 만루 상황.

그리고 타석엔 주호성이 들어섰다.

어제부터 오늘 첫 타석까지 전부 무안타로 부진했지만, 만만히 볼 타자는 아니다.

일단 김호기의 공 중에 그나마 제구가 괜찮았던 공을 요구했다.

-따악!

“파울!”

2사 1, 3루 상황에서 6번 타자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것과 다르게 나쁘지 않게 제구된 투심이 들어왔다.

오히려 주자가 뛸 수 없는 이 상황이 긴장이 덜 되는 걸까.

아무튼 이 상황에 존에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게 기꺼웠다.

‘슬라이더만 제대로 제구가 되면 좋을 텐데.’

계속해서 주자를 내보내는 건 결국 우타자를 유인해 낼 슬라이더가 엉뚱한 곳에 들어가서였다.

그걸 김호기도 아는지 슬라이더 사인을 내자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투심으로만 주호성을 상대하기엔 상황이 너무 험난했다.

결국 던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지 김호기가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볼!”

‘이걸 안쳐?’

오늘 던졌던 공 중에 가장 좋은 코스로, 완벽한 궤적을 그리면서 들어왔는데 참아내다니.

스윙을 못 이끌어낸 건 아쉬웠지만, 일단 이 궤적을 타자한테 심어줬다는 게 중요하다.

다시 한번 슬라이더.

김호기가 자신감이 생겼는지 이번엔 투구 템포를 빠르게 이어갔다.

“스트라이크!”

그 결과 스트라이크.

제구가 안 됐는지 빠지는 슬라이더에 방망이가 끌려 나왔다.

‘이건 또 치네?’

이 정도면 2구 슬라이더는 차마 손을 못 댔다는 게 맞았다.

어지간히 컨디션이 안 좋나 보다.

물론 김호기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 투수와 타자가 맞붙으면.

“스트라이크 아웃!”

제삼자가 개입할 수 있는 투수가 유리하지 않을까.

낮게 오는 체인지업을 끌어올려서 스트라이크 콜을 받아냈다.

“하....”

허망한 듯 날 바라보는 주호성과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결국 방망이를 챙기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때마침 들어오던 오준혁이 그걸 봤나 보다.

“뭐야, 쟤 왜 저래? 싸웠냐?”

“아뇨. 그냥 쳐다봐서요.”

“하긴, 지금 너한테 뭐라 할 사람이 누가 있냐.”

“네?”

“뭘 모르는 척이야. 저번에 피닉스 그놈들 사건 이후로 뭐 달라진 거 못 느꼈냐?”

“음, 글쎄요?”

별다른 건 없는 거 같은데.

“어후, 이 둔한 놈. 이런 놈이 야구 할 때만 멀쩡해지는 게 신기하다.”

오준혁이 내 머리를 몇 번 치고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래서 그게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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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위기 뒤 기회라는 말은 야구를 관통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허허, 맞습니다. 만루 위기를 극복하고 곧바로 마린스가 기회를 잡습니다.]

이번 경기, 김수호의 세 번째 타석은 6회에 찾아왔다.

박은성이 세 타석 연속 출루에 성공하면서 만든 기회, 2사 주자 1, 3루.

아직 마운드는 선발 투수 신영진이 지키고 있었다.

[자, 타석엔 김수호! 오늘 볼넷 하나가 있습니다!]

김수호가 상대하면서 느낀 건 신영진은 그다지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아니라는 거다.

140km 중반에 형성되는 포심과 느린 커브, 그리고 슬라이더를 던지는 좌완투수.

근데 오늘 마린스 타자들은 뭐에 쓰인 듯 전부 타이밍을 못 맞추고 있다.

김수호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스트라이크!”

[몸쪽에 아주 좋은 공이 들어갔습니다. 스트라이크!]

[오우, 김수호 선수를 상대로 저런 공을 던질 수 있나요? 배짱이 대단하네요.]

초구 몸쪽에 바짝 붙어 들어온 포심.

방금 공은 대처하려고 했어도 쉽지 않은 타구였다.

하지만 2구 코스는 몸쪽이라기보단 가운데에 더 가까웠다.

-따악!

날카로운 타구가 투수 바로 옆을 지나 2루 베이스 위를 통과했다.

[박은성 여유롭게 홈으로, 1루 주자 3루까지! 드디어 균형이 깨집니다! 김수호의 1타점 적시타!]

“와아아아!”

팽팽했던 균형이 깨지고, 드디어 앞서가는 점수가 나왔다.

[호올스, 아직 위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 타자, 강주호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타석을 가득 채운 존재감을 내뿜으며 강주호가 천천히 들어왔다.

호올스 벤치에서 투수코치가 나와서 마운드로 향했지만, 투수 교체는 없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어린 투수에게 경험을 쌓게 해주겠다는 판단.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잔혹하리만큼 거리가 있다.

초구, 높게 들어간 실투.

-따아아악!

“강주호! 강주호! 강주호!”

[우측!!! 넘어갑니다! 강주호! 아직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는 쓰리런 홈런이 터집니다!]

[너무 급하게 승부했어요. 저런 공은 강주호 선수한테 홈런 치라고 주는 거죠.]

