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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90화 (90/203)

90화 변화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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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왜?”

“맛있냐? 남기면 죽는다.”

“당연하지. 내가 언제 아버지가 주신 고기 남기는 거 봤냐?”

이호민은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 가뜩이나 아픈 머리가 두 배로 아픈 기분이었다.

허하준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곤 웃으면서 고기를 먹었다.

“어이구, 이것도 드세요.”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추가되는 고기에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정도로 먹고 나자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안하다 호민아. 갑자기 찾아와서 놀랐지?”

“아뇨. 괜찮습니다! 선배님이 오셔서 영광이죠. 그, 잘 지내셨어요?”

“나야 수호가 만들어준 휴가 덕에 푹 쉬다 왔지.”

“나는?”

“넌 꺼져. 맨날 보는데 뭔.”

김수호를 무시하고 이호민이 쭈뼛쭈뼛 얘기를 꺼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잘 던졌어야 했는데···.”

“괜찮아. 그리고 잘 던졌어.”

학교 직속 선배이자 가장 닮고 싶은 선수인 허하준의 말에 이호민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쵸. 잘 던졌죠.”

김수호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본인이 만족을 못 하더라고요.”

“...아닌데?”

“아니긴, 투코님이 그때 공 건네받고 공 교체한 거 모르냐? 얼마나 쌔게 잡았으면 네 지문까지 남았더라.”

과장이겠지만, 당시 기억이 난 이호민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하필 혼자 울적한 이 타이밍에 오다니, 포수 자리에 앉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진짜 귀신 같다.

“그 얘긴 됐고, 왜 온 건데.”

“왜겠냐. 과외 선생님이 AS해주신다고 해서 데려왔지.”

그 말에 허하준이 웃었다.

“과외 선생님? 내가? 아님 네가?”

“음, 글쎄요? 둘 다?”

이제 시간도 별로 없고, 컨디션 관리도 해야 하니 빠르게 본론으로 가기로 했다.

“호민아. 넌 네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제 문제요?”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투피치인게 가장 큰 문제 아닐까요? 체인지업은 그냥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래? 정말 그거라고 생각해?”

“네.”

“흠. 글쎄. 내 생각엔 지금 너한테 쓸만한 구종이 추가돼도 똑같을 거 같은데?”

“네?”

허하준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이호민이 당황해했다.

“수호한테 들어보니까 나처럼 되는 게 목표라며?”

그 말에 이호민이 김수호를 노려봤다.

‘그새 말했냐?’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하준의 말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런 욕심을 버려. 너는 내가 될 수 없어.”

‘어···. 이건 좀 센데?’

이 모임을 만든 김수호마저 당황하게 만드는 말.

하지만 허하준은 투구를 할 때처럼 거침없었다.

“넌 왜 나처럼 되고 싶은데? 150km를 던져서? 아니면 같은 우완이라? 그것도 아니면 같은 학교 출신이라서?”

“저는···.”

“이 세상에 똑같은 투수는 아무도 없어. 나는 나, 너는 너. 나 따라 할 시간에 네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아. 네 강점.”

‘...괜찮은 건가?’

설마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이호민이 말을 잊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제 강점이 뭘까요.”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허하준이 원래 이렇게 무책임한 사람이었나?

하지만 허하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신 그걸 같이 알아볼 좋은 파트너가 있잖아?”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다.

사실 대화라기엔 뭐한 게, 일방적으로 이호민이 얻어맞기만 했으니까.

충격받은 이호민을 방까지 배웅하고 헤어졌다.

“내일 잘 해봐.”

“애를 저렇게 만들어놓고 잘 해보라고요?”

“좀 심했나?”

우상이란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 멘탈이 나갈 법도 했다.

“호민인 좋은 투수야. 너도 좋은 포수고.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헤어졌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저런 건지, 도통 감이 안 잡히지만 덕분에 내 생각거리도 늘었다.

이호민의 강점이라,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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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허하준이 돌아온다.

그 전에 오늘, 그 공백을 메워야 했는데 지난 이틀 동안 필승조가 전부 연투를 하는 바람에 남은 투수들로만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 선봉에 선 선수는 이호민.

4일 휴식을 한 만큼 오늘 최대 4이닝 정도 던지고 교체 예정이었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표정이 계속 이상하던데, 어제 허하준의 워딩이 좀 셌나?

하필 이런 날 상대도 강팀이었다.

이번 상대는 광주 울프즈.

상대 전적이 6승 8패로 이번 2연전을 마치면 이번 시즌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다.

만에 하나 4위 챌린저스를 끌어내리고 나란히 4, 5위를 하면 만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됐다.

