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변화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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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가 강주호의 부탁을 받은 건 올림픽 본선이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정확히 양준의 부상 소식과 함께 강주호에게 연락이 왔다.
당시 미국에서 일하며 고민하던 최현우는 일본과의 경기를 보자마자 곧바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아름다웠다고 할까, 아니면 완벽하다고 할까.
김수호의 스윙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
이후 한국에 들어온 뒤 김수호의 스윙 궤적을 분석하거나 나카무라의 공을 쳤던 타격폼을 기반으로 여러 이론을 세웠다.
그의 생각에 김수호를 설득하려면 이 정도의 자료는 있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곧 그 이론들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김수호 스스로가 완벽한 답안지를 보여줬는데, 굳이 오답을 들고 있을 순 없었다.
그때부터 그의 목표는 이 완벽한 타격폼을 약간, 아주 약간 보완하는 데 힘썼다.
그리고 프로토타입이 완성되자 곧장 강주호에게 연락했다.
때마침 강주호도 피닉스 사건 이후 그의 연락을 기다리던 상태라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수호에게 프로토타입을 보여준 후 곧바로 김수호가 따라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김수호가 최현우를 부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때요?”
화면으로 보던 장면이 실제로 다가오자 가슴이 뛰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한마디뿐.
“완벽합니다.”
김수호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천재였다.
‘한 달이면 될 거 같은데···.’
욕심 같아선 그를 붙잡고 한 달 동안 타격폼에만 매달리고 싶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리그 끝나고 연락 드릴게요.”
“그래요.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김수호 선수.”
자신이 도움을 받았는데 왜 고맙다고 하는 걸까.
잠깐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그러려니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고생했다. 쉬는 날, 힘들지?”
“괜찮아요. 저도 생각만 하던 걸 실제로 해보니까 좋던데요?”
강주호의 조언을 듣고 공을 쳤을 땐 하나하나 의식을 하면서 타격에 임했다.
하지만 매 타석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래서 언젠간 전문적인 조언을 받고 싶었다.
거기에 강주호가 소개해준 사람이니 믿음도 갔고.
“그래도 현우 말대로 바로 하는 건 무리니까 너무 의식하지 마.”
“당연하죠.”
타격폼을 너무 의식했다간 오히려 타격감이 엉망이 되는 수가 있었다.
대대적인 수정은 비시즌에 증량과 더불어 진행하기로 했다.
포수라는 포지션 상 필요 이상의 증량은 무리였지만, 어느 정도의 증량은 김수호로서도 동감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그의 결정에 가장 좋아한 건 강주호였고.
“오늘 감사했습니다.”
“고생했다. 푹 쉬어라.”
“넵.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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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의 야구는 보통 6시 30분에 시작한다.
평범한 직장인이 평일 경기를 보려고 하면 보통 경기가 어느 정도 지난 시점에 경기장에 들어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건 마린스의 팬이자 김수호의 팬인 박민수도 마찬가지.
하지만 오늘은 무려 반차까지 쓰고 경기장에 왔다.
아직 경기가 시작하려면 한참 남은 시간.
평소에 이럴 때면 사인을 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서성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한 손엔 글러브를 들고서 빠르게 구장 내부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주변엔 그처럼 글러브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몇 개월 전, 대전 구장에서도 있었다.
바로 홈런볼을 잡기 위한 사람들.
당시 황인재의 최소 경기 20홈런 공을 잡기 위해 대전 구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어째, 오늘의 사직은 그때보다 더 심해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오늘 홈런을 치면 기존 황인재의 기록을 10경기 넘게 줄이는 거였다.
심지어 첫 타석에 홈런을 친다면?
역대 최단 경기 20홈런과 4연타석 홈런의 기록을 동시에 가진 역대급 홈런볼이 생기는 거였다.
그래서 내야는 매진이 안 됐지만, 반대로 외야는 이미 매진이 되어버린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나마 박민수가 반차까지 써서 일찍 도착했으니 망정이지 조금만 더 늦었으면 들어가기도 벅찰 뻔했다.
나름대로 골수 야구팬인 박민수가 본인이 분석한 정보를 토대로 오늘 홈런이 어느 방향에서 나올지 예측을 했다.