잠실의 우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으로 쐐기점.

그 이후 올라온 호올스 투수 중 신영진보다 나은 투수는 한 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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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7 : 4 서울 호올스]

[구단 최다 연승 타이! 11연승 마린스, 5할 승률까지 단 1승 남다!]

[김수호, 이호민, 김동준 VS 주호성, 신영진. 양 팀 젊은 선수들의 활약, 한국 야구의 미래는 밝다!]

[역사에 남을 수도 있는 경기, 12연승과 5할 승률을 노리는 마린스, 피닉스와 홈 경기 선발 투수 허하준 예고.]

[스타즈, 마린스, 챌린저스 전부 승리하며 순위 그대로 유지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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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경기를 치르고 곧바로 홈으로 돌아왔다.

일정이 힘들긴 했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아니, 버텨야 했다.

그리고 막상 부산에 돌아오자 활기가 돌았다.

서울보다 따뜻했고, 무엇보다 추위마저 잊게 만드는 응원에 두근거렸다.

토요일 2시, 기록이 걸린 경기, 그리고 선발 투수 허하준.

이 세 가지의 조합은 대단했다.

매진은 물론, 어떻게든 표를 구하기 위해 서성이는 팬들까지.

듣기로는 암표를 막기 위해 경찰 단속까지 한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역시나 오늘 그 무대의 정중앙에 설 투수는 평온했다.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 페이스대로 던질 수 있는 선수가 바로 허하준이니까.

오늘도 허하준의 팔목에 실로 된 팔찌가 보였다.

“오늘도 찼네요?”

“아, 이거? 이거 원래 빼는 거 아니야.”

“그럼 끊어질 때까지 차요?”

“어. 끊어지라고 차는 건데?”

“그런 게 있어요?”

“소원 팔찌 모르냐? 저거 끊어지면 찬 사람 소원 들어준다고 해서 차고 다니는 거.”

갑자기 강주호가 난입해서 설명해줬지만, 난생 처음 들어봤다.

고개를 저으니 강주호 역시 고개를 저었다.

“이런 데서 세대 차이가 느껴지네.”

아무튼 소원이라.

“소원이 뭔데요? 우승?”

“어. 당연하지.”

“그럼 빨리 끊어지길 기도해야겠네요?”

“근데 오래가는 건 몇 년도 간다더라.”

“부산 뒤져보면 40년 동안 소원 팔찌를 찬 마린스 팬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에이, 설마.”

웃자고 한 소리였지만, 막상 말하고 나니 섬뜩했다.

옆 동네 프렌즈도 우승 당시 담갔던 술이 지금까지 개봉 못한 걸로 알고 있는데.

“너랑 내가 잘하면 돼. 걱정하지 마.”

섬뜩한 도시 괴담 말고 주제를 바꿨다.

“상대가 피닉슨데 괜찮아요?”

“뭐 어때. 오히려 좋지.”

하긴, 사건을 일으켰던 당사자들은 이미 야구판에서 쫓겨나거나 출장정지가 됐으니 별문제 없다.

허하준이 출장정지를 안 받은 것도 아니고.

거기에 징계를 받은 네 명 중 세 명은 주전이라 피닉스의 전력이 급속도로 약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피닉스는 신인 선수들을 대거 올려서 이것저것 실험하기 시작했다.

벌어놓은 게 있으니 어차피 꼴등은 안 할 것 같고, 포스트시즌은 어려우니 차라리 유망주를 키우겠다는 건데.

그 결과는 최근 4연패.

우리야 좋았다.

고춧가루 대신 고소한 미숫가루를 준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오늘 피닉스의 선발 투수는 김태민.

김동준의 동기이자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에이스였던 선수.

불펜으로 갔다가 결국 다시 선발 로테이션에 복귀했다.

올해 전역 후 1군에 온 선수지만 나름 우리 팬들에게 인지도가 꽤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부산을 대표하는 고등학교 야구부 에이스였으니까.

김태민도 언젠가 사직 구장을 가득 채운 팬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들으며 공을 던지는 장면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물론 오늘은 그럴 일이 없었다.

“마!”

“마!”

“마!”

최근 기세가 좋은 박은성이 출루에 성공하자 김태민이 견제를 했다.

그러자 특유의 견제 응원이 들렸는데, 오늘은 평소와 소리 자체가 달랐다.

보통 견제할 때 이런 응원이 나오면 반대쪽 응원석에서 대응이라도 하는데 오늘 2만 명이 넘는 팬들이 전부 마린스 팬이다.

사면초가, 아니 사면꼴가의 상황.

그래도 김태민은 자신의 공을 꿋꿋하게 던졌고 최치호와 오준혁을 순차적으로 잡아내면서 2아웃.

그리고-

“부산의 4번 타자! 김수호!”

“와아아아아!”

“4번 타자! 김수호! 홈런! 김수호!”

응원 단장의 선창과 함께 구장을 가득 채울듯한 함성이 들려왔다.

김태민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이 장면을 꿈꾸곤 했다.

구장을 찾은 사람들이 온전히 내 이름을 부르는 상상.

그리고 그 상상의 결과는.

-따아악!

항상 해피엔딩뿐이었다.

“와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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