상대 전적에선 뒤지지만, 직전 시리즈에서 스윕을 했던 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문제는 이호민이다.

불펜으로 올라와서 1과 1/3이닝 4실점 하고 내려갔던 기억을 잊었어야 할 텐데.

그런 울프즈 타선의 가장 특이한 점이라면 외국인 타자가 1번을 친다는 거였다.

지난 시즌, 20홈런 20도루에 성공하면서 20-20 클럽에 가입한 조지 애서튼이 타석에 들어왔다.

빠른 발과 한 방이 있는 선수라 저번 경기에서도 꽤 애를 먹었다.

만약 이 선수를 출루시키면 4번 김규완까지 연결된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는데.

“볼!” “볼!” “볼!” “볼!”

까다로운 주자를, 그것도 최악의 방법으로 1루에 내보냈다.

심지어 다음 타자에까지 볼넷.

“이럴 거면 미리미리 말 좀 해줘라. 다음부턴 배트 안 들고 오게.”

2번 타자가 얄밉게 말을 하고 1루에 나갔다.

이대로 두면 상대 타자들이 진짜 방망이도 안 들고 올 것 같아 서둘러 마운드로 올라갔다.

“괜찮냐?”

일단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수호야.”

“어. 말해.”

“어제 고기 맛있었냐?”

“갑자기?”

“그냥, 잘 먹었나 해서.”

“아버지가 주시는 건데 당연히 맛있지.”

“그래?”

이호민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럼 오늘 고생 좀 해도 되겠네?”

“...뭔 고생?”

불안하게 왜 그래?

“내가 어제 생각해봤거든? 근데 생각나는 게 하나밖에 없더라고.”

“뭐?”

“그냥 슬라이더만 존나 던지는 거. 어때?”

“와, 소름. 진짜 미쳤네.”

“그래? 좀 그런가···.”

이호민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근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나도 똑같은 생각 했는데.”

“어?”

“네 맘 가는 대로 던져봐. 형이 다 받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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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km를 던진다는 건 그 자체로 재능이고 축복이다.

150km가 넘는 속구는 그 자체로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다른 변화구의 가치를 한층 높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호민 역시 고등학교 때부터 150km를 넘는 포심을 던지면서 유명했다.

이호민에게 축복이었던 건 당시 고등학교 감독이 이호민에게 변화구의 그립만 알려주고 실전에서 던지는 걸 금지 시킨 거였다.

그런데도 이호민은 마린스에 1차 지명됐고, 그제야 배웠던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미숙한지 컨트롤에 어려움을 겪었고, 휴식기 때 감독님과 훈련을 하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아직 부족했다.

그 때문에 이호민과 볼 배합을 할 땐 주로 포심 위주로 짜왔다.

대략 포심과 슬라이더, 체인지업의 비율이 7 : 2.5 : 0.5 정도.

하지만 오늘은 그 비율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바뀐 볼 배합은 3번 타자 박기정부터 시작.

초구부터 곧바로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

이호민이 2루 주자를 한 번 쳐다보고 공을 던졌다.

“스트라이크!”

우타자 바깥쪽으로 빠진 공.

하지만 박기정이 시원하게 돌리면서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두 번째 공은 절묘하게 바깥쪽에 걸치면서 스트라이크.

“볼!” “스트라이크 아웃!”

3구는 완전히 바깥쪽으로 빠지면서 볼이 됐지만, 4구엔 다시금 헛스윙을 유도해냈다.

4개의 공 전부 슬라이더였다.

“공 한번 살벌한데?”

김규완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저도 무서워요.”

바깥쪽으로 얼마나 빠질지 모른다.

그래서 좌타자 상대론 기존 볼 배합을 위주로 하기로 했다.

혹시라도 몸에 맞으면 큰일이니까.

문제가 되는 건 볼이 뒤로 빠져서 주자가 이동하는 건데.

“볼!”

그건 내가 잡으면 되니까.

하지만 김규완에게 던진 초구는 아예 바운드가 튀면서 결국 주자들의 진루를 허용했다.

여기까진 생각했던 정도라 괜찮다.

홈에만 못 들어오게 막으면 된다.

이호민에게 괜찮다는 사인을 주고 공을 던져줬다.

“힘들어 보인다?”

“괜찮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리고 이어서 다시 슬라이더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포심은 안 던지게?”

“던져야죠.”

하지만 다시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그리고 다음 공은, 역시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아웃!”

김규완이 허탈한 눈으로 내게 물었다.

“방금 뭐냐?”

전광판에 찍힌 숫자, 144km.

