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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83화 (83/203)

83화 배터리의 가치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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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받아···!”

딱 – 딱 – 딱

불이 꺼진 방.

방에 있는 한 사람이 불안한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계속 같은 번호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시발!”

화를 내며 핸드폰을 던지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핸드폰을 내렸다.

잠시 후, 핸드폰 화면이 밝게 빛나면서 그 사람의 얼굴이 드러났다.

멍이 든 얼굴.

바로 허하준에게 맞았던 황의중이었다.

황의중이 급하게 핸드폰에 뜬 번호를 쳐다봤다.

하지만 저장되지 않은 번호인 듯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다.

황의중이 고민 끝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선배님. 황인재입니다.

순간 전화기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란 황의중이 할 말을 잃었다.

황인재와 자신은 연결점이 없다 못해 길거리에 지나가다 만나도 인사도 안 할 사인데 왜 전화를 한 거지?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런데, 방으로 찾아가도 됩니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기약 없이 오지도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것보단, 누구라도 만나는 게 도움이 될 터.

“어.”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벨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황인재가 서 있었다.

“무, 뭐야?”

“들어가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탓일까.

아무런 저항도 못 하고 황인재를 안으로 들였다.

-탁

불이 켜지자 엉망이 된 황의중의 얼굴이 드러났다.

하지만 황인재는 별생각이 없는 듯 의자에 가서 앉았다.

“무슨 일인데···.”

“아, 별건 아니고 한 가지 부탁 겸 제안하러 왔습니다.”

“부탁? 제안?”

황인재가 자신에게 할 만한 것들이 있던가?

의문도 잠시.

“잠깐 저랑 어디 좀 다녀오실까요?”

이후 이어지는 말에 황의중은 표정이 굳었지만,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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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어요?”

“너, 8회 말 끝나자마자 스카우팅 리포트 봤지?”

“그건 또 언제 봤대요.”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있겠냐? 너 가고 나서 나도 봤어. 그놈, 일부러 그랬지?”

“제가 알기론 그래요.”

“몇 대 더 패야 했는데.”

허하준이 이런 격한 말을 쓰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선배가 나설 일은 아니었는데.”

“그래서, 정말 걔 독단으로 한 거야?”

“아뇨. 최영준, 그 사람이 뒷배래요.”

내 말을 듣고도 딱히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그래? 내일 만나자마자 몇 대패면 되나?”

“내일 경기장에 나올 순 있고요?”

시작은 피닉스였지만, 허하준이 징계를 피하긴 어려웠다.

한국 프로 야구에선 유례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만약 고의성이 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상황은 꽤 답답해질 거다.

하지만 내가 괜히 방망이에 맞은 게 아니었다.

-지이이잉.

“왔나 보네요.”

“어?”

핸드폰을 확인하고 방문을 열자 황인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얼굴에 멍이 든 황의중도 같이.

“이제 뒤에서 웃고 있을 그놈 잡아볼까요?”

황인재는 들어왔지만, 황의중은 방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아니, 그....”

“선배님. 저한테 하실 말씀 있어서 오신 거 아니에요?”

황의중이 허하준을 보고 머뭇거렸지만, 김수호의 말에 결국 다리를 움직였다.

문이 닫히고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가장 입을 먼저 연 건 황의중이었다.

“진짜 미안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자리에 앉아서 안절부절못하더니 일어나서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저는 괜찮아요. 다친 것도 아니고, 야구라는 격한 스포츠를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얼굴에 생긴 멍도 그렇고요.”

“아···. 어. 그렇지.”

“그런데요. 혼자 뒤집어쓸 생각 하면 좀 그렇지 않나요?”

“어?”

“선배님 혼자 생각한 게 아니잖아요. 솔직히 선배님이랑 저랑 무슨 연관이 있다고.”

“그, 그렇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속 시원하게 한 번 얘기 해볼까요?”

황의중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지, 지금?”

“아뇨. 잠시만요.”

김수호가 전화를 걸자 잠시 후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마린스 단장, 오민찬이었다.

“단장님. 또 밤늦게 죄송해요.”

“어후, 내가 김수호 선수는 언제든지 불러도 괜찮다고 했죠? 그리고 어차피 그거 보고 바로 출발했어요. 그래서 이쪽이 우리 피해자신가?”

“아, 아닙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오민찬이 생각과 다른 반응에 김수호를 쳐다봤지만, 김수호는 어깨만 살짝 올릴 뿐이었다.

이후 황의중의 얘기를 들은 오민찬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 사실대로라면 일은 쉽겠네요. 제가 할 게 별로 없는데요? 황의중 선수, 잠깐 저랑 둘이 얘기 좀 할까요?”