‘프렌즈 사무엘 우즈가 저번에 몸쪽 승부하다 홈런 맞았지? 그럼 이번에 바깥쪽 승부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고른 자리는 우측 외야 중간.
사실 김수호의 홈런 스펙트럼이 워낙 넓어서 좌·우 펜스 중 한 곳을 고르는 건 큰 의미는 없었다.
애초에 홈런을 칠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로또 1등 명당을 찾는 것처럼 각자의 이유대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홈런은 하나, 노리는 사람은 수천 명.
누군가는 일확천금을 위해, 누군가는 팬심을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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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라면 허하준의 등판일이었지만, 허하준은 출장정지로 인해 오늘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다.
그에 따라 그 자리를 누군가 채워야 했고, 자연히 기존 5선발이었던 이호민이 그 당사자가 됐다.
이번 주, 우리는 프렌즈와 4연전으로 남은 일정을 시작한다.
예전 홈 3경기가 우천으로 연달아 취소됐고, 거기에 남아있던 한 경기를 붙여서 총 4경기를 치르는 거였다.
우리가 스타즈와 3경기 차이 나는 것처럼 프렌즈 역시 돌핀스와 3경기 차이.
서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경기였다.
특히 첫 경기인 오늘 경기, 객관적으로 이기기 힘든 전력이었지만,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선발 투수의 컨디션.
“내가 허하준 선배님의 대타라니....”
이호민이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오늘은 특히 더 심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원래 기존 로테이션대로라면 원래 오늘이 이호민의 등판일이었다.
하지만 허하준의 대타라고 하니 다가오는 느낌이 다른가 보다.
그리고 원래 허하준의 등판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꽤 많이 왔다.
심지어 오늘 경기는 저번에 이호민이 2이닝 5실점이라는 최악의 결과가 있었던 서울 프렌즈.
거기에 상대 선발은 프렌즈의 1선발 사무엘 우즈였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1선발 데뷔전, 어때? 팬들도 많이 왔네.”
“...장난 칠 기분 아냐.”
“버거워?”
“어. 존나.”
“그래? 그럼 오늘은 목표를 간단하게 잡자.”
“어떻게?”
“2이닝 4실점, 아니면 3이닝 5실점.”
“진심?”
“어. 그 정도만 해도 저번보단 낫잖아?”
“그렇긴 한데···.”
“그건 또 아쉽지?”
막상 앓는 소리를 해도 욕심이 없는 건 아닌가 보다.
“어제보다 나은 내일이면 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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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민한테 4~5실점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상대 선발을 보면 3실점 이상 하는 순간 이기는 건 힘들었다.
그나마 1번 타자 김혁은 잡아냈지만, 이제부터 고비 시작이다.
2번 타자 서도하의 첫 타석.
“어째 우리 만날 때마다 몸에 무슨 일이 생기냐?”
“그러게요? 거기 선수 중에 누가 저한테 저주거는 거 아니에요?”
“하긴. 산체스가 널 별로 안 좋아하긴 해.”
설마 올림픽 때 그 타구 하나 잡았다고 그러나?
생긴 건 무슨 서부 영화에 무법자처럼 생겨서 쪼잔하네.
“선배님. 제가 몸이 다 안 나아서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 한 번 도와주시죠?”
“징그러 임마. 조용히 해.”
까였다.
아무튼 프렌즈를 상대할 땐 이 서도하를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진다.
일단 간을 보기 위해 바깥쪽으로 사인을 보냈다.
“볼!”
김혁을 상대할 때 상당히 들쭉날쭉한 제구력을 선보이더니 이번 공은 볼이 되긴 했지만, 상당히 좋았다.
‘같은 코스로 하나 더.’
“볼!”
비슷하게 들어오면 안쪽으로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바깥쪽으로 더 빠져서 들어왔다.
“안 치실 거에요?”
“그 공은 치면 연봉 삭감인데?”
차마 부정하진 못했다.
여유가 흘러내리는 모습이 괜히 심술 났지만, 쫓기는 건 우리니까.
이런 상황일수록 최악은 볼넷.
안타를 맞더라도 카운트를 잡는 게 중요하다.
