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79화 (79/203)

79화 배터리의 가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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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에서 뛰고 있는 투수 중 가장 잘 던지는 투수를 묻는다면 의견이 갈릴 것이다.

아마 돌핀스의 존 그레이나 피닉스의 에릭 니콜라스, 아니면 프렌즈의 사무엘 우즈 등 외국인 투수들이 먼저 언급이 될 거다.

허하준이 왜 언급 안 되나 싶겠지만, 허하준의 이미지는 꼴찌팀의 에이스였지 리그를 씹어먹는 정도의 투수는 아니었다.

물론 마린스 팬들은 줄곧 포수 문제라고 주장했다.

리그에서 보여준 모습과 국가대표에서 양준과 호흡을 맞추며 보여준 모습이 확연히 달랐으니까.

실제로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기록도 항상 ERA(평균자책점)보다 1점가량 낮았다.

그리고 김수호의 등장과 함께 포수 문제라는 것이 증명됐다.

물론 선수들은 이전부터 허하준의 공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국가대표에서 같이 생활했던 선수들은 다른 메이저급 선수들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허하준의 공에 항상 감탄하곤 했다.

그건 단골 국가대표인 김민주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오늘 허하준의 공은 뭔가가 달랐다.

뭐랄까.

‘저놈이 합류하기 전과 후를 보는 것 같네.’

숱한 견제에도 결국 제 능력을 입증한 김수호 말이다.

“잠시만요.”

김민주가 심판에게 타임을 외치고 잠시 타석에서 멀어졌다.

2회 선두타자로 나와 볼 카운트는 1-2.

‘포심? 투심? 아니면 스플리터?’

새로 장착한 구종에 대해선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직접 상대하려니 듣던 것과 너무 달랐다.

‘다른 구종을 던질 때랑 폼이 달라서 생각보다 치기 쉬울 거라고?’

쯧, 이게 쉬우면 지들이 치던지.

유명하던 챌린저스의 분석팀도 한물갔나 보다.

김수호를 묶는 데에 실패했고, 거기에 아무리 표본이 적다지만 가장 중요한 선발 투수를 엉터리로 분석하다니.

허하준의 구종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세 가지였다.

포심, 투심, 스플리터.

이 세 구종이 같은 폼, 같은 궤적으로 날아오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변화가 이루어진다.

보고 치는 건 절대 불가능.

‘포심으로 가자.’

남은 건 한 가지만 노리는 것뿐.

-딱!

4구에 대차게 돌려봤지만, 방망이 밑부분에 맞은 공이 유격수에게 굴러갔다.

“아웃!”

결국 땅볼을 친 김민주가 고개를 저으면서 더그아웃에 들어갔다.

“형, 공 어때요?”

더그아웃에 있던 6번 타자 안태경이 물어봤지만, 해줄 말이 딱히 없었다.

“그냥 눈 감고 쳐라. 그게 확률이 더 높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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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아웃카운트를 잡는데 땅볼 4개가 나왔다.

새로 장착한 투심에 대해 타자들이 대처를 못 한다는 증거.

“확실히 폼이 일정해졌어요.”

“그래? 노력한 게 의미가 없진 않았네.”

휴일마저 반납하고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허하준의 문제점, 아니 문제점이라기엔 좀 그렇고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바로 체력이었다.

허하준은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

5경기 완봉은 아무리 허하준이라지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됐을 거다.

거기에 팀 사정상 한 경기라도 빠지기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 투심을 장착한 건 체력관리에 큰 도움이 됐다.

“2회까지 20구도 안 던졌어요.”

물론 수비수들의 부담이 늘었지만, 솔직히 그동안 허하준 등판 때 꿀 빨았으니 이 정돈 괜찮았다.

“일단 볼 배합은 이대로 할게요. 아마 한 경기만으로 감도 못 잡을걸요?”

이렇게 자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 공을 꽤 받아본 나도 미트에 들어오기 전까진 도저히 분간이 안 됐다.

하물며 처음 보는 타자들이야, 대처가 될 리가.

그 와중에 오늘 선발로 나선 이주학이 적시타를 쳤다.

저번에 홈런 친 다음부터 자신감을 얻었는지 적극적으로 치는 게 보기 좋았다.

결국 박은성과 최치호의 연속 안타가 터지면서 5대0.

가벼운 마음으로 장비를 차고 홈플레이트로 향했다.

-딱!

“아웃!”

-딱!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단 8개로 마무리한 3회.

체감상 5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여기까진 그러려니 하겠는데, 두 번째 타석인 4회 역시 채 10개를 던지기 전에 이닝을 마무리했다.

슬슬 묘한 긴장감이 더그아웃을 감돌기 시작한다.

“야. 나만 그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걸 입 밖으로 말하는 놈이 어딨냐?”

“아, 그런가?”

“저번에 유격수 실책으로 퍼펙트 깨진 건 아냐?”

“어···? 유격수···?”

“이번에도 그러면 아마 팬들이 가만 안 둘걸?”

순식간에 얼어붙은 이주학을 놔두고 도망쳤다.

굳이 그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이주학은 풀어주면 더 실책을 하는 스타일이다.