“예, 알겠습니다.”

황의중이 비틀거리면서 오민찬과 같이 밖으로 나갔다.

“이런 건 언제 다 준비했대?”

“당하기만 하고 살 생각은 없어요.”

그러면서 황인재를 쳐다봤다.

“뭘 봐.”

“아니, 그냥.”

누굴 보면서 배워서 말이지.

근데 저 정도로 저자세인 건 예상과 다른데.

예상가는 건 황인재뿐이었다.

뭐, 해가 되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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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루에서 김수호와 황인재가 만났을 때, 짧게 했던 대화 내용은 이랬다.

“황의중 타석 때 방망이 조심해라.”

이번엔 디테일한 조언을 한 황인재의 말을 듣고 줄곧 생각했다.

피하는 게 맞을까?

드러난 위협은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이번엔 황인재가 알려줬지만 다음은?

피닉스와의 경기는 아직 4경기 남았고, 매년 16경기씩 만나야 했다.

그때마다 신경 쓰고 그래야 할까?

위험할 수도 있지만 초장부터 아예 뿌리를 뽑기로 했다.

물론 허하준이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일 줄은 아예 몰랐다.

항상 웃는 사람이 정색하고 화내니까 무섭더라.

아무튼 경기가 끝나고 황인재와 단장님한테 각각 연락했다.

황인재한테는 황의중의 번호를 달라고 요구했는데, 직접 데려올 줄은 몰랐다.

덕분에 일이 잘 풀린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한 바탕 태풍이 지나간 이후, 어색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허하준과 황인재라니.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안 가냐?”

“갈 거다.”

황인재가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숨이 멎을 거 같아서 얼른 보내기로 했다.

“고마웠다.”

“나도.”

“뭐?”

갑자기 뭐라는 거지?

하지만 아까 조심하라는 말처럼 이번에도 설명 없이 사라졌다.

아오, 오늘 또 궁금해서 잠 못 자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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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신인드래프트.

황인재가 메이저리그 대신 한국을 선택한 이후, 피닉스는 축제 분위기였다.

강주호 이후 최고의 재능이라는 타자.

심지어 시범경기에서도 두각을 드러내더니,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타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모든 선수가 기뻐하진 않았다.

최영준을 위시한 몇몇 선수들이 주도적으로 황인재를 왕따시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인재. 오늘 형이랑 술 한잔할래?”

친한 척 어깨동무를 한 최영준의 팔을 더럽다는 듯 뿌리칠 때, 둘의 사이는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미 팀을 장악한 최영준이 다른 팀에까지 악의적인 소문을 낼 때도 묵묵하게 버텼다.

그리고 지금, 최영준을 완전히 몰락시킬 계기를 발견했다.

그래서 김수호를 도왔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김수호에게 고맙다고 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김수호에게 고마운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마린스 단장 오민찬.

“이건 또 무슨 일이래?”

벤치클리어링이 났을 땐 당연히 그래야 한다면서 마린스 선수를 응원한 오민찬이었지만, 허하준이 주먹을 날릴 땐 그도 살짝 아찔했었다.

하지만 전에 구단주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피닉스 놈들한텐 뭐 하나라도 질 생각 하지 마. 뭐든지.

차라리 얼굴에 주먹을 맞는 것보단 때린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잠시.

급하게 대전으로 출발했다.

그와 동시에 김수호에게 전화가 왔다.

“... 정말인가요?”

-예. 피닉스에 있는 황인재가 말해줬습니다.

“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갈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어서 걸려 온 전화 한 통.

-통닭집 단장

김수호의 전화를 받기 전이었다면 고민하고 받았겠지만, 이젠 아니었다.

“어. 그래.”

-어? 그래? 지금 내가 잘못 건 건가?

“아니. 정확하게 건 거 맞는데? 합의하자고 건 거 아냐?”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가해자가 목소리가 크네?

순간 움찔했지만, 김수호를 믿기로 했다.

‘만약 거짓이라도 한 번 봐준다.’

“가해자는 너네고.”

-뭔 개소리야.

“거참 단장이라는 사람이 소식이 이렇게 느려서야 쓰나.”

-뭐라는 거야 계속!

“자, 들어봐.”

피닉스 단장이 오민찬의 얘기를 듣고 대답이 없었다.

“여보세요?”

-... 그거 진짜야?

“그건 댁 선수들한테 확인해보세요.”

-... 끊는다.

꺼진 핸드폰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불쌍한 새끼.”

전에도 말했지만 마린스와 피닉스는 단순한 라이벌 관계가 아니다.

구단주들끼리 라이벌인 관계.

즉, 이 사건의 가해자가 되는 쪽이 무조건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빨리 가자.”