거기에 완벽하게 바깥쪽 아래를 찌르는 공.

“저도 몰라요.”

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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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민 김규완 루킹 삼진 공 ㄷㄷ]

(GIF)

지금 슬라만 존나 던지는 데 마지막 공 진짜 개 돌았는데? 저거 한국에서 칠 수 있는 타자 있냐?

ㄴ 김수호가 코 파면서 칠 듯?

ㄴ 강주호가 대창 먹으면서 칠 듯?

ㄴ 황인재가 치킨 먹으면서 칠 듯?

ㄴ 오 드립 좀 치는데?

ㄴ ㅅㅂ 노잼 헛소리하지 말고, 저 공 진짜 지리긴 한다. 고점 제대로 보여주는 공 아니냐?

ㄴ 어쩌다 한 번 던진거짘ㅋㅋㅋㅋ 김수호 ㅈ고생하는 거 보면 모르냐? 걍 전형적인 빠르기만 하고 제구레기임.

ㄴ 와 ㄷㄷ 또 삼진 잡았는데? 무사 1, 2루에서 3k. 개 멋있다.

ㄴ 저거의 반만 제구 잡으면 걍 고점 지릴 듯?

ㄴ 울프즈 타자들이 ㅂㅅ이지. 걍 안치면 볼인데?

ㄴ 저 정도 공이면 볼인 거 알아도 방망이 나감. 오늘 꺾이는 각이 돌았는데?

ㄴ 근데 슬라만 던지면 팔꿈치 나가는 거 아님? ㄱㅊ냐?

ㄴ 그러게. 좀 걱정되네?

이런 걱정은 팬들만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슬라이더가 몇 개지?”

“23구째입니다.”

이정훈 감독이 투수코치와 심각하게 얘기했다.

“딱 절반이네?”

“처음에 볼넷 두 개 줬던 포심을 빼면 슬라이더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성적은 좋았지만, 걱정이 앞섰다.

이호민은 마린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투수다.

그 때문에 부진한 성적에도 꾸준히 선발 기회를 줬다.

거기에 오늘 슬라이더.

이호민의 슬라이더가 괜찮은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과감하게 슬라이더 위주로 볼 배합을 짠 건 처음이었다.

특히 김규완을 꼼짝 못 하게 만든 공은 군침이 절로 날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직 신체적으로 완벽하지 못한데 슬라이더 위주의 볼 배합은 부상 위험이 너무 커.’

거기에 만약 포수가 김수호가 아닌 다른 선수였다면 주자가 나가는 족족 홈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만큼 날카롭지만, 팀까지 찌를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바로 오늘 이호민의 투구였다.

생각을 정리한 이정훈 감독이 투수코치에게 말했다.

“정 코치. 이번 이닝 끝나면 수호 불러서···.”

그때, 순간적으로 공을 던지고 환한 미소를 띈 이호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볼 배합 바꾸라고 할까요?”

투수코치 역시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되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이정훈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늘은 이대로 가지.”

“예?”

“한 경기 정돈 괜찮아.”

오늘의 경험이 이호민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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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나고 이호민이 허탈한 표정을 한 채로 앉아있었다.

“수호야.”

“어.”

“나 오늘 못 던졌냐?”

“아니? 존나 잘 던졌지.”

“그치?”

4이닝 8k 무실점.

이호민의 호투를 바탕으로 경기에서 이겼으니 승리를 못 딴 게 아쉬울 뿐, 내용적으로 1회를 제외하면 흠잡을 곳 없는 투구였다.

“근데 왜 2군이냐?”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은 이호민에게 2군으로 가라고 말했다.

짐작 가는 바가 없진 않았다.

“너 많이 던지긴 했어.”

1, 2군 통합으로 벌써 80이닝을 넘겼다.

“너는? 너도 지금 경기 거의 다 나왔잖아.”

“나 안 나오면 마린스 망해.”

“...시발. 맞는 말이라 뭐라 말을 못 하겠네.”

“그래도 2군 내려가는 건 아니잖아.”

엔트리는 2군이지만 1군에 동행한다.

일종의 장기간 휴식을 주는 셈이었다.

사실 오늘 볼 배합도 슬라이더만 주구장창 던져서 좀 그랬고.

이호민을 위한 좋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고생했다. 오늘 멋졌어.”

“후. 그래. 고맙다.”

이호민의 야구는 아주 잠깐 멈췄다.

딱 10일 정도.

그리고 내일, 잠시 멈췄던 한 사람의 야구가 다시 시작된다.

“오랜만이네?”

돌아온 에이스를 환영하는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다시 야구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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