이렇게라도 말해서 긴장을 확 주는 게 본인에게도 좋을 거다.

아무튼 이주학의 말처럼 1회부터 지금까지 챌린저스 타자가 1루를 밟은 적이 없었다.

물론 아직 잡은 아웃카운트보다 잡을 아웃카운트가 더 많긴 하지만, 기세를 보면 괜히 저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이주학뿐만이 아닌지 타격에서도 드러났다.

이미 상대 선발 투수가 내려간 상황.

충분한 점수를 뽑은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냈다.

누가 누가 빨리 아웃당하는지 내기를 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

4회 말 공격이 순식간에 끝이 났다.

그렇게 5회 초, 챌린저스의 공격이 시작됐다.

김민주가 굳은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첫 타석엔 땅볼.

김민주도 지금 진행되는 일을 아는지 말을 걸지 않았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스트라이크!”

김민주가 곧바로 방망이를 냈지만, 공은 미트에 그대로 들어왔다.

‘투심을 노렸네?’

방망이가 공의 궤적보다 아래로 지나갔다.

김민주 정도 되는 타자가 포심을 노리고 못 맞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머리엔 투심이 가득하다는 뜻.

굳이 원하는 공을 던져줄 필요는 없었다.

2구는 우타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

“스트라이크!”

‘확실히 급하네.’

이번에도 방망이를 유도해냈다.

이제 김민주는 머리가 복잡할 거다.

초구에 노렸던 투심이냐, 아니면 초구에 들어온 포심이냐.

그것도 아니면 스플리터? 아니면 슬라이더?

‘정답은....!’

“스트라이크 아웃!”

140km 남짓의 포심.

아직 꺼낼 생각 없었던 공이지만, 상대가 김민주라면 적당한 공이다.

“하.... 시발.”

공의 궤적과 완전히 동떨어진, 어처구니없는 스윙이 나왔다.

살짝 고개를 숙이는 걸로 인사를 하자 그대로 들어갔다.

“나이스 볼!”

허하준에게 공을 던지면서 김민주가 들으라고 외쳤다.

국대의 정이 있긴 했지만, 오늘만큼은 잊기로 했다.

그렇게 이번 이닝, 챌린저스의 중심 타선을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15타자 연속 범타 처리.

구장에 기묘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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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초, 챌린저스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타석엔 4번 타자 김민주.]

[오늘 사직 구장이 매진인데요, 도저히 가득 차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고요합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좀 그렇죠?]

해설의 말 대로 2만 명이 넘는 팬들은 단 한 순간을 위해 꾹 참고 있었다.

그런 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수호-허하준 배터리는 편안하게 사인을 교환했다.

‘초구는 강하게 갈까요?’

‘좋지.’

[이번에도 사인을 교환하자마자 투구에 들어갑니다! 허하준 초구! 높은 공, 스트라이크입니다!]

[타자에게 고민할 틈조차 주지 않네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대단합니다.]

[곧바로 사인을 교환하는 배터리, 2구는 땅볼! 유격수, 아! 한 번 더듬었어요!]

“아, 씨!”

경기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공을 더듬은 이주학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히 김민주는 빠른 주자가 아니었고, 넉넉하게 아웃을 잡아냈다.

[허하준 선수, 이주학 선수한테 괜찮다고 손짓을 보냅니다.]

[이주학 선수 손 보세요. 부르르 떨리고 있습니다.]

[수비로 봤을 때 이준호 선수나 이민상 선수를 쓰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린스는 계속 이주학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린 선수거든요. 물론 긴장되고, 힘든 상황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무사히 마치고 나면 엄청난 경험을 쌓는 거예요.]

[이제 타석엔 5번 타자 에스 트리미어가 들어옵니다. 당연하게도, 안타는 없습니다.]

‘이전 두 타석 모두 초구에 방망이를 냈었지?’

이번 타석에선 어떨까.

잠깐의 고민 후, 사인을 보냈다.

[초구! 쳤습니다! 다시 유격수, 잡아서 1루로! 아웃입니다!]

[방금 공은 체인지업이죠?]

[이번 경기에서 던진 적 없는 공 아닌가요?]

[타이밍이 완전히 틀어졌습니다. 전혀 생각 못했다는 거죠. 하지만 타자들에게 체인지업까지 생각하라는 건 너무 가혹한 일입니다!]

[이제 이번 이닝 남은 아웃카운트는 한 개! 6번 타자, 안태경 선수가 들어옵니다.]

챌린저스가 강팀이긴 하지만, 모든 선수가 빠른 공에 대처가 가능한 선수가 아니다.

안태경은 150km가 넘는 빠른 공에 타율이 2할이 채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여러 구질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

‘초구엔 제대로 하나 꽂죠.’

허하준이 사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곧바로 투구에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154km가 나옵니다!]

[아직 힘이 죽지 않았어요! 대단합니다!]

[이번 경기, 23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으면서 고작 82개의 공을 던졌으니 힘이 남아있을 만합니다!]

초구에 낮게 오는 빠른 공을 보여주고 2구엔 높고 빠른 공.

[스트라이크! 타자가 하나 지켜봤지만, 곧바로 스트라이크 선언이 나옵니다!]