물론 오민찬은 김수호를 믿었지만, 자연히 대전으로 향하는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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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재가 사라진 이후, 오민찬과 황의중, 그리고 피닉스의 단장이 함께 찾아왔다.

“...김수호 선수.”

“예.”

“정말 죄송합니다. 이 문제는 저희 쪽에서 잘 해겨···.”

“어허. 무슨 소리신가.”

“...후. 그래. 원하는 게 뭔데.”

“기자회견 한 번 하자.”

“이 시간에? 미쳤어?”

“뭐 어때. 지금 오라고 해도 달려올 사람들 천지인데.”

오민찬이 핸드폰을 흔들었다.

지금도 기자들의 연락이 끊임없는 상황.

“...그래도 사실 확인은 해야지.”

물론 피닉스 단장도 황의중에게 그 사실을 듣고 최영준한테 수십 번 연락해봤지만, 도저히 받지 않았다.

애초에 싸움이 안 됐다.

평소 행실 좋기로 소문난 김수호와 허하준 배터리.

반대로 약물 소동에 여론이 최악인 최영준.

거기에 증인까지.

“내일 바로 징계 위원회 열린다잖아. 그거 전에는 끝내야지. 그래야 그분들도 두 번 일 안 하지. 안 그래?”

결국 피닉스 단장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알겠어. 불러.”

“오케이.”

그렇게 급하게 간이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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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실을 말한 황의중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황의중 선수. 방금 한 말에 단 한 마디의 거짓도 없습니까?”

기자의 질문에 황의중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만약 지금 맞다고 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대로 매장 아닌가?

하지만 또 아니라고 하면?

뭐가 달라지나?

이내 황인재가 했던 말과 최영준이 자신에게 보인 태도.

두 가지가 각각 머릿속에 떠올랐다.

결국 앞에 놓은 생수를 한 통 전부 비우고 나서 마이크를 잡았다.

“...예.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김수호 선수는 황의중 선수를 용서한 건가요?”

“황의중 선수와 허하준 선수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아아,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물어보신 세 선수 사이에는 이미 오해가 전부 풀렸습니다. 그리고 이 이 자리를 빌려 허하준 선수와 황의중 선수 모두 겸허히 징계를 받아들일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민찬 단장이 깔끔하게 정리하자, 이내 기자들의 생각은 한 명을 떠올렸다.

‘최영준!’

‘최영준을 먼저 찾는 사람이 특종이다!’

이 자리에 없는 사람.

그 사람을 찾기 위해 급하게 회사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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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이 기자회견을 확인하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선객이 와있었다.

“다, 단장님.”

“어후 냄새. 술 한번 거하게 드셨네요? 음주는 안 했나?”

“저 새끼들 하는 말 다 거짓말입니다! 저 아시지 않습니까!”

“진정하고 들어가죠. 좀 춥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냉랭한 한기가 둘을 반겼다.

“어후 추워. 평소에 난방도 안 해놓고 다녀요? 쯧, 하긴. 집에 들어오는 날보다 밖에서 자는 날이 많으니까 이해는 합니다.”

“크흠.”

“최영준 선수. 정말 떳떳하세요?”

“당연히....”

“시발. 이 대화, 몇 년 전에 했던 거 같은데? 아 미안해요. 욕이 입에 붙어서.”

불과 몇 년 전, 당시 피닉스 운영팀장이었던 단장은 최영준에게 한 가지 사실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약물이랑 상관없죠?

-예. 전혀요.

-그래요. 믿을게요.

하지만 며칠 뒤 날아온 도핑 검사지엔 선명하게 양성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때 위에서 까인 걸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

“제가 성적에 눈이 멀어서 최영준 선수를 끌어안은 건 다 제 잘못입니다.”

“예?”

“후, 근데 전 죽기 싫어요. 그러니까 혼자 죽어요. 무슨 소린지 알죠?”

“...시발! 내가 혼자 갈 거 같아!?”

-툭.

“보세요.”

“이···. 이건.”

“이번 건만 안고 혼자 갈래요? 아니면 그거까지 다 터트리고 같이 죽을래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

“쯧, 춥다. 이만 갑니다. 보일러도 좀 틀고.”

이내 불이 꺼지고, 혼자 남은 최영준에게 온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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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결국 시인, ‘황의중에게 시켰다.’]

[징계 위원회 결과, 황의중 6개월 출장 정지 및 봉사 200시간, 최영준 1년 출장 정지 및 봉사 300시간. 허하준은 7경기 출장 정지에 그쳐.]

[대전 피닉스, 최영준 방출 수순, 그 외에도 상황을 방조한 코치진 개편 및 선수단에 교육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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