서도하는 주자가 없고 카운트가 유리한 상황에서 어지간하면 방망이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어쩐지 이번 카운트에 방망이가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딱!
타구가 그대로 최치호한테 날아갔다.
“아웃!”
깔끔한 아웃.
서도하가 아쉬운지 고개를 뒤로 젖히는 게 보였다.
설마 싶어서 슬라이더를 요구한 게 주효했다.
이걸로 2아웃.
그리고 3번 타자도 뜬공으로 잡아내면서 삼자범퇴로 이닝을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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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기가 열리는 사직 구장은 마린스의 홈이니 당연히 마린스 팬들이 많았다.
프렌즈 역시 전국구 구단으로 명성이 자자하지만, 마린스의 홈에서 프렌즈 팬들이 존재감을 내비치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감수하더라도 1회, 김수호가 타석에 섰을 때 느껴지는 열기는 평소보다 뜨거웠다.
‘망할 피닉스 놈들.’
프렌즈의 안방마님, 박희준이 초가을답지 않은 열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왕 3연타석 홈런을 맞았으면 시원하게 20홈런까지 맞던가.
왜 부담스럽게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괜히 원망스러웠다.
한국에서 야구가 시작한 지 벌써 50년이 된 만큼 많은 기록이 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기록이란 그 상대 역시 평생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특히 최소, 최다, 연속 같은 접두사가 붙는다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이번 타석, 홈런을 맞으면 야구가 이 땅에서 사라지기 전에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이 될 게 확실했다.
‘최소 경기 20홈런이 4연타석 홈런이라고?’
아마 김수호보다 빨리 홈런을 친 타자가 나와도 이 기록은 그 특이성 때문에 오래도록 먹고, 뜯고, 즐길 게 분명했다.
아마 김수호가 100홈런, 200홈런 등을 칠 때마다 tv에서 그 장면을 중계할 게 분명했다.
그걸 막기 위해서 볼넷까지도 생각했지만.
애초에 우즈도 그걸 원하지 않았고, 만약 볼넷이 나오면 몸 성히 이 경기장을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볼!”
고작 볼 하나 던졌을 뿐인데 벌써 귀가 간지럽다.
여기가 잠실이었다면 그나마 나았을까?
하지만 승부를 원하는 건 마린스 팬들뿐만이 아니었다.
경기를 보고 있는 프렌즈 팬들 역시 피하지 않고 승부하길 바랬다.
만약 김수호가 볼넷으로 나간다면 마린스 팬들이
ㄴ ㅋㅋㅋㅋ 쫄았네.
ㄴ 아오, 기록 주기 싫어서 볼넷 준거 봐 ㅉㅉ 졸렬하다.
라면서 놀리는 것에 대해 반박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홈런이 매번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들의 1선발 우즈를 믿었다.
2아웃 주자 1루, 볼 카운트 1-0.
하나 더 빼자는 사인에 사무엘 우즈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스윙이 나오지 않으면 카운트에 몰린다는 게 부담으로 느껴진 것 같다.
‘그래. 붙자, 붙어!’
하지만 저번에 홈런을 허용했던 몸쪽 코스는 차마 선택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바로 바깥쪽 빠른 공.
‘이걸로 카운트 잡고 이어가자.’
손에서 떠난 공은 적당히 제구가 잘됐고, 박희준이 원하던 코스와 불과 공 반 개정도 안쪽으로 들어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반 개의 대가는 참혹했다.
-따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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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 갑니다! 가요!]
[우측 담장!]
공이 방망이에 맞고 날아오른 순간, 외야 우측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이 기상했다.
‘제발 여기로!’
‘시발, 무조건 잡는다!’
그리고 공이 떨어졌을 때, 캐스터가 크게 외쳤다.
[잡았습니다! 김수호 선수의 유니폼을 입은 팬이 4연타석 홈런과 최소 경기 20홈런의 공의 주인이 됩니다!]
“하...하하! 잡았다! 잡았어!”
홈런볼의 주인은 박민수.
그리고 곧 구단에서 보낸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잠시 저희랑 같이 가주실 수 있으실까요? 여긴 조금 위험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일차적으로 사고 방지를 위함이었고, 혹시 김수호에게 양보할 수 있냐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간 곳에는 마린스 단장, 오민찬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