타자가 급한 상황.

굳이 성급하게 승부를 볼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뺄 생각은 없었다.

[제3구! 헛스윙, 삼진 아웃!]

[하하. 허하준 선수나, 김수호 선수나 정말 강심장이네요! 2스트라이크에서 스플리터라뇨! 저거 빠트리면 진짜 큰일 나거든요!]

[허하준 선수가 24타자 연속 범타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리면서, 이제 8회 말 부산 마린스의 공격이 이어집니다.]

“마지막 공, 좋았어요.”

“그래? 난 좀 아쉽던데. 너무 세게 던졌나?”

“오히려 더 떨어져서 쉽게 잡았죠.”

‘미친 새끼들.’

‘2스트라이크에 스플리터? 그것도 더 떨어져서 좋았다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마린스 선수들이 속으로 욕을 삼켰다.

‘누군 심장 터질까 봐 죽겠는데!’

허하준이야 원래 저런 놈인 걸 알았지만, 김수호도 만만찮은 놈이었다.

“그래서 시계는 정했어?”

“저야 주는 대로 받아야죠.”

“저번 거까지 해서 좋은 걸로 해줄게.”

“저 진짜 기대합니다?”

이어지는 대화에 강주호마저 고개를 저으며 떠나갔다.

사실 김수호 역시 떨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다른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경기는 완전히 기울었다. 8회 초가 끝날 때 7대0.

8회 말에도 역시 타자들이 방망이를 대충 내면서 이닝이 금방 끝났다.

“갈까요?”

“좋지. 3개? 빨리 잡고 오자.”

9회 초, 챌린저스의 정규이닝 마지막 공격.

7번 타자 추승우가 타석에 들어섰다.

추승우 역시 빠른 공에 대처가 좋은 선수가 아니었기에 포심을 요구했다.

“파울!”

방망이에 맞긴 했지만, 뒤쪽으로 넘어갔다.

이제 2구.

‘몸쪽 하나 가죠.’

-딱!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공이 투수 앞에 또르륵 굴러갔다.

허하준이 가볍게 잡아서 1루에 송구.

“아웃!”

손가락을 펼치며 1아웃 내야수들에게 원아웃 사인을 보냈다.

-8번 타자, 대타 허승수

당연하지만 챌린저스 역시 대기록의 제물이 되고 싶지 않아 했다.

하지만 나도 대기시간 동안 놀고 있던 게 아니었다.

이미 강기호와 함께 대타로 나올법한 타자들의 정보를 머릿속에 쑤셔 넣은 지 오래.

허승수는 우타자에 준수한 컨택이 장점인 선수.

‘투심 보여주죠.’

하지만 딱히 대타가 좋은 선택이라곤 생각 안 했다.

허하준의 투심은 처음 보는 타자가 쳐낼 만큼 만만한 공이 아니니까.

“스트라이크!”

방망이가 전혀 닿지도 못할 만큼 돌아갔다.

이번엔 포심.

“스트라이크!”

“미친....”

140km의 느린 포심이 존 한 가운데를 지나가자 타자가 중얼거렸다.

하긴, 지금 이런 공이 올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지.

이제 남은 건 하나뿐.

“볼!”

“스트라이크 아웃!”

마지막 기회를 놓쳤으면 아웃당해야지.

2구 연속 던진 스플리터에 그대로 삼진.

[여기서 또다시 스플리터를 던지네요! 와, 진짜 김수호, 강심장도 이런 강심장이 없습니다!]

[9회 초 2아웃! 이번 경기, 챌린저스의 27번째 타자가 타석에 들어옵니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김중석으로 좌타자에 빠른 발이 강점인 선수.

거기에 타석에 바짝 붙은 게 어떻게든 나가려는 의지가 충만해 보였다.

‘바깥쪽 하나 빼죠?’

초구, 포심은 아예 빠져 앉았다.

그렇게 던진 초구.

-탁!

[거의 던지듯이 방망이를 냈습니다! 3루 라인을 따라 구르는 공!]

[던져야 해요! 던져야 해요!]

이 경기를 보고 있던 모든 사람이 타구를 보자마자 직감했다.

저건 무조건 페어다!

하지만 심판의 판정이 내려지기 전까진 결과가 나온 게 아니었다.

“마이!”

오준혁이 쇄도하며 내려오고, 김수호 역시 타구를 보자마자 전력으로 뛰었다.

하지만 김수호가 더 빨랐다.

흐르는 공을 무릎 슬라이딩을 하며 잡고, 그대로 1루로 정확히 송구.

[아웃! 아웃입니다! 김수호! 김수호가 잡아냅니다! 이 타구를 김수호가 처리했습니다!]

[이야! 대단합니다! 허하준의 퍼펙트 게임을 본인 손으로 완성 짓습니다!]

천하의 김수호도 마지막 그 공은 떨렸는지 그대로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와. 살 떨리네....”

“미친새끼야! 와! 시발!”

“잘했다! 아오오! 심장 떨려 죽겠네!”

“퍼펙트! 퍼펙트!”

아주 잠잠했던 구장이 드디어 숨겼던 에